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오빠들은 동생 린을 싫어했다. 린의 눈은 작았고 머리는 검었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린은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세 명의 언니·오빠들은 린을 따돌렸다. 양부모는 린을 학대했다. 1966년 12월, 두 살배기 린이 처음 양부모의 품에 안겼을 때만 해도 사정은 조금 달랐다. 양부모는 자청해 린을 입양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갓난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따돌림, 성추행, 가출, 그리고 ‘귀환’
그러나 양어머니는 갈수록 린을 차갑게 대했다. 훗날 양어머니는 자살을 시도한다. 심약한 그는 린에게 내어줄 모정의 여력이 없었다. 양아버지는 린을 만졌다. 13살이 될 때까지 린에게 음란한 행동을 했다. 어릴 땐 뭔지 몰랐고, 나이 들어서는 알면서도 침묵했다. 다시 버림받지 않으려면 다른 수가 없었다. 주변에는 양아버지를 닮은 백인들뿐이었다. 18살에 집을 나왔다. 10대의 나이로 결혼했지만 5년 뒤 이혼했다.
그는 불행한가? 아직 단정지을 수 없다. “고립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하는 린 리스(Leanne Leith·44)의 삶에도 소망 하나가 남아 있다. 친부모를 만나는 일이다. 1년 전부터 그는 홀트인터내셔널에 자신의 기록을 요청했다. 미국의 홀트인터내셔널은 “한국에서 받은 자료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홀트아동복지회는 “미국에 자료를 모두 줬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그는 42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결국 입양기관에서 받은 것은 서류 한 장과 사진 한 장뿐이다.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두 살배기 아이가 사진 속에 있다. ‘#4708’이라는 번호가 적혀 있다. 1966년 3월, 강원 원주시 시청 앞에 버려진 아이에게 매겨진 일련번호다. 사진은 미국에 있는 성추행 양아버지와 우울증 양어머니에게 우편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이제는 이 사진을 통해 친부모를 만나야 한다. 한국에 온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진전은 없다. 그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린은 매년 1천여 명씩 외국으로 보내지는 한국인 해외 입양 아이들의 미래다. 그들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 슬픔과 곡절을 짊어져야 한다. 원래는 어른들 잘못이었다. 감당은 아이들 몫으로 남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의 잘못이다.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21세기에 접어든 2000~2007년에만 1만6970명의 한국 어린이가 해외 입양 가정에 보내졌다. 한국전쟁 이후 발생한 수많은 ‘전쟁고아’를 위해 1961년 처음으로 고아입양특례법이 만들어졌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더 이상 전쟁고아는 없다. 그래도 해외 입양은 여전하다.
지난해 해외 입양된 한국인 아이는 모두 1250명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자료를 보면, 1958년 이후 2008년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 보낸 아이는 모두 16만1558명이다. 이 가운데 67%인 10만8222명이 미국으로 보내졌다. 그 다음은 프랑스(1만1165명), 스웨덴(9297명), 덴마크(8702명) 순이다.
미 인구통계국의 2000년 자료를 보면, 미국에 입양돼 온 아이들 가운데 한국 출신이 24%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2위, 러시아가 3위였다. 2000년대 들어 미국으로 보내지는 한국인 입양아의 수가 조금 줄었다. ‘세계 최대 어린이 수출국’의 오명은 면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도 한국은 과테말라, 중국, 러시아, 에티오피아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여전히 미국에 아이를 입양 보내는 주요 국가다.
여전한 것은 더 있다. 1993년 국제사법회의에서 ‘국가 간 입양에 관한 헤이그협약’이 만들어졌다. 한국은 협약 제정 15년이 넘도록 가입하지 않고 있다. 헤이그협약은 부당한 국제 입양을 막기 위해 입양을 담당하는 중앙국가기관을 지정하도록 했다. 2009년 2월 현재, 헤이그협약에 가입한 78개국은 모두 해외 입양을 위한 중앙정부기구를 두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도 유보 상태한국이 해외 입양을 보내는 나라는 미국·캐나다·스웨덴 등 8개 나라다. 이들 역시 헤이그협약에 가입해 있다. 관련 업무를 맡은 중앙정부기관도 물론 있다. 미국은 국무부가 입양을 감독한다. 스웨덴은 중앙국가기관으로 해외입양국(MIA)을 두고 있다. 한국에는 입양 관련 정부기관이 아예 없다.
