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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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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가세, 대연합으로

야 5당과 4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5+4회의’의 거대한 발걸음
지방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넘어서는 정치 연합 모색 중
등록 2010-01-07 08:35 수정 2020-05-02 19:25
다시 선거의 해가 밝았다. 2010년 6월2일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전국 16곳 광역단체장과 230여 곳 기초단체장 등을 동시에 뽑는 대규모 선거다. 2007년 대선과 이듬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완패한 진보·개혁 진영에 이번 지방선거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 5당과 민주통합시민행동, 희망과 대안 등 4개 시민사회단체가 진보·개혁의 승리를 향해 ‘5+4회의’에서 머리를 맞댔다. 시민사회와 야권이 정치 연합을 위해 정식 논의기구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갈 길은 아직 멀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공동의 가치가 연합의 매개가 돼야 한다는 ‘진보대연합’과 이명박 정권 심판이 1차적 목적이 돼야 한다는 ‘민주대연합’의 간극이 여전하다. 시민사회의 역할과 역량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각종 선거 때마다 정치 연합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경험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넘어가세, 대연합으로

넘어가세, 대연합으로

‘진보’를 향한 진보·개혁 진영의 거대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 5당과 민주통합시민행동 등 4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5+4회의’(가칭)가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권 심판과 진보·개혁 진영의 승리를 위해 시민사회와 야권이 손을 맞잡은 것이다.

5+4회의에는 민주당 윤호중 사무부총장과 민주노동당 오병윤 사무총장, 창조한국당 김서진 최고위원, 진보신당 정종권 부대표, 국민참여당 김영대 대외협력위원장 등 야 5당 지도부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인사로는 백승헌 희망과 대안 공동운영위원장, 박석운 2010연대 운영위원, 황인성 시민주권 소통과 연대 위원장, 이형남 민주통합시민행동 운영위원 등이 있다.

10·28 재보선의 뼈아픈 기억

5+4회의는 2009년 10월28일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뒤 시민사회단체 핵심 관계자들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경기 안산 상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야권이 끝내 후보 단일화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직접적 계기였다. 10월 재·보궐 선거 직후 시민사회의 분위기는 딱 이랬다.

“압도적 승리를 했다고 희희낙락하는 민주당을 보면 정말 뺨이라도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 (경남) 양산에서도 이겨야 했다. 안산에서 이겼지만 그게 이긴 건가. 통합을 해야 했다. 후보가 하나가 돼야 했다. 그런 게 국민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작은 이익을 떠나 함께할 때, 통합의 숫자를 넘어 더 높은 시너지 효과가 발휘된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권은 분명 반성해야 한다. 그걸 반성하게 하는 건 시민의 힘이다.”(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2009년 11월5일 창간 8주년 기념 강연)

10월 안산 상록을 재선거는 야권과 시민사회단체가 지닌 역량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줬다. 임종인 후보를 지지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3당은 임 후보의 낮은 지지도에 갇혀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진보 정당이 지지하기 어려웠던 김영환 후보의 공천을 강행한 민주당은 기득권주의와 리더십 부재를 다시 드러냈다. 시민사회도 마찬가지였다. 기성 정당을 압박할 유효 수단이 없어 원론적 수준의 ‘단일화’ 구호만 외칠 뿐이었다.

5+4회의의 출범은 그때 진보·개혁 진영이 보여준 답답한 행태에 대한 총체적 반성이다.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는 “10월 재·보궐 선거 이후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 연합을 주도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논의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며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지방선거 승리를 향한 야권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가 곧 5+4회의의 탄생”이라고 말했다.

