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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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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이 내려앉고 있다

소설가 서해성, 항쟁 29주년의 광주를 걷다…
민주화의 메카였던 광장은 지금 텅 비어 있네
등록 2009-05-21 13:22 수정 2020-05-02 04:25

남도의 아버지 산, 무등산이 낮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이 산에서 세상을 구할 불씨를 얻고자 했다. 산신령 따위 인격신을 향한 구복이 아니라 생동하는 역사에 비손해 천하를 도모코자 했다. 편지 끝이나 책머리에 ‘무등산 밑에서’라고 붙이는 일은 허세로 내뱉는 책상물림들 문자향이 아니라 시대와 양심의 명령에 따라 살겠다는 준엄한 다짐이었다. 그 중심에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주말 무등산은 29년을 맞은 ‘광주’를 바라보면서 실록 짙은 등을 드러낸 채 구물거리고 있었다.

광주 도청 앞 분수는 29년 전에도 지금도 무심히 솟구고 있지만, 29년 전의 상처는 지금도 되살아나고 있다. 1980년 학살의 피로 물들었던 도청 앞에선 20년 뒤 로케트전기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농성을 하고 있다. 5·18 관련 단체 회원들이 눈앞의 이익 때문에 거친 몸싸움을 벌였던 곳도 도청 앞 광장이다.

광주 도청 앞 분수는 29년 전에도 지금도 무심히 솟구고 있지만, 29년 전의 상처는 지금도 되살아나고 있다. 1980년 학살의 피로 물들었던 도청 앞에선 20년 뒤 로케트전기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농성을 하고 있다. 5·18 관련 단체 회원들이 눈앞의 이익 때문에 거친 몸싸움을 벌였던 곳도 도청 앞 광장이다.

‘무등산 밑에서’에 담았던 뜻

“갑오년에 이어 소작쟁의 등 농민을 중심으로 한 집요한 호남인 저항은 일제를 넌더리나게 했다. 한국전쟁은 이념적으로 전라도를 다그쳤다. 결정타는 박정희 정권이 날렸다. 거기에다 전두환이 실탄을 퍼부어댄 것이다.”

박광서 전남대 교수는 거침없이 논지를 펴나가면서도 처음 남도 사람들 정서에 적응하는 데 제법 시간과 공이 들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경기도와 서울에서 장성해 광주에 와 30년 넘게 산 그는 손아래 누이 박광숙을 김남주 시인과 혼인시켰다.

“4·29 재보선 때 이 지역 지방의회 보궐선거에서 민노당 후보 2명을 당선시킨 건 민주당에 좋게 한 방 먹인 격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달라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완패하고 경기도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사이익을 얻은 걸로 승리를 연호하는 걸 보면서 경악했다. DJ 이후 이들은 지도력에서도, 이념 지향성에서도 보수세력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똥 막대기를 꽂아도 되는 판에 성찰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망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해발 1200m에 조금 못 미치는 무등산을 누군가 갉아먹어왔다. 적어도 동학농민항쟁 이후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트라우마는 남도 정서란 이름으로 피학적 동질성을 부여하면서 정치세력에게 갈취당하기 좋은 먹이가 되었다. 독재세력에게는 분열 기제로, 호남 권력에는 기득권 유지의 볼모로 작동했다. 그걸 뿌리치고 스스로 주인이고자 한 게 5월 광주였다.

1980~90년대 숱한 청년대중들이 사회적 고향으로 삼았던 그 광주는 어디쯤인가.

광주에서 만난 누구도 그 실체가 민주당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당에 대한 의사결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온 게 사실이다. 정치의식을 관장하는 뇌에서 일어난 정보가 손가락 끝으로 전달돼 기표하는 사이에 왜곡이 일어나는 것일까. 필시 그만큼 볼모화돼 있는 것일 게다.

전남도청 앞, 5월 관련 단체의 혈투

스물아홉 돌을 맞은 5월을 달구고 있는 화제는 터파기를 하다 멈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립을 둘러싼 갈등이다. 설계대로라면 도청 뒤켠에 들어서는 이 건물이 항쟁의 핵심적 상징인 옛 전남도청을 상당 부분 허물고 문을 내야 하는 터다.

“자꾸 (철거할 곳이 전남도청) 별관이라고 하는데 허물려고 하는 곳은 증축 부분이다. 본관과 통로가 연결돼 있어서 항쟁 마지막 새벽 시민군들이 이곳으로 몰려 2층 화장실에서 시신이 다수 발견되었다. 망월동 묘지와 상무대 영창을 새로 바꾸고 나니 좋은가. 도청과 분수대만은 손대면 안 된다.”

