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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무죄는 검찰의 승리


무죄 선고받은 미네르바는 이미 만신창이됐지만 공소권 함부로 휘두른 검찰은 ‘남는 장사’…
“낙인 효과 통해 법원 넘어서는 권능 행사” 비판
등록 2009-04-30 14:44 수정 2020-05-03 04:25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왼쪽)와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만으로 이미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다. 무죄판결이 내려진들 검찰 수사 전으로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 사진 왼쪽부터 한겨레 김봉규 기자·연합 이정훈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왼쪽)와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만으로 이미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다. 무죄판결이 내려진들 검찰 수사 전으로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 사진 왼쪽부터 한겨레 김봉규 기자·연합 이정훈

정확한 경제 예측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본명 박대성·31)가 구속된 지 100여 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온라인상에서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는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덕분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는 “구체적 표현 방식에서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고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도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4월20일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박씨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피곤한 표정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반면 비슷한 시각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재판부가 증거 선택을 잘못해서 사실관계를 오인한 만큼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은 박씨의 손을 들어줬건만, 당당하기는 검찰이 더했다. 과연 재판에서 승리한 것은 누구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박씨와 검찰이 각각 어떤 이득과 손해를 봤는지 따져보면 된다.

우선 피고인 박씨. 그는 지난 1월7일 검찰에 체포돼 4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 동안에 그가 겪었을 고통은 단순히 무죄판결로 보상받을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나중에 무죄판결이 확정된다면 형사보상청구권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만, 독방에서 보낸 100여 일은 ‘일당 몇만원’으로 계산되는 형사보상금으로는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박씨는 인터넷에 글을 잘못 올렸다는 죄치고는 가혹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형을 이미 산 셈이다. 심하게 말하면, 그에게 무죄판결은 괴로웠던 수감 생활이 일단 중지됐다는 정도의 의미뿐일 수도 있다.

처벌은 물론 인터넷 여론 재갈 효과까지

그렇다면 검찰의 수지타산은 어떻게 될까? 우선 박씨가 넉 달 동안 수감돼 있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검찰로서는 나름 충분히 처벌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적인 형식은 무죄지만, 실제는 징역 100여 일을 살게 한 것과 똑같은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검찰의 성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검찰(또는 검찰을 움직이게 한 정권)이 노린 것은 박씨 개인에 대한 처벌보다도 이를 통해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인터넷에 함부로 글 올리다가는 큰코다친다’는 메시지를 전 국민에게 두루 전했기 때문이다. 박씨가 구속되자 상당수 누리꾼들은 ‘나도 재수 없으면 저렇게 붙들려가겠구나’라는 판단 아래 꼬투리가 잡힐 만한 발언들을 스스로 자제하기 시작했고, 한때 ‘토론의 성지’라고 불리던 포털 다음의 아고라도 크게 위축됐다. 다음 쪽도 메인 홈페이지에서 아고라의 위치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곳으로 옮기는 등 알아서 정부 눈치를 보긴 했지만, 검찰이 나서 누리꾼들에게 ‘경고’하는 것의 효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같은 공포 분위기 조성에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검열의 우려에서 자유로운 외국에 본거지를 둔 사이트로 둥지를 옮겨가자는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 시도되기도 했다.

결국 검찰로서는 박씨 개인에 대한 처벌은 처벌대로 했고, 대외적으로 노렸던 위축효과는 위축효과대로 다 본 셈이다. 무죄가 났다지만 그에 대해 책임질 일도 없다. 무죄 선고를 이유로 검사에게 공식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없을 뿐더러, 권력이 바라는 대로 움직인 만큼 해당 검사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일도 없다. 그래서일까? 지난 4월22일 한 누리꾼은 아고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미네(르바)님의 석방을 환영합니다. …검찰은 이번 일로 기대치의 200% 이상의 수익을 냈습니다. 사람 잡아놓는 건 일도 아니죠. 잡았다가 빼는 건 더 쉽네요?”(아이디 ‘인생’)

