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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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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20대-SKY-강남 출신

23개 로스쿨 합격생 종합 실태보고서…
여러 분야의 경험 많은 법조인 양성 취지와 동떨어져, 서울 출신의 지방 진출 뚜렷해
등록 2009-02-26 06:29 수정 2020-05-02 19:25
로스쿨 합격생 그들은 누구인가? 로스쿨이 설치된 전국 25개 대학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고려대 법대의 한 강의실 모습.

로스쿨 합격생 그들은 누구인가? 로스쿨이 설치된 전국 25개 대학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고려대 법대의 한 강의실 모습.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법률가를 길러내는 틀을 바꿔보자며 새로 도입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곧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로스쿨을 설치한 전국 25개 대학은 지난 1월28일부로 2천 명의 신입생 선발을 사실상 마무리한 뒤, 예비학교를 여는 등 3월 초 개원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에 입학하는 이들은 3년 뒤면 로스쿨 1기 졸업생이 될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다양한 법조 인재 양성’을 기치로 내걸었던 로스쿨에는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입학했는가? 대학은 본래 취지에 맞는 선발 과정을 거쳤는가? 은 한 달여 동안 로스쿨 1기생들의 ‘정체’를 추적했다. 이를 위해 전국 25개 로스쿨 전체를 상대로 입학생들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로스쿨 응시생들과 법학 교수 등도 취재했다. 대학들에 공개를 청구한 정보 목록에는 로스쿨 입학생들의 성·나이별 분포는 물론 주소지·출신대학·전공별 분포, 장학금 정책 등이 망라됐다. 대다수 대학들은 정보를 내놓기 꺼렸고, 대학마다 내놓는 자료의 수준도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대학 당국과의 오랜 밀고 당기기 끝에 적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첫 ‘로스쿨 합격생 종합 실태보고서’를 만들었다. 편집자

최근 여성들의 활발한 진출이 가장 눈에 띄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법조계다. 여성 판·검사 임용자가 남성보다 많다는 것은, 이제 별다른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면 로스쿨 입학생들의 성비는 어떨까? 25개 대학 가운데 인하대와 건국대를 제외한 23개 대학이 공개한 남녀 비율 자료를 보면, 남성이 1149명으로 60.2%를, 여성은 761명으로 39.8%를 차지했다. 이는 공교롭게도 지난해 사법시험 합격자 남녀 비율(60.9% 대 39.1%)과 거의 비슷한 수치다. 사법시험과 로스쿨 지원에서 남녀별 선호도 차이는 없었던 셈이다.

로스쿨은 KTX?
로스쿨 등록생 성별 비율/ 사법연수원생 성별 비율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로스쿨 등록생 성별 비율/ 사법연수원생 성별 비율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대학별로는, 여성을 100% 선발한 이화여대를 제외하고는 한국외국어대(56%)와 연세대(50.8%)가 ‘유이’하게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이와 반대로 한양대(78%)와 아주대(76%), 전북대(75%), 경북대(74.2%)에서는 남성이 합격자의 4분의 3가량을 차지했다.

주소지 정보를 공개한 18개 로스쿨 자료를 보면, 우선 서울 출신들의 지방 로스쿨 대거 입학 현상이 뚜렷했다. 지방에 있는 로스쿨 대부분에서 수도권 거주자의 비율이 절반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북 익산에 위치한 원광대는 등록생 가운데 서울·인천·경기에 주소지를 둔 비율이 무려 86.7%(60명 중 52명)였다. 익산이 주소지인 경우는 3명에 불과했고, 전북 지역으로 그 범위를 넓혀도 전체 수는 4명에 불과했다. 또 충남대와 강원대 등 상대적으로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는 로스쿨도 수도권 거주자 비율이 70%를 뛰어넘는 등 외지인 강세가 뚜렷했다.

