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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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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닦는 포항 상수도 광역화

찬찬히 뜯어보면 둘 사이의 아귀 들어맞아… 여유 있던 포항이 2년 만에 ‘물 부족’ 도시가 되는 이유는
등록 2009-02-12 06:08 수정 2020-05-02 19:25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내 경선 때인 2007년 6월 부산 대저동 낙동강 둔치를 방문해 삽으로 흙을 떠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흙이 오염됐다며 운하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이후 이 흙은 자연상태의 개흙(갯벌)으로 드러났다. 연합 오수희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내 경선 때인 2007년 6월 부산 대저동 낙동강 둔치를 방문해 삽으로 흙을 떠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흙이 오염됐다며 운하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이후 이 흙은 자연상태의 개흙(갯벌)으로 드러났다. 연합 오수희

‘(상수도 민영화+광역화)×4대강 정비사업=한반도 대운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자신의 대표 공약인 대운하를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지만, 강과 물을 관리하겠다며 정부가 내놓는 계획 곳곳에선 ‘삽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특히 ‘한반도 대운하’의 당초 모델이던 경부운하 구간 낙동강 주변 지역에선 상수도 민영화와 상수원 이전에 점점 속도를 내고 있다. 상수도 민영화에서 쉽게 운하가 연상되지는 않지만, 두 사업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마치 퍼즐 조각처럼 아귀가 들어맞는다.

처음부터 ‘포항권’을 찍었다

지난해 4월 행정안전부는 경북 포항과 경주에 내린 ‘지방공기업 경영개선 명령’에서 “1년 내 상수도 전문기관 위탁 실시”를 요구했다. 상수도 사업과 관련한 경영개선 명령 가운데 정부가 구체적으로 ‘민간위탁’ 명령을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이어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에 집중돼 있던 5월29일엔 164개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는 지방 상수도를 3~15개 권역으로 광역화해 전문기관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상수도 사업의 계속된 적자와 전문인력 부족으로 관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 무렵, 환경부는 ‘지방상수도 통합운영 시범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상수도 사업을 26개 권역으로 광역화해 관리를 민간에 위탁할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시범사업을 벌이겠다는 한 것이다. 2015년까지 모두 6천억원을 쏟아부어 지자체 간 연결관망을 신설하고, 노후 수도관을 개량하겠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시범사업 참여를 검토했고, 지난해 12월 경북 경주·울진·영덕·영천 등과 함께 포항권역으로 묶여 대상 지역으로 선정됐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앞선 지난해 5월20일 환경부가 작성한 ‘통합관리권역 효과분석(포항권역)’이란 회의 자료를 보면, “시범지역인 포항권역을 대상으로 통합관리권역 효과분석(안) 수립”이란 대목이 나온다. 포항권이 미리 낙점돼 있었던 셈이다. 이를 두고 환경부 물산업육성과는 “행안부에서 경영개선 명령을 받은 포항시 쪽이 먼저 찾아와 환경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해명했다. 반면 포항시는 “경영개선 명령의 세부이행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환경부가 통합운영 방안을 제시해왔다”고 밝혔다.

양쪽의 엇갈리는 엇갈리는 주장에 대해 강호철 ‘포항시 상수도 민간위탁 반대·물 공공성 확대를 위한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포항권을 찍어 상수도를 광역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추정했다. 무슨 말일까?

포항권은 경북 급수 인구 230만 명 가운데 40%가 넘는 90만 명이 사는 지역으로, 경북지역 하천 취수량의 41%, 임하·안동댐 등 댐 6곳에서 생산하는 물의 99.8%를 사용한다. 이 곳의 상수도를 광역화·민영화하면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관리·운영하던 지방상수도 취·정수장은 폐쇄되고, 한국수자원공사(수공)의 광역상수도 취·정수장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취·정수장 이전은 운하를 추진할 경우 가장 돈이 많이 들고 골치 아픈 사업 가운데 하나다. 지자체들의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리 상수도를 광역화·민영화해 취·정수장 이전 문제를 일괄적으로 정리한다면 정부로선 운하의 ‘걸림돌’ 하나를 손쉽게 해치우는 셈이 된다.

