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지역의 한 중견 판사는 지난해 공판검사와 만나 저녁을 먹었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당분간 법정에서 마주할 사이여서 안면은 터야 했다. 술잔이 조금 돌았을 무렵, “그런데 판사님들도 야근하십니까?”라고 물어왔다. 말문이 막혔다. 유무죄 판단도 자신의 일이고 판결문을 쓰는 것도 자신의 업무인데, 명색이 공판검사가 저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싶었다. 아마도 검찰에서 피의자를 넘겨주면 공소장대로 판결문을 만들어 도장만 찍는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기가 막혔다.
검찰이 법원을 비난하는 핵심은 잘못된 판결이란 것이고, 이는 검찰 자신이 올바르게 기소했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1월20일 “나라를 뒤흔든 큰 사태의 계기가 된 주요 사건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검찰의 판단에서 벗어나는 결론을 법원이 내놨기 때문에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검찰이 법원에 시비하는 포인트다. 검찰은 형사사법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쥐고 있거나 적어도 대부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법관의 권한인 영장 발부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판사에게 야근하느냐고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생각은 다르다. 가령 이런 것이다. ‘우리가 법관이고 우리가 판단한다.’
“현재 형사사건 무죄율이 1% 미만인데 10%는 돼야 정상적인 검찰권 행사다. 무죄가 예상되더라도 사회정의에 반하는 범죄는 기소해야 한다.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당연하다.” 2006년 4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말했다. 적어도 스스로를 형사사법의 주역이라 자신하는 검찰에게, 올바른 기소는 유죄판결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검찰을 거치지 않은 천 장관은, 검사의 역할은 결과 판단이 아니라 문제제기라는 교과서를 강조했다. 그렇지만 이 얘기에 수긍한 검사는 많지 않았다. 여전히 대한민국 검찰은 99% 유죄를 받아내고 있으며, 그래서 무죄가 나오면 참지 못한다. 검찰이 대한민국 형사사법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한 사건으로 두 개의 판결문을 받았다. 먼저 온 것은 패소이고 다음에 온 것은 승소였다. 수도권 지역 법원의 해당 재판부는 이 변호사에게 전화해 패소 판결문을 돌려달라고 했다. 변호사는 거절했고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법원에서 결론에 자신이 없을 경우 두 종류의 판결문을 작성해 잘 써지는 쪽을 택한다. 이게 아니라면 흔히 있듯이 재판부에서 막판에 결론을 바꾼 것도 같다. 어떤 경우이든 승패 모두 이론이 구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발송과 관련해) 실수한 것으로 짐작된다.” 변호사의 말이다. 상당수 사건에서 유죄 또는 무죄 어느 쪽이 되어도 법리가 완벽하다. 심지어 대법관 사이에 결론이 엇갈리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기소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무죄와 유죄를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가 됐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법원마다 다르게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최종 결론은 상급심 판단을 따랐다. 적잖은 세금이 들어간 하급심의 결론은 모두 사라졌다. 사실 여기에 논리적 필연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1·2·3심에서 ‘유죄-유죄-무죄’일 경우에는 다수결에 따라 유죄로 선고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헌법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그렇다. 마찬가지로 주요 사건에 관해, 국회의 의견을 들어보라거나 언론사 논조를 적용하라는 내용은 아직은 없다. 현행 헌법에 따라 사법권은 법원에 있다.
최근 논란되는 사건들은 흔한 법리사회의 모든 집단이 사법부의 결론을 존중한다는 말을 가슴에 담고 있다. 무턱대고 결론이 잘못됐다고 말해봐야 비웃음만 산다는 것을 모두 안다. (결론이 잘못됐다고 정면으로 말하는 곳은 검찰과 변호사단체뿐이다.) 이렇다 보니 정치적 사건에서 주요 이익집단은 상대방의 배후를 지목한다. 검찰이 청와대의 사주로 기소했다거나,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란 식이다. “우리법연구회는 편향된 이념적·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나타내 포퓰리즘 성향이 재판에 그대로 나올 수 있다.”(1월22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법적 분쟁으로 끌고 간 명백한 정치적 사건.”(1월20일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 싸움의 맥락이 이렇다.
미국에서 법관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 사형제도, 낙태, 총기 소유, 정교분리, 인종차별 등의 문제에 대한 태도다. 가늠자의 기준선은 현재와 미래, 국가와 개인 등 대립하는 가치에 대한 선택이다. 명예훼손이나 공무집행방해 정도는 법관의 헌법적 신념을 구분하고 구현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주제다. 과거 국가보안법이나 정리해고 요건, 최근의 불법 파견근로 문제 정도가 진보 가치를 구현하기에 적당할 것 같다. 최근 논란이 되는 형사사건들은 법리적으로 흔한 것이고 따라서 그동안 쌓여온 판례가 육중하기 때문에 쉽게 뒤집지 못한다. 만약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사건의 결론이 명백히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해당 판사의 형법 실력이 모자란 것이지 성향을 탓할 일은 못 된다.
법관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뼈대를 유지하도록 교육받고 체득한다. 법관더러 보수적이라고 질책하는 것은 거북이에게 느리다고 비난하는 셈이다. 보수성은 사법부의 숙명이다. 그 안에서 다소 전향적인 법관이라 해도, 사회 전체에서는 한참 뒤쪽이다. 사회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은 기업가의 몫이며,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는 것은 정치인의 일이다. 법관에게 사회를 끌어달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고, 소심한 사법부가 그러지도 못한다.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했다.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교육하도록 한 선례를 뒤집었다. 그 유명한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 판결이다(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9명 전원일치 판결이었지만 주류 여론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렇듯 법원은 나아가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현재 논란은 진보와 보수의 외피를 쓰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이 덧씌웠기 때문이다. 기존의 갈등과 긴장을 판결 기사에 담아 폭발시켰다. 사회세력들이 이러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결론이 명확하게 나뉘는 법원 판결을 지렛대 삼아, 피아를 명확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도 판결 근거까지 따지기 시작하면 이분법이 어렵다. 그래서 상대방의 배경과 인신을 공격하는 데 집중한다.
사법부 결론의 다음을 실행하라다음으로,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 사법부의 결론을 신호로 모든 논의를 중단하고 있다. 새만금 사건의 경우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다른 차원의 논의까지 사라졌다. 하지만 법리적 승부는 정치적 승부나 역사적 평가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는 것은 법원에서 밀리면 모든 면에서 지는 것이라는 강박이 생긴 탓이다. 이런 분위기가 옳은 것인지를 별도로 하더라도, 정치권이 만약 사법부의 결정을 그렇게 여긴다면 더욱이나 법원을 끼고 싸우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사법부를 치받다가는 그나마 믿을 곳마저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대한민국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
추신. 미국의 브라운 판결 이후, 아칸소주 리틀록 고등학교에 101공수사단이 투입됐다. 병력은 1천 명에 달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흑인 학생 9명의 등교를 막은 백인 사회에 맞서 법원의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서다. 보수 집단의 반발에도 사법부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봤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2010년 대한민국 대통령은 지금 벌어지는 논란을 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범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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