결국 양쪽이 얻은 성과를 종합해보면, 박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정작 승리를 거둔 것은 검찰이라는 아이로니컬한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역설은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에 대한 수사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검찰은 지난해 8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혐의로 정 전 사장을 기소했다. 국세청과의 세금 반환 소송을 벌이던 한국방송이 1심에서 이겼음에도 2심에서 재판부의 조정에 응하는 바람에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2448억원(1심 승소액 1764억원과 이자 684억원)을 포기하고 556억원만 돌려받음으로써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조정이란 재판부가 분쟁 당사자 간에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도록 중재안을 내놓고 이를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는 법률 행위를 말한다. 즉, 법원이 제시한 중재안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검찰은 정 전 사장을 기소했는데, 이는 일반인의 상식과는 한참 거리가 먼 행위이다. 게다가 검찰에서 말하는 ‘배임’의 결과 국고가 2천억원 가까이 늘어난 셈인데, ‘공익의 대변자’라는 검찰은 정 전 사장에게 표창장이라도 줘야 했던 게 아닐까.

”검찰은 통제받지 않는 수사권과 공소제기권을 이용해 사회적 사건을 정의(define)하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지난 4월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검찰의 수사,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모습.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검찰은 통제받지 않는 수사권과 공소제기권을 이용해 사회적 사건을 정의(define)하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지난 4월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검찰의 수사,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모습.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정 전 사장 배임이면 재판부는 배임교사?

하지만 검찰은 기소라는 강수를 뒀고, 이는 법조계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오세빈 당시 서울고법원장도 법원의 조정권고로 마무리된 한국방송과 국세청 사이의 세금 소송을 문제 삼아 감사원이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검찰이 배임 혐의로 기소까지 한 것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법학)는 “2심 법원이 조정을 권고했고, 로펌의 법률자문과 수용권고를 받았고, 한국방송의 공식적인 심의의결기구인 경영회의에 의해 승인된 사안을 두고 배임죄를 적용해 기소한 것은 법리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기소권 남용”이라며 “만약 배임이 된다면 그런 조정을 권유한 법원 재판부에는 배임을 교사한 죄를 물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물론 이는 정권 차원의 언론 장악 플랜에 검찰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나서 기소권을 행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미네르바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건 무죄를 선고하건 책임질 일이 없다. 반면에 정 전 사장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한국방송 사장 자리에서 쫓겨났기에, 해임의 중요한 근거가 된 ‘부실 경영’의 결정적인 대목이 무죄로 밝혀지더라도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검찰은 정 전 사장에 대한 유·무죄 판단과 무관하게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 이미 원하던 바를 이뤘다는 점에서 승리자인 셈이다.

미네르바 사건과 정 전 사장 배임기소 사건에서 검찰이 무조건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권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아니면 말고’식으로 공소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무리해서라도 수사를 시작하고 기소하면 그 순간 상대방은 복구가 불가능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에서는 모든 형사사건의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한다고 돼 있지만, 현실에서 사실상의 결정권을 가지고 흔드는 것은 검찰이다. 판결 전에 의도했던 효과를 대부분 얻을뿐더러, 무죄가 나더라도 검찰로선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은 지난 4월21일 국회에서 열린 ‘2009년 검찰개혁 연속 기획토론회-검찰의 수사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도 심각하게 지적됐다. 인권실천시민연대와 이춘석 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 토론회에서 발제자인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텍스트를 지배하고 있다. 결코 법원에 판단을 의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사는 단순히 피고인과 대립되는 소송 당사자의 지위를 넘어, 형사사법에서 법담론과 법집행의 주도적인 생산자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280개 글 중에서 2개 트집 잡아 구속기소

