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합차가 달린다. 구불구불하고 포장도 되지 않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잘도 헤쳐나간다. 시간은 이미 아침 8시가 넘었지만 아직 동은 온전히 트지 않았다. 낮에 내릴 눈발을 예고하듯 하늘은 구름이 덮고 있다.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를 소망한다는 성탄절 전날. 경기 남양주시 마석가구공단 안 골목길에는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종종걸음을 옮겼다.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굽은 오르막길을 오르던 차가 멈춰섰다. “마히아, 안녕.” 차문이 열리자 아빠 필립(30·가명)의 가슴에 안겼던 마히아(3)가 승합차의 품으로 들어왔다. 아이들끼리 인사를 나눈다. 평소에는 더없는 장난꾸러기 쇼칼(5)도 졸린 눈을 비비며 마히아를 빤히 쳐다본다. 둘 다 부모가 방글라데시 사람이다. 하지만 인사는 한국말로 한다.
이렇게 공단을 돌며 8명의 아이들을 태우고서야 승합차는 공단 초입에 있는 ‘샬롬의 집’에 도착했다.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건물 3층에 영유아 보육실이 있다. 아이들은 많을 땐 15명까지 나왔다. 요즘엔 경기 불황의 여파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엄마들이 늘면서 집에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먹을 준비 됐나요?” 보육교사 가경숙(37)씨의 물음에 아이들은 “네네∼네네네”라고 답했다. 아이들은 오자마자 밥을 먹었다. 대부분 부모가 모두 공장에 나가 일을 하는 탓에 아침을 챙겨 먹일 틈이 없다. 하얀 쌀밥에 김치, 햄버그스테이크, 새우살, 양송이 수프, 과일 샐러드가 반찬으로 나왔다.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리던 마히아가 말했다. “선생님 김치 더 주세요.” 김치는 식판에 놓이기가 무섭게 다시 마히아의 입으로 들어갔다. 마히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와 오뎅이다. 자장면은 물론이고 해장국도 좋아한다.
식탁에 둘러앉은 아이들 생김새를 봐서는 그야말로 ‘다국적군’이다. 유리(9)와 쇼칼은 방글라데시에서 왔다. 그러나 랜델(3·필리핀)은 엄마·아빠의 나라에서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태어났다. 12∼24개월의 수헤나(네팔), 따신(방글라데시), 베티(인도), 키티(필리틴) 모두 서울 혹은 경기도가 고향이다. 마히아가 생애 첫 울음을 터뜨린 곳도 서울 망우리의 한 산부인과였다. 마히아가 엄마 아리엘(24·가명)의 뱃속에 있을 때 아리엘은 심한 입덧에 고생했다. 2007년 12월29일 아기를 낳은 뒤 방글라데시에 있는 친정 엄마와 통화하고 나서 마히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마히아는 태어난 지 나흘 만에 폐렴에 걸려 아흐레 동안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다. 병원비가 300만원이나 나왔다. 부모가 미등록 신분인 마히아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액수가 커졌다. 건강보험 대상이었다면 100만원도 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마히아는 그 뒤로도 툭하면 감기에 걸렸다.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약을 타는 데만 한 번에 2만원 안팎을 내야 했다. 그렇다고 마히아가 지역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다. 마히아는 한국에도 방글라데시에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 태생적인 ‘국제 미아’다.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꾸 뒤를 돌아보며 일을 하다마히아가 이렇게 된 건 물론 본인의 선택이 아니다. 아빠 필립의 삶의 여정을 따라오다 보니 이렇게 됐다. 필립은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오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분야를 전공했지만 졸업 뒤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스물한 살 되던 해까지 아버지의 감자 농장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한국에 가면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1999년 무작정 석 달짜리 비즈니스비자로 한국에 입국했다. 먼저 온 고향 사람을 통해 마석가구공단의 한 가구공장을 소개받았다. 톱질도 하고 도색일도 배웠다. 2002년 말에는 고향에서 사귀던 아리엘도 한국에 들어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3년 뒤, 어여쁜 딸 마히아를 얻었다.
네댓 평가량 되는 지하방에 살기 위해 다달이 20만원을 내고 물세와 전기세 등을 꼬박꼬박 내면서 세 식구가 먹고살려면 필립도 아리엘도 열심히 벌어야 한다. 방글라데시 음식 재료값은 현지보다 3배 비싸다. 필립이 한 달에 버는 130만원만 갖고는 살림살이하기에 빠듯하다. 하지만 아리엘은 감기에다 발목 통증이 겹쳐 며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월12일 마석가구공단에서 벌어진 토끼몰이식 단속만 아니었더라도 공장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있을지 모른다.
