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소설가 현기영은 대표작 에 이렇게 적었다. 수많은 아침 가운데 8월6일의 그것은 제주도민들에게 더욱 특별했다. 8월6일 오전 9시,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직무가 정지됐다. 이날 아침부터 누군가는 의욕과 용기를 구했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병과 절망을 얻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제주도민들은 전에 없던 특별한 아침을 날마다 맞이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회오리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광역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된 제주를 현지 취재했다. 아울러 김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발의가 상징하는, 지방 정치의 난맥상을 자세히 짚어봤다. 편집자
8월6일 제주는 폭풍 전야였다. 바다에서는 제8호 태풍 모라꼿이 일본 동남쪽 해상에서 세력을 키워가며 북상 중이었다. 구름이 몰려오고 파도는 거세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폭풍이 섬 안쪽에서 꿈틀댔다. 이날 오전 9시, 제주특별자치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발의했다. 광역자치단체장을 대상으로 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된 것은 헌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밀실 속에서 이루어진 양해각서가 발단“근데 그 투표 허맨 어떵 됨수광?” 8월2일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한 기자에게 60대 택시기사가 물었다. 라디오에선 주민소환투표 관련 뉴스가 계속 흘러나왔다.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부터 온갖 종류의 선거를 겪어봤을 그에게도 이번 일은 낯설다. 이번 투표는 도지사를 임기 중에 끌어내리는 일이다. ‘합법적 민란’이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믿기지 않는 것은 60대 택시기사만이 아닐 것이다.
8월6일 주민소환투표 발의와 동시에 김태환 지사의 업무는 정지됐다. 그는 8월26일 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도 행정과 관련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민심의 처분을 기다리는 일만 허락된다. 지자체장의 권력을 중단시키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7년 12월, 경기 하남시에서 주민소환투표가 처음 실시됐다. 그러나 투표율이 31.1%에 그쳐 부결로 처리됐다. 지난해 10월에는 경기 시흥시에서 주민소환투표를 도모했으나, 발의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여러 면에서 이번 제주도지사 소환투표는 역사적이다. 2007년 7월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된 이후, 광역단체장이 그 소환대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비유하자면, 나라님 다음으로 넓은 땅을 다스리는 관찰사를 멍석에 말아버리려는 전대미문의 난리가 느닷없이 발생한 셈이다. 고을 원님을 쫓아내려던 과거의 사소한 소요 사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대미문의 난리는 김태환 지사가 자초했다. 지난 4월27일, 김태환 지사는 국방부·국토해양부와 ‘제주해군기지건설 관련 기본협약서’(MOU)를 체결했다. 지역 최대 현안이었는데도 협약 체결 과정 자체가 철저한 함구 속에 이뤄졌다. 밀실 행정의 표본이었다.
다음날인 4월28일, 제주 경실련이 반대 성명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주민소환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4월29일 ‘군사기지범대위’에 속한 주민·시민 단체들이 연석회의를 열었다. 김 지사의 독선이 “갈 데까지 갔다”는 데 의견이 모였지만, 대응책에 대해선 말이 분분했다. 차기 선거에서 낙선운동을 펼치자는 이도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역량상’ 주민소환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5월4일, 연석회의에서 주민소환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주민·시민 단체 대표 18명 전원이 찬성했다. 주민소환이 발의될 가능성을 낙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뜻이 강했다. 그 직후 ‘김태환지사주민소환운동본부’(이하 소환운동본부)가 만들어졌다.
5월7일 제주선관위에 주민소환을 청구하고, 5월14일부터 45일간 동의 서명을 받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40여일 만에 7만여 명이 실명을 적어 김 지사의 소환에 찬성했다. 실제 거주지, 주민등록번호 등에 착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선관위가 최종 확인한 유효 서명인 수는 5만1044명이었다. 어쨌건 주민소환 발의 요건(유권자의 10%인 4만1649명)을 넘겼다. “우리도 믿을 수 없었다”고 고유기 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회고했다.
