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 농성 진압 과정에서 5명(나중에 6명으로 수정)이 숨졌다.” 1월20일 아침을 깨운 뉴스는 황당함 그 자체였다. 이런 유형의 사건·사고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황당함은 곧 엄청난 분노와 좌절로 바뀌었다. 당시 현장을 생중계한 인터넷 방송을 접한 이들은, 어슴푸레한 하늘을 수놓은 검은 연기 속 아비규환과도 같은 화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고 전날부터 밤새 현장을 지키며 아비규환 현장을 중계한 진보신당 인터넷방송 촬영팀도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사고 발생 9일 뒤인 1월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세든 사무실에서 만난 이명선(33) 리포터, 서승목(28) PD, 이윤성(37) 엔지니어, 박성훈(36) PD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며 안타까움부터 털어놨다.
<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서승목 PD가 사고 전날인 1월19일 오후 1시께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철거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쏜다는 제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1시간쯤 뒤 박성훈 PD와 이윤성 엔지니어가 도착했고, 나는 저녁 9시께 합류했다. 나와 서 PD가 짝을 이뤄 한강로 쪽에서 점거·진압 현장을 찍었고, 박 PD는 따로 움직이면서 우리 반대편에서 (나중에 검찰에 제출된) 미공개 화면을 찍었다.
<font color="#006699">-초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font><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1월19일 오후 2시부터 현장을 찍었는데, 점거된 건물 2층에서 용역 10여 명이 불을 지펴 연기를 내는 것 말고는 별 상황이 없었다. 일종의 대치 상태라고나 할까. 그 상황에서는 ‘점거 첫날인데 설마 치기야(진압하기야) 하겠어’라는 생각에, 한때 철수할 생각도 했다.
<font color="#C21A8D">이윤성=</font> 초기에 경찰이 전철련 회원과 기자들이 점거 건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지할 뿐 일반 행인들 통행은 허용했다. 극렬한 대치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농성하는 사람들이 건물을 자꾸 드나드는 용역들을 상대로 돌이나 골프공을 날렸고, 2층 돌출된 부분의 유리 지붕(용역들이 이를 통해 윗쪽을 살펴봤다고 함)을 깨기 위해 화염병을 떨어뜨리긴 했다. 하지만 다른 쪽에 던지지는 않았기에, 그외 다른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font color="#006699"> -상황이 언제부터 바뀌었나.</font><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19일 밤 10시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10시께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주재로 회의가 열렸는데 새벽 4시에 치기로 했다”는 말들이 돌았다. 현장에 있던 한 경찰도 “10시 넘으면 진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뭔가 있긴 있나 보다’라는 생각과 ‘그래도 설마’라는 생각이 함께 들더라. 조금 있다가 진압에 동원될 대형 크레인이 주변에 와 있다는 얘기도 들렸는데, 나중에 보니 사실이었다.
<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본격적인 움직임은 1월20일 새벽 1시께부터 시작됐다. 점거된 건물을 보면 4층과 옥상은 철거민이 지키고 있었고, 2층엔 용역들이 있었다. 3층은 완충지대였다. 새벽 1시께부터 용역들이 2층에서 불을 크게 내더라. 연기가 위층으로 많이 올라갔다. 인근 주민들이 신고했는지 소방차가 출동했다. 그런데 소방차는 건물 가운데에 있는 복도 불만 끄고, 용역들이 있는 2층 사무실 공간의 불은 놔둔 채 철수하더라.
<font color="#C21A8D">이윤성=</font> 불을 다 끄지 않아 (소방당국에) 항의했는데 1시간쯤 뒤에 두 번째 불이 났다. 그래서 “함께 들어가 불 끄는 것을 촬영하겠다”고 했더니 소방서의 한 지휘관이 ‘그러라’고 했는데, 뒤늦게 다른 지휘관이 ‘안 된다’고 하더라.
<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새벽 4시께까지 불이 나고 끄길 3번 반복했는데 불씨를 남겨두는 일은 계속됐다. 그런데 갈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세 번째 불이 났을 때는 경찰관들이 긴장한 듯 아무도 말을 안 하더라. “왜 완전하게 불을 끄지 않냐”는 항의에 소방관들이 결국엔 “알았다. 같이 들어가 조사하겠다”며 경찰 쪽에 (들어가봐야겠다고) 얘기를 건넸는데, 경찰이 아예 대꾸도 안 했다.
<font color="#006699"> -경찰과 소방관의 호흡이 안 맞았나.</font><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세 번째 출동했을 때 소방관들에게 “건물 안 불씨는 왜 진압하지 않나. 계속 불을 지르지 않는가”라고 했더니 “(날이 추워 용역들이) 불을 쬐려 피운 불은 화재의 근원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세 차례 불이 난 뒤 새벽 4시30분께 살수차와 소방차가 일제히 건물 주변에 배치됐고, 용역들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경찰 차량과 크레인 차량 등도 움직이기 시작해 한강로에서 유턴해 건물 주변에 재배치됐는데, 그 과정에서 건물 옆에 일부러 잠시 서더라. 마치 ‘곧 작전이 시작된다. 각오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도 ‘아, 시작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새벽 4시께 소방관들을 따라 잠깐 건물로 들어갔는데, 용역들이 소방관들을 향해 욕을 했다. “꺼져”라고 소리치고.