낙동강 수계 민영화 관계도

낙동강 수계 민영화 관계도

경부운하를 추진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인식되고 있는 낙동강 정비사업을 이에 겹쳐보면, ‘운하 퍼즐’은 좀더 선명해진다. 안동 임하댐은 포항 상수도 사용량의 53%를 공급하는 주요한 상수원인데, 이 주변에선 최근 하도 정비를 비롯한 낙동강 정비사업이 시작됐다. 강바닥을 뒤엎는 강 정비사업은 흙탕물과 각종 부유물을 발생시켜 상수원 수질 악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 결국 포항 취수원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 때문에 포항을 상수도 통합운영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강 정비사업으로 발생할 취수원 이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었냐는 의심을 받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환경부의 상수도 공급 계획에서 드러난다. 환경부의 계획은 2002년의 ‘급수체계 조정계획’에서 지난해 ‘상수도 통합운영 시범사업’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그 내용과 목적이 크게 달라졌다. 애초 급수체계 조정계획의 핵심은 울진군의 자체 지방상수도 개발이었다. 하지만 시범사업에선 영천시의 하루 물 여유량 6만2천t을 포항에 공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천은 급수체계 조정계획에선 대구권으로 분류됐다가, 지난해 중순 갑자기 포항권으로 변경됐다.

2006년 급수체계 조정계획 자료에도 2010년까지 하루 2만8천t 이상, 2020년에는 5만1800t가량의 물 공급 여유량이 발생하는 것으로 돼있다. 그런데 갑자기 포항에 물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영천의 물을 끌어오도록 계획을 바꾼 것이다. 이는 취수원 이전 말고는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즉, 환경부의 상수도 공급 계획 변경은 하도 정비를 포함한 안동의 낙동강 정비사업으로 포항의 취수원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고려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녹색뉴딜’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인 중소 규모 댐 건설 계획에 대체 상수원으로 활용이 가능한 포항 주변의 화북·부황·성덕댐이 포함돼 있다는 점도 이런 의심을 거두지 못하게 한다. 한지원 ‘물 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사무국장은 “현재 시범사업 내용은 경부운하 혹은 낙동강 정비계획을 미리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운하를 건설하면 낙동강의 기존 취수원은 모두 이전해야 하는데, 경북 지역 댐에서 생산하는 물 대부분을 사용하는 포항권은 운하를 추진하기 위해 취수원 이전이 가장 시급한 곳”이라는 얘기다.

현재 환경부의 상수도 통합운영 시범사업 내용에서 ‘민간위탁’이라는 표현은 빠졌다. 상수도 민영화를 명문화한 ‘물산업지원법안’이 촛불 정국에서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으로 보인다. 포항시도 지금은 “환경부의 상수도 광역화 타당성 검토 용역 결과가 나오는 올해 12월이 돼야 민간위탁을 할지 안 할지 결정할 수 있다. 그 결정도 시의회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가능하다”며 민영화 추진에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국공무원노조 포항지부 김일우 부위원장은 “시가 원론적인 답변만 거듭하고 있지만, 결국 상수도 민영화 의지를 가진 정부에 끌려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부산-진주 물싸움도 운하 포석의 결과

최근 경남 진주 남강댐 물을 부산으로 공급하는 문제를 놓고 두 지자체가 갈등을 벌이는 것도 본질은 운하 문제에 가까워 보인다. 부산은 물 생산량의 90%를 낙동강에서 가져오는데, 예전부터 수질이 낮다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국토해양부는 낙동강을 대체할 취수원으로 진주 남강댐을 들이댔다. 남강댐은 현재 진주·통영·거제·고성·사천 등으로 물을 공급하는 데도 부족해, 일부 지역에선 제한급수까지 이뤄지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국토해양부는 남강댐 수위를 현재의 41m에서 4m 높여 부산에 하루 107만t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또 수자원공사는 1조2천억원을 들여 남강댐에서 부산까지 100km 구간에 상수도 관로를 매설하겠다고 밝혔다. 한지원 사무국장은 “운하 혹은 하도정비를 하면서 강바닥을 파면 수질이 더욱 악화될 텐데 이때를 대비해 미리 부산 쪽의 대체 상수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운하는 사실상 포항권에서의 낙동강 중·상류 계획과 남강권에서의 낙동강 중·하류 계획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이라며 “곧 부산과 대구에서도 운하 사업으로 가기 위한 상수원 이전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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