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검찰 표적수사는 현재도 진행 중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직후 윤원철 전 청와대 행정관 구속…
‘이철상 게이트’ 묶으려다 안 되자 광범한 계좌추적
등록 2009-06-11 06:12 수정 2020-05-02 19:25

6월1일 대전지검 특수부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윤원철 전 행정관을 구속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직후였다. 2007년 9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게서 8천만원을 받아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건넨 혐의였다. 윤 전 행정관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재직하던 2005년께에도 지인으로부터 학교시설 개선 등에 관한 청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1억원 안팎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각각 정치자금법 위반과 알선수재 혐의였다.
영장을 발부한 법원은 알선수재 혐의에 더 주목했다. “알선수재 횟수가 여러 차례이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는 것이 영장을 내준 법원의 설명이었다. 윤 전 행정관 쪽도 “검찰은 안희정 최고위원이 강금원 회장에게 돈을 빌린 부분(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을 문제 삼고 있는데, 이 부분만으로는 영장이 기각됐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보석으로 풀려난 강금원 회장(왼쪽)이 5월26일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보석으로 풀려난 강금원 회장(왼쪽)이 5월26일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안희정·강금원 겨냥해 시작된 수사

윤원철 전 행정관의 이름이 언론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9년 2월16일이었다. 대전지검 특수부는 그때 이른바 ‘이철상 게이트’ 수사에 매달려 있었다. 이철상 게이트는 휴대전화 제조업체 VK의 이철상 전 대표가 국고보조금 유용 등의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이를 안희정 최고위원 등 옛 여권 386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으로 건넸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의혹이 집중적으로 양산된 곳은 검찰 주변이었다. 언론 보도는 이랬다.

“검찰은 이씨가 조성한 VK 비자금이 자금세탁을 거쳐 정치권 주변 모 인사의 차명 계좌로 꾸준히 유입됐고, 이 계좌로 강 회장의 자금도 흘러 들어온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검찰은 이 계좌에 입금된 돈이 다시 안희정씨가 2004년 대선자금 사건 재판에서 선고받은 추징금 4억9천만원을 내는 데 사용된 사실을 밝혀냈다.”( 2009년 2월16일치)

‘정치권 주변 모 인사’는 윤원철 전 행정관이다. 그의 이름이 ‘이철상 게이트’에서 거론된 주된 이유는 그가 2000년대 초반 이철상 전 대표가 만들었던 한 업체에 3년간 근무한 과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실에서 근무하며 안희정 최고위원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검찰은 윤 전 행정관의 이력을 바탕으로 ‘이철상(강금원)-윤원철-안희정 등’으로 이어지는 돈거래 의혹을 끊임없이 흘렸다. 이 과정에서 등은 “검찰은 VK의 고속성장 과정에서 이철상 전 대표가 참여정부 인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양산했다. 그러나 정보통신 업계에 따르면 VK는 참여정부 출범 이전부터 급성장해왔고, 오히려 참여정부 중반인 2006년에 부도가 났다. ‘참여정부 인사’ 가운데 핵심인 안희정 최고위원을 게이트에 끼워넣기 위해 검찰 주변에서 사실관계와 거리가 있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온 셈이었다.

이후 ‘이철상 게이트’는 어떻게 됐을까? 우선 ‘이철상-윤원철-안희정 등’으로 이어지는 돈거래 의혹은 한 편의 소설로 판명됐다. 의혹의 출발점이던 이철상 전 대표는 4월25일 보석으로 나왔다. 현재 법적 공방이 이뤄지는 주된 내용은 정치자금과 관련 없는, 이 전 대표 개인의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한 부분이다.

이 전 대표의 변론을 맡은 손차준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국고보조금 유용이라는 혐의로 수사가 출발했는데, 운동권 출신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전 정권의 정치인들에 대한 정치자금 유입에 관해 집요하게 수사를 받았다”며 “운동권 출신 기업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검찰이 ‘털어서 먼지 안 나오겠느냐’는 식으로 수사했다”고 검찰을 꼬집었다.

법정선 정치자금 대신 횡령·배임 공방만

‘이철상 게이트’의 핵심 고리는 검찰이 그린 ‘상상도’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곤욕을 치르는 쪽은 여전히 참여정부 인사들이다. 윤원철 전 행정관의 계좌 때문이었다. 검찰은 애초 이철상 전 대표의 국고보조금 유용 내역을 밝혀내기 위해 계좌추적 방식으로 그의 돈 사용처를 좇았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2000년대 초반 그와 함께 일했던 윤 전 행정관의 계좌가 발견됐다. 이 계좌를 설명하려면 잠시 2004년 대선자금 수사의 기억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6월4일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정치보복 사례에 대한 진상 파악에 나섰다. 6월5일 오후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임식을 마친 뒤 청사를 나가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민주당이 6월4일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정치보복 사례에 대한 진상 파악에 나섰다. 6월5일 오후 임채진 검찰총장이 퇴임식을 마친 뒤 청사를 나가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안희정 최고위원은 당시 대선자금 재판 결과, 4억9천만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안 최고위원으로서는 갚을 길 없는 거액이었다. 안 최고위원 주변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돈이 모인 계좌가 바로 그의 측근이던 윤원철 행정관의 계좌였다. 안 최고위원을 아꼈던 강금원 회장이 가장 많은 1억원을 냈다. 백원우·서갑원·이광재 의원도 각각 3천만원씩 낸 것으로 전해졌다. 적게는 10만원을 낸 사람도 있었다.

