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수 언론의 사법부 흔들기는 ‘커피’ 버튼을 눌렀는데 ‘우유’가 나왔다고 불평하며 고장난 사법부를 수리하겠다는 것이다. 판결을 입맛대로 주문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유의미한 사회적 대화의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판결 과정은 ‘사실’을 집어넣으면 ‘결론’이 튀어나오는 자동판매기 같은 것이 아니다. 판결이 일부의 사회적 가치판단을 기계적으로 추인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사법 판단의 독자적 존재 의의가 없어진다. 상식과 철저하게 괴리된 판결도 문제지만, 고정된 관념을 상식이라는 명목으로 안일하게 인정하고 마는 판결도 마찬가지로 문제다. 판결은 상식과 법 사이의 긴장과 화해를 기록하는 공적 자산이 되어야 한다. 판결은 상식과 법을 서로 되비추며, 그 사이에 대화의 길을 내는 과정이다.
교사도 공무원 이전에 주권자인 국민의 한 사람인 만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검찰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퇴보를 걱정하는 내용의 시국선언까지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6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진후 위원장(앞줄 가운데 서류 든 이) 등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상식에 비추어 질문은 간단하다. 시국선언을 한 교사는 처벌되어야 하는가? 이 간단한 질문에 법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사회적 가치판단이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논쟁적 사안이다. 더욱이 형법의 적용은 ‘압정’과 같은 것이다. 행위를 겨냥하는 것은 한두 개 조문으로 뾰족하지만, 그 규정을 적용하는 처벌은 법 전체의 정당성이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시국선언에 대한 개인적 찬반 의견으로 피고인을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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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공소 제기는 교사가 일제고사 등 교육 현안과 국정 기조에 대해 시국선언을 한 행위가 공무원의 집단 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66조 1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대법원의 판례를 제시하며 변호한다. 법에서 금지하는 집단행위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21조 1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하여 직무전념 의무를 해태(태만히 함)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확립된 판결(대법원 1992. 2.14. 선고 90도2310 판결 등)인데, 피고인이 정부 정책을 비판한 시국선언은 공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고, 시국선언문을 발표·게시한 것일 뿐 근무 시간에 근무 장소를 이탈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묻자. 여러분이 판사 또는 배심원이라면, 이 논쟁적 사안에서 어떤 평결을 내릴 것인가? 판단을 위해, 쟁점과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 재판에서 검사는 2004년 4·15 총선과 관련해 ‘민주노동당 지지 및 탄핵 무효’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전교조 간부를 국가공무원법상 집단행위금지 위반행위로 유죄를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제시했다. 그러나 2004년 대법원 판결은 이 사건과는 사안을 달리하는 것이다. 당시 시국선언은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이 인정되어 ‘정치운동금지’ 위반의 유죄가 선고된 사안이었다. 반면 이번 사건의 시국선언은 그러한 목적 없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의 버림을 받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시국선언의 내용을 들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만약 이 사건의 시국선언이 그 자체로 정치운동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검사는 공소 제기를 하면서 국가공무원법 65조의 정치운동금지 위반 규정을 적용해 기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소는 집단행위금지 위반 규정(66조)만을 적용한 것이었다. 기소 당시에 검사 스스로가 이 사건의 시국선언에 국가공무원법 65조의 정치운동금지 위반 규정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무원이라고 하더라도 주권자인 국민으로서의 헌법적 지위가 배제될 수는 없다.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는 공무원을 포함해 인간이 그 존엄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기본적 권리고, 공무원의 경우 그 지위나 직무의 성질에 비추어 일반 국민보다는 제약의 필요성이 더 클 수 있으나 그 경우에도 일률적·전면적으로 제한할 수는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신분이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교육 현장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국가기구의 의사를 실어나르는 복종적 신민(臣民)이 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와 사회는 무비판적인 공무원들에게는 어떠한 관심도 없다”는 표현으로 이를 확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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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법원 판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다음과 같은 판단이다.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행사를 학생에 대한 간접적 영향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처벌한다면, 처벌 규정의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고 교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일률적·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법원은 1970년에 이미 교사의 국가에 대한 맹세문 암송 거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학생들 중 일부가 교사의 행동을 보고 설득력을 느껴 마찬가지로 맹세 암송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정헌법 1조는 ‘효과 없는 항의’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반대’ 또한 보호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숨쉴 공간이 필요하고, 이는 자유민주주의 제도에서 보장되어야 할 핵심적 권리인 것이다. 하물며 이 사건의 시국선언은 전적으로 교육 이외의 장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교사의 시국선언 무죄판결에 대한 평가는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판결의 정당성은 사회적 대화의 장에 개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판결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그 결론에만 집착해 자신의 결론과 외곬으로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논증 과정의 정당성을 점검하는 것이어야 한다.
전주지법의 교사 시국선언 무죄판결은 법적 논증을 통한 사회적 설득을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다. 20장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대법원의 선례들을 비평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검사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반박하며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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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시국선언에 동조하는 집회에 참가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부산 지역 본부장의 유죄를 인정한 부산지법의 판결은 논증 과정의 진지함이라는 측면에서 사뭇 대조적이다. 물론 구체적 사안은 다르다. 전주지법의 무죄판결은 시국선언문의 발표에 참여한 행위만이 법적 평가의 대상이었으나, 부산지법의 유죄판결은 집회에 참가한 행위까지가 평가 대상이다. 그러나 부산지법의 유죄판결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행위가 법에서 금지하는 정치운동에 해당하고 공익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한 논증 과정을 확인하기 어렵다.
진보·보수를 떠나서 내가 피고인이라면, 어느 법정에서 재판받기를 원하겠는가? 판결의 힘은 상식과 법 사이에서 당사자와 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논증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판결이 설득의 힘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권위로 제압될 뿐이다. 판결이 무오류의 논리일 수 없다면, 법관은 문제에 대한 고뇌와 판단, 그 근거 모두를 법적 논증 과정에서 드러내야 한다. 법관이 판단에까지 이른 생각의 경로를 온전히 드러내야만, 판결이 의미 있는 사회적 대화의 장에 개방될 수 있다. 전주지법의 교사 시국선언 무죄판결은 그 좋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소수 의견이나 새로운 주장이 제도 내부에서 인정돼가는 과정이 바로 사회의 발전이다. 이 진지한 판결이 이후 사법부 내부의 논증 경쟁 과정에서 인정될 수 있을지 기대해볼 일이다.
정정훈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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