해군기지 문제 하나가 7만여 명의 도민을 움직였을 리 없다. 사상 첫 광역단체장 소환을 불러온 것은 ‘독선·불통·무능 리더십’이었다는 게 지역민들의 중론이다. 대화하지 않고, 의견 차이를 조정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김 지사의 리더십이 화근이 된 것이다.
“각종 정책 결정과 추진 과정에서 김태환 지사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비민주적 전횡이 극에 달했다.” “주민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고 도의회도 무시하는 등 독선과 무능으로 일관했다.” 주민소환투표 청구서에 적힌 내용이다.
흥미롭게도 김 지사가 추진해 논란이 된 대부분의 정책은 ‘비즈니스 프렌들리’하다. 개발·토건에 크게 기대고 있는데다,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까지 더해 김 지사의 리더십은 확실히 ‘누군가’와 닮았다.
김 지사가 최근까지 추진했던 ‘특별자치도 완성을 위한 4단계 제도개선안’(이하 제도개선안)을 보면, △내국인의 출입이 가능한 관광객 전용 카지노 건설 △영리병원인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영리병원의 경우 제주도청이 지난해 여론조사를 벌인 뒤 추진하지 않기로 했으나, 김 지사가 이를 1년 만에 뒤집었다. 영리병원이 설립되면 도민들의 의료복지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됐다. ‘의료민영화 및 국내영리병원 저지 제주대책위원회’는 지난 7월30일 성명에서 “제주도가 (이명박 정부의) 의료보험 민영화 추진의 선봉을 자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라산 케이블카 건설도 참여정부 때 환경부 기준에 맞지 않아 포기했던 것을 김 지사가 다시 꺼내든 경우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환경단체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한라산 케이블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해놓고, 김 지사는 이를 건설하는 게 확정된 것처럼 말하고 다닌다”고 비판했다.
내국인 출입 카지노 역시 지난 2003년 도내 시민사회단체와 중앙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잠정적으로 중단했던 사업이다. 부장원 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조직쟁의부장은 “이미 도내 경마장만으로도 부작용이 드러났다. 카지노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가 공급될 리 없는데다 주민 생활만 더 피폐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개발 사업은 지역 여론을 반분시켰다. 자체 산업 기반은 없고 관광업·자영업·농업에 의존해 생활하는 제주도민들은 일련의 개발정책 앞에서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하승수 제주대 교수(법학)는 “개발이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위협할 것이라는 걱정과 좀더 나은 소득을 보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반반인 상태”라고 지역 여론을 전했다.
시·군 자치권 없애고 시장도 임명제로이 대목에 이번 소환의 바탕이 있다. 하승수 교수는 “개발정책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여러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김 지사에 대한 실망이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마다 견해 차이는 있다. 그러나 그걸 잘 수렴해 조정할 책임이 도지사에게 있다. 김 지사는 그런 ‘소통과 협치의 리더십’이 부족하다. 그리고 더는 못 참겠다…. 대개 이런 정서가 제주도민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해군기지 문제는 그런 제주도민의 심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항이 해군기지 최종 후보지로 선택된 것은 지난 2007년 5월. 이후 강정마을은 두 개로 쪼개졌다. 마을회는 “졸속 주민총회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뒤 제주도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며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제주도군사기지반대도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대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27일 제주도지사와 정부가 맺은 ‘제주 해군기지건설 관련 기본협약서’가 민심에 불을 댕긴 것이다. 대책위원회는 “지역발전계획 수립 용역 보고서가 나온 뒤 기본협약을 체결하자는 요구를 묵살하고 오만하게 맺은 기본협약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새롭게 불거진 문제도 있다. ‘알뜨르 비행장’이다.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이 비행장은 일제 강점기 때 주민들이 일제에 빼앗겼던 땅이다. 지금은 국방부 소유다. 활주로와 도로, 경작지 등을 포함해 모두 200만㎡ 규모다.
