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사주가 끼어 있는 ‘주식 커넥션’의 실체는 밝혀질 것인가? 김재호 사장과 이수영 OCI(옛 동양제철화학) 회장의 장남 이우현(OCI 사업총괄부 사장)씨 등 10여 명이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불공정거래 혐의로 지난 6월 검찰에 수사통보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윤곽은 이렇다. 2007년 11월 OCI가 태양전지 원료인 폴리실리콘의 시험 생산에 성공하면서, OCI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종목의 ‘대장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OCI가 미국·독일·중국·스페인 등의 태양전지 생산 회사와 잇따라 폴리실리콘 장기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2007년 초 4만~5만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2008년 5월 43만5천원까지 뛰어올랐다. 불과 1년여 만에 10배나 오른 것이다. 그 사이 이 회사 사주 아들과 유력 언론사 사주가 폴리실리콘 공급 계약 체결 직전 주식을 사들여 거액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를 잡힌 게 의 보도로 알려졌다. 특히 김재호 사장은 50억원대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는 이 사건을 조사한 금융감독원 등을 상대로 김 사장 구명 로비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검찰은 수사통보 대상이 정확히 몇 명인지조차 입을 다물고 있다. 특히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OCI 조사 내용을 밝히면 금융감독 당국이 민형사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감독 기능의 필요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처음엔 수사통보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언론권력이 연루됐다는 휘발력 때문으로 보인다. 김재호 사장이 수사통보됐다는 의 첫 보도에 대해 는 그 다음날인 7월11일치 지면을 통해 해명성 반박글을 실었다. OCI 주식의 호재는 이미 투자자들에게 알려진 내용으로 사전에 정보를 얻어 주식을 샀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요지다.
는 그 논거로 김재호 사장이 OCI 주식을 처음 매입한 시점(2008년 1월25일) 이전에 나온 공시들과 증권사들의 리포트를 인용했다. 예를 들면 김 사장이 사전에 취득한 정보로 지목된 2008년 1월31일 ‘OCI의 폴리실리콘 공급계약 체결’ 공시보다 더 큰 규모의 공급계약이 그 이전인 2007년 11월30일에도 있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2007년 11월의 공급 계약건에 대한 당시 애널리스트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계약 상대방이 OCI의 국내 자회사였기 때문이다.
공시 수평 비교한 의 해명 설득력 낮아반면 김재호 사장이 주식을 매입한 지 엿새 뒤에 나온 2008년 1월과 그 뒤 2월의 공급 계약 공시에 대해선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증권사들의 긍정적 평가들이 이어졌다. 계약 상대가 미국, 독일 등 외국업체였고 장기적인 공급 계약이 가능해졌다는 이유에서다. 단순한 계약 규모의 크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성이라는 질적인 측면에 주목한 것이다.
또 는 ‘2007년 12월3일 삼성증권이 목표주가를 42만6천원으로 제시하며 투자자들에게 매수를 적극 권유했다’고 설명했지만, 정확히 말해 목표가를 올린 건 아니었으며 기존의 ‘매수’ 관점을 유지한 것이다.
언론사의 주식 투자가 문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년 전인 1999년 2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1개 언론 법인과 소속 회사 직원의 주식 보유·거래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서를 금융감독원에 냈다. 2000년 2월엔 언론개혁시민연대가 금감원에 언론사의 주식투자에 관한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그 문제제기의 근거 중 하나는 언론사라는 곳 자체가 기업의 미공개 정보가 모이는 곳이므로 이들의 증권 거래는 내부 거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아무런 공식 답변을 듣지 못했다.
결국 지금까지 한국 주요 언론의 사주와 법인이 어느 정도 규모의 자금으로 어떤 종목들에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은 그 내막을 밝히기 위해 금감원의 전자공시 자료를 뒤져봤다.
주식 관련 총자산은 1400억원대지난해 연결감사보고서를 보면, 는 채권을 제외한 주식 관련 자산에 장부가 기준으로 모두 1431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난다. 자본금 150억원의 10배에 가까운 돈을 위험자산에 투자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해 말 시가 기준 투자자산 총액은 크게 줄었다.
이 투자자산들이 모두 재테크 목적은 아니다. 투자한 상장주식 중 경방과 삼양사는 의 특수관계사이며, 비상장 주식엔 게임동아 등 자회사나 업무상 제휴 관계에 놓인 회사들이 섞여 있다. 이런 관계회사와 출자 목적이 불분명한 비상장사 전체를 제외하고, 순수 투자 목적의 자산만 추리면 750억원대 이상으로 파악된다. 에서 직접 운용하는 상장 주식은 대우인터내셔널(73억원), 삼성증권(54억원) 등 11개 종목이며 투자자문사와 일임계약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무려 30개 종목에 이른다.