검찰은 이 사실을 바탕으로 윤 전 행정관에 대해 4월 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강 회장이 낸 1억원을 정치자금으로 규정하고 안 최고위원까지 수사한다는 것이 검찰의 계획이었다. ‘이철상 게이트’ 수사가 안 최고위원의 정치자금 수사로 번진 것이다. 안 최고위원과 강 회장을 겨냥하기 위해 우선 윤 전 행정관을 구속하려 한 검찰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대전지법 심규홍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4월25일 “아직 혐의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다른 범죄 수사를 하려고 영장을 발부할 수는 없다”며 검찰의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

검찰도 물러서지 않았다. 6월1일 윤 전 행정관의 개인 알선수재 혐의를 보강해 구속영장을 얻어낸 것이다. 결국 윤 전 행정관이 구속됨에 따라 검찰은 그를 매개로 이뤄진 강금원 회장과 안희정 최고위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의 고삐를 죌 수 있게 됐다.

윤원철 전 행정관의 사례를 길게 소개한 이유는, 이 사건이 ‘먼지털기식 수사’ ‘표적 수사’ ‘과잉 수사’ 논란을 빚는 검찰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윤 전 행정관이 구속된 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난 지 고작 사흘 뒤였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터져나온,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한 거센 비판에도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우선 ‘표적 수사’ 부분이다. 대검찰청은 2008년 12월 수사 전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을 발간했다. 이를 보면 최초 수사 대상에서 파생된 별개의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적법하다고 규정했지만, 범죄가 아닌 특정인을 처벌할 목적으로 하는 수사는 금지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철상 전 VK 대표에 대한 수사 초기부터 ‘이철상-윤원철-안희정’, 그리고 ‘강금원-윤원철-안희정’ 등으로 이어지는 ‘개념도’를 미리 그려놓고, 수사의 초점을 안희정 최고위원과 강금원 회장에게 맞췄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안 최고위원을 반드시 소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대전지검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안 최고위원의 측근인 윤 전 행정관에 대해서도, 정치자금 전달 부분에 대한 혐의 입증이 애매하자 결국엔 알선수재 혐의를 찾아내 구속시킨 검찰의 태도도 뒷말을 낳았다.

특정인 처벌 목적 수사 금지해 놓았지만

‘먼지털기식 수사’, ‘과잉수사’ 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역시 대검 에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른 증거자료를 무차별적으로 확보하려 하면 과잉수사로 평가한다고 했다. 강금원 회장이 윤 전 행정관 계좌에 넣은 1억원의 성격에 검찰이 주목한 것은 당연했다. 거꾸로 말하면 검찰은 1억원의 성격만 규명하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 포괄적으로 영장을 발부받은 뒤 강 회장의 회계장부는 물론 부인 계좌와 가계부까지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강 회장이 소유한 시그너스 골프장도 압수수색을 당했다. 강 회장 쪽은 당시 “이미 몇 차례나 조사해서 더 할 내용도 없을 텐데, 심지어 (강 회장) 차량에 보관 중이던 약까지 가져갔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은 강 회장이 뇌종양 치료를 이유로 보석 신청을 냈을 때도 끝까지 반대했다.

검찰이 윤 전 행정관에게 돈을 건넨 사람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계좌추적을 실시한 것도 설명돼야 할 부분이다. 이화영 전 민주당 의원도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전 의원은 지난 4월께 농협으로부터 계좌추적 사실을 통보받았다. 농협은 ‘이철상 게이트’를 수사한 대전지검 특수부가 2008년 10월께 이 전 의원의 계좌 정보를 열어봤다고 그에게 알렸다. 이 전 의원은 6월2일 과의 인터뷰에서 “나 역시 안 최고위원의 추징금에 힘을 보태기 위해 200만원을 건넨 적이 있는데, 검찰이 이를 빌미로 내 계좌를 들여다본 것으로 안다”며 “참여정부 인사 가운데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계좌추적을 당한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계좌를 깐 뒤 정작 본 사건과 관계없이 당사자가 자주 가던 술집이나 밥집 등까지 일일이 조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6월4일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진상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태세다. 진상특위는 검찰의 정치보복과 관련한 진상 규명과 국세청을 통한 정치보복 세무조사 의혹 규명, 노 전 대통령과 측근에 대한 정치보복성 수사 여부를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이화영 전 의원 등에 대한 무분별한 계좌추적 사례도 모두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특위는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대검 수사 관계자들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고발 대상은 이인규 중앙수사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이다. 민주당은 고발장에서 “이 중수부장 등은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진행하면서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을 바탕으로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는 수준이 아니라 수사 진행 상황을 브리핑하고 뇌물이라는 객관적 증거나 정황이 없는 개인적인 선물에 대해서도 언론에 흘렸다”고 밝혔다. 진상특위는 이와 함께 검찰 개혁을 위한 3대 과제로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 △피의사실공표죄 제도 개선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 ‘정치보복 진상특위’ 발족 활동 나서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각 일선 지검 특수부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특별수사 기능을 지금처럼 대검 중수부가 담당하는 한 검찰 수사에 대한 정치적 논란은 피할 수 없다”며 “굳이 고위 공직자에 대한 전담 수사기구가 있어야 한다면, 대검 중수부를 없애는 대신 참여정부 때 설치하려다 실패했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