이는 로스쿨들이 다른 기준을 감안하지 않은 채 우수한 학생들만을 우선적으로 뽑은 결과로 보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역별 거점 대학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지역안배 정책이 결과적으로 유명무실해졌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서는 각 지역에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 지역의 한 로스쿨 합격생은 “지방의 어느 도에서 예산을 지원해 로스쿨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는데, (지방 출신 합격자가 적자) 도의회가 이 안을 부결해 합격생들 사이에서 한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다”며 “고향이 그쪽도 아니고 그곳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어서 어차피 졸업 뒤 서울로 갈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굳이 장학금까지 줘가며 교육할 이유는 없는 게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로스쿨에 관심을 많이 가진 이들은 로스쿨이 고속철도(KTX)와 비슷한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KTX가 만들어지자 지역과 서울의 거리를 좁혀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는 반대 효과가 나타났다. KTX가 없던 시절엔 지역에 머물러 살던 사람들이 KTX가 생기면서 서울 집에서 통근하기 시작했고 지방에서 서울로 쇼핑 원정을 떠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 로스쿨이 지역 법조인을 길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서울 학생들을 잠깐 불러 장학금을 대주며 공부만 시켜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합격생 가운데 시·군·구 주소지별로는 서울 관악구 거주자가 가장 많았다. 이는 관악구에 신림동 고시촌과 서울대가 있다는 지역적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구별 주소지 통계에서 또 다른 특이점은, 강남구와 서초구 등 강남 지역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서울 지역 로스쿨 가운데 주소지 정보를 공개한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 7개 대학(530명)의 자료를 보면, 관악구가 72명(13.6%)으로 단일 구로는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강남구·서초구·송파구가 각각 59명·45명·23명(총 24%)으로 그 뒤를 이었다. 서울 지역 로스쿨 합격생 넷 중 한 명은 ‘강남 사람’인 것이다.

로스쿨 등록생 주소지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로스쿨 등록생 주소지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관악구 13%, 강남3구 24%

서울 지역의 한 사립대 로스쿨 입학업무 담당 직원은 “정보공개 청구를 받고 주소지를 정리해봤더니 강남·서초·관악구가 눈에 띄게 많아 깜짝 놀랐다. 관악구야 그렇다 쳐도, 강남 지역이 생각 외로 너무 많아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강남 편중 현상이 비단 7개 학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구로구와 영등포구도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더 많은 편”이라며 “서울지하철 2호선 남쪽 라인을 따라 로스쿨 합격자가 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지방 대학에서도 상대적으로 비율은 낮았지만, 강남 거주자들의 약진은 눈에 띄었다. 구별 주소지 정보를 공개한 지방 7개 대학(510명) 로스쿨 등록생 현황을 보면, 서울 관악구 거주자가 46명(9%)이었으며, 강남·서초·송파 거주자가 각각 32명·19명·14명(총 10.8%)이었다.

출신대학 정보는 모두 19곳(1510명)이 공개했는데, 그 결과는 주소지 분포와 마찬가지로 수도권 대학 출신들의 지방 로스쿨 진출 현상이 뚜렷했다. 거의 모든 지방 로스쿨에서 합격생의 3분의 2 이상이 수도권 대학 출신이었다. 로스쿨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학교는 서울대(381명·25.2%), 고려대(218명·14.4%), 연세대(206명·13.6%)순이었다. 기존 사법시험 합격자순과 똑같다. 이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들이 지방 로스쿨을 점령했다’는 항간의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님을 보여준다.

로스쿨 합격생 가운데 SKY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사법시험 합격자 가운데 SKY가 차지하는 비율과 거의 비슷했다. 지난해 사법시험 합격자의 출신학교별 비율은 서울대 25.7%, 고려대 17.3%, 연세대가 10.9%순이었다. 올해 로스쿨 합격자의 SKY 출신 비율(53.2%)은 지난해 SKY 출신 사법시험 합격자 비율(53.8%)과 거의 비슷한 수치다. 올해 1기 로스쿨에서 기존 사시합격자보다 2배 가량 많은 신입생을 뽑았지만, SKY의 독과점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로스쿨 등록생 출신대학 현황/ 사법연수원생 출신대학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로스쿨 등록생 출신대학 현황/ 사법연수원생 출신대학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 20대 집중 가장 뚜렷

더구나 로스쿨에 많은 합격생을 배출한 대학일수록 해당 대학의 로스쿨 인원도 많이 배정받았다. 이른바 ‘주요 대학’들이 자체 로스쿨 졸업생도 많이 배출하고 다른 대학 로스쿨에도 합격생을 많이 냄으로써, 자칫 우리 사회의 대학 서열화와 학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방 국립대 법대의 한 교수는 “지금까지는 (사법시험 합격자 수에서) 랭킹이 좀 떨어지는 대학을 나와도 사법시험 등수가 괜찮으면 실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로스쿨 체제 아래서는 어디 로스쿨을 나왔느냐로 실력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며 “대학 간 서열화가 더욱더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주요 대학 로스쿨 출신들이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김갑배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는 “로스쿨 체제를 제대로 살리려면 서울대나 고려대, 연세대가 로스쿨로 전환하지 않고 법대 학부를 유지했어야 한다”며 “이들 대학이 전국 각지의 로스쿨에 신입생을 들여보내는 것으로 만족했더라면 기존 대학의 서열화 구도에 균열을 주고 자신들의 존재 가치도 더 높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로스쿨 학교별 등록금· 장학금 내역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로스쿨 학교별 등록금· 장학금 내역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출신학교 통계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고려대 출신들이 유일하게 연세대 로스쿨에는 한 명도 입학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세대 법대의 한 교수는 “공교롭게도 그렇게 됐다”며 “연세대와 고려대가 같은 ‘나군’에 있어 고려대 출신 응시자가 적었다”며 “아마도 고려대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은 모교에 지원하고, 좀 부족한 학생들은 다른 사립대나 지방 로스쿨에 지원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려대 로스쿨에서는 연세대 출신을 5명 뽑았다.