칠순 가까운 유족회 정춘식 사무총장이 갈라진 목소리로 이것만은 꼭 알려달라고 했다.

헐어내기로 되어 있는 5층 도청 건물 두 곳을 58m에 이르는 검은 비닐천이 덮고 있었다. 5·18 관련 3개 단체는 11개월 전부터 도청을 지켜야 한다고 농성을 벌여왔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성사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2월에 떠났던 구속부상자회가 농성장에 다시 들어와 유족회와 부상자동지회를 끌어내겠다고 한 건 지난 5월10일이다. 갈등은 심각한 양상이다. 며칠 전에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17개 시민단체들이 이곳에서 원형 보존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공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지 못하면 머잖아 예산을 거두어들이게 될 것이라고 을러대고 있다. 문화부 산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쪽에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고, 5·18 기념행사 뒤 바로 철거 집행을 밀어붙이겠다고 경고하는 실정이다.

5월이 광주에, 광주가 5월에 상처를 입히는 동안 무등산은 필경 더 낮아지고, 더 가파르게 기울고 있을 게다.

“광주시장은 물론 국회의원들도 붙잡고 통사정을 해봤다. 이러다가 광주가 큰일나는 수가 있다. 함께 해결할 길을 찾아봐달라고 숫제 읍소를 했다.”

5·18기념재단 윤광장 이사장은 올해 5월에는 부끄러워 하늘도 쳐다보지 못했다고 한사코 대화마저 마다했다. 80년 항쟁 당시 교사 신분으로 진압군에 끌려갔던 그는 광주 망명객으로 널리 알려진 동생 윤한봉을 이태 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다.

10여년 전 새로 단장한 망월동 묘역을 학생들 무리가 들어와 채웠다. 5월을 지키는 사람은 이들일 터이다.

10여년 전 새로 단장한 망월동 묘역을 학생들 무리가 들어와 채웠다. 5월을 지키는 사람은 이들일 터이다.

“광주특별법부터 잘 만들어야 했다. 정치인이란 이럴 때 정부와 시민 사이를 조정하고 지혜를 찾도록 해줘야 하는 법인데…. 민주당은 여기서는 오래도록 집권세력 아닌가.”

선 굵은 눈썹 위로 머리칼이 곤두서 있는 그가 피곤해 보였다.

광주는 앓고 있었고, 그들이 기대기에는 정부도 민주당도 너무 멀리 있었다.

29년 전 오늘 연단 삼아 올라 계엄군을 물리치고 민주화를 외치던 도청 앞 분수대에서는 무심히 물이 솟구고 있었다. 밤을 새우면서 타오르던 횃불은 없었다. 80년 이후 학살과 항쟁을 기려 5월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이 때로 10만 명을 헤아리던 그 광장은 비어 있었다. 관에서 행사를 주도하기 전 5월 광주에 와본 사람이라면 오랜 발품을 팔아 메카에 가는 무슬림들의 순례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게다. 그네들에게 여비와 신심이 필요했다면 광주로 오는 길은 경찰 감시를 뚫어야 했다는 점에서 외려 더 고난에 찼다고 해도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순례자들은 방이 없어서 차디찬 대학 강당 시멘트 바닥에 기껍게 몸을 뉘곤 했다. 광주는 부채이자 교과서이고 미래였던 까닭이다. 그들이 이르려 한 정점이 도청이었다.

교통관제탑 꼭대기, 해고 노동자들

검은 비닐막 너머로 금남로를 바라보면서 엎디어 있는 옛 도청에서 만난 늦은 광주 순례자 미국인 조지 카치아피카스(전남대 교환교수)는 낙관적이었다.

“광주 사람들은 항쟁을 통해 경쟁에서 협동으로, 복종에서 저항으로 나아갔다. 나는 이를 ‘에로스 효과’라고 불러왔고, 광주를 파리코뮌과 비교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유럽의 68혁명은 애국에서 국제주의로 발전해갔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힘은 위대해 발생과 절차, 의식 따위를 다 새롭게 구성한다. 지금 갈등도 크게 봐 이와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그는 계기에 따른 민중의 질적 변화를 유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도청 바로 앞 큰길 모퉁이에는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하늘로 쏘아 올라가기라도 할 듯 족히 30m가 넘는 올연한 교통관제탑 꼭대기에 둥지를 튼 채 65일째를 나고 있었다. 근육경련제를 먹고 파스를 붙인 채 어른용 기저귀와 페트병에 일을 보면서 그들은 5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항쟁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이들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허공에 매달려 생각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자 처지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잖나 싶어 서글프다. 그래도 5월을 믿는다. 광주 시민들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 줄 안다.”

