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어린이 디아스포라’를 끝내는 법

입양인 단체의 강력한 요청에 입양특례법 개정 움직임…
방대한 민법 함께 고쳐야 하는 난제
등록 2009-05-14 06:05 수정 2020-05-02 19:25

쿠데타 성공 직후인 1961년, 박정희 정권은 고아입양특례법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이미 이뤄지고 있던 해외 입양을 ‘정비’하려는 목적이었다. 한국 여성과 미군 병사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또는 전쟁고아에 대한 해외 입양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시절이었다.
최초 제정 때의 입양특례법은 나라가 책임지지 못하는 아이들을 ‘더 원활하게’ 국외로 내보내려는 성격이 짙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어린이 디아스포라(이산)’의 시작이다. 이후 입양특례법은 9차례 개정됐다. 그러나 입양을 보는 법률의 시선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맡아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이를 내주는’ 입양특례법의 성긴 그물코는 여전히 넓고 크다.

국외입양인연대(ASK) 회원과 뿌리의 집 회원들이 지난해 5월5일 ‘입양 없는 날’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이 지난 50년 동안 20만 명의 아이를 돈을 받고 해외에 보낸 것을 상징해 비행기 모형 위에 동전 2천 개를 놓았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국외입양인연대(ASK) 회원과 뿌리의 집 회원들이 지난해 5월5일 ‘입양 없는 날’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이 지난 50년 동안 20만 명의 아이를 돈을 받고 해외에 보낸 것을 상징해 비행기 모형 위에 동전 2천 개를 놓았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정보 통합 관리 수준에 머물 듯

정부는 오는 9월 정기 국회에서 현행 입양특례법을 개정하겠다는 태도다. 지난 2월에는 관련 공청회도 열었다. 여기에는 1970∼80년대에 해외 가정에 보내졌다가 성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온 입양인들의 목소리가 적잖은 역할을 했다. 관련 단체의 효시는 ‘해외입양인연대’(GOAL)다. 입양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한국에 돌아온 해외 입양인들의 정착과 뿌리 찾기를 도왔다. 2004년에는 더 정치적인 모임이 만들어졌다. ‘국외입양인연대’(ASK)는 해외 입양 완전 폐지를 목표로 내건다.

2007년에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TRACK)이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과거 해외 입양 과정의 전모를 한국 정부의 책임 아래 ‘진실 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라가 방조하고 민간 기관이 주도한 해외 입양의 ‘그늘진 실체’를 광범위하게 조사하는 ‘진실화해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최근 법안 개정 흐름은 해외 입양인들의 강력한 요청에 떠밀린 측면이 크다. 정부로선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진전은 더디다. 정부는 특례법 개정 내용을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는 아직 정부안을 내놓지 못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최근 허남순 한림대 교수 등에게 의뢰했던 ‘입양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연구’ 최종 보고서를 받았다. 이 입수해 살펴보니, 연구팀의 제안은 “국내·국외 입양 업무를 조정·중재하고 입양 대상 아동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운영할 권위 있는 국가기관의 신설”로 모아진다. 보고서의 제안대로라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가 마련할 최종 개정안은 연구팀의 제안에 못 미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5월8일 “입양 관리에 대한 정부 기능을 강화하겠지만, ‘헤이그협약’에 준하는 정부기관을 새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허가에 의해 입양이 이뤄지는 ‘유럽 스탠더드’에 대해서도 “현행 민법까지 함께 개정해야 하므로 이번에 바로 입양 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법안 개정은 해외 입양인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일은 홀트아동복지회 등 4개 해외 입양 기관이 1999년 공동으로 설립한 ‘입양정보센터’가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민간기관의 자금에 기반했던 해외 입양인 정보 관리를 정부 예산으로 뒷받침하는 정도의 변화가 예상된다. 이 정도로는 해외 입양 ‘산업’을 공공의 통제 아래에 둘 수 없다.

