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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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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를 현행범으로, 그 만용에 경의를!

권영국 변호사의 체포·수사 체험기… 변호사도 변호사가 변호해주니 불안감이 가시네
등록 2009-07-16 01:37 수정 2020-05-02 19:25

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난 6월26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개최하기로 예정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노동법률전문가 공동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해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평택공장 앞을 찾았다. 공장 주변으로 보이는 건 제복을 입고 방패를 들고 대기하고 있는 경찰과 전경대원들뿐이었다.

지난 5월14일 권영국 변호사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용산 참사와 관련해 ‘진실 은폐, 편파 왜곡 수사 검찰 규탄대회’를 마친 뒤 경찰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권 변호사는 그로부터 40여 일이 지난 6월26일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앞에서 또 연행됐다. 수시로 변호사가 연행되는 나라,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난 5월14일 권영국 변호사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용산 참사와 관련해 ‘진실 은폐, 편파 왜곡 수사 검찰 규탄대회’를 마친 뒤 경찰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권 변호사는 그로부터 40여 일이 지난 6월26일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앞에서 또 연행됐다. 수시로 변호사가 연행되는 나라,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미란다원칙에 사인하라는 경찰

예정된 시간이 남아 회견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 공장에서 나와 인도로 이동하고 있던 몇 명의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아무런 체포 이유도 고지받지 못한 채 전경대원들에게 둘러싸여 억류됐다. 나는 변호사로서 경찰 현장 지휘자로 보이는 자에게 이들을 체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지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수배자인지 체포영장 발부자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할 뿐 체포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에는 체포에 앞서 피의 사실의 요지와 체포 이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00조의 5). 이를 ‘미란다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경찰 지휘자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상부와의 무전 교신 뒤 억류된 조합원들에게 “퇴거불응죄의 현행범인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고지한 뒤 조합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경찰의 고지 내용(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음)에 따라 경찰 호송 차량 앞에 서서 변호사로서 연행자들 접견을 요청했다. 그런데 경찰은 변호사 자격으로 변호인 접견을 요청하는 나를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인’으로 체포했고, 한참을 또 지체한 뒤에야 먼저 연행된 7명의 조합원들이 타고 있는 경찰 호송 버스에 밀어 넣었다.

나와 동료들은 경찰 지휘자와 경찰관에게 체포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으나 물리적으로 역부족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경찰의 자의적인 법 집행, 그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변호사의 정당한 접견 요청마저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인으로 체포해버리는 경찰의 만행, 그 만용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불법 체포·감금에 대한 형사책임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경찰관은 버스 안에서 나에게 ‘경찰로부터 미란다원칙을 고지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서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체포될 당시 범죄 사실에 대해서만 고지받은 기억이 날 뿐이어서 확인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경찰이 요구하는 확인서에 함부로 서명해서는 안 된다. 나중에 경찰의 체포를 적법하게 둔갑시켜주는 주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경찰 호송 차량에 오른 뒤 즉시 민변 송상교 변호사에게 전화해 체포·연행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함께 연행된 조합원들에게는 변호사가 접견을 올 때까지 진술을 거부할 것을 말해주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기 전에 입을 여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하며(헌법 제12조 제2항),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반드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에(형사소송법 제244조의 3)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피의자의 헌법적 권리다. 그러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때까지 진술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영상 녹화를 하자는 ‘지능범죄1팀’의 경사

우리는 수원서부경찰서 지능범죄1팀 사무실로 호송됐다. 잠시 뒤 서보열 변호사가 접견을 와주었고, 다른 조합원들에게는 다른 변호사들이 접견을 해주었다. 수사관의 조사를 받기 이전에 변호인의 조언을 듣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사를 어떻게 받을지 알고서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의자는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사건 발생 관할서인 평택경찰서에서 보내온 범죄 사실과 피해자 진술을 근거로 나와 조합원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나를 담당한 수사관은 수원서부경찰서 지능범죄1팀의 경사였는데, 먼저 인적사항에 대해 물었고 나는 신분증을 주어 인적사항을 확인해주었다. 그는 조사(피의자 신문)에 앞서 나에게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하지 아니할 수 있으며,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하며, 변호인의 조사 참여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음”을 고지해주었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신문에 앞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권에 대해 고지한 뒤 그 권리를 행사할지 여부를 질문하고 이에 대한 피의자의 답변을 조서에 기재해야 하기 때문이다(형사소송법 제244조의 3 제2항). 만일 수사관이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권에 대해 고지해주지 않고 조사를 한 경우에는 조서에 그 사실을 반드시 기재해두어야 한다. 재판할 때 진술의 임의성(강요에 의한 진술인지 아닌지 여부)을 다툴 수 있는 유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사관은 느닷없이 영상녹화실에서 조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사 과정에서의 절차적 시비를 차단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접견권을 침해당한 피해자로서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이 몹시 불쾌해 영상 녹화를 거부했다. 당황한 수사관은 수사과장에게 보고한 뒤 영상 녹화 없이 조사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참고로 피의자 신문 때 영상 녹화는 반드시 해야 할 의무사항은 아니다. 영상 녹화 실시 여부에 대해 피의자가 동의권을 갖지는 못해도 영상 녹화를 하는 경우에는 미리 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며, 조사 개시부터 종료까지의 전 과정을 녹화해야 한다(부분적으로 녹화하면 법적 효력이 없다). 그리고 완료되면 피의자 또는 변호인 앞에서 지체 없이 봉인하고 피의자로 하여금 서명하게 해야 한다. 피의자 또는 변호인이 요구하면 반드시 영상 녹화물을 시청하게 해야 하고 그 내용에 대해 이의를 진술하면 그 취지를 기재한 서면을 녹화물에 첨부해야 한다.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은 영상 녹화를 거부할 수 있다.