도민들은 이 땅을 ‘도민들에게’ 돌려주길 기대했다. 평화공원을 만들자는 의견이 많았다. 도지사가 그 일을 대변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해군기지 관련 기본협약서에는 “국방부 장관은 알뜨르 비행장 부지를 제주자치도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고만 돼 있었다. 부실 협상 의혹이 제기됐다. 제주대 교수 60여 명은 지난 6월8일 기자회견을 열어 “도지사는 중앙정부와 MOU를 체결하면서 정작 도민들의 여망인 알뜨르 비행장 무상 양여 문제는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도지사인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통 없는 리더십’의 토양이 된 것은 정치 제도였다. 지난 2006년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법 자체가 ‘제왕적 도지사’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 많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출범한 이후 3년간 총 1340가지의 중앙 권한을 이양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 지사는 시·군의 자치권을 폐지하고 특별자치도라는 하나의 광역행정 체제를 탄생시켰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시장도 도지사가 임명한다. 기초자치단체장에 대한 선거가 제주도에선 불가능해진 것이다.
고성환 제주주민자치연대 참여자치연구소 위원장은 “풀뿌리 자치를 지향하려면 기초 자치조직을 강화해야 하는데, 제주도는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기초자치단체를 없애고 시장을 도지사가 직접 임명하면서 도지사의 권한이 급작스럽게 커졌다는 설명이다. 고 위원장은 “제주도라는 좁은 지역 안에서 권력이 한 명에게 집중되다 보니 줄서기가 나타나고 제왕적 도지사 주변에는 ‘도지사맨’들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모든 공무원 조직이 김 지사 아래로 일렬 배치됐다는 얘기다.
자발적으로 움직인 3천 명의 수임인
도의회도 도지사의 견제 세력이 되지 못했다. 이른바 ‘4단계 제도개선안’은 지난 7월21일 도의회에서 찬성 29표, 반대 12표를 얻어 손쉽게 통과됐다. 현재 제주도의회 36명 의원 가운데 한나라당 소속이 21명이다. 민주당 9명, 민주노동당 1명, 무소속 6명이 ‘야당’이지만 그 힘은 미약하다.
오영훈 도의회 민주당 원내대표는 “도지사의 권한은 막강해졌는데 이를 견제할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도의회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주요 직책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도의회 내 인사권 독립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언론도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평화를 위한 제주 종교인협의회’의 임문철 신부는 “지역 언론이 도의 재정 지원에 덜미가 잡혀 도정을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청 공보관실은 “매년 지역 언론사에 지원하는 돈을 늘리고 있다”며 “우리가 파악하는 것만 한 언론사당 1년에 4억원 정도인데, 각 부서별로 별도의 행사 지원 요청도 많으니 그 액수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지역의 한 기자는 “요즘 회사가 도청에서 각종 지원금을 많이 받고 있어 기사를 쓸 때 눈치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도지사, 도의회, 지역 언론이 민심을 포위한 가운데 시민단체·교수·종교인 등의 비판 성명이 연이어 발표됐다. 처음에는 가망 없는 ‘선언’에 불과한 듯했지만, 마땅한 출구를 찾지 못했던 민심이 서서히 도청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번 소환투표 발의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3천 명의 수임인(서명운동을 위임받은 사람)은 민심 변화를 상징한다. 이들의 절반은 기존 시민단체 활동가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말 그대로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리고 이들 평범한 시민이 주민소환투표 발의를 성사시켰다.
오창일(44)씨는 와인 도매상을 운영하는 와인 전문가다. 한 대학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대 경영학과 85학번인 그는 “학생 때 공부만 했다”고 회고했다. 서울에서 17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제주로 돌아온 그는 “독단적 도정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해군기지는 물론 내국인 카지노, 영리병원 등은 주민의 동의 없이 절대 추진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어느 시민단체에도 소속돼 있지 않았지만, 수임인으로 적극 나섰다. 고객과 학생들에게 주민소환의 필요성을 설득해 50여 장의 서명서를 받았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오실비아(24)씨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정치에 무관심했다. 주민소환운동을 한다는 얘길 듣고 수임인을 자처했다. 서명 활동을 한 45일간 그는 거의 매일 거리로 나섰다. 회사에서 퇴근해 거리로 나서면 저녁 7시. 2~3시간 동안 극장과 대형마트 등 사람들이 많은 곳을 다니며 서명을 호소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 호별로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직접 받아낸 서명이 300여 건에 이른다.