우리나라는 1989년 제정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지만, 이 가운데 입양 관련 3개 조항에 대해서는 국내 적용을 유보해둔 상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모든 아동의 입양이 관계당국에 의해서만 허가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외 입양은 국내 입양의 대체 수단이며, 해외 입양이 입양 관계자들에게 금전적 이익을 주는 결과가 되어선 안 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에 “헤이그협약에 가입하고 아동권리협약 유보를 거두라”고 권고했지만 여전히 변화는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일제 잔재와 군사독재를 청산했지만, 해외 입양은 없애지 못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등 외신이 한국의 ‘고아 수출’을 비난했다. 정부는 처음으로 해외 입양 폐지를 언급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성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온 해외 입양인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해외 입양 자체가 ‘나라의 잘못’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지만, 그저 상징적 의미일 뿐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5년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앞으로 4~5년 뒤 해외 입양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역시 치렛말에 그쳤다. 2005년 2101명이던 해외 입양이 2008년 1250명으로 줄긴 했으나, ‘폐지’와는 거리가 멀다. 감소의 속도를 낙관적으로 봐도 앞으로 10년 이상 해외 입양은 유지될 것이다.
정부의 선언이 번번이 공염불이 되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해외 입양은 정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대신 ‘시장’에 맡겨져 있다.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 가면 미국 가정이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나와 있다. 1만7215달러(환율 1260원 기준 2169만원)다. ‘입양 시장’에서 한국 아기는 가장 비싸다. 똑똑하다고 소문이 나 외국 입양 부모들에게 인기가 좋다. 홈페이지엔 불가리아 아기 1만6천달러, 중국 아기 1만1360달러, 네팔 아기 1만2천달러라고 적혀 있다. 이들 액수는 한 국가가 아동 인권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드러내는 지표로 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등록비, 서류작업 비용, 에스코트 비용 등은 별도다.
입양 부모가 내는 돈은 현지 입양기관과 한국 입양기관이 나눠갖는다. 홀트아동복지회는 ”미국 입양 부모가 지불한 2천여만원 가운데 800만~1200만원이 우리 쪽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미국 홀트인터내셔널의 몫이다. 입양되기 전까지 고아를 맡아 기르는 비용,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보살피는 비용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오가는 비용이 ‘입양 비즈니스’를 증명”지난해 6월 보건복지가족부가 홀트아동복지회와 대한사회복지회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결과보고서에는 “입양기관이 해외에서 받는 입양수수료가 지나치게 높아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쓰여 있다. 감사 결과 해외 입양 알선 때 대한사회복지회는 미국 1만6천달러(약 2016만원), 캐나다 2만2천캐나다달러(약 2332만원), 스웨덴 1만2천유로(약 1920만원)를, 홀트아동복지회는 미국 1만1천달러(약 1386만원), 유럽 1만700달러(약 1348만원)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입양기관 쪽도 할 말은 있다. 아이에겐 부모가 필요하고, 부모 없는 아이에게 입양할 부모를 찾아주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하며, 국내 입양이면 좋겠지만 아직은 사회 인식이 따라주지 않아 해외 입양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입양기관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받는 비용은 미혼모나 요보호 아동을 돕는 일에 쓰인다”며 “오히려 정부 지원금을 받아야 시설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 입양인을 돕는 시민단체들의 시선은 다르다. 입양인 지원단체인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해외 입양 과정에서 오가는 비용 자체가 ‘입양 비즈니스’를 입증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적절한 복지를 제공할 의무는 국가에 있다. 그의 부모가 어려운 사정을 겪고 있다면, 이를 도와 아이와 함께 살도록 하는 것도 국가의 몫이다. 현재의 해외 입양은 이런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고 일체의 비용마저 외국인 가정에 전가하면서 그 대가로 미래의 해외 입양아를 길러내는 식이다.
일단 해외 입양이 결정된 뒤, 어느 나라에 보낼지도 순전히 입양기관에 달려 있다. 입양기관마다 협약을 맺은 나라가 다르다. 현재 홀트아동복지회는 미국·덴마크·노르웨이·프랑스·룩셈부르크, 동방사회복지회는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대한사회복지회는 미국·스웨덴·캐나다·이탈리아, 한국사회봉사회는 미국과 입양 관련 기관 상호협조를 맺고 있다.