TRACK 등 해외 입양인 단체와 공익변호사 모임 ‘공감’은 정부와 별도로 관련 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7월께 최종안이 나올 예정이다. 역시 법 개정의 핵심은 모든 입양에 사법적 판단을 거치게 하는 ‘정부 기관’의 설립이다.

18살 이전 이중국적 유지하도록

현행 입양특례법은 필요한 서류를 갖춰 보건복지가족부에 제출해 허가를 받는 것으로 입양 심사를 완료한다. ‘허가’라고는 하지만, 민간 입양기관 주도의 입양 절차를 요식적으로 승인하는 경우가 많다. ‘공감’ 등은 권위 있는 국가기구가 입양 절차를 주도하고, 최종 심사는 가정법원 등 사법기관이 맡아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절차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친부모와 함께 지내도록 국가가 지원하고 △불가피할 경우, 국내 입양 가정을 적극적으로 찾되 △해외 입양은 최소화하는 등 ‘입양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간 입양기관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강화하는 것도 이들의 주된 관심이다. 해외 입양 가정이 지급하는 입양알선비와 정부지원금의 기준을 엄밀하게 정해 입양기관들이 ‘금전적 이익’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입양기관들이 친부모의 정보를 적절한 과정을 거쳐 입양인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해외로 입양된 경우에도 18살이 될 때까지는 이중국적을 유지하도록 하는 규정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현행 국적법에서는 모든 국민이 이 나이까지는 이중국적을 유지할 수 있는데, 유독 해외 입양아의 경우만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박탈하게 돼 있다.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이중국적 유지를 통해 해외에 입양된 아동이 파양되거나 권리 침해를 당했을 때 한국 정부가 개입하거나 한국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는 안전판이 마련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입양과 관련해서는 양부모 자격 기준을 강화하는 조항도 필요하다. 현행 법령에서는 양부모 자격을 △기혼 가정의 25살 이상 부모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한 가정 △아동양육에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가정 등으로 밝히고 있다. 대체로 보아 25살 이상이면 누구나 입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감’ 등에서는 자격 요건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등의 전력이 있다면 입양 자격을 주지 않는 것이 옳다고 지적한다.

‘공감’ 등은 현행법에서 ‘입양될 자격’을 밝힌 대목에 등장하는 ‘요보호 아동’이라는 표현도 삭제해야 한다고 본다. 소라미 변호사는 “입양특례법은 전쟁고아나 부모가 버린 아이 등에게 해외 입양을 ‘강요’하려는 성격이 강했는데, 지금도 ‘요보호 아동’에게만 입양 자격을 부여한 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절한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아동의 권리 차원에서 입양될 자격을 어린이 모두에게 부여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에 고통받는 경우에도 친부모의 승낙이 없다면 아이를 다른 가정에 입양할 수 없다. 안정된 가정에서 성장할 아동의 권리가 친부모의 ‘권리 남용’에 의해 완전히 차단당하는 것이다.

두 가정 간 합의에 따라 입양했으나 파양당한 아이의 문제도 있다. 현행 민법은 두 부모의 합의에 의한 입양 절차만 규정하고 있을 뿐, 파양 때 아동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해선 특별한 규정이 없다. 이 경우 입양아는 양부모는 물론 친부모로부터도 버림받을 수 있다.

양부모에 대한 국가기관 검증도

김상용 중앙대 교수는 5월13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주최하는 토론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양부모에 대한 국가기관의 검증 절차를 거치고 △친부모의 동의가 없더라도 입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아동에겐 국가기관이 적극적으로 입양의 기회를 제공하며 △파양된 경우에도 아동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입양특례법을 국제 기준에 맞게 고치는 것조차 정부가 난색을 표하는 상황에서 입양과 관련한 방대한 민법 규정을 개정하는 것은 또 다른 난제다. 나라가 법을 만들어 국내외 입양의 풍토를 헤쳤으니 뒤늦게라도 이를 바로잡는 일이 필요한데, 갈 길은 너무 멀고 정부는 여전히 둔감하다. 입양의 상처는 계속 곪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