그날 오전 갑자기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과 경찰 등이 단속을 나왔다는 얘기가 들렸다. 공장 노동자 10명은 문을 꼭 걸어잠근 채 쥐 죽은 듯이 버텼다. 단속반원들이 “문 열어”라며 문을 쾅쾅 두들겼다. 자물쇠를 뜯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엘은 다른 이들과 함께 뒷문을 통해 빠져나간 뒤 근처 산으로 뛰었다. 그런데 산비탈을 오르던 중 1년 전 교통사고로 부러졌던 왼쪽 발목을 다시 삐끗하고 말았다. 고통 속에서 덤불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버텼다. 이날 단속에 걸려 한국을 떠나야 했던 110명을 생각하면, 잡히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그날 단속 이후 필립과 아리엘은 평소에도 뒤를 자꾸 쳐다보며 일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문을 꼭꼭 닫아놓고 일하는데도 그렇다. 다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인데, 며칠 전엔 필립이 일하는 공장 근처에서 다른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그만 전기톱에 손가락을 잘리고 말았다. 다친 노동자가 “단속 걱정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필립이 전했다.
어른만큼이나 아이들도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 마히아는 11월12일 전까지 보육실에서 함께 장난치고 싸우며 정든 친구 알리프(4)와 수빈(1)이를 그날 사건 이후 볼 수 없게 됐다. 외국으로 갔기 때문인데, 구체적으로 왜 그래야 했는지 마히아는 잘 모른다. 알리프는 그날 엄마가 단속당했다. 아빠는 용케 단속을 벗어났지만, 엄마는 방글라데시로 강제출국을 당해야 했다.
소방관 얼굴은 주황색, 고동색, 살구색…주변 사람들이 “엄마만 나가면 아이는 어떡하느냐”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사정해 알리프는 엄마와 함께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엄마가 한국인인 수빈이는 그날 미등록 신분이던 네팔 아빠가 잡혀갔다. 며칠 뒤 돌잔치를 하려고 뷔페식당까지 예약해놓았지만 그 사건으로 물거품이 됐다. ‘엄마’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을 먼저 시작할 만큼 아빠를 따랐던 수빈이다. 인천공항에서 아빠가 비행기를 타러 들어갈 때 수빈이는 계속 “아빠”를 부르며 울었다. 엄마 오은정(28)씨는 결국 수빈이를 12월 들어 네팔의 아빠에게 데려다줬다. 조만간 남편 머핸드로 까르끼(33)와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서 함께 일할 생각이지만 수빈이는 네팔의 친할아버지 손에 키울 작정이다. 혼혈아로 차별받으며 한국에서 키우느니 그런 문제에 관대한 네팔에서 키우는 게 낫겠다 싶어 양가의 허락도 받아냈다. 마히아가 수빈이를 다시 보기는 힘들게 된 것이다. “알리프랑 수빈이가 보고 싶냐”는 물음에 마히아는 큰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했다.
1년 넘게 보육실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교사 황수연(27)씨의 말이다. “1년3개월 전에도 유나(5·방글라데시)가 그런 식으로 엄마와 함께 강제출국한 뒤, 이번에는 둘이 한꺼번에 그렇게 떠나버려 한참 울었어요. 언제 또 단속 나올지 몰라 하루하루가 불안해요. 여기 사람들은 이젠 불법 쓰레기 단속차만 보고도 깜짝깜짝 놀라요. 아이들도 (불안한 상황이라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된장국에 밥 말아서 김치랑 먹고, 매운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 애들도 그냥 한국 사람이에요.”
밥을 먹고 난 뒤 아이들은 고양이 스케치에 색칠하는 공부를 했다. 지난 12월17일 같은 시간에는 소방관 그림으로 색칠 공부를 했는데, 마히아는 그날 소방관 아저씨의 얼굴을 주황색으로 칠했다. 쇼칼과 유리는 살구색(예전 살색)을 발랐고, 랜델은 고동색을 집어들었다. 아이들은 사람의 피부가 무슨 색인지 따로 정답이 없는 듯했다. 어른이 그걸 구별할 뿐이다. 오후가 되자 저소득층 한국 아이 셋이 보육실을 찾았다. 일종의 방과후 학교다. 저마다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어울려 놀지만, 생김새로 차별하는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코즈모폴리턴’으로서의 기초 교육을 받고 있었다.