대부분 대형 우량주로 구성된 이 종목들 사이에 유독 생소한 이름 하나가 끼어 있다. 모노솔라라는 주식이다. 특수 모니터를 생산하는 코스닥의 작은 업체로,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는 이 기업에 지난해 2억8천만원을 투자했다. 왜일까?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태양광 발전용 소재를 생산하는 네오세미테크라는 업체와 합병한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하루 만에 요건 미비로 결정을 취소한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올해 6월15일 모노솔라는 다시 같은 회사와 합병 결정을 공시한다. 모노솔라가 네오세미테크를 흡수하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제론 장외 기업인 네오세미테크가 모노솔라의 옷을 빌려 코스닥 뒷문으로 들어오는 전형적인 우회 상장이다. 요즘 증시는 태양광의 ‘태’자만 붙어도 주가가 불타오른다. 모노솔라는 합병 공시가 나기 이틀 전부터 연속해서 5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3천원대에 머물던 주가가 8천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묘한 건 가 보유한 비상장 주식 리스트에 바로 모노솔라의 합병 파트너인 네오세미테크도 들어 있다는 점이다. 모노솔라와 별도로 지난해 20억원을 이 회사의 주식에 투자한 것도 모자라 30억원을 더 투입해 신주인수권부사채(BW)까지 인수했다. 계란은 바구니에 나눠 담아야 한다는데, 두 회사에 총 52억원을 집중 투자한 것이다. 구체적인 투자 시점이 나와 있지 않아 단정하긴 어렵지만, 가 한 차례 합병 무산에도 결국엔 우회 상장이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확신은 두 회사의 합병 계획 정보를 사전에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나오기 힘들다.
가 2007년 52억원을 투자한 케너텍도 당시 대체에너지주로 주가가 급등했던 종목이다. 지금은 사업 수주 관련 로비 의혹에 휘말려 법정 관리를 신청한 상태다. 김재호 사장이 매수해 이번에 문제가 된 OCI는 태양광주 중에서도 ‘태양’이다. 시장에서는 이런 성향의 투자를 ‘테마와 작전에 편승한 투기’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는 주식형 펀드 등 간접투자 상품에 323억원을 투자했는데, 절반에 가까운 155억원을 미래에셋 펀드 3종에 몰아주었고, 중국 등 국외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파생상품에도 손을 댔다. 이러한 포트폴리오는 전문투자회사가 구사하는 ‘재테크 종합세트’와 닮았다.
는 어떨까? 의 주식투자는 주로 자회사인 디지틀조선을 통해 이뤄졌다. 특히 2000년 전후 정보기술(IT) 거품이 극성일 때 벤처기업에 집중 투자했다. 이 회사가 2000년 4월부터 1년간 공시한 건수는 40건인데, 이 중에서 타 법인 주식 취득·처분에 관련된 공시가 절반이 넘는 29건이었다. 회사의 고유 사업과 관련된 공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방상훈 사장이 최대 주주인 이 회사가 과연 인터넷 언론 기업인지, 창업투자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주종이 바뀌어 있었다.
비테크놀러지·휴먼컴 투자해 ‘대박’당시 공시들을 찾아 같은 종목의 매수와 매도를 비교해봤더니 경이로운 결과가 나왔다. 1999년 말 인터넷 게임 플랫폼 업체인 비테크놀러지 주식 10만7900주를 3억7800만원(주당 3500원)에 사들인 은 이 회사가 코스닥에 상장된 2000년 5월, 59억원(주당 5만5천원)에 전량 매도했다. 불과 6개월도 안 돼 55억원대의 차익에 1400% 수익률이란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또 비슷한 시기에 4억5천만원에 지분 투자한 솔루션 업체 휴먼컴 주식을 21억원에 매도해 370%의 수익을 올렸다.
코스닥 시장의 투기적 광기와 개미투자자들의 피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확산되고 있던 시기에 사회적 공기를 자처하는 언론사가 이룬 ‘전과’다. 스스로도 처분 공시에서 비테크놀러지 주식을 매도한 이유를 ‘현재 코스닥 거품론을 감안할 때 위험 회피 차원에서 투자수익 실현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적었다.
2001년 3월 말 기준 이 보유한 투자유가증권은 39개 종목 194억원이었다. 여기엔 온라인 사교육 업체인 하늘교육과 스포츠토토 업체 선정 과정에서 말썽을 빚은 타이거풀스코리아 주식도 포함돼 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자연스레 여러 의문이 일어난다. 막대한 투자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거대 언론사의 힘을 배경 삼아 실정법을 어기는 일은 없었을까? 거대한 도박판과도 같은 주식시장에 깊게 발을 담근 언론사와 언론사주는 과연 공공을 대표한다고 자처할 수 있을까? 그런 언론이 보도하는 경제 뉴스는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단순히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는 모두 내부 윤리강령을 제정·운용하고 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는 ‘이해상충 배제의 원칙’이다. 정치부 기자는 정당에 가입해선 안 되고, 경제부 기자는 주식에 투자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언론사는 공익 추구를 표방하는 시민의 대변 기구인 만큼, 일련의 취재·보도 과정에서 그 구성원이 사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언론 바로 세우기의 시험대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언론사 경영진 역시 공익성을 대표하는 언론사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기자’로 봐야 하고, 특히 한국처럼 기자 개인에 대한 사주의 통제가 강력한 경우에는 ‘이해상충 배제의 원칙’ 적용 대상이 되는 최종 주체가 바로 사주 및 최고 경영자”라고 말했다. 이번 사주의 주식 불공정거래 의혹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곧 ‘언론 바로 세우기’의 또 다른 시험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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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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