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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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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보이지 않는 저항!

<개그콘서트> 끊고 나무에 쥐를 매달고 …
로자 파크스 또는 간디가 되어가는 ‘침묵하는 다수’의 진짜 근황
등록 2009-06-19 12:58 수정 2020-05-03 04:25
6월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나온 15만여 명은 4900만 인구와 견주면 소수다. 정부와 보수 언론은 ‘침묵하는 다수’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원천봉쇄를 공언하는 경찰의 으름장을 무릅쓰고 평일 저녁 굳이 발품을 판 시민들이 15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간편하게 무시된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라는 여론조사에도 눈감는다. 경찰 방패의 날카로운 금속 날이 집회 참여 시민의 머리통을 정조준하는 세상에서, 선량한 시민의 다수는 당연히 침묵한다. 광장에 나오지 않는다. 공포로 시민들을 침묵시키는 능력이 자랑은 아닐 텐데, 그런 염치가 한국의 우파에겐 없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여기, 침묵하는 다수의 진짜 근황이 있다. 편집자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보이지 않는 저항!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보이지 않는 저항!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쉴 것이다. 누가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헨리 데이비드 소로, )

이러다 숨이 끊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없지 않았다. 전날 밤, 5시간밖에 못 잤다. 그 전날, 전전날, 전전전날 그리고 그 앞의 날까지 나흘 동안 일출을 봤다. 요즘 해가 몇 시에 뜨는지 아는가. 새벽 4시30분이면 동이 튼다. 관악산 오른쪽 옆구리를 끼고 돌아나오는 햇살이 매일 말을 걸었다. “넌 잠을 자야 해.” 도리질치며 버텼다. 밥보다 잠이 필요한 몸으로 지난 5월30일, 하프 마라톤을 뛰었다.

나흘 밤 새고, 검은 리본 달고 마라톤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박철희(27·가명)씨에게 그 마라톤은 은밀한 저항의 피날레였다.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25일, 친구들과 함께 서울 신림동 태양놀이터에 분향소를 만들었다. 29일 밤까지, 24시간 열었다. 반바지 입고 슬리퍼를 끌며 골목길을 산책하던 고시생들이 슬금슬금 분향소 앞으로 왔다. 주변을 둘러보고 박씨의 얼굴도 쳐다봤다. 그러고는 펑펑 울었다. 한밤중에도 찾아와 울었다.

그저 고시 공부의 스트레스를 풀어놓은 이가 간혹 있었던들 누군가의 눈물을 받아주는 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박씨는 “태어나서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태양놀이터 분향소는 이명박 정부에 위협이 되지 못했다.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가 겪었던 철거의 위협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그 옆에서 닷새를 보냈다. 박씨만의 조용한 추모이자 저항이었다. 마라톤은 그 저항의 한 매듭이었다. 모두 말렸다. 나흘 밤을 새고 마라톤이라니.

그러나 박씨는 노제 다음날인 5월30일 아침, 이명박 정부의 국토해양부가 주최하는 ‘바다의 날’ 기념 하프 마라톤 코스 21km를 1시간30분 만에 주파했다. 보란 듯이 매단 검은 리본이 함께 달렸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한강대교까지 달리며, 차오르는 숨을 인내하는 그의 검은 리본을 누군가 봤을 것이다. 정부 관계자도 봤을 것이고, 함께 뛰는 시민들도 봤을 것이다. 신림동 고시원의 칸막이 책상 앞에서 ‘침묵하는 다수’의 한 사람이었던 그에겐 다른 저항의 방법이 없었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시민운동·노동운동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온라인도 정부의 검열에 가로막혀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정권에 대한 불만과 저항은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저항의 정념은 부글부글 끓는다. 그런데 의회와 광장으로 향하는 출구가 막혔다. 자신의 세포마다 그 정념을 아로새기며 일상의 작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건 의외로 강력한 힘이다.