제주시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장윤정(43)씨는 지난 45일간 술집에 오는 손님들 모두에게 주민소환 신청서를 건넸고, 강정마을에 사는 윤상돈(72)씨는 혼자 500명의 서명을 받아왔다. 이렇게 모인 7만여 명의 서명이 결국 주민소환투표 발의를 이뤄냈다. 이규배 탐라대 교수는 “대중은 그들이 듣고 싶어하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누군가 건드렸을 때 움직인다”며 “김 지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팽배한 상태에서 주민소환이 추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지사 “주민과의 대화 강화해달라”원래 제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이 아니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친 ‘촛불 정국’과 ‘추모 정국’ 때도 시민들의 움직임이 대단치 않았다. 생협·공동육아조합 등 풀뿌리 공동체 조직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곳도 아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육지놈, 육지년’이란 말이 흔히 쓰일 정도로 문화적으로 폐쇄적인 고장이기도 하다. 하승수 제주대 교수는 “그럼에도 도정의 난맥상에 대한 비판이 폭발한 상태이고, 여기에는 ‘좌우’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제 심판의 무대가 마련됐다. 그러나 어떤 결과가 나올지 단정하기는 힘들다. 소환운동본부는 앞으로 유세차량 활용 등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주민소환투표를 홍보할 계획이다. 제주 지역 각계각층 인사로 ‘100인 대표자’도 구성했다. 고유기 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초기의 우려와 달리 주민소환 동의 서명을 7만 명 넘게 받아, 도민의 공감대가 넓다는 걸 확인했으니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 지사는 선거 기간에 최대한 언론 노출을 줄인다는 전략이다. 벌써부터 TV 토론회 불참을 선언하는 등 ‘대응 없는 맞대응’에 나섰다. 이슈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주민투표 발의 직전인 8월4일 김 지사는 확대간부회의에서 “읍·면·동을 중심으로 주민과의 대화를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김 지사는 의 인터뷰 요청에 “일정이 바쁘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제주의 독특한 정치 성향이 이번 주민소환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7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에 김태환 지사가 불참한 것을 두고 “국책사업을 집행하는 지사를 주민소환하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8월3일 제주를 찾은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김 지사 주민소환에 대해 “한창 일할 때 이런 일이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와 한나라당은 김 지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반면 지역 민심은 이명박 정부와 친연하지 않다. ‘평화를 위한 제주 종교인협의회’의 임문철 신부는 제주에만 작동하는 ‘4·3 변수’를 거론했다. “제주 사람들은 4·3에 대한 한이 있다. 평소에는 잠자코 있다가도 평화의 문제, 4·3 문제를 건드리면 세게 나간다. 지난 총선 때 모두 민주당 의원을 당선시켜준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의 폐지 등을 거론하자 지역 민심이 일제히 돌아섰다는 이야기다. 현재 제주 지역 국회의원 3명 모두가 민주당 소속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민주화운동의 전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틈날 때마다 거론됐던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시험할 무대라는 점에서도 이번 주민소환투표가 주목된다. 윤용택 제주대 교수는 “대의민주주의가 원래 완전한 게 아닌데, 임기 동안 유권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정치권에 널리 퍼져있다”며 “유권자의 뜻에 반하는 일을 추진하면 언제든지 심판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위스의 정치평론가 브루노 카우프만은 그의 저서 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민주화하는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고 썼다. 제주도에는 지금 ‘불통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과 ‘민주주의 민주화운동’이 두 개의 태풍처럼 부딪치고 있다. 제주도의 뜨거운 8월은 이미 시작됐다. 8월26일, ‘제주도의 힘’은 어디로 기울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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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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