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러더’ 논란을 일으킨 ‘형사사법 통합정보체계 사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경찰의 범죄정보관리시스템인 ‘심스’(CIMS)를 포함해 검찰·법원·법무부의 정보망까지 하나로 연계해, 형사사법정보시스템(Korea Integrated Criminal System)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름하여 ‘킥스’(KICS)다.
법무부가 지난 5년간 추진해온 킥스 구축이 오는 8월에 완료된다. 법무부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추진단(이하 추진단)은 “시범운영을 마치면 2010년 1월1일부터 시스템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스를 능가하는 거대한 정보망이 탄생하는 것이다.
킥스에는 심스에 있는 경찰 정보에 더해 검찰의 기소·불기소 내용, 법원의 판결문 등까지 고스란히 전자정보로 담길 예정이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킥스 관련 연구에 참여한 김희수 변호사는 “매년 형사사건만 300만 건 정도 발생하는데, 이와 관련돼 조사된 사람만 따져봐도 몇 년만 지나면 거의 모든 국민의 정보가 형사사법 통합정보체계에 담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4년 12월 전자정부 로드맵 31대 과제로 형사사법 정보 통합을 위한 추진단이 꾸려진 이후 ‘정보인권 침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정보를 ‘연계’할 뿐이라고 하지만 일단 표준화를 통해 집적된 정보가 어떻게 사용될지는 두고 볼 일이기 때문이다. 킥스가 가동되면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경찰청 차장 등으로 구성된 형사사법정보체계 협의회를 구성한다. 시스템 운영 방식은 이 협의회를 통해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
사업 시작 전인 2004년 4월 이미 한국전산원은 형사사법 통합정보망 사업 검토 의견서에서 “형사사법 정보는 민감한 개인 신상에 관한 정보가 다수로, 이를 통합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구축·관리하려는 방안은 보안상 여러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만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2006년 12월 국가인권위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형사사법 통합정보체계 사업은 헌법상 보장된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며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추진되고 있어 법치주의에도 반하는 위헌적인 사업”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동안 경찰·검찰·법원 등 주관 부처 간에도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었다. 이미 심스를 통해 대규모의 형사정보를 집적하고 있는 경찰조차 ‘검찰을 정점으로 한 빅브러더’의 출현을 우려했고, 법원은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며 반대했다. 추진단에 관여했던 한 판사는 “법무부 쪽에서 재판 과정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형태여서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컸다”며 “애초에 서로 충분한 합의나 비전을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진행된 사업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추진단은 사업 방향을 애초의 ‘정보 통합’에서 ‘연계’로 바꿔 가까스로 각 기관의 합의를 얻어냈다. 이미 경찰·검찰·법원의 개별 시스템을 표준화해 통합하는 작업에 783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뒤였다. 사업이 길어지면서 부장검사 등 25명 내외로 구성된 추진단 운영비도 계속 투입됐다. 결국 ‘통합’을 위해 구축되던 시스템은 주관 기관이 데이터베이스를 각자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설계 변경을 해야했다. 그동안 ‘통합’을 위해 들인 노력과 비용은 고스란히 예산 낭비로 남았다.
“경찰의 모든 정보가 검찰에 집적될 것”김진홍 카이스트 교수(전산학)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면서 큰 그림에 대한 합의도 이루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다가 막바지에 사업 목표를 바꾸면 예산이 낭비되는 것은 상식”이라며 “사업 전에 시스템 구축에서 법률적 문제가 없는지, 전문가 의견은 어떤지 등을 살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수 변호사는 사업 방향이 바뀌기 전부터 예산 낭비가 컸음을 지적했다. 각 기관의 기존 망을 연계하는 방식으로도 사업 목표를 이룰 수 있는데, 굳이 예산과 인력을 들여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전산 증거의 법적 효력이 없어 앞으로도 온·오프라인에서 중복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을 통한 ‘경제적 이익’도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수많은 논란 속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사업임에도 킥스는 근거 법률 하나 없이 밀어붙여졌다. 지난 5월에야 법무부가 제출한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 촉진법안’과 ‘약식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는 이상 킥스는 완성이 돼도 문을 열지 못한다.
‘빅브러더’ 논란도 여전하다. 기관별로 킥스에 담길 민감한 정보를 어떻게 주고받을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법무부가 제출한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 촉진법안’에서는 형사사법 정보가 분실·도난·유출·변조되지 않도록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처를 하고 권한이 없는 자가 열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열람 권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는 상태다. 법무부·검찰청·경찰청의 권한은 대통령령으로, 법원의 권한은 대법원 규칙으로 정한다고만 돼 있다. 이 때문에 추진단에 몸담았던 한 경찰 출신 인사는 “결국 경찰의 모든 정보가 검찰로 가게 돼 검찰에 거대한 정보가 집적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킹, 정보 조작, 시스템 오류 등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형사사법 업무가 마비될 가능성도 있다. 추진단은 “경찰·검찰·법원이 일상 업무에서 시스템에 접속하게 되므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업무가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를 막기 위해 7단계에 걸친 보안 시스템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08년 한 해에만 사이버 범죄가 12만 건 발생하는 등 취약한 기반의 정보화 사회에서 ‘네트워크’ 위에 올라선 정보는 불안하다.
‘종이 없는 재판’은 대대적인 법 개정 필요한편 통합망을 통해 연계되는 정보의 양은 방대해지겠지만 법무부가 애초 내걸었던 ‘종이 없는 사법체계 구현’은 실현될지 의문이다. 종이 없는 재판이 가능하려면 경찰에서 검찰로, 다시 법원으로 넘어온 전자문서가 기존 종이문서와 똑같은 원본임을 입증받아 재판에 활용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큰 폭의 형사소송법 손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추진단의 김호경 총괄기획팀장은 “전자파일로 간 정보가 증거로 채택되려면 형사소송법의 대대적인 개정이 필요해서 우선 단계적으로 무면허·음주운전 사건의 경우에만 한정해 완전 전자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결국 5년 동안 1천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만든 시스템이 경찰부터 법원까지 모든 형사 절차에 활용되는 경우는 무면허·음주운전 사건 처리뿐인 셈이다. 음주·무면허 전자약식시스템을 별도로 만드는 등의 3차 사업에만도 297억원이 투입됐다. 대법원 정보센터의 이정환 판사는 “형사소송에서 전자문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고 어렵다”며 “전자증거로 어떻게 심리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많다”고 말했다.
결국 킥스는 큰 실효성도 기대할 수 없는 채로 새로운 정보 권력 출현의 불안감만 남겼다. 추진단의 강인철 단장도 “모든 형사사법 절차의 전자화가 ‘이상’이었다면 그 달성 과정에 대해 현실적으로 좀더 고민을 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국가에 의해 수집된 정보의 공포는 심스에 이어 킥스로 흘러갈 참이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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