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손길이 닿기 전에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상식의 문을 닫는 것 말고도 한국 검찰이 일삼는 게 또 있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행태다. 검찰청은 법무부에 소속된 외청이지만, 실상 검사들이 법무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믿고 싶지 않은 한국 사회의 상식이다. 검찰총장보다 몇 해 앞서 사법고시를 ‘패스’한 이가 법무부 장관을 하게 마련이고 검찰국장을 비롯한 법무부 주요 요직은 검사들이 꿰차고 있다. 예외 없이 사성장군 출신 군인이 장관을 도맡는 국방부와 다를 바 없다.
‘밀실 사면’에 대한 반성을 토대로 사면심사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법무부는 그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겠다며 ‘밀실 행정’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29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을 발표하는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그런 법무부가 2008년 8월 사면심사위원회 명단을 공개하라는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대통령이 앞에서는 법치를 외치고 뒤돌아서면 사면을 남발하는 마당에, 대통령에게 사면의 적정성을 건의하는 사면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밝히라는 요구는 시민의 권리이다. 하지만 법무부는 귓등으로 들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정보공개를 거부한 법무부의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모두 경제개혁연대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은 지난 1월20일 이 판결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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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인정한 사실관계와 법 논리는 상급심을 거치며 모두 인정됐다. 법무부가 위원회 명단 공개를 거부한 이유는 이렇다. “사건 정보가 공개될 경우 위원들이 사전에 집단적·조직적 압력을 받을 수 있고, 사후에 대대적이고 집중적인 비난 여론의 표적이 될 수 있으며, 전화나 인터넷에 의한 폭언·협박 등 위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회의록은 사면 시행 10년 뒤 공개하고 심의서는 사면 즉시 공개하더라도 개별 위원 누가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 위원에게나 폭언·협박 등의 위해를 가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이러한 위험을 이유로 정보의 비공개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심의서와 회의록은 특별사면 등의 상신이 적정하다고 심사한 사안에 한하여 공개되고, 사면 심사에서 부적정으로 결정한 사안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법무부는 또 “사면심사위원들이 광범위한 여론 및 로비에 노출돼 심사 과정에서 솔직하고 자유로운 의사 교환이 어려워져… 사면 자체를 반대하거나 이와 상반되는 여론의 눈치를 보며… 외부의 의사에 영합하는 발언을 하거나 비난 여론에 대한 부담으로 아예 침묵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의견도 명단 비공개로 풀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부당한 외부 여론이나 로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면서도 중립적인 위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밀실에서 은밀하게 이뤄짐으로써 아무런 책임과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의 자의적인 사면권 행사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국민들의 여망으로 탄생한 사면심사위원회가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행사에 대해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합법성을 부여하는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될 위험성이 더 크다”고 법원은 우려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되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법무부가 노력해야 한다”며 “당연직인 법무부 장관 이외에 공무원 4명과 민간위원 4명의 명단이 2월 중순 즈음에는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형 판결이 확정된 지 넉 달 만에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면을 건의한 이들이 누군지도 그때쯤 만천하에 공개된다.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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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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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