<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용역들이 “니들이 올라오니까 기자들도 따라오잖아. 빨리 꺼져”라고 소리를 쳤다. 소방관들이 불쌍해 보이더라. 소방관들과 함께 건물 바깥으로 나왔는데, 한 소방관이 나한테 “저 사람들 어떤 사람들인지 알잖아”라며 달랬다. 대기하던 한 소방관은 팔자 타령도 했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체제인데, 제대로 살 수 있겠냐고. 또 의경이나 전경처럼 군대 대신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의무소방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한테 일을 시키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시골과 달리 서울 지역 소방서에 배치된 의무소방들은 다 있는 집안 자식들이어서 아무 일이나 시키다가 자칫하면 큰일 난다’며 하소연을 했다.
<font color="#006699">-진압이 임박한 상황에서 경찰이 다른 안전 조처는 취하지 않던가.</font><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매트리스를 한가득 실은 차량은 오갔는데 정작 매트리스는 깔지 않았다.
<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그쪽에서는 안 보였을 텐데, 내 쪽에서는 매트리스가 보였다. 매트리스가 건물 정문이 있는 북쪽 벽면 앞에 듬성듬성 몇 개 흩어져 놓여 있었다. 하지만 한강로 인도와 맞닿은 건물 서쪽 벽면 앞과 동쪽 벽면 앞, 주차장과 맞닿은 남쪽 벽면 앞에는 전혀 없었다.
<font color="#C21A8D">서승목=</font> 나도 북쪽 벽면 앞에 듬성듬성 있는 매트리스를 봤는데, 크기도 작았다. 사방 1m 정도. 그곳을 겨냥하고 뛰어내리라는 것인데, 웃기지 않나. 또 매트리스로 떨어지더라도, 죽지는 않겠지만 안 다칠 수가 없겠더라. 에어 매트도 아니고, 학교 체육 시간에 보던 매트와 같았다. 그나마도 왜 그렇게 듬성듬성 놨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나중에 불이 나서 망루가 무너지고 불을 피해 남쪽 벽에 있던 사람들이 떨어질 것 같으니까, 그제야 경찰이 허겁지겁 매트를 가져다 막 깔더라. 휴~.
<font color="#006699">-새벽 4시30분에 작전 준비가 다 됐다면 실제 진압에 들어간 6시까지는 뭘 한 건가.</font><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경찰 차량과 크레인 등이 점거 건물 주변에 섰다가 가고, 점거 건물과 가까운 한강로 횡단보도 쪽에 있던 경찰들이 빠지는 등 진압 작전이 시작될 분위기는 물씬 풍기면서도 실제 행동은 늦어졌다. 지휘관들이 있는 곳을 보니, “왜 이게 여기 있나” “왜 주차장(건물 남쪽 면)에 병력이 배치되지 않나” 등 시끄러운 말들이 오가더라. 진압에 들어갈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어 보였다. 한심한 생각에 우리끼리 “해가 뜨면 보는 눈도 많아서 작전에 못 들어갈 텐데”라며 얘기를 나누었다. 또 이상한 것이, 6시께 진압이 시작됐는데도 주변 차량을 전혀 통제하지 않더라. 지나가던 승용차들이 멈춰서고, 경찰들이 건물로 진입하고 위에서 화염병 던지는 모습을 운전자들이 쳐다보느라 사고가 날 뻔했다. 한강로에서 뒤따르던 차량이 급정거를 하기도 했고, 건물 가까이로 온 살수차를 향해 던진 화염병이 일반 승용차 근처에 떨어지기도 했다.
<font color="#006699">-경찰이 미숙한 것인가. 시위대의 폭력성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인가.</font><font color="#C21A8D">이윤성=</font> 둘 다인 것 같다. 경찰이 진입하고 화염병이 떨어지는데 시민과 차량 통제를 안 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았다.
매트리스 깔고 사다리차만 댔어도…<font color="#006699">-실제 작전은 어떻게 시작됐나.</font><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6시께부터 살수차 4대와 호스 2~3개에서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고, 특공대가 건물로 진입했다. 2층에 올라가서 모든 유리창을 깨고 정리한 뒤, 3층으로 올라가 3층 유리창을 깨고 정리하고, 또 위로 올라가고…. 6시30분~50분에 경찰특공대를 실은 컨테이너가 망루 옆으로 올려졌다.