병원 가기 무서워 병 키워마히아의 옆에 앉아 큰 소리로 선생님 말씀을 따라하는 쇼칼은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뒤 지난해 10월 아빠 줄롱(32·가명)을 따라 한국에 왔다. 관광비자로 들어왔으니 어차피 미등록 신분이다. 줄롱에게는 최근 고민거리가 생겼다. 쇼칼이 한쪽 귀가 계속 아프다고 해서 한 달 전 병원에 갔더니 중이염이라고 했다. 수술비를 물어보니 130만원이 넘었다. 역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탓이다. 약을 지어준 의사가 두 달 정도 지켜보다가 계속 아프면 수술하자고 했는데, 요즘 쇼칼이 귀가 다시 아프다고 징징댄다. 줄롱은 “수술비가 너무 비싸다”며 “쇼칼이 한국 온 뒤 방글라데시 말은 많이 까먹었다”고 말했다. 원래는 방글라데시 사람이었는데, 갈수록 한국 사람이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돌쟁이인 수헤나의 아빠 페레스(가명)도 얼마 전 기침을 심하게 하던 수헤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엑스레이 한 번 찍고는 11만원을 냈다며 “한 달에 110만원을 버는데 애한테 다 나가요”라고 말했다.
과다한 의료비용에 병원 가기를 주저하다 보면, 그냥 약만 먹이다가 결국 아이의 병을 키우는 경우도 일어난다. 쇼칼도 제때 치료를 받았으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모는 한글을 모르다 보니 신문도 읽지 못하고 인터넷에 접근할 수도 없다. 정보에 약하다. 아이들은 늘 취약함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불안한 신분은 그대로 아이들에게 대물림된다.
학교 다니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언제 단속당해 쫓겨날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다. 남양주시의 한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싼타(16)는 2002년 4월 한국에 왔다. 이듬해 9월 아빠가 강제출국을 당한 뒤 엄마와 동생 등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그해 초등학교 4학년에 입학했는데 진도를 따라갈 수 없어 1년 유급했다. “첫 학기에 주민등록등본을 떼오라고 해 당황했어요.” 아이들이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걸 갖고 장난 삼아 놀려서 속상했던 경험도 있다. 휴대전화도 한국 사람처럼 살 수 없는 싼타는 다른 미등록 이주노동자처럼 요금을 미리 내는 전화기를 사서 쓰고 있다.
싼타는 요즘 엄마와 다툼이 잦아졌다. 내년에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할지 한국에 남을지가 문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대요. 방글라데시에 가서 한국 체류 비자를 받아오려고 해도 (불법 체류 경력 때문에) 다시 한국에 못 들어올 가능성이 70%래요. 겁나요.” 방글라데시 국적을 가진 싼타도 어차피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일 뿐이다.
오후 6시가 되자 마히아를 비롯한 보육실 아이들은 다시 승합차의 품에 안겼다. 차는 다시 구불텅한 길을 달려 마히아를 집 앞에 내려놓았다. 따신도 수헤나도 엄마·아빠의 품으로 돌아갔다. 비좁고 벽에 곰팡이 자국이 역력한 방안 침대에 아리엘은 앉아 있었다. 그는 방글라데시에 가본 적이 없는 마히아가 드디어 방글라데시 음식을 싫어하기 시작했다고 불평했다. 방글라데시 음식 가운데 “달(국물 종류) 빼고는 잘 안 먹는다”고 했다.
아리엘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조금 돈 줘도 일해요. 한국 사람들은 돈 많이 줘도 일 안 해요. 공장 사장님들이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한국에 맨날 살고 싶어요. 마히아는 학교 가야 하는데, 마히아 10살 때 우리 잡았어요. (부모가 단속당하면) 그럼 마히아는 어떡해요.” 아리엘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마히아가 한국에서 태어나 3년 동안 자란 만큼 한국 사회가 받아들여주길 간절히 원했다.
“엄마, 나 나라 없어요?”“마히아, 한국에서 태어났잖아요. 한국에서 공부해야잖아요. 마히아 방글라 가도 방글라 사람 아니야. 한국에서도 한국 사람 아니에요. 마히아는 사람이 아니야. ‘어디 나라 사람이야?’ 물으면 ‘나라 없어요’ 해야 해요. 마히아가 나중에 ‘엄마, 나 나라 없어요?’ 물으면 그럼 난 어떡해요?”
마히아와 식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오는데, 얼마 전 한국에 왔다는 필립의 형이 양탄자를 깔아놓고 그 위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기도한다. 마히아도 한국에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알라에게 빌고 있는 듯했다. 마히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2009년 성탄절에 다시 볼 수 있을까?
[한겨레21 관련기사]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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