억압이 강하면 대규모 집회·시위 대신 ‘불복종’이 시작된다. 개인의 작고 사소한 행동이다. 그 행동이 불씨가 된다. 퍼지고 번진다. 정상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교수는 “렌즈를 노무현과 이명박에 맞추지 말고 일상의 시민들에게 돌려보라”고 말한다. “추모 정국 이후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분노하고 참여하는 방식을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지금 무엇인가 각자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 불복종은 개인의 작고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된다. 왼쪽은 지난 5월25일부터 닷새간 서울 신림동 태양놀이터에 마련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오른쪽은 노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에 “마음속에 검은 리본을 달고 뛰었다”고 밝혀 화제가 된 미국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구단의 추신수 선수. 사진 왼쪽부터 박철희(가명) 제공·연합

시민 불복종은 개인의 작고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된다. 왼쪽은 지난 5월25일부터 닷새간 서울 신림동 태양놀이터에 마련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오른쪽은 노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에 “마음속에 검은 리본을 달고 뛰었다”고 밝혀 화제가 된 미국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구단의 추신수 선수. 사진 왼쪽부터 박철희(가명) 제공·연합

“나쁜 친구랑 놀아주면 더 버릇이 없어지잖아”

20대인 소연씨는 서울 강남의 룸살롱에서 일한다. 진짜 이름과 진짜 나이는 모른다. 소연씨의 정치·사회적 존재감은 흩날리는 분가루만큼이나 가볍다. 지난 6월6일, 기업체 사장님들이 술을 마시러 왔다. 옆에 앉아 술을 붓는데, “자살한 노무현”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왜 자살이에요? 서거지.” 같이 들어간 동료 아가씨들도 거들었다. “아니, 이년들이 미쳤나. 당장 나가!” 그 룸살롱이 생긴 이래, ‘아가씨’와 ‘사장님’들이 정치적 견해 차이로 불화한 것은 처음이다. 20만원의 팁은 양심과 맞바꿨다. 웃음을 팔되 진심까지 팔아넘길 수 없었던 소연씨의 저항이다.

1955년 미국 앨라배마주의 작은 도시 몽고메리에서 로자 파크스의 존재감도 가벼웠다. 그는 여성 흑인 재봉사였다. 그에게 흑백 차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로자는 버스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리를 내놓으라는 백인 남성의 요구를 그냥 흘렸다. 너무 피곤했다. 왜 자리를 비켜야 하는가. 흑인의 좌석과 백인의 좌석이 따로 있었다. 로자 파크스는 체포되어 수감됐다. 다른 흑인들이 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인종분리법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거대한 흑인 민권운동의 시작이었다. 작고 사소한 시민 불복종의 힘이다.

아이 둘을 둔 주부 오연희(36·가명)씨는 좋아하던 프로그램 를 끊었다. 가 미워서가 아니다. 한국방송을 안 보기로 결심했다. 채널을 바꾸려는 아이들의 아우성을 매일 견뎌낸다. “나쁜 친구랑 놀아주면 더 버릇이 없어지잖아. 이 방송도 자꾸 봐주면 안 돼.” 그가 안 본다고 한국방송의 보도가 쉽게 변할 리 없다. 그래도 이건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씨는 수신료를 거부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동참할지는 나중의 일이다. 일단 ‘오연희’의 이름으로 저항하는 게 중요하다.

서울 강남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조성용(36)씨는 최근 와 결별했다. “사실상 무료로 넣어주던” 두 신문을 끊고 진보 성향의 신문과 주간지를 새로 받아보고 있다. 인터넷 카페에 ‘조·중·동 절독 노하우’를 전하는 글도 올렸다. “식당에 가서 조·중·동이 있으면 ‘아직도 조·중·동 보나요?’하고 그냥 나오세요. 어차피 무료로 받는 신문, 손님 때문에라도 끊게 되지요.” 조씨에겐 조직이 없지만, 그 작은 행동을 빌려 연대를 꿈꾼다. 자신의 실천이 더 많이 확산되기를 바란다.

