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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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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살 돈으로 친엄마를 지원하라

입양 자체가 없는 유럽은 정부가 미혼모 보살펴…
혈육과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품격 있는 최선의 해법
등록 2009-05-14 05:25 수정 2020-05-02 19:25
정경아(미국 이름 제인 정 트렌카)씨는 생후 6개월 만에 4살 된 친언니와 함께 미국으로 입양됐다. 현재 모국에 돌아와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TRACK)의 조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소설가인 그는 2003년 미국에서 자전적 소설 (The Language of Blood)를 출간했다. 이는 국내에도 같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입양에 대한 관점 변화를 촉구하는 그의 영문 기고문을 번역해 싣는다. 편집자
한국에 남아 있는 입양인들의 입양 서류. 입양의 첫 단계는 엄마와 그의 소중한 아이를 분리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한국에 남아 있는 입양인들의 입양 서류. 입양의 첫 단계는 엄마와 그의 소중한 아이를 분리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얼마 전, 나는 전남 여수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한국인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 노인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입양됐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의 친구가 예전에 입양 보낸 아들을 찾고 있는데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친부모와 절연된 5살 이하 그리고 ‘아기농장’

지금까지 모두 20만여 명의 한국 아이들이 서구 나라들로 입양됐다. 그렇다면 100만 명 정도의 한국인 부모 또는 조부모들이 아이를 잃는 고통을 직접 겪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에다 기차에서 만난 노인처럼 친구나 친척의 입양 경험을 간접적으로 겪은 이를 더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입양은 자선이 아니라 사업(business)이다. 입양의 핵심은 돈을 위한 인간의 교환에 있다. 미국인 부부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아이를 입양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만5525달러다. 만일 입양을 진정으로 자선이라 부르려면, 이런 비즈니스적 요소부터 제거돼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공공복지 서비스가 그러하듯, 입양 또한 국가에 의해 무료로 운용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입양이 돈 버는 사업으로 전락한 탓에 오늘날에도 매년 1천 명이 넘는 한국 아이들이 해외로 보내지고 있다. 국제 입양을 조장하면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헤이그협약 등 국제법은 아이들이 제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며, 국제 입양은 최후의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의 입양 부모들은 한국 아이들이 친부모와 함께 지낼 수 있게 도울 만큼 충분한 재정적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저 한국 아이들을 데려오기만 한다. 미국 입양 부모가 한국 아이를 입양하는 데 지급하는 돈을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3200여만원에 이른다(1달러당 1260원 기준). 이는 친엄마에게 매달 53만여원을 5년 동안 줄 수 있는 액수다. 이 정도의 돈이면 친엄마가 아이를 직접 보살피면서 함께 지내는 일을 도울 수 있다.

입양 기관들은 미혼모 시설과 관련을 맺어서 아기들이 곧장 친엄마의 품에서 입양 가정으로 옮겨지도록 한다. 입양 사업에서 가장 각광받는 대상은 합법적 절차를 거쳐 친부모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지워버린 5살 이하의 건강한 어린아이다. 심지어 아기가 엄마의 자궁 안에 있는 동안에도 ‘합법적으로’ 양육을 포기하는 일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아기농장’(baby farm)이라 불리기도 한다.

입양 기다리는 미국 어린이 11만 명

이런 체제는 40~60년 전 미국에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대단히 비윤리적이고 강압적으로 엄마로부터 아이를 빼앗아오는 행위로 비판받는다. 데이비드 스몰린이라는 미국 법학 교수는 이런 국제 입양을 “합법화된 어린이 유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공공의 통제를 벗어난 사적 기관들에 의해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공공의 사회적 서비스조차도 민영화하는 신자유주의적 방식을 따라, 취약한 한국 엄마들과 부유한 서구 엄마들 사이의 국제 입양을 민영화하는 것이다.

한국 아이들을 미국의 입양 가정에 보내는 일은 미국 아이들을 위해서도 공정하지 못하다. 2005년, 미국 아동복지연맹(The Child Welfare League of America)은 16살 이하의 미국 어린이 가운데 10만9316명이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이들이 입양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년여에 이른다. 입양을 기다리는 미국 아이들의 대부분은 위탁 가정에서 자라지만, 여전히 8174명이 고아원에서 지내고 있다.

한때 미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무한한 부의 땅이라 여기면서 아이들을 보냈다. 정말 그럴까? 2000년대 중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빈곤율(17.1%)은 한국(14.6%)보다 높다. 아동빈곤율 역시 한국(10.7%)보다 미국(20.6%)이 높다.

입양은 의학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입양 아동이 자신의 유전학적 과거를 알지 못한다면, 가족 병력에 대한 간단한 질문에도 답변할 수 없다. 게다가 백혈병 같은 질환을 앓는 입양 아동은 자신에게 적합한 골수 기증자를 찾을 수 없어 사망할 수도 있다. 입양 아동은 ‘애착장애’(attachment disorder)에 걸릴 위험도 높다. 이런 장애는 어린 시절 친엄마로부터 떨어졌을 때 생겨나는 정신적 문제로,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전쟁 고아가 사라진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오늘날 해외로 입양되는 한국 아이들에겐 이미 ‘가족’이 있다. 엄마와 아이로 이뤄진 ‘한부모’ 가정이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입양 자체가 거의 없는데, 정부가 직접 미혼모를 포함한 엄마들에게 자신의 아이를 기를 수 있도록 북돋고 지원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지위나 처지 때문에 이들을 차별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정체성 유지 입양 가정에 인센티브, 친족 지원…

한국은 식민지배와 독재 시기, 급속한 산업화와 세계화 등 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런 과거에는 어린이의 권리가 어른의 권리보다 우선시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한국은 더 이상 전쟁으로 신음하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경제적·민주적 상황의 진전과 함께 한국에 보내는 세계의 기대는 점차 커지고 있다. 자비롭고 선진화된 사회에서는 어른이건 어린이건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는다. 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이였다.

입양이 사랑에 기초한 행동이 될 수 있긴 하지만, 입양의 첫 단계는 엄마와 그의 소중한 아이를 분리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제기구들은 아이가 친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라는 데 동의한다. 아이의 정체성을 없애지 않고 (즉, 친부모의 존재를 알도록 하면서) 입양하는 가정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이모·삼촌·조부모 등이 보살피도록 이들 친족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 등도 국제 입양이나 국내 ‘비밀’ 입양보다는 훨씬 나은 대안이다.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은 약자를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따라 그 사회를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아이들을 친엄마와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품격 있는 최선의 해법이다.

정경아 저자·입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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