22개 대학(1760명)이 공개한 등록생들의 나이 정보를 보면, 20대가 1133명으로 64.4%를 차지했다. 원서 접수와 선발이 지난해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선발 당시의 20대 합격생 비율은 70%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30대 이상은 624명에 불과했는데, 그나마도 30~32살이 절반 이상(342명)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로스쿨들이 대학을 갓 졸업하거나 약간의 사회 경력이 있는 이들을 주로 선발하고, 30대 이상의 다양한 사회 경력을 가진 사람들은 들러리 세우듯이 아주 적게 뽑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다양한 직업과 경력을 가진 이들을 뽑아 법조인으로 양성하자는 애초 로스쿨의 취지를, 로스쿨 스스로 무색하게 만든 것이다.

이같은 흐름은 특히 서울 지역 대학들, 그 가운데서도 서울대가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서울대 로스쿨 등록생들의 평균 나이는 25.7살로 전체 로스쿨 가운데 가장 낮았다. 서울대 등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많다. 로스쿨 정원을 100명 이상 할당받은 서울 지역의 한 사립대 법대 교수는 “법학적성시험 점수를 보니, 역시나 시험은 철저하게 나이순이란 것이 느껴지더라”며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마당에 로스쿨들로서는 합격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우선 뽑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전남대가 30대 후반 이상을 10% 선발하는 등 지방 로스쿨들은 애초 취지를 좀더 살렸지만 이들도 평균 연령은 대부분 30살 이내였다.

로스쿨 등록생들의 나이 분포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로스쿨 등록생들의 나이 분포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법시험은 음흉하고 로스쿨은 뻔뻔하다

23개 대학(1910명)이 공개한 전공 정보를 분석한 결과, 기존에 법학을 공부한 이들의 비율이 높았다. 고려대(54%), 경희대(50%), 이화여대(48%), 서강대(45%) 등 서울 지역의 주요 사립대들에서 높은 수치를 보였고, 서울대·연세대·한양대·중앙대 등도 30% 넘는 수준을 유지했다. 이 또한 20대 위주의 선발과 마찬가지로, 변호사시험을 염두에 둔 조처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아무래도 학부 시절 법학을 공부한 이들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법시험·로스쿨 합격생 배출 1·2위 학교가 나란히 나이와 전공에서 ‘꼼수’를 쓴 셈이다.

이에 대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기획추진단장으로 로스쿨 도입을 주도했던 김선수 변호사는 “(주요 로스쿨들의) 법학 전공자 비율이 높은 것은 장기적으로 해당 대학의 법학부가 없어지면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현재 자신들이 가르친 제자들이 대거 로스쿨에 응시한 만큼 어느 정도 합격시켜줄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 자교 법학부가 사라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개추위에 참여했던 또 다른 인사는 “로스쿨을 시작한 가장 핵심적인 취지가 ‘법만 공부한 법조인 대신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법조인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라며 “(나이·지역 등)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전공의 다양성만큼은 꼭 대학들이 확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쿨 등록생 전공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로스쿨 등록생 전공 현황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획일적인 선발에서 탈피하고 다양한 교육을 하자는 취지와 달리 로스쿨 합격생들에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편중’이 존재한다. 그 편향은 ‘서울(강남) 출신·SKY 졸업·20대·법학 전공자 과다’로 정리될 수 있다. 이는 현행 사법시험 아래서 뽑히는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분포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통계만을 가지고 앞으로 로스쿨의 전망을 쉽사리 비관적으로 파악할 일은 아니다. 적어도 법조문·판례를 빨리 많이 외우는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을 뽑고, 또 사법연수원에서 똑같은 일을 2년 동안 반복하는 지금의 법조인 양성 제도보다는 나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로스쿨이 어떻게 운용될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말과도 통한다. 결국 제대로 로스쿨을 운용하기 위해 기존 법조인들과 대학교수들,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발언하는 대신 솔직한 자세로 공론의 장을 열 필요가 있다.