억압적 국가에 맞서는 ‘개인의 힘’을 강조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46년 감옥에 갇혔다. 흑인 노예제에 반대해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다. 대신 공공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세금은 꼬박꼬박 냈다. 그의 작은 저항이 곧장 결실을 맺은 것은 아니다. 대신 큰 물결을 일으키는 자갈 구실을 했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5년 노예제를 폐지하는 수정헌법이 마련됐다. 작고 사소한 시민 불복종의 구실이다.

건반도 치고 작곡도 하는 신정석(32)씨는 인디밴드를 만들어 서울 홍익대 앞에서 공연을 해왔다. 지금까지의 음악 활동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그는 어떤 공연에서건 을 부르기로 결심했다. 존 레넌의 노래다. 인간 모두가 형제가 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꿔보라는 그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얼마나 변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계속 부를 생각이다.

삼성은 눈도 깜짝 안 할지라도
처벌과 불이익을 감내하는 용기가 시민 불복종의 바탕이다. 지난 6월10일, 서울 시청 앞 광장 봉쇄에 항의하는 한 시민이 전경들 앞에 앉아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처벌과 불이익을 감내하는 용기가 시민 불복종의 바탕이다. 지난 6월10일, 서울 시청 앞 광장 봉쇄에 항의하는 한 시민이 전경들 앞에 앉아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1930년 인도 서부 아마다바드시에서 간디가 행진을 시작했다. 390km 떨어진 단디 해안으로 가서 인도인들이 만든 소금을 구하려는 길이었다. 영국이 인도인의 소금 생산을 금지하고 영국산 소금에 세금을 부과한 것에 대한 저항이었다. 까짓 소금이 식민통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사람들은 갸우뚱 했다. 그러나 출발 때 78명이던 일행은 25일 뒤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간디가 전통 염전에서 소금 한 주먹을 쥐어들자 영국군 지휘관이 발포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비폭력 직접행동의 백미로 알려진 ‘소금 행진’이다. 작고 사소한 시민 불복종의 파급력이다.

직장인 오영태(35)씨는 지난 5월 말, 자기 방 책상에 작은 분향소를 차렸다. 인터넷에서 구한 사진을 A4 용지에 프린트해 벽에 붙였다. 퇴근해 돌아오면 향로에 담배 한 개비를 올렸다. ‘추모 기간’이 끝난 지금, 그는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의 불매운동에 동참할 계획이다. 언소주와 관련해 특별한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언소주가 지목한 기업의 제품은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언소주는 6월4일 삼성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오씨가 삼성카드를 쓰지 않고, 애니콜을 피하고, 에버랜드로 놀러가는 일을 중단해도 삼성은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건 삼성 물건은 안 쓸 작정이다.

김웅(29)씨는 최근 의 ‘아름다운 동행’ 캠페인에 참여했다. ‘아름다운 동행’은 정기구독을 통해 시민사회단체를 후원할 수 있는 캠페인이다. 그가 후원한 단체는 ‘언소주’였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힘이 센 운동방식은 불매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불매운동에 동참하면 언론시장을 바로잡아간다는 느낌에 유쾌하다.

1999년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미오에서 조제 보베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소풍을 나섰다. 맥도널드 상점 앞이었다. 주민들의 음악 밴드가 연주를 하는 가운데, 보베는 경운기로 맥도널드 가게를 부쉈다. 잠깐, 왜 맥도널드지? 세계 곳곳에서 그렇게 물었다. 이후로도 맥도널드는 전세계에서 매장을 늘려갔지만, ‘신자유주의 첨병’의 미운 털이 박히는 수모를 전세계에서 당했다. 작고 사소한 시민 불복종의 잠재력이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금경희(25)씨는 5월 마지막주 내내 검은 옷만 입었다. 저녁마다 빨아 입었다. 과외를 매일 한다. 매일 강남에 간다. “젊은 것들이 지조가 없어. 대통령 할 때는 그렇게 욕하더니 죽은 다음엔 왜 난리야? 대한문 앞에 가는 사람들은 제 정신인 거야?” 어느 어머니가 대놓고 말했다. 그래도 금씨는 가슴에 단 검은 리본을 떼지 않았다. 학비를 벌려면 강남 학부모의 돈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신념까지 내어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고학생인 금씨로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2003년,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200여 명의 각국 시민들이 보란듯이 들어갔다. 미군이 ‘오폭’을 가장해 폭격할 가능성이 높은 민간 시설에 제발로 들어갔다. 폭탄이 떨어지면 그들도 죽을 터였다. 스스로를 ‘인간 방패’라 불렀다. 덕분에 이라크전쟁에서 빈발하는 미군의 양민 학살이 세상에 알려졌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여 더 많은 생명을 구했다. 작고 사소하지만 그래서 더 호소력 짙은 시민 불복종의 위대한 성취다.