30m를 두고 손전화를 타고 들리는 노동자 유제희씨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비정규직을 없애자는 주장을 한 죄로 쫓겨난 이들을 새로 직원을 뽑을 때 우선 채용하기로 한 약속을 회사 쪽이 지켜달라는 절박한 요청은 5월의 몫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다. 오래도록 5월 광주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5월이 열어젖힌 하늘을 그들은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29년 전 광주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의 5월이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치나 사회운동이 광주, 호남, 5월을 팔아 얻은 기득권을 헌 옷처럼 벗어버리고 역사의 매판자에서 새 길로 떨쳐나서지 못한다면 무등산은 더 낮아지고 말 것이다.

망월동, 기득권 돛대가 갈피를 잃은 것일 뿐

“몇 년 전 대통령이 왔을 때 학생들이 길을 막은 뒤로, 5·18 행사에 높은 사람이 오는지라 경찰이 포위하듯 길을 막고 있다. 비표 없이는 들어갈 수도 없다. 사람들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꽃 팔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망월동 구묘역이라 부르는 들머리에서 오월꽃집을 하는 아주머니는 쓰게 웃었다. 처음 시민이 몸으로 낸 참배의 길이 권력 통제 아래 들어갔으니 신명이 줄어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10여 년 전 새로 단장한 묘역으로 익산북중·광주금구중 학생들 무리를 이어 유치원 아이들 100여 명이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그네들이 노란 모자를 벗고 묵념을 올렸다. 순간 망월 묘역이 환해졌다.

“나누고 양보하는 일을 배우지 않고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겠는가. 5·18에는 나이를 떠나서 배울 게 들어 있다.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망월 묘역에 온 까닭을 찬찬히 일러줄 참이다.”

차점숙 원감(수완생태어린이집)이 설명을 하는 동안 사레지오수녀회 예비수녀들이 계단을 밟고 조용히 제단 앞으로 올라왔다.

5월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들일 터이다. 이들이 있는 한 산이 더 낮아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들었다. 민심이 떠도는 게 아니라 기득권의 돛대가 갈피를 잃고 있을 뿐인 것이다.

산의 부성이 강조되는 시대는 민중에게 신산스런 싸움을 요구하는 법이다. 언젠가 모성 어린 정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무등산이 남도의 어머니 산일 수 있을 터다.

길을 돌아 나오자니 산이 문득 굽은 등을 펴고 몸을 일으키는 듯했다.



하안거에 든 지선 스님
“역사적 구체성을 갖고 상생 길을 찾으라”


5월9일부터 하안거에 든 지선 스님과 어렵게 마주 앉았다. 중병 뒤라서 수척했지만 생기 넘치는 담화는 여전했다. 인적 드문 깊은 절집 용흥사(전남 담양)에서 밤늦도록 이어진 대화에는 박광서 교수(전남대)가 동석했다. 백양사 주지인 지선 스님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는 등 80년 광주항쟁 이후 한국 불교의 실천적 방향을 제시해왔다.

