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위적으로 고환율(원화 약세) 정책을 폈다는 비판을 극구 부인해왔다. 하지만 시장에선 강만수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은 ‘상식’으로 통한다. 이 입수한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는 그 상식을 확인해줬다.
‘달러의 굴욕’ 시점, 원화만 달러에 약세
강만수 경제팀은 틈만 나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환율을 올리고, 경기 부양을 위해 과감히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때문에 강 장관은 번번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와 ‘성장’과 ‘물가’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강 장관은 성장우선 정책을 통해 ‘MB노믹스’를 실현해야 하는 책임자였다. 반면 이 총재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했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했다.
정권 출범 때 900원대이던 원-달러 환율은 불과 7개월 만에 1500원 수준까지 올랐다. 이렇게 된 데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책 당국자들의 잘못된 현실 인식도 한몫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강 장관은 정권 초부터 고환율 시사 발언을 쏟아냈다(표 참조). 강 장관은 야인 시절 쓴 에서 “환율은 나라 경제를 지키는 주권이며 환율 관리는 경제적 대외 균형을 지키기 위한 주권 행사다. 환율을 관장하는 재정경제부(현재 기획재정부) 장관이 환율을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주권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며 ‘환율주권론’을 강하게 피력했다.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을 주장해 ‘최틀러’라는 별명을 가진 최중경 전 재정부 1차관도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급격한 하락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강 장관을 거들었다. 두 사람이 발언할 때마다 환율과 금리가 널뛰기했다.
외환 딜러들과 역외 시장 투자자들은 정부의 이런 방침을 모를 리 없다. 한 외환 딜러는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더라도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 의지와 반대 방향의 거래를 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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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초만 해도, 달러는 웬만한 국제 통화에 견줘 죄다 약세였다. ‘달러의 굴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정책 당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일어난 경기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달러 금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원화만이 달러에 약세였다.
달러가 약세이다 보니, 돈이 원유와 원자재에 쏠렸다. 곧바로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원화가 약세인 상황에서 수입가는 더욱 올랐고, 국내 물가는 급등했다. 하지만 강만수 경제팀은 고환율 정책이라는 ‘황소고집’을 쉽게 꺾지 않았다. 대신 수출 대기업들은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업계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이 3천억원, LG전자는 7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미네르바’는 최근 한 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현 정권이 취임과 동시에 내뱉은 말은 환율변동에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즉, 대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내 경기를 이용하겠다는 뜻이며 동시에 대기업을 요리하기 위해 국내 경제 전체를 쥐고 흔들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환율이 조금만 변동해도 대기업이 얻을 수 있는 장부상의 이익이 수천억원에서 수조원 단위로 달라지기 때문에, 이것은 정부가 대기업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최대 무기다. 그걸 알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에서 발을 빼려고 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현재의 고환율 문제가 온전히 강 장관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주식을 대거 팔고, 그 대금을 달러로 환전해 환율을 밀어올렸다. 올해 들어선 유가와 원자재값이 급등하며 국제수지가 연속 적자였다. 수출에 견줘 수입이 훨씬 많아 수입대금 결제를 위한 달러 수요가 많아져 환율이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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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농협선물 부장은 “환율이 전적으로 강 장관 때문에 올랐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환율 당국자들의 이어지는 발언이 환율 오름세를 부채질했다. 당시 시장에선 환율 당국자가 제발 조용히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팽배했다”고 말했다.
강만수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은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급히 선회한다. 물가는 치솟는데 경기는 악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제 강만수 경제팀은 오르는 환율을 막기 위해 시장에 직접 개입하며 외환보유고를 물 쓰듯 퍼붓는다. 촛불시위 뒤 7월7일 개각에서 결국 최중경 차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강 장관은 살아남았다. 그 뒤 강만수 장관은 한 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은 총재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락가락한 환율정책은 결국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켰다. 중소기업들은 하루하루 오르는 환율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고, 키코(KIKO)라는 직격탄도 맞게 됐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환리스크를 줄여주지만, 원화가치가 계속 떨어져 애초 계약한 구간을 벗어나면 기업이 막대한 환차손을 입게 만든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부터 강만수 경제팀이 시장에 계속 ‘고환율 정책’ 시그널을 준 게 잘못이었다. 초반의 정책 판단 오류로 외부 요인으로 환율이 올랐을 때인 6~8월엔 외환보유액을 퍼붓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문제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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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보고서에 언급된 임금동결은 ‘선 성과 후 분배’ 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임금동결은 환율처럼 정부가 단시간에 조작적으로 처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뿐만 아니라 노동부 등 다른 부처와 협의가 필요하다. 노동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노동부에서 그런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 기획재정부 차원에서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촛불시위와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던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전성인 교수는 “임금동결을 정부가 요구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원래 노동자의 임금 양보는 정부의 물가 안정과 기업의 해고 자제라는 필요조건이 있어야 성사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동결은 시대에 동떨어진 ‘박정희식’ 임금통제라는 비판을 받는다. 생활필수품 50개 물가를 정부가 직접 관리해 서민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식의 접근이다. 한 민간연구원 연구위원은 “임금동결을 내걸 명분이 없다. 임금동결이라는 채찍을 사용하기 위해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일자리 나누기 같은 당근이 필요한데 현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이 연구위원은 “물론 현 정부의 수준으로 봤을 때 앞으로 임금동결 캠페인을 밀어붙일 수도 있겠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정권 출범 때 900원대 초반이던 원-달러 환율이 11월21일에는 1500원대를 육박하고 있다. 강만수 경제팀은 고환율 정책을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시장에선 조금씩 오르고 있던 환율에 기름을 부었다고 비판한다. 오락가락하는 환율 정책 탓에 시장 신뢰마저 잃어버렸다. 그 결과 전 국민의 임금 수준을 동결 또는 절하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정권 초기 KDI의 반대에 부닥친 고환율과 임금동결 정책이 지금에 와서 보면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관철되고 있는 셈이니, 웃지 못할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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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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