특히 미국으로 보내지는 한국인 아이들이 많은 현실을 들여다보면, ‘시장의 논리’가 숨어 있다. 미국은 국무부가 입양을 관장하긴 하지만, 헤이그협약 가입국 가운데 ‘민간’의 입김이 가장 세다.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사설 해외 입양기관들이 미국인 가정에 외국 아동 입양을 권유하는 방식이다. 이 해외 입양 기관들은 미국인 입양 부모로부터 돈을 받는다. 외국 아동에 ‘가격’을 매겨 선전하는 풍토가 여기서 비롯했다. 기왕이면 ‘비싼 값’의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이 입양기관에 유리할 것은 불문가지다.
미국의 부모들은 왜 미국 아이 대신 한국 아이를 택할까? 허남순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미국 부모들이 미국인 아이를 입양하려면 관련 법률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만 1만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아이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고 외국 아이는 잘 키워낼 의욕이 생기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아이를 입양하면 비용 대비 만족도가 그나마 가장 높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미혼모 생활시설인 애란원의 강영실 국장은 “미국과 한국의 입양기관이 자체적으로 협약을 맺어 ‘입양 비용’을 책정하는데, 이 비용에 대해 미국 정부는 개입하지 않고 있고, 한국 정부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주무 인력도 적어 전혀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쟁도 없고 대기근도 없고 아이를 수출해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무역수지 문제도 없는 나라에서 해외 입양이 여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외 입양 업무를 중심으로 짜인 민간 입양기관의 ‘관성’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해외 입양이 계속돼야만 일자리와 월급을 보장받는 어른들이 한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다.
전쟁고아 줄어든 시점에서 해외 입양 증가[%%IMAGE4%%]국내에서 해외 입양을 전담하는 민간기관은 4곳이다. 1961년 처음으로 고아입양특례법이 만들어지면서 66년부터 72년까지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 동방사회복지회 등이 해외 입양기관으로 정부 인가를 받았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홀트아동복지회의 경우, 2004년 12월 기준으로 입양 관련 사업에만 142명이 일하고 있다. 입양 사업은 11개 지방사무소에서 함께 이뤄진다.
전쟁고아가 사실상 사라진 1970년대 이후의 해외 입양은 미혼모 문제와 맞닿아 있다. 국내 4곳의 해외 입양기관들은 미혼모 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미혼모 보호시설 25곳 가운데 17곳을 홀트 등 해외 입양기관이 운영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해외 입양인 수는 전쟁고아가 줄어든 시점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1960년대 7275명이던 해외 입양인 수는 입양기관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70년대엔 4만8247명, 1980년대는 6만5321명을 넘어섰다. 입양기관이 자리잡으면서 결과적으로 ‘시장’도 개척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혼모가 늘어난 게 아니라, 미혼모의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민간 입양기관의 증가가 해외 입양 아동 증가의 핵심이라고 본다. 입양기관들이 외국에 보낼 수 있는 아기를 ‘물색’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란 것이다.
를 보면, “2005년에는 미국·프랑스 등의 국가를 대상으로 모두 941명의 국외 입양을 계획하고 있으며, 3/4분기에는 모두 668명의 국외 입양이 이뤄져 전체 계획의 70.2%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나온다. 입양기관들이 해외 입양의 목표치를 세우고 그 실적을 내부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06년 가을, 당시 22살이던 최미은(가명)씨는 임신을 했다. 부모가 이혼한 뒤 가출한 그는 늘 정에 굶주렸다. 어울려 다니던 이들에게 마음을 쉽게 줬다. 아이는 해외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 쉼터에서 낳았다. 출산 전부터 쉼터의 상담자는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서를 들고 나왔다. 미국에 보내면 영어도 잘하게 되고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씨는 선선히 국제 입양을 결심했다. 나중에 아이를 맡아 기르겠다는 국내 가정이 나타났다. 그러나 입양기관은 “이미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며 거절했다. 국내 입양 우선의 원칙은 뒤로 미뤄졌다. 최씨의 아이는 돌이 될 무렵 미국에 보내졌다.
최씨는 자신의 아이가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만 안다. 양부모의 나이, 직업, 가족관계, 거주지 등은 전혀 모른다. 양부모가 어떤 병을 앓았는지, 혹시 전과가 있는지, 학력은 어찌 되는지, 입양아를 잘 기를 만큼 경제적 여건은 넉넉한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입양기관은 양부모에 대해선 일체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아이를 미국으로 보낸 지 2년여가 지난 지금, 최씨는 후회하고 있다. 뒤늦게 결혼해 아이를 낳아 직접 기르고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여러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아이를 낳은 뒤에 좀더 심사숙고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입양기관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쉼터에서는 지난해 80명의 미혼모가 출산을 했고 이 가운데 70%가 입양을 선택했다. 쉼터 관계자는 “남자아이의 경우 국내 입양 수요가 없어 대부분 해외로 입양된다고 보면 맞다”고 말했다. 지난해 태어난 80명의 아이 가운데 절반이 남자아이였다. 적어도 절반 이상이 해외로 입양됐다는 이야기다.