5+4회의는 2009년 12월30일 회의까지 서너 차례의 모임을 통해 선거 연합에 대한 각 당의 기본적 입장을 확인했다. 이르면 1월7일께 5+4회의의 활동 방향과 그동안의 논의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 관계자는 “단순히 후보 단일화 방안만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2010년 지방선거를 위한 정책 연합과 선거 연합 등 정치 연합에 대한 폭넓은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지방선거 이후 공동의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진보개혁 진영이) 한 번도 가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시민사회가 후보 단일화 요구나 낙선운동 등의 방식으로 선거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적은 있어도, 정당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정치 연합을 모색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그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각자 처지와 이해관계가 다른 정당 및 시민사회가 ‘최대공약수’를 찾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야권과 시민사회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 송영오 창조한국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왼쪽부터)가 2009년 12월23일 오찬을 함께하기 위해 모였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야권과 시민사회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 송영오 창조한국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왼쪽부터)가 2009년 12월23일 오찬을 함께하기 위해 모였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연합공천 뒤 지방 연립정부로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는 최근 민주통합시민행동 토론회에서 정치 연합(혹은 연합 정치)을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정당 및 정치 세력과 연합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정치 연합은 △서로 다른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의회 내에서 입법과 정책의 추진을 위해 일상적으로 행하는 ‘정책 연합’ △서로 다른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연합해 정부를 형성하거나 운영하는 ‘정부 연합’ △선거에서 정책이나 공천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선거 연합’으로 나뉜다.

민주당이 관심을 갖고 있는 정치 연합의 형태는 선거 연합이다. 정세균 대표가 이미 ‘민주대연합’ 혹은 ‘반MB연대’를 야권과 시민사회에 공식 제안해놓았다. 당 내부에서는 지방선거에서 단순히 후보 단일화를 넘어 야권의 연합공천도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방선거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민석 최고위원이 이에 적극적이다. 선거 연합 단계에서 연합공천을 추진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후보 단일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태도다.

김 최고위원은 “두 가지 방법 모두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일단 연합공천 실천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연합공천이나 후보 단일화 논의가 성과를 낸다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지방선거 이후 자연스럽게 지방자치 연합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지방자치 연합이란 곧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연립정부를 뜻한다.

지방 연립정부 구성 방안을 좀더 실제적으로 검토하는 쪽은 국민참여당이다. 광역단체장은 물론 광역의원과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선거까지 4개의 선거를 한 번에 치러야 하는 지방선거의 특성상 ‘지방 공동정부’ 방안에 기초한 선거 연합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지방 공동정부 역시 지방 연립정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천호선 국민참여당 상임부위원장은 “광역단체장 선거는 각 정당이 후보를 낸 뒤 후보 및 정당에 대한 지지도, 단체장으로서의 적합도 등을 함께 고려해 단일 후보를 결정하는 쪽이 바람직하다”며 “나머지 광역의원 선거와 기초단체장 선거는 광역단체장 선거 연합에 참여한 정당의 지지도에 비례해 후보를 조정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전국 16개 시도 광역단체장 선거 연합은 후보 단일화 방식으로 하되, 광역의원 및 기초단체장 단일 후보의 수는 각 당 지지도에 맞춰 가급적 연합공천 하자는 제안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시각차

민주노동당 역시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반MB연대’의 틀 속에서 치른다는 방침에는 큰 이견이 없다. 선거 연합과 함께 ‘진보의 재구성’도 민노당의 당면 과제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는 1월 초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진보신당 등 진보 정당의 대통합을 공식 제안한다는 계획이다.

오병윤 민노당 사무총장은 “진보 통합과 선거 연합은 민노당의 요구를 넘어 2012년 진보·개혁 진영의 집권을 위한 중요한 결절점이 될 것”이라며 “지방선거 전략의 구체적 내용과 방향은 2010년 2월 하순 정기 중앙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선거 실행력과 명분의 측면에서 판단할 때 후보 단일화보다는 연합공천이 바람직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높다”고 말했다.

진보신당의 태도는 좀 다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야 3당(창조한국당을 포함하면 야 4당)이 ‘민주대연합’ 틀 속에서 이미 지방 연립정부 구성까지 폭넓게 논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갖고 있다. 앞서 소개한 정치 연합 가운데 진보신당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책 연합’이다. 선거 연합과 정부 연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책 연합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2009년 12월16일 노회찬 대표가 국회 기자회견에서 밝힌 그대로다. 노 대표는 이날 선거 연합의 조건으로 “과거에 대한 반성적 평가와 혁신, 진보적인 가치의 공유”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고교 및 대학 평준화를 통한 교육 대혁명 △무상 의료 확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제 전면 도입 등을 공동의 정치 강령으로 채택할 수 있어야 선거 연합을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른바 ‘진보 대연합’은 정책 연합의 ‘노회찬식’ 표현이다.