주요 사건에서 검찰의 기소가 ‘아니면 말고’식으로 이뤄졌다면, 그에 앞선 수사 단계에서는 ‘걸면 걸린다’는 원리가 작동됐다. 우선 미네르바 사건을 살펴보자. 검찰은 공소장에서 박씨가 2008년 3월~2009년 1월 다음 아고라에 280여 편의 글을 올렸다고 밝혔는데, 이 가운데 검찰이 문제 삼은 글은 단 2개였다. ‘정부가 환전 업무를 8월1일부로 중단하게 됐다’는 내용(2008년 7월)과 ‘정부가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는 내용의 긴급공문을 보냈다’는 내용(2008년 12월29일)의 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7월에 올린 글은 미네르바가 유명해지기 한참 전에 쓴 것이어서 검찰이 애써 강조해온 ‘허위 사실을 유포해 공익을 해한’ 효과가 거의 없거나 미미할 수밖에 없다. 또 12월에 올린 글과 관련해서는 기획재정부에서 공문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전화로 금융기관에 달러 매수 자제를 요청한 사실이 있고, 박씨 스스로 곧바로 사과한 뒤 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검찰은 박씨가 올린 글의 1%도 안 되는 부분을 트집 잡아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통신을 하면 처벌한다)을 적용해 박씨를 구속기소하는 초강수를 뒀다.

검찰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다른 사건들에서 이와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검찰은 법원 조정에 응했다는 이유로 정연주 전 사장을 체포한 뒤 기소했고,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횡령 혐의 수사 때는 특수부가 동원돼 6개월이 넘도록 무려 70여 명의 참고인을 소환 조사했다.(최 대표의 구속영장은 두 차례 기각돼 현재 불구속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걸면 걸린다’식 과잉수사의 백미는 인터넷 관련 분야에서 이뤄졌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에 대한 광고불매 운동이 인터넷상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누구도 이것을 수사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검찰은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누리꾼 수십 명을 기소했다. 검찰은 또 지난해 여름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불법 음원 게시와 관련해 다음과 네이버를 고소한 사안에 대해서도, 가을께 갑자기 두 업체를 압수수색하더니 대표이사를 소환 조사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 두 업체 책임자들을 약식기소하는 선에서 정리됐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인터넷은 불법의 온상’이라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효과를 봤다.

일단 걸고 보는 검찰의 행태는 촛불시위 관련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검찰이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위반으로 기소한 촛불 피고인 가운데 지금까지 법원 판결이 나온 경우는 모두 6건인데, 이 가운데 절반에는 무죄가 선고됐다. 미네르바 사건과 휴교령 문자메시지 전송 사건, 여대생 사망설 동영상 유포 사건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1심 형사재판에서 무죄 선고율은 1% 이내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1심 무죄율은 2006년 0.47%였는데 2007년에는 0.77%, 2008년 상반기에는 0.92%였다.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무죄율이 50%라는 사실은,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얼마나 무리하게 이뤄졌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로이터>는 미네르바 체포 뉴스를 국제면이 아닌 ‘희한한 뉴스’(oddly news)로 보도했다고 한다. 그만큼 황당한 소식이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미네르바 체포 소식이 알려지자 검찰청 앞에서 항의시위가 열렸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로이터>는 미네르바 체포 뉴스를 국제면이 아닌 ‘희한한 뉴스’(oddly news)로 보도했다고 한다. 그만큼 황당한 소식이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미네르바 체포 소식이 알려지자 검찰청 앞에서 항의시위가 열렸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검찰의 수사·공소권 남용 방지 대안 없어

사실 검찰이 이처럼 자의적이면서도 공격적으로 수사권과 공소권을 행사하며 형사사법 절차를 주도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은 극심한 논란 속에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의 구속기소를 관철했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활동하고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서열 23위의 장의위원으로 참석했다는 등의 혐의였다. 이같은 혐의 대부분은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됐지만, 검찰 수사와 공소 제기 과정에서 송 교수는 이미 간첩의 대명사로 낙인찍혔고, 10여 시간씩 포승줄에 묶인 채 심문을 받고, 오랜 기간 구속돼 있는 등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이명박 정부 들어 훨씬 더 빈번해졌고 정도도 강화됐다는 점이다. 정권 스스로가 검찰권 남용을 부추길뿐더러, 사실상 유일한 견제 수단인 여론도 무시되기 일쑤다. 당장의 해법도 없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같은 별도 수사기구 설치 △미국식으로 선거를 통한 검찰 수장 선출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권의 민주적인 통제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은 떨어진다. 결국 부당한 공소 제기에 대한 통제 장치는 법원의 판결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앞서 보았듯 무죄판결이 근본적인 치유책은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검찰조직 스스로 최소한의 양식을 회복하길 바랄 수도 있지만 그 길 또한 요원해 보인다. 검찰의 한 부장검사급 간부는 미네르바 무죄판결 뒤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주변에서 다들 해당 판사 욕을 하며 ‘어떻게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검찰 내부 분위기가 그런 정도니, 생각이 조금 다르더라도 말을 꺼낼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임채진 검찰총장도 4월22일 일선 검찰청 차장급 간부 연수 현장을 찾아 ‘미네르바 판결’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미네르바 사건과 정연주 전 사장 사건, 〈PD수첩〉수사 등을 지켜본 김기창 고려대 교수(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몇 년간 검찰이 정의의 수호자로 환영받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검찰이 잘해서가 아니라 당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상대적으로 (검찰에 대한 개입을) 절제해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권력의 눈치를 보고, 그 앞에서 엎드리고, 먼저 가서 물고 하던 검찰의 체질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검찰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모두 착시현상이었다.”