법에 포함된 ‘비밀 누설 금지’그렇게 한국을 떠난 해외 입양아들은 양부모와 현지 생활에 적응하는 과제를 온전히 혼자 떠안는다. 30년간 스웨덴의 해외 입양인을 치료해온 정신과 전문의 현덕 김 스코글룬드는 입양인들이 심리적 문제를 겪기 쉽다고 진단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별의 상처로 인한 우울증,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주변 시선에 대한 강박관념, 애정관계의 어려움, 명확하지 않은 정체성 문제 등이다.
자살을 선택한 입양인들도 있다. 1974년 생후 6개월에 스웨덴에 입양된 프레드리크는 19살에 한국을 찾았다. 8개월간 한국에 머물다가 스웨덴으로 돌아간 뒤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1년 자살했다. 1993년 6월엔 스위스의 한국 입양인 지윤 엥엘(23)이 “생모를 만나기 위해 이 길을 갑니다”란 메모를 남긴 채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 스웨덴에서는 입양인의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4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죽음을 택하는 것은 그래도 성인이 된 다음의 일이다. 그전에 입양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파양’이 일어날 경우, 해외 입양아는 국제 미아가 된다. 2006년 네덜란드 외교관 가정에 입양됐던 한국 아이가 홍콩에서 파양돼 국제 미아가 될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다행히 사연이 기사화되면서 다른 입양 부모가 나타났다. 이 사례와 달리,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입양 부모에게 버림받은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양부모에게 학대받은 린 리스의 사례를 더하면 ‘정상적으로’ 입양 가정에서 성장하는 경우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해외 입양인들이 끈질기게 ‘뿌리’를 찾으려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그들에겐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는 일이 필생의 과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해외 입양인들의 기록은 입양기관이 쥐고 있다. 많은 입양인들이 한국에 찾아와 뿌리 찾기를 시도하지만 입양기관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기록에 문제가 있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가족부 자료를 보면, 1995~2005년 사이 7만6646명의 해외 입양인이 한국에 들어와 친부모를 찾아나섰지만 성공한 경우는 2113명(2.7%)에 그쳤다.
자료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자료를 제공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현행 입양특례법은 “입양기관에 종사하는 자 또는 종사하였던 자는 업무에 관한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비밀 보장으로 입양인 기록 접근은 물론 입양기관 내부의 비리조차 알 수 없게 돼 있다”고 비판했다. 스웨덴으로 입양됐던 토비아스 휘비네트 박사는 연구를 통해 “1970년대 초반, 북한이 남한의 ‘고아 수출’을 비난하자 남한이 입양 프로그램 전체를 국가 기밀과 비슷한 것으로 분류해 변형시켰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론 처음부터 민간기관에 맡겨진 입양 사업이 화근이다. 법원이나 관련 정부기관의 승인을 얻어, 아이가 자라 친부모를 찾아갈 수 있는 일은 헤이그협약 가입국에서나 가능하다. 헤이그협약은 “입양 아동이 친부모에 대해 알 권리는 친부모나 양부모의 권리와 상충되는 경우에도 아동의 이익 최우선 원칙에 따라 보호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젠가 귀환할 린 리스들자전적 소설 의 작가인 정경아씨 등 입양인 7명은 지난해 입양 기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정당한 요청에도 공개를 꺼리는 4개 해외 입양기관을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했다. 정씨는 “1972년 미국으로 입양되는 과정에서 본래 호적 정보와 고아 호적 및 신상기록이 서로 달랐고 한국어 서류와 영문 서류의 기록도 달랐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는 생모의 동의 없이 입양 절차가 진행되거나 부모가 있는데 미아로 처리된 경우도 있었다. 입양인 서류 공개 여부도 일관성이 없었다. 국민권익위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입양기관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관련 제도 개선도 추진할 예정”이라는 민원처리 결과를 보내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제도 개선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20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해외로 보냈다. 지금 당장 해외 입양이 없어진다 해도 언젠가 ‘귀환’해 과거의 책임을 따질 제2의 린 리스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또 한 명의 어린 린 리스는 ‘#4708’의 사진을 들고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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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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