‘강한 시민’의 진보 정당 입당원서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시민들의 ‘개인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일단은 정부의 ‘위협 효과’의 결과라고 본다. 집회·시위 현장이 봉쇄당하고, 채증된 사진이 증거가 되어 잡혀가고, 인터넷에 정부 비판글을 올리면 구속당하는 일이 거듭되면서 “광범위한 행동에 참여하는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위축의 징후는 아니라고 신 교수는 판단한다. 다른 형태의 ‘저항’이 움트고 있다. “문턱이 높아졌으니 행동과 실천은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지만, 비판 여론은 오히려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지요. 격렬한 분노라기보다는 정부로부터 완전히 정을 뗀 ‘차가운 미움’의 상태죠.” 그 미움을 표현하고 나누는 사소한 일에서 ‘직접 행동’이 시작된다.

만화가 박건웅(38)씨의 작업실은 경기 부천에 있다. 작업실 앞에 화단이 있다. 나무도 있다. 거기 종이찰흙으로 만든 쥐가 매달려 있다. 팔뚝만 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울분이 풀리지 싶어” 저지른 일이다. 그런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 만화 그리는 사람들을 모아 ‘정치적’ 만화잡지를 만들 생각이다. 6월 셋쨋주에 첫 모임을 갖는다. 힘들게 잡지를 만들어봐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어볼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만들어볼 생각이다. 안 만들면 울화가 쌓여 안 되겠다.

정보통신(IT) 기업에 다니는 정호연(32·가명)씨는 “생각만 하는 소시민에서 진짜 행동하는 시민으로 변신하기로” 결심했다.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 참석했던 정씨는 집에 돌아와 아내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강해질 거야. 정말 강해질 거야.” ‘강해진 시민’ 정호연은 어느 진보 정당에 입당원서를 냈다. 내년 지방선거와 그 다음의 총선·대선 때 유세장을 다니며 자원봉사도 할 생각이다. 그런다고 진보 정당의 의석이 갑자기 늘어나진 않겠지만, 어쨌건 마음으로만 응원했던 과거와는 결별할 생각이다.

이들의 마음을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은 1963년의 유명한 연설에서 이미 대변한 바 있다. “우리는 부정한 법률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며, 부정한 행위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적이고 공개적으로 기쁨으로 충만한 채 불복종할 것입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설득할 것이지만 그것이 실패할 경우에는 행동으로 설득할 것입니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의 목격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의 생명까지도 위험에 내맡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웅성웅성, 저마다의 딴짓

세계적 정치학자 에이프릴 카터는 에서 “자유가 허용되는 나라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개인의) 행동이 억압적인 국가에서는 엄청난 저항 행위로 간주되어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썼다. 신진욱 교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공감대를 부여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사소한 계기를 통해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한껏 높여놓은 집회·시위의 문턱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저마다 딴짓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마하트마 간디’ 또는 ‘로자 파크스’ 혹은 ‘조제 보베’가 될 것이다.