지선 스님

지선 스님

-5월 광주는 오늘 어떤 의미인가.
=싸울 때는 다들 목숨도 버릴 수 있는 대동정신을 알았다. 사상·주장·이해관계를 넘어 생사의 기로에서 거룩한 희생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28주년 5월 행사를 맡아 보면서 5월이 이해에 따라 분열돼 있음을 절감했다. 행사를 치를 수나 있겠느냐고 할 정도였다. 내게는 늘 어려울 때만 일을 떠민다. (웃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립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5월 초 산을 내려가 몇 마디를 했다. 먼저 5월 관련 단체들을 꾸중했다. 이해관계에 따른 분열과 다툼은 광주 사람들마저 외면하게 할 것이다. 광주를 넘어 다른 사건들도 잘 풀리도록 여러분이 나서야 한다. 제주 4·3, 마산 3·15, 79년 부마항쟁도 다 마찬가지다. 어찌 광주항쟁만이 소중하다고 할 것인가. 이들과 연대하고 서로 돕고, 여느 사람들이 우러를 수 있어야 한다. 겸양과 자숙을 하고, 봉사하는 자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나를 포함해 다들 서로 부끄러워했다. 29년 전에는 도청 앞마당에서 총을 맞았는데, 이제는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서 집달리와 경찰에게 끌려나갈 판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는 곤란하다.
-민주당은 호남에서 어떤 존재인가.
=5월 광주와 호남 지역차별이나 상처를 팔아서 정치들을 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쓸 만한 게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둘 다 다를 게 없다. 단적으로 성래운 선생이 16일간 단식을 하는 등 학생과 도민이 힘을 합쳐 실질적으로 조선대를 도립대학화했는데 끝내 임사이사회 체제를 바꿔주지 않아 정권이 바뀌면서 도로 옛 재단을 중심으로 이사진이 구성되고 말았다. 이는 재산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교육 주체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민주당이란 게 대저 이러하다.
-호남이란 무엇인가.
=물적 빈곤에 기초한 역사의 질곡에서 신산스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른바 호남 정서가 형성됐다. 비판적 지성은 가장 빼어난 유산이다. 지배권력은 오래도록 지역분열과 분단정책을 민중 억압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여야를 떠나 지역을 넘어 전국정당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영남이 양보하는 게 순리다. 정치·경제·종교까지 다 쥐고 있지 않은가. 그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MB 정부의 분단관리 정책을 평가한다면.
=지금까지는 자살 행위였다. MB는 자신을 기르고 가르친 정주영 회장을 진짜로 존경하고 닮아야 한다. 그가 소떼를 몰고 방북한 까닭을 깊이 되새겨봐야 한다. 덧붙여 통일이 담보되지 않는 민주화 없고, 민주화가 담보되지 않는 통일이란 애초부터 허구다. 프랑스에 이런 말이 있다더라. ‘독일, 좋은 나라지. 두 개면 더 좋고.’ 이 정권에 꼭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다.
-산 아래를 향해 덕담을 해달라.
=사람살이란 애초부터 조건이 강제된 것이다. 따라서 상생은 필연이다. 밥이든 쌀이든 말이든 역사적 구체성을 갖고 상생할 길을 찾아야 한다.


광주 연작 판화가 홍성담
“역사적 책임 안 진 민주당은 유죄”


판화 연작 을 통해 5월 항쟁 직후 광주를 바로 형상화해냈던 홍성담 화가는 광주의 위기는 ‘제사’에 있다고 거듭 말했다. 유족 중심의 ‘5월’을 시민 중심으로 옮겨와야 한다는 뜻이다.

판화가 홍성담

판화가 홍성담

-광주항쟁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작가다. 29주년을 맞은 소회가 어떤가.
=광주는 내 청춘 자체이자 자긍심이다. 29주년을 맞은 지금 씁쓸함을 못내 지우기 어렵다.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도 그렇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80년대로 퇴행하는 걸 보면서 5월 광주를 더 자주 떠올리곤 한다. 악몽도 꾼다.
-광주의 형상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는가. 광주 비엔날레는 5월 정신을 잇고 있는가.
=5월 핏값으로 탄생한 비엔날레는 처음부터 민중과 유리돼 있었다. 그저 일반 미술인들의 잔치이자 유럽 비엔날레 흉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광주 내부의 먹이사슬이기도 하다. 나도 참여한 적이 있어서 자괴감이 크다. 인권·평화·반전 등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야만적 행위에 대해 창조적 형상언어로 발언할 수 있는 장이 돼야 한다. 바로 5월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립 문제로 5월 단체들이 갈등을 하고 있는데.
=도청은 마땅히 보존돼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분열하지 않는 일이다. 하물며 거기서 총에 맞아 죽기도 했는데, 이 갈등쯤이야 뛰어넘어야 한다. 내부의 적도 물리쳐야 진짜 5월 정신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기심 말이다.
-얼마 전 보궐(지역의회) 선거에서 민노당 후보가 광주와 장흥에서 당선했다. 광주·전남의 민심은 진보적인 것인가. 지역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
=굳이 여타 지역에 비교할 것 없이 진보적인 정치적 의사를 갖고 있음에도 최악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민주당을 선택해왔다. 당선 가능성, 견제세력 따위의 논리가 그것이다. 그 때문에 광주·전남 사람들은 오래도록 이중성에 시달려야 했다. 지역주의라는 폄하도 뒤집어써야 했다. 지역 대중의 정치 수준에 걸맞은 정치세력이 출현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본다. 민노당 후보 당선은 변화를 갈급하게 요청하고 있는 민심을 말한다. 민주당이라는 정치세력은 역사적 책임을 온전히 져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유죄다.
-근래 어떤 작업을 하나.
=일본 제국주의 본질을 알리려 해온 야스쿠니신사 작업에 이어 용산 참사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설을 며칠 앞둔 새벽에 생명을 불태워버리는 권력이 있는 한 5월은 계속된다. 이것은 광주와 다를 바 없는 학살이다. 수난이 새로 시작되고 있어서 끔찍하고 고통스럽지만 두렵지 않다. 우리는 이 산을 넘어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광주가 남긴 자산이다.

광주=글 서해성 소설가·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연합,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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