논의는 어디서부터 시작돼야 할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가장 큰 로스쿨 카페 ‘서로돕는로스쿨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는 신민영(31)씨는 “사법시험은 음흉하고 로스쿨은 뻔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로스쿨 논쟁 시작해야
로스쿨 합격생들의 출신학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주요 대학’ 출신들의 약진이 뚜렷했다. 이화여대 로스쿨 도서관.

로스쿨 합격생들의 출신학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주요 대학’ 출신들의 약진이 뚜렷했다. 이화여대 로스쿨 도서관.

“10여 년 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는데, 과 학생들 사진과 집 전화번호가 담긴 조그만 수첩을 나눠줬다. 가짜 대학생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데, 전화번호를 살펴보니 전화번호 첫 자리가 (강남 지역을 뜻하는) 5로 시작되는 애들은 부지기수인데 (강북 쪽을 뜻하는) 9로 시작하는 애는 수백 명 동기생 가운데 딱 2명이었다. 이미 사법시험으로 가는 메인 통로는 기득권층이 장악한 지 오래란 말인데, 이런 사실은 외면한 채 로스쿨 욕만 해대는 사람들은 음흉한 것 아닌가.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여름 로스쿨 스터디 멤버들 7~8명이 모여 뒤풀이를 했는데, 시간이 늦어져 여학생 3명의 부모님이 직접 데리러 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후진 차가 그랜저더라. 상황이 이런데, 사법시험 제도는 기득권층만을 위한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뻔뻔한 것 아닌가.”

결국 ‘뻔뻔한 로스쿨’로 흘러갈지, ‘착한 로스쿨’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로스쿨 도입 당시 벌어졌던 뜨거운 사회적 논쟁이 또 다른 차원에서 다시 필요해지는 이유다.




장학금 논란
다른 학과는 핫바지냐



로스쿨이 기존 법과대학과 가장 다른 점은 대학원이라는 점이다. 각 학문 영역에서 학부를 마친 학생들만이 입학할 수 있다. 따라서 로스쿨 입학생들이 학부에서 전공한 각 학문은 로스쿨의 다양성을 보장하며 각 분야의 법률 전문가를 배출하는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과잉’을 우려한다. 의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뒤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둔 수험생들이 생명공학부 등에 대거 몰리면서 커트라인이 크게 높아졌듯, 일부 학부 과정이 로스쿨에 가기 위한 우회로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학문 분야의 인재들이 로스쿨로 몰리게 된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다른 학문 전공자들을 유입시켜 다양한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것이 로스쿨 도입 취지인 만큼 이런 점은 어느 정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시장원리와 개인들의 합리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로스쿨과 다른 학문 분야들 사이의 갈등이 일고 있다. 바로 돈 문제다. 대학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로스쿨 유치를 위해 법대 건물과 전용 도서관 등을 새로 짓고 교수-학생 비율 확보를 위해 법학 교수를 대거 채용하느라 수십억~수백억원씩을 사용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대학들이 로스쿨을 위해 이런 큰 투자를 하기까지는, 다른 학과들의 암묵적인 희생이 있었다. 문제는 이런 희생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비싼 학비로 인한 저소득층 입학생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로스쿨들은 평균 40%의 장학금 지급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 재원은 당분간 세금 또는 일반 대학·대학원생들이 낸 등록금에서 충당될 수밖에 없다. 결국 다른 학문 분야로 갈 재원을 로스쿨이 대거 빨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상당수 법대 교수들은 “몇몇 사립대들은 적자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거나 “다른 단과대 교수·학생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라고 전했다.
제도적 해결책 모색이 어렵지만은 않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미국 로스쿨은 우리나라 같은 장학금이 없다. 순수학문도 아닌데 돈을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라며 “우리나라도 장학금을 학교가 부담할 게 아니라 그 학교 출신 변호사들이 부담하는 등 비법학과 학생들에게 차별이나 피해가 안 가는 방법으로 운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1학년 과정을 마친 뒤 미리 로펌과 계약을 맺어 장학금을 받고 나중에 그 로펌에서 일하게 하거나, 졸업 뒤 공익 분야에 근무하면서 학교나 사회에 환원할 것을 전제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글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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