김경한 법무장관은 점쟁이?
원론적 언급이 그대로 현실로


김경한 법무부 장관. 사진 한겨레 강재훈 기자

김경한 법무부 장관. 사진 한겨레 강재훈 기자

대형 사건의 검찰 수사는 예측이 어렵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해 수의 입은 모습을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라는 식으로 섣부른 단정을 하다 보면, 뒤통수 얻어맞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 수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점쟁이’가 등장했다. 바로 김경한(사진) 법무부 장관이다. 그냥 내뱉는 듯한 그의 이야기는 그대로 현실이 되곤 한다. ‘미네르바 수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1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미네르바 수사를 촉구하는 질의가 나오자 그는 “내용이 범죄의 구성 요건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범죄가 된다면 수사를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언급이었지만, 왠지 그 이상의 메시지를 담은 듯한 발언이었다. 결국 한 달여 뒤 ‘미네르바’는 검찰에 구속됐다.
“경찰관이 법 집행 과정에서 다소 상대방에게 물리적인 피해가 간다 하더라도 정당한 공무 집행이면 면책하도록 하겠다.” 2008년 9월 한나라당 연구모임 ‘국민통합포럼’ 초청토론에서 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넉 달 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망루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과 진압 경찰관 등 6명이 숨진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 경찰이 제대로 된 안전 조처도 없이 진압에 나섰고 철거용역 업체와 합동작전을 펼친 사실까지 드러났지만,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는 ‘점쟁이 김씨’의 점괘와 정확히 일치했다.
김 장관의 신통력이 드러난 경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를 “황당무계한 괴담으로 시작된 집회”라고 예언해 1천여 명을 형사처벌하도록 했으며, 조·중·동 광고주 불매 운동에 대해서는 직접 수사 지시를 내리는 ‘모범’을 보였다.
이런 신통력 때문일까. 김 장관은 청와대에서 가장 신뢰하는 장관이 됐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검찰은 6년 전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쌓았던 ‘정의의 사도’ 이미지를 잃어버렸다. 문화방송 〈PD수첩〉수사와 관련해 수뇌부와 이견을 보이던 주무 부장검사 같은 ‘불순물’은 조직을 떠나야 했고, 검찰은 공안 논리로 똘똘 뭉친 ‘청정구역’이 됐다.
어쨌든 2009년에도 ‘점쟁이 김씨’의 예언은 계속되고 있다. 4월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그는 “권양숙 여사를 11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지만 경우에 따라 (피의자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참고인”이라고 거듭 강조한 수사팀의 발언과는 확연히 다른 기류였다. 그러나 같은 날 김 장관은 그림 로비 의혹을 받고 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리고 범죄 혐의를 발견할 수 없다”며 감쌌다. “한 청장에게서 그림을 상납받았다”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 부인의 증언은 ‘점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른 때 곧잘 말하던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발언도 없었다.
‘점쟁이 김씨’가 또 한 번의 예언을 한 만큼, 이제 검찰의 수사 결과나 조용히 지켜볼 일이다.
김태규 기자 한겨레 편집2팀 dokbul@hani.co.kr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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