분명히 하고 가자.
지난 1월14일 ‘공중부양’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 남부지법 형사1단독 이동연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이 자신들의 입맛과 다른 판결이 나오면 ‘붉은 칠’을 해대기 때문에 미리 밝혀둔다.
2009년 1월5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에게 국회 경위들의 농성 해산과 펼침막 철거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박 총장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는지도 쟁점 가운데 하나다. 연합 김주성
재판 결과도 성역이 아닌 만큼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법을 다루는 검찰이 “이것이 무죄면 무엇을 처벌할 수 있겠나?” “국민들이 다 보았는데 어떻게 무죄인가?” 하는 식으로, 비논리적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무죄라고 판단한 판사의 법적인 근거는 무엇인지 법리적 결함은 없는지 등을 따져야 ‘공익의 대변자’답다. 강기갑 대표에 대한 판결문에는 시민이 알아두면 좋을 법 상식과 더불어, 앞으로 상급 법원에서 다투게 될 쟁점들이 두루 있으니 판결문을 중심으로 사건을 되짚어보자.
2008년 12월 말부터 민주노동당은 언론관련법 강행 처리를 막기 위해 민주당과 함께 해를 넘겨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2009년 1월5일 0시30분,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민주당은 새벽 1시 농성을 풀었다. 민주노동당만 남았다. 새벽 3시께 경위들이 의원들은 남기고 보좌진을 강제 해산했다. 강 대표 사건과 별개로, 이 보좌진 12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공동퇴거 불응 혐의로 기소됐으나, 지난해 11월6일 서울남부지법(마은혁 판사)은 “동일 사건의 피의자(민주당 보좌진을 뜻함)들을 차별 취급하고 (중략) 검사가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하여 공소권을 행사한 공소권 남용에 해당”된다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강 대표 사건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민주노동당은 당일 아침 9시께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해산 경고를 하던 경위들이 펼침막(‘MB 악법 저지’라고 쓰인 민주노동당 펼침막)을 강제로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다. 강 대표는 경위들의 멱살을 잡았다. 이후 강 대표는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과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이를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빚어졌던 일련의 행위가 검찰의 기소 대상이 된 것이다.
검찰이 강 대표를 기소한 혐의 내용은 △공무집행방해 △방실침입 △공용물건손상이다. 공무집행방해를 당했다는 이들은,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상태에서 질서유지 직무를 집행하던 경위·방호원과 사무총장실에서 직무를 보던 박계동 사무총장, 의사일정을 논의하던 김형오 의장과 원내교섭단체 대표들이다. 방실침입과 공용물건손상 부분은 사무총장실에 무단으로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보조탁자(50만원짜리)를 부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동연 판사는 세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우선 공무집행방해 혐의부터 살펴보면, 판결은 공무집행의 범위를 엄격하게 적용한 대법원 판례(2009년 11월19일)를 인용했다. “공무집행방해죄의 보호법익이 공무원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행해지는 국가 또는 공공기관의 기능을 보호하고자 하는 데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중략)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를 하는 공무원에 대항하여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당시 경위들의 펼침막 철거 행위가 ‘국가 또는 공공기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공무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판결은 또 18대 국회 들어 김형오 의장이 남발한다는 비판을 받는 질서유지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질서유지권은) 회의체 기구인 국회 회의의 질서유지를 위한 것으로 (중략) 장소적으로는 회의장이나 그 인접 지역으로 제한되고, 시간적으로는 회의 중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한 때, 즉 사후적 질서유지로 제한된다고 할 것이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유보 입장 표명과 교섭단체 합의에 따라 본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질서유지권에 기반한 펼침막 철거 행위는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다.
박계동 사무총장의 ‘공무’와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 판사는 “공무수행은 본래의 직무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 등 제한적 범위 내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강 대표가 찾아왔을 때 박 총장은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강 대표를 “쳐다보다가 곧바로 신문으로 눈을 돌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신문을 보았고, 피고인이 나갈 때까지 피고인을 외면하며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이 판사는 사무총장의 본래 직무에 주목했다. ‘국회의 입법·예산결산 심사 등의 활동을 지원하고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사무’(국회법 21조 등)에 비춰볼 때, 강 대표를 응대하지 않고 신문을 본 행위를 적법한 공무수행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등의 업무방해와 관련해, 이 판사는 당시 회의를 정상적으로 마친 점, 그리고 강 대표가 복도에서 소리를 지르고 문을 발로 찬 행위는 항의 전달 수단으로서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또 방실침입과 공용물건손상 혐의에 대해서는, 각각 국회의원들의 출입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공간이라는 점과 고의성이 없는 과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형사재판이 도의적 잘잘못을 가르는 자리는 아니다. 검찰이 기소한 혐의가 형법에 따라 처벌할 정도인지, 입증할 증거가 있는지 등을 따지고 그에 맞는 양형을 하는 것이다. 검찰,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 언론을 자처하는 일부 신문들이 문제를 제기하려면, 그런 점에 비춰볼 때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이 무리가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강 대표를 기소한 검찰의 엄격한 잣대를 국회에 들이대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수많은 폭력과 공무집행방해로 보이는 모든 행위는 기소 대상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볼 거리다.
2004년 11월,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와 여당이 사립학교법·국가보안법 개정안 등을 강행 처리하려 하자 “4대악법 결사저지”를 내걸고 투쟁했다. 법제사법위원회 문에 대못질을 하며 물리적 충돌을 빚었는가 하면, 펼침막을 걸고 국회에서 농성을 했다. 그 이유로 기소된 의원은 없었다. 1998년 12월, 한나라당이 국회 529호실을 ‘정치사찰을 위한 안기부 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해머로 출입문 잠금장치를 부수고 들어갔다. 그때도 형사처벌을 받은 한나라당 의원과 당직자는 없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 정치 영역에 수사기관이 개입하거나 의회에서의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한 사례는 거의 없다. 사법부도 대체로 국회의 재량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해왔다.
그런데 18대 국회 들어 달라졌다.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해 여야가 충돌했던 몇몇 사건이 법정으로 갔고, 야당의 문학진·이정희·강기정 의원과 조원진 한나라당 의원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공무집행방해·공용물건손상·폭행이 ‘단골’ 혐의가 됐다. 강기갑 대표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던 검찰은, 국회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항의 행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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