조사 단계에서 국선변호인이 도입돼야 하는 이유

어찌됐든 영상 녹화 없이 조사가 진행됐다. 서보열 변호사가 조사에 참여하기로 해, 조사받는 그 자리에서 변호인 선임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변호사인 나조차도 변호인이 옆에 있으니 불안감이 가시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일반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중요한 사건이나 경찰과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의 조사에서는 변호인 참여가 절실해 보인다.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의 참여만으로도 경찰에 의한 강박과 유도성 질문을 견제할 수 있고 피의자의 혐의에 대한 실질적인 방어를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피의자로 조사받는 단계에서부터 국선변호인을 두는 제도가 반드시 도입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재산이나 가족관계, 병력 등 사건과 관계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묵비권을 행사하고 사건 관련 질문에 대해서만 정확하게 진술하려고 노력했다. 3시간에 걸친 조사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피의자 신문조서를 꼼꼼히 읽었다. 수사관에게 연필을 달라고 해서 내 진술과 다르거나 누락된 부분을 일일이 수정하고 추가했다.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에서 유력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빠짐없이 정독하고, 필요한 경우 본인이 직접 수정하거나 조사관에게 수정이나 보완을 요구해야 한다. 만일 수사관이 수정이나 보완 요구를 거부하면 피의자는 피의자 신문조서에 날인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나중에 조서의 진정성을 다툴 수 있기 때문이다.

밤 10시35분 다른 조합원들에 대한 조사도 마무리돼 유치장에 입감됐다. 소지품과 혁대를 맡기고 금속탐지기로 신체를 수색하는 절차를 거쳤다. 20여 년 전 경주교도소에서 알몸으로 신체 수색을 받던 치욕이 떠올랐다. 만일 지금도 경찰관이 인권침해적인 신체 수색을 시도한다면 마땅히 항의해야 한다. 통상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신체 수색을 강제하려 한다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오라고 요구할 수 있다.

신체 수색을 마친 뒤 ‘종교1실’이라고 기재된 방으로 들어갔다. 영락없이 죄수가 된 느낌이다. 이미 먼저 들어와 있던 다른 일반 피의자 3명은 어두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방 안의 화장실 칸막이는 옛날보다 많이 높아져 있으나 침침한 조명, 차가운 마룻바닥은 20년 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경찰관에게 칫솔을 요구해 간단히 세면과 양치를 한 뒤 얇은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경찰의 불법 체포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지 않았더니 몹시 배가 고프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세상은 거꾸로 돌아 1980년대 거리에서 다급하게 경찰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다.

자의적 체포·구금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

다음날 아침 7시에 일어나 책상다리를 하고서 온종일 시골 의사 박경철이 쓴 을 읽었다. 책을 읽을 여유(?)를 가지다니…. 오후 3시께 서보열 변호사가 접견을 왔고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해볼 생각이라며 청구서를 준비해왔다. 나도 동의를 했다. 체포적부심사란 체포된 피의자에 대해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전에 법원에 체포의 적법성과 체포의 계속 필요성 여부에 대한 심사를 요청하고 석방을 구하는 제도다.

오후 4시께 사건 관할인 평택지원에 체포적부심사청구서가 접수됐고, 밤 9시께 나는 사복형사 2명에게 이끌려 창살 있는 봉고차를 타고 평택지원으로 내달렸다. 밤 10시 평택지원에서 심리가 열렸다. 서보열·이재호·강문대 변호사가 참여해주었다. 젊은 판사의 심문에 나는 체포된 경위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했다. 변호인의 변론을 끝으로 30여 분 동안의 심문 절차는 종료됐고, 결정이 날 때까지 건물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날을 넘겨 28일 새벽 12시20분께 ‘피의자의 석방을 명한다’는 내용의 체포적부심사 결정문이 전달됐고, 나는 비로소 경찰로부터 풀려났다. 구속에서 풀려난다는 것은 역시 기쁜 일이다. 그러나 석방의 기쁨을 뒤로하고 서둘러 체포 경위를 정리한다. 불법 체포에 가담한 경찰관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경찰의 자의적인 체포와 감금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일 것이다.

권영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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