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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의 대변자’ 스스로 부정하는 검찰

사건 실체 파악에 도움되는 용산 수사기록 공개에 사사건건 반발하는 검찰의 자가당착
등록 2010-01-29 14:26 수정 2020-05-03 04:25

용산 사건의 미공개 수사기록 2천여 쪽의 공개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용산 참사 때 경찰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민들이 이 수사기록의 공개를 요구하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공개 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은 계속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러던 중, 용산 참사 유족들이 무리한 진압으로 철거민을 숨지게 한 혐의로 김석기(56) 전 서울경찰청장 등에 대한 재정신청(검찰이 기소하지 않을 때 법원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내는 소송)을 냈고 이 재정신청 사건이 철거민들의 항소심을 담당하는 재판부로 배당됐다. 재정신청 사건 심리를 위해 제출된 문제의 수사기록도 함께 항소심 재판부로 넘어왔다. 그러자 항소심 재판부가 수사기록을 피고인인 철거민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검찰은 용산 참사 사건 수사기록 비공개로 비난을 자초하더니 이제는 법원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고 있다. 2009년 2월9일 정병두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가 용산 참사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한겨레 김명진 기자

검찰은 용산 참사 사건 수사기록 비공개로 비난을 자초하더니 이제는 법원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고 있다. 2009년 2월9일 정병두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가 용산 참사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한겨레 김명진 기자

‘증거서류’ 공개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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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검찰은 “재정신청 사건 심리 중에는 관련 서류 및 증거물을 열람 또는 등사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들어 용산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기록을 공개한 것은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판부의 기록 공개 결정에 대해 대법원에 즉시 항고하는 한편, 재판부 기피신청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법원이 수사기록을 볼 수 있도록 검사에게 명령할 수는 있지만 실제 내줄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검찰의 고유 권한”이라며 “우연히 다른 사건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음을 기화로 법원이 직접 피고인에게 열람·등사를 하도록 기록을 내주는 것은 법률에 근거가 없는 위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과연 검찰의 주장이 옳은지 따져보자.

우선 보통의 재정신청 사건에서는 심리 중 서류 및 증거물을 공개하는 것이 위법이다. 아직 법원에 의해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기록 및 증거물이 공개될 경우 사생활 침해 및 수사 기밀 누출 우려 등이 있고, 민사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철거민들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등을 고소하고 재정신청을 청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악용의 우려가 있는 경우라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서류 및 증거물을 공개해도 입법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특수성이 있는데, 그것은 용산 철거민에 대한 항소심 재판과 전 서울경찰청 지휘부에 대한 재정신청 사건이 별개가 아닌 사실상 하나의 사건이라는 점이다. 용산 참사에 대한 책임에서 서로 배타적 관계에 있는 잠재적 책임자들에 대한 재판이 하나는 용산 사건의 재판(철거민들에 대한 재판)으로, 다른 하나는 재정신청 사건의 재판(경찰 지휘부)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용산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재정신청 사건을 배당받아 동시에 재판을 담당하게 된 이유도 두 사건이 하나의 사건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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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경우 재정신청 재판에 제출된 문제의 기록은 단순히 재정신청 사건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용산 사건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증거서류라는 이중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피고인들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면 꼭 입수해야 할 기록인 것이다.

따라서 항소심 재판부가 단순히 재정신청 사건의 서류를 공개한 것이 아니라 용산 사건의 항소심 재판과 관련된 증거서류를 공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구나 이 기록들은 1심 재판부가 이미 공개를 명령했고, 재판부의 결심에 따라서는 문서제출 명령이나 압수를 통해서도 입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 재정신청이라는 우회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기록을 입수했고, 이를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공개한 것은 법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검찰을 믿은 입법상의 실수

그러면 법원이 수사기록 및 증거물의 공개를 명할 수는 있어도 공개 여부는 검찰의 고유 권한이라는 주장은 타당한가? 이러한 주장은 현재 우리 형사소송법상 검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재판에서 그 증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제재만을 두고 있을 뿐,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제재 수단을 마련해놓고 있지 않은 까닭에 제기된다. 이는 명백히 입법의 실수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검찰을 신뢰한 실수다. ‘공익의 대표자’를 자처하는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은닉하면서 공개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라고 신뢰를 한 데서 발생한 실수다.

그러나 현행 형사소송법의 해석으로도 검찰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첫째, 검사에게 증거 공개를 명하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서는 집행정지의 효력이 있는 즉시항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즉 공개 결정은 즉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뿐만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제출·공개할 객관적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검사는 소추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당사자로서의 지위 외에도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지위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의무도 지고 있으므로, 진실을 발견하고 적법한 법의 운용을 위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에 대하여는 상대방에게 방어의 기회를 부여하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에 대하여는 이를 상대방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주어야 한다”라고 분명히 판시(94헌마60결정)했다. 결국 증거 공개 여부를 임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검찰의 입장은 타당하다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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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검사가 공익의 대변자라기보다는 피고인과 동등한 소송의 당사자일 뿐이라는 당사자주의에 철저한 나라다. 그런 미국에서도 검사의 공익 의무를 강조해 검사가 법원의 공개 명령에 불응하거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은닉하는 경우 법정모독죄로 처벌하거나 공소기각을 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이러한 갈등이 생겨난 근본적 원인은 검찰의 기록 공개 거부에 있었다. 용산 사건은 수사를 한 검찰도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 같았다”는 소회를 말할 정도로 실체 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사건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당연히 실체 파악에 관련된 모든 증거 자료를 법정에 제출해 법원의 합리적 사실판단을 돕고, 피고인들에게도 그 자료들을 제공해 방어 준비에 활용하도록 했어야 한다. 그러나 미공개 기록 2천여 쪽에 공소사실과는 다른 진술들이 들어 있다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고 법원이 기록 공개를 명했음에도 검찰은 뜬금없는 ‘사생활 보호 등’의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했다. 그리고 용산 사건의 1심 재판부는 변호인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은닉 기록’에 대한 증거조사를 생략한 채 지난해 10월 철거민들의 유죄를 인정하고 모두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부인하나

이번에 용산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수사기록을 공개한 것은 지난 1심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한 과오를 바로잡고 실체적 진실에 전면적으로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항소심 재판부의 행위를 비난하는 자라면 우리 헌법에 명시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부인하는 자와 다름없다. 더욱이 공익의 대변자임을 자처하면서 수사권·기소권·영장청구권·형집행권 등 온갖 권한을 독점하는 검찰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한 재판부의 기록 공개에 반발하는 것은 스스로 공익적 성격을 부인하는 자가당착에 해당한다.

참여연대가 “현재 검찰이 할 일은 반발이 아니라 반성”이라는 논평을 낸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그러나 과연 국민이 안중에 없는 현재의 검찰에 반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국민발 검찰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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