<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처음엔 그렇게 정리되는 줄 알았다. 점거된 건물 북동쪽에 있던 5층 건물에 경찰 지휘부 일부와 용역들이 있었는데, 나도 전날 밤부터 그곳에 있었다. (내가) 검은 옷을 입은데다 인상도 험악한 편이어서 제지를 안 하더라. 진압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용역들이 “진압 작전이 잘된 것 같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경찰 지휘부도 거의 다 된 것으로 판단했는지 “이제 물 그만 쏘라”고 무전을 보내던데, 지휘 계통에 이상이 있는지 계속 물이 나갔다. 사실 나도 그때쯤 거의 종료가 된 것으로 알았다. 경찰특공대가 건물 전체를 점령했고, 한 특공대원은 망루 중간에 있는 구멍을 통해 고개를 내밀더라. 망루 꼭대기만 남은 상황이었는데, 그때 경찰이 ‘이제 나오라’고 권유만 했어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상황이 거의 정리돼가고 물줄기도 줄어드는데, 갑자기 망루에 불이 붙었다. 불이 나니까 내 옆에 있던 한 경찰이 “전문 데모꾼들이 불붙이고 도망간 것이다”라고 말하기에, (도망갔다니)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불을 피해 옥상 남쪽 벽으로 세 사람이 나와 있던데, 그때 사다리차만 댔어도 사람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방차도 많이 출동해 주변에 사다리차도 많았다. 망루에 불이 붙고 사람들이 피하는 모습이 다 보이는데, 왜 사다리차를 안 댔는지…. 불길이 장난이 아니니까 이쪽 경찰 지휘부도 난리가 났다. 우왕좌왕하면서 “수압 높이라”는 고함만 치더라.
<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망루에 불이 붙어 좀더 잘 보이는 쪽으로 카메라를 움직이는데, 누군가 “쟤들은 죽을 애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사람이 죽는다는 생각은 안 했다. 망루에서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사라져 ‘망루에서 탈출한 것일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불이 워낙 순식간에 번져서, 현장이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 카메라를 세우자마자 망루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심지어 당사자들이나 경찰들도 망루 안에 누가 얼마나 있는지, 화염병이 안에 얼마나 있는지 아무도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진압 작전이 진행된 것이다.
<font color="#006699">-이후 상황은.</font><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불이 꺼지고 건물 안에서 연행자 수십 명이 경찰에 의해 끌려나왔다. 한강로 쪽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 차량에 태워지기 직전 전철련 회원들과 농성자 가족들이 큰 목소리로 “(망루 안에) 몇이나 있었어?” “살았어? 죽었어?” “위원장은 어떻게 됐어?” 등 질문이 쏟아졌는데, 연행자들은 모두 멍한 표정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살아 있지만 죽은 듯한 표정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나중에 누가 울부짖듯이 “위원장도 죽었어. 죽었어. 다 죽었어”라고 말하더라.
<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불이 진화된 뒤 경찰이 수십 명을 한꺼번에 연행해 데리고 나오더라. 체포되는 대로 끌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작전 중 잡힌 농성자들을 건물 어딘가에 강제로 모아놓고 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데리고 나왔다는 말인데, 강제로 모여 있던 사람들 가운데 희생된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경찰이 이상하리마치 급박하게 주검들을 빼내왔다.
<font color="#C21A8D">이윤성=</font> 불이 꺼진 뒤 현장이 아무런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경찰이 주검 4구를 수습해 나오는 모습을 봤다. 그 주검들이 어디에 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망루 안에 있던 주검들이라면, 엿가락처럼 휜 망루 안에는 들어가기조차 힘들었을 텐데, 이해가 안 된다.
엿가락처럼 휜 망루에서 시신수습?<font color="#006699"> -전체적인 느낌은.</font><font color="#C21A8D">박성훈=</font> 앞서 말했듯이 너무 무리한 진압이었다. 농성자들의 폭력성을 강조하던데, 만약 옥상에서부터 시너를 흘려보내고 나중에 화염병을 던졌으면 계단으로 올라오던 특공대 전부가 화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농성자들이 사실 방어에 치중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모든 언론이 화재에만 주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화재 전부터 경찰들이 철거민을 자극한 것, 용역들의 협박과 위협에 철거민들이 “못 살겠다”며 하소연하던 것은 다루지 않더라. 경찰 작전이 시작된 20일 6시부터의 상황만 도식적으로 전달하는데, 사건 전체를 전달해야 한다. 전날 낮부터 강경 진압은 준비되고 있었고, 이미 새벽부터 전쟁 전야와도 같았다.
<font color="#006699">-이명선 리포터는 몇 년 전 ‘헤딩라인 뉴스’로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떨쳤는데, 이번 경험에서 감회가 깊겠다.</font><font color="#C21A8D">이명선=</font> 지금 ‘헤딩라인 뉴스’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용산참사의 당시 상황을 전체적으로 다룬 언론 보도가 하나도 없다. 우리가 말한 당시 전체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써달라.
글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용산참사’ 생중계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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