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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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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돼도 빼줄 테니 걱정 말라더군요”

전직 용역회사 직원이 털어놓은 철거판의 생리, “통제 안되는 현장… 일 빨리 끝낼 생각 뿐”
등록 2009-02-04 15:20 수정 2020-05-03 04:25
경찰이 용산 참사의 주연이었다면 철거 용역회사 직원들은 조연쯤에 해당되지 않을까. 지난 1월28일 밤 한 전직 용역회사 직원은 익명을 전제로 철거판 용역들의 생리에 대해 털어놨다. 그의 이야기를 독백 형식으로 지면에 옮긴다. 편집자

저는 지난해 한 철거 용역회사에서 팀장급으로 잠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경력도 일천하고 현장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입 열기가 조심스럽지만, 제가 직접 보거나 들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가감 없이 얘기해보겠습니다.

하루 교육 받고 투입, “잡음 안나게”
용역들의 세계에 대해 털어놓은 전직 철거용역 업체 직원은 신분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아, 뒷모습을 촬영했다.

용역들의 세계에 대해 털어놓은 전직 철거용역 업체 직원은 신분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아, 뒷모습을 촬영했다.

우선 제가 그 회사에서 일한 계기가 궁금하시겠죠. 누가 추천을 했는지, 회사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이러이러한 일을 하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말이죠. 이것도 팀장 스카우트라면 스카우트겠죠. 사실 처음엔 세콤이나 에스원 같은 회사인 줄 알고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출근하고 보니 철거용역을 주로 하는 곳이더군요.

회사에서 자주 만나고 어울리던 현장 용역들은 신체만 건강하면 아무나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어디에 규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동안 교육만 받으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교육이 제대로 된 교육일 리 없죠. 기본적으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설명을 한다는데, 다들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는 “때려도 걸리지만 마라. 사진 찍히면 우리만 죽는다”는 얘기만 듣는다고 말하더군요.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면 용역들이 처음부터 폭력으로 진압을 하려고 맘먹고 가지는 않습니다. 용역의 최대 목표는 충돌 없이 최대한 조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용역회사 오너나 저 같은 팀장급은 이런 쪽에 각별히 신경을 쓰지요. 철거민을 때리건 말건, 중요한 것은 잡음이 안 나게 하는 거라고 누차 강조하지요. 또 보통 용역들도 적개심을 가지고 출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면 바뀐다고 합니다. 일단 농성 당사자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할 테고, 그러면 당연히 충돌이 계속되고, 그러는 사이 용역들이 열받고 가끔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죠.

사실 엄격한 위계가 있는 경찰들도 시위 현장에서 흥분하면 통제가 안 된다고 하잖습니까. 사람들 때리고, 방패로 찍고…. 그런데 용역은 훨씬 더합니다. 우선은 아까 말한 대로 용역들은 팀별로 동원되는 만큼, 현장마다 지휘자가 다 다릅니다. 평소에도 한 지휘관 아래서 생활하고 현장에서도 그 지휘관의 통제를 받는 경찰들도 통제가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지휘자가 현장마다 바뀌는 용역들이 통제가 되고 적법 절차를 고려해 움직일 리 만무하죠. 빨리 일을 끝내고 일당 받고 집에 갈 생각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용산에서 펼쳐진 경찰들과의 합동 작전은 이례적인 것 같습니다. 용역 투입 24시간 전에 경찰서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 투입되는 것 자체로 경찰이 허락해준 일이라는 심리를 가지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용역이 경찰과 함께 움직이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철거민과 용역들이 충돌하면 모두 연행되기는 하지만, 처리 결과는 다르답니다. 주변 팀장들도 용역들에게 “경찰에 끌려가도 어떻게든 빼줄 테니 걱정은 마라. 대신 최대한 조심은 해야 한다”며 타이르곤 하더군요.

‘용산 합동 작전’은 이례적 모양새

그 용역회사를 그만둔 계기요? 사실 구청에 가서 ‘영업’을 뛸 때도 그렇고, 현장 진압 작전을 논의할 때도 그렇고 기존 상사들과 충돌이 많았습니다. 결국은 도저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죠. 고민 끝에 엄청 욕을 퍼붓고 “나는 죽어도 이런 일은 못하겠다”고 나와버렸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훨씬 고된데, 그래도 거기에서 나오긴 잘한 것 같습니다.

글· 사진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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