노 대표는 민주당 등과의 선거 연합에 대해 “정책적으로 충돌하면서 선거 연합을 하면 국민으로부터 야합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느냐”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물론 “국민의 요구가 강하면 특례로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지만, 강조점은 ‘정책적 충돌’에 찍혀 있었다. 민노당과의 통합에 대해서도 그는 “‘묻지마 통합’ 역시 의미가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인접성 없는 연합, 선거 끝나면 깨져

2009년 4월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 연합은 ‘후보 단일화’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울산 지역 노동자단체 등 시민사회의 단일화 압력이 밑거름이 됐다. 2009년 3월25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가운데)과 후보 자리를 양보한 김창현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왼쪽)가 현대차노조 대의원대회장을 들러 지지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

2009년 4월 울산 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선거 연합은 ‘후보 단일화’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울산 지역 노동자단체 등 시민사회의 단일화 압력이 밑거름이 됐다. 2009년 3월25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가운데)과 후보 자리를 양보한 김창현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왼쪽)가 현대차노조 대의원대회장을 들러 지지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

선거 연합의 충분조건으로 정책 연합을 강조하기로는 민노당 역시 마찬가지다. 민노당은 민주당 등과의 선거 연합이 △노동자와 농민 삶의 개선 △민주주의의 회복 △남북관계의 발전이라는 세 가지 전략적 과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자와 농민 삶의 개선’ 부분에서는 집권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민주당과 견해를 달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같은 전략적 과제를 정치 연합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차이다. 민노당 관계자는 “2010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힘을 합쳐 이명박 정권 및 한나라당을 심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에서 소외돼온 노동자와 농민의 요구에 헌신하는 것 또한 민노당의 소명”이라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에 대한 태도는 앞으로 정책 연합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표가 강경한 태도에 대해 진보신당 이외의 야 4당은 “노회찬 대표가 진보 대연합을 고집하는 것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본인의 선거공학적 노림수 아니냐”는 시각도 보인다. 실제로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노 대표의 12월16일 발언 직후 “시민사회와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이 ‘범개혁세력 반MB연대’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데, 유독 노 대표만 분열과 선명성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서울시장 완주라는 ‘소탐’ 때문에 ‘대실’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과거 이념적 인접성이 희박한 정치 세력의 연합이 성공한 경험이 없었다는 사실은 노 대표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1997년 대선 때 등장한 이른바 DJP 연합이 대표적이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는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선거 연합에 성공했다. DJP 연합은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했다는 측면에서 선거 연합인 동시에 관직 배당을 약속한 정부 연합의 성격을 가졌다. 정책 연합 없이 이뤄진 정치 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선거 연합도 마찬가지였다. 대선 직전 여론에 떠밀려 선거 연합에 먼저 합의한 두 사람은 정책 연합과 정부 연합 단계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결과는 선거 하루 전 정몽준 후보의 지지 철회로 나타났다.

‘모두’가 만족하는 해법, 민주당에 달려

정치 연합이 이뤄지려면 연합에 참여하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이해와 양보가 필수적이다. 고원 상지대 교수는 선거 연합이 이뤄지려면 “연합에 참여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이 확실해야 하고, 연합의 파트너끼리 ‘등가교환의 원칙’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자유주의 정치 세력인 민주당은 이념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득권을 큰 폭으로 양보해야 하고, 진보주의 정치 세력인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은 이념의 양보 구도가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라 구현되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라고 말했다.

1차적 관건은 민주당이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은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에 비해 유력 후보와 당선 가능 지역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곧 기득권이다. 기득권을 가진 민주당이 나머지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경우에 따라 당선 가능권에 있는 소속 후보를 주저앉혀야 할 수도 있다. 김형주 시민주권 정치개혁위원장은 “예컨대 민주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다른 야당의 양보를 얻어내고자 한다면 민노당 혹은 진보신당에 당선과 거리가 먼 서울 강남구청장 후보 자리를 제안하는 식이 아니라 광주 기초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양보의 명분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당에서도 민주당의 헌신이 정치 연합의 1차적 관건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민노당 핵심 관계자는 “후보 단일화 등의 절차가 당원 모두의 동의를 얻으려면 민주당이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한 패키지를 제공해야 한다”며 “반MB연대를 성사시키는 것은 결국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 안팎의 전문가 그룹에서 야권의 정치 연합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4회의가 의미있는 합의에 이른다 해도 민주당이 2009년 10월 재·보궐 선거 때 보여준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정치 연합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정치 연합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려면 각 당 지도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현재 민주당 등 각 당 지도부의 리더십으로는 당내 다양한 계파의 이해와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민주당에서는 당 개혁을 위해 출범한 ‘통합혁신추진위원회’(혁신위)의 첫 번째 제안이 최근 당내 반대 세력에 의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혁신위는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연합과 연대를 포함한 범민주개혁 진영의 통합 추진 △미래지향적인 인물과 민주개혁 진영 집권의 힘이 되는 인재 영입 △지방선거 공천제도 혁신 등을 위해 정세균 대표가 의욕적으로 띄운 기구다.

