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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 공짜 점심은 없다

남의 돈으로 벌인 도박판, 네온사인 꺼진 카지노의 7가지 죄악

제728호
등록 : 2008-09-25 11:09 수정 : 2008-09-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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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남의 돈으로 도박판을 벌인 꼴이다. 도박의 무대는 전세계였고, 끌어다 쓴 돈은 액수도, 출처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흥청거렸지만, 어김없이 파국이 닥쳐왔다.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화가 촉발한 미국발 금융위기의 뿌리에는 카지노가 돼버린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허상이 버티고 있다.

‘허망한 세월, 누구를 탓하랴.’ 158년 전통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것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의 뼈아픈 결과다. REUTERS/ CHIP EAST

2006년 서브프라임, 대출시장의 20%

‘서브프라임’이란 뭔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율로 주택 구입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상품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시장은 급격한 성장을 이어가며, 지난 2006년엔 미국 전체 대출시장의 20.1%를 장악했다. 대출총액도 연간 350억달러 규모에서 6650억달러 규모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통상적인 담보대출과는 사업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대출을 해준 사람은 이자까지 더해 돈을 돌려받을 권리, 즉 채권이 있다. 서브프라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후에는 이런 채권을 ‘주식화’해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만들어낸 월스트리트의 ‘연금술’이 버티고 있다. 대출을 해준 업체는 보유 채권을 거래가 가능한 ‘금융상품’으로 바꾸고, 이를 제3의 투자자에게 판매하게 된다. 대출금을 손쉽게 회수하는 한편 채권 부실화에 따른 위험은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첨단 금융기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투자상품은 다시 여러 채권이 결합한 ‘파생금융상품’으로 둔갑해 세계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었다. ‘공짜 점심’에 눈먼 이들이 한데 어울려 지구촌 차원에서 벌인 위험천만한 ‘폭탄 돌리기’였다.

쉽게 풀어보자. 도박이 계속될수록 판돈은 커지는 법이다. 서브프라임이 미 금융시장의 ‘신흥강자’로 떠오르면서, 묻지마 대출이 활개를 쳤다. 시중에 떠도는 자금은 실물경제에 투자되는 대신 손쉬운 돈벌이로 몰려들었다. 서브프라임 시장은 계속 커져갔다. 도박을 하다 보면, 때로 잠깐씩 돈을 따기도 한다. 소득 증가는 물가인상률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미국의 주택 가격은 1997~2006년 124%나 급등했다. 돈을 따면, 쓰고 싶어진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담보의 가치가 높아져 대출 여력이 생긴 미국인들은 돈을 더 빌려 집을 고치고, 차를 바꿨다.

도박판이 영원할 순 없다. 도박장의 불빛이 꺼지면, 쌓인 판돈은 도박장 주인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주택 가격 급등으로 신규 물량이 넘쳐나면서 미분양 사태가 벌어졌다. 이자 부담에 집을 내놔도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1월31일치에서 “290만여 채의 미분양 주택을 포함해 약 400만 채의 주택이 매물시장에 몰려 있다”고 전했다. 수요가 공급에 압도되면서 부동산 가격은 떨어졌고, 이는 곧장 서브프라임 부실화로 이어졌다.


지난해 2월 영국계 거대은행 HSBC가 서브프라임 부실화로 인한 손실이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채 한 달이 안 돼 미국 제2위의 주택담보대출 업체인 뉴센트리파이낸셜이 신규 대출 및 환매 중단을 선언하더니, 그해 4월 끝내 파산 신청에 들어갔다. 같은 해 6월엔 미국 제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순익 급감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음에도 결국 올 3월 헐값에 JP모건에 매각됐다. 부동산 거품은 그렇게 거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뉴딜에서 유래한 패니메이의 운명

주춤한 줄 알았던 위기 국면은 올 9월 들어 되레 본격화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투자은행인 158년 전통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고, 94년의 메릴린치가 부실채권을 못 이겨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매각됐다. 패니메이·프레디맥 등 초대형 주택담보대출 인수·보증업체와 미 최대 보험사인 AIG는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여야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9월18일치에서 “(이번 금융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라며 “문제는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작금의 위기는 금융시장이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낳은 결과다.” 미국의 진보적 월간지 <아메리칸프로스펙트>는 9월17일 인터넷판에서 이번 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칠거지악’으로 나눠 분석했다. 첫손에 꼽힌 ‘죄악’은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카지노화를 방치했다는 점이 꼽혔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자.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는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정부기관을 만들어 전담하게 했다.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유동성(돈)을 제공할 목적으로 탄생한 이 기관이 바로 패니메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약 44%에 불과하던 미국의 주택 보급률은 1960년대 중반 64%대까지 치솟았다. 1968년 미 연방정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패니메이를 민영화했고, 때맞춰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월스트리트의 큰손들도 앞다퉈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출기준 완화 경쟁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문을 연 서브프라임 대출시장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탄생했다. 금융시장이 거대한 투전판이 돼가는 사이 미 금융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던 게다.