시민 불복종의 역사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시민 불복종’은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이념이다. 헌정제도 자체를 부정하진 않지만, 특정한 법과 제도를 거부하며 그에 따른 처벌이나 불이익까지 기꺼이 감수하는 시민들의 공공연한 행동이 시민 불복종이다. 따라서 ‘완전히 합법적인’ 시민 불복종은 없다. 모든 시민 불복종은 법·제도를 어느 지점에서 거부하는 행동이다. 법적 처벌 또는 경제적 불이익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기희생’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집단 이기주의’와도 구분된다.
논란은 주로 ‘폭력’에 대한 것에서 발생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철학자 존 롤스(1921~2002)는 ‘비폭력’ 행동을 시민 불복종의 핵심으로 봤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 롤스식 시민 불복종의 대표 사례다. 반면 유럽을 대표하는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1906~75)는 폭력 유무로 시민 불복종을 정의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그의 관점에 따르자면, 맥도널드 상점을 경운기로 부순 프랑스 농민 조제 보베의 행위는 ‘불법적’일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었지만, ‘정당한 불복종 행동’이었다.
그러나 시민 불복종의 폭력적 요소를 긍정하는 경우에도 △사회 보편의 정의 관념에 호소하는 공익적 목적을 두고 △뭇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진행되며 △타인의 신체·생명을 직접 해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생각이다. 경찰을 구타하는 ‘린치’, 몰래 폭탄을 설치하는 ‘테러’, 헌정 체제를 깡그리 부정하는 ‘혁명’ 등은 이런 점에서 시민 불복종과 분명히 구분된다.
독일 등 외국 헌법에는 ‘비폭력적 방식에 의한 비타협·저지·거부·직접행동’ 등을 통칭하는 저항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 헌법에는 명문 규정이 없다. 다만 전문(前文)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시민 불복종의 헌법적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정치학자 에이프릴 카터는 “권력에 반대하는 것이 위험한 억압적 체제에서는 은밀하게 행하는 (개인의) 수동적 저항도 직접행동”이라고 본다. 최근 움트고 있는 시민들의 개인적 저항이 이에 해당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6월10일 역사에 길이 남을 발언을 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민주주의는 합리적인 절차와 제도 그 자체”인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신 읽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그 발언은 ‘센세이셔널’하다. “절차와 제도 자체”를 민주주의의 모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19세기 또는 20세기 초반의 것이다.
예컨대 ‘엘리트주의 이론가’인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정치를 잘하려면 엘리트의 통제가 필요하고, 시민들은 선거 때가 아닌 평시에는 정치 참여를 자제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슘페터를 끝물로, 현대의 정치학자 가운데 민주주의를 ‘절차와 제도’로 좁혀 이해하는 이는 거의 없다. 대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참여 민주주의, 심의 민주주의, 담론 민주주의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것이 과제라고 본다. 여기서 시민 불복종은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면서 민주주의 전체를 심화하는 핵심 요소다.
예컨대 에리히 프롬(1900~80)은 말했다. “인류 역사는 불복종의 행위에서 시작했다.” 존 롤스가 말했다. “시민 불복종은 불법이긴 하지만 결국 입헌제도를 안정시키는 도구 중 하나다.” 위르겐 하버마스(1929~)도 말했다. “진정한 법치국가는 단순한 합법성을 토대로 정당성을 내세워서는 안 되며, 시민들에게는 법에 대한 절대적 복종이 아닌 조건부의 복종을 요구해야 한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대의적 민주주의만을 민주주의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잘 작동되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라 할지라도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직접행동은 정당화된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많고 적고’의 문제이며, 시민 불복종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정당한 행동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2009년 한국 시민들의 가슴에 자리잡은 불복종의 정념이 어디까지 어떻게 확산될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개인의 울분으로 잦아들 수도 있다. 관건은 자기희생의 감수다. 기꺼이 처벌받겠다는 자세가 없다면, 시민 불복종은 도덕적 상징성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없다. 정치학자 오현철은 저서 에서 “시민 불복종을 위해서는 자기희생의 용기와 특권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썼다. 용기가 없으면 불복할 수 없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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