혁신위는 최근 자치단체장과 기초·광역의원, 국회의원을 공천할 때 시민과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시민공천배심원제’를 통해 후보를 선출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시민공천배심원제는 2009년 12월30일 시도당 위원장들의 격한 반대에 부닥쳐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당원 참여가 보장되지 않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반대 이유로 꼽혔지만, 핵심은 시도당 위원장들의 기득권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 보루는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

당원 중심 정당인 민노당과 진보신당도 마찬가지다. 민노당 역시 2009년 10월28일 재·보궐 선거 당시 안산 상록을 후보 단일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강기갑 대표는 민주당에 “안산에서 임종인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 다른 지역의 민노당 출마자를 사퇴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물론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아 성사되지는 않았다. 대신 강 대표는 선거 이후까지 지금까지도 ‘당원 의사를 무시했다’는 비판론에 시달리고 있다.

진보·개혁 진영의 대연합을 위해 마지막으로 강조되는 것은 그래서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다. 정치 연합이 정당 핵심 지도부의 막후 협상에 좌우되기보다 시민사회의 정치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진보신당 핵심 관계자도 “2009년 4월 울산 북구의 진보 단일화는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나 민주노총 울산지부의 강력한 단일화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엄청난 압력의 외부적 요구가 전제된다면 어떤 정치 세력도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독자 노선이냐 대연합이냐
노회찬은 외로워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외롭다. 자신이 제안한 ‘진보대연합’이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MB 민주대연합’을 주장해온 민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 연합의 범주에 포함되는 모든 야당이 “시대적 소명은 민주대연합”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공개적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이 2009년 12월18일 “노회찬 대표가 분열을 조장한다”는 취지로 노 대표와 진보대연합을 공격했다. 같은 날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기고에서 “지방선거에서 왜 진보 정당끼리만 연합해야 하나”라는 물음을 던진 뒤 “국민의 요구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비롯한 모든 정치 세력과 시민의 힘을 모으라는 것임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참여당 천호선 상임부위원장은 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표의 진보대연합은 지방선거 승리에 기여할 수 없다고 본다”며 “기본적으로 민주대연합을 위해 노력하되, 안 되면 소연합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진 창조한국당 최고위원도 “(진보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가치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2010 지방선거에서 ‘MB 정권 심판’이라는 당면 과제도 이루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진보대연합을 비판하는 논리의 핵심은 하나다. ‘진보적 가치를 중심으로 대연합하자’는 말은 곧 ‘대연합은 안 한다’는 말과 같다는 이야기다. 정상호 명지대 연구교수는 “정치학 교과서에서 대연합(grand coalition)은 이념적 유사성에 근거한 소연합과 달리 다소 이질적 정치 세력 간의 느슨한 연대를 상정한 개념”이라며 “노회찬 대표의 주장은 민주대연합이든 진보대연합이든 연합정치가 아니라 비타협 노선의 선명한 진보를 주장하는 독자 노선의 천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이 갑갑함을 호소하는 부분은 진보대연합이 주장하는 ‘진보적 가치’에 대해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에서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보신당 핵심 관계자는 “만약 최소한의 가치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채 선거공학적 고려가 앞선 선거 연합에 지도부가 합의한다고 해도 당원과 지지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민주당과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다만 선거 연합의 전제가 돼야 하는 ‘최소한의 공동 가치’를 말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노동 유연화 반대를 주장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최근 에서 자신의 노동 정책을 반성하지 않았나. 최소한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고 ‘반MB’ 연합을 하겠다면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도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주장과 다를 게 뭔지 궁금하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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