두 번째 ‘죄악’은 신용평가기관이 채권의 등급을 매기도록 내버려둔 점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은 “신용평가기관의 공모가 없었다면 서브프라임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서브프라임 업체가 위험천만한 대출을 해준 뒤 그 채권을 ‘주식화’하는 데는 ‘무디스’나 ‘스탠더드앤드푸어스’ 등 신용평가기관의 ‘보증’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업체에 대해 이렇다 할 규제를 하지 않은 것도 또다른 ‘죄악’으로 꼽혔다. 서브프라임 업체의 투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이미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민주당이 지난 1994년 ‘주택소유 및 지분 보호법’(HOEPA)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비롯한 ‘시장맹신론자’들은 이를 철저히 가로막았다.

닷컴 거품을 대신해 미국 경제의 ‘활황’을 이끌었던 부동산 거품이 터진 것을 상징하는 ‘주택 압류’ 표지판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외곽 주택가에 세워져 있다. REUTERS/ KEVIN LAMAQUE

스티글리츠 “과속방지턱을 도입하라”

과도한 차입 투자를 통한 ‘지렛대 효과’의 무한 질주를 차단하지 못한 것도 위기를 키운 원흉이다. 자기 돈 10억원으로 1억원의 순익을 올리게 되면 자기자본이익률은 10%에 그친다. 반면 자기 돈 5억원에 남의 돈 5억원을 빌려 1억원을 번다면 자기자본이익률은 20%가 된다. 빌려다 쓴 남의 돈이 이익률을 높이는 ‘지렛대’ 구실을 하는 게다. 남의 돈을 쓰는 데 드는 이자율보다 기대되는 수익률이 높으면 돈을 더욱 적극적으로 빌려다 쓰게 된다. 빌린 돈으로 도박판이 계속해서 커진 이유다.

다섯 번째 ‘죄악’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닷컴 거품이 터진 뒤인 지난 2002년 7월 미 의회는 기업 재무회계 기준을 대폭 강화한 ‘서베인 옥슬리법’(SOX)을 통해 분식회계 관행에 철퇴를 가했다. 하지만 거품을 부풀리면서 막대한 성과급을 쓸어간 업체 경영진과 이를 배후에서 지원한 신용평가기관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부정의 공생’에 가담했던 이들이 살아남아 현 금융위기를 더욱 키운 셈이다.

여섯 번째 ‘죄악’은 헤지펀드(국제증권 및 외환시장에 투자해 단기이익을 올리는 민간 투자기금)와 사모펀드(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를 적절히 규제하지 못했다는 점이고, 일곱 번째 ‘죄악’으로는 금융투기 단속 시스템 붕괴를 방치한 게 꼽혔다. 두 ‘죄악’의 뿌리는 같다. 다시 1930년대로 돌아가보자.

대공황의 원인을 탐욕에 휩싸인 금융시장의 난맥상으로 인한 신용경색으로 본 루스벨트 행정부는 금융개혁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상업은행(대출-이자)과 투자은행(유가증권 거래)의 영역을 철저히 나눠 관리하고, 금융투기를 규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글래스 스티걸법’(1933년)이 탄생했다. 하지만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사이의 거리는 ‘첨단금융기법’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가까워졌다. 결국 1999년 미 의회는 은행·보험·투자사의 장벽을 허무는 내용을 뼈대로 한 ‘그램 리치 빌리법’(금융 현대화법)을 통과시켜 ‘글래스 스티걸법’을 폐기처분했다. 당시 법안 통과를 주도한 필 그램 전 상원의원은 현재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에게 경제정책을 자문해주고 있다.

위기는 끝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까지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강조했던 부시 대통령은 9월18일 외부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대국민 특별 담화문을 내놨다. 최근 잇따른 구제금융 사례를 언급한 그는 “금융시장이 지속적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꼭 11년 전 서울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은 금융 시스템에 과부하가 결렸음을 알아챘을 때조차 이른바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내세웠고…, 닷컴 거품 붕괴 이후 거시경제 지표가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부동산이란 새로운 거품으로 경기부양을 시도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9월18일 〈CNN방송〉 인터넷판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위기 탈출의 해법은 뭘까? 스티글리츠 교수는 전체 금융시장을 감시·감독할 가칭 ‘금융시장안정화위원회’ 등을 구성하는 한편, 과도한 차입을 제한하는 일종의 ‘과속방지턱’을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제2의 대공황이 운위되는 만큼 제2의 뉴딜식 개혁이 필요할 터다. 차기 미 행정부와 의회는 ‘2009년판 글래스 스티걸법’을 마련할지도 모른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맞먹는 일

“월스트리트의 붕괴가 시장근본주의자들에게 가져다준 충격은 베를린 장벽 붕괴가 현실 사회주의에 끼친 영향과 맞먹는다.” 최근 미 금융가 안팎에서 떠도는 말이란다. 불과 두 달여 전까지만 해도 미 주류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는지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으니…, 허망한 노릇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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