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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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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 대참사는 운하 때문이다

등록 2008-03-27 15:00 수정 2020-05-02 19:25

자연습지 파괴한 뉴올리언스의 재앙… 태풍이 운하로 바닷물 밀어올리는 현상, 낙동강은 안전한가

▣ 양영석 루이지애나주립대 허리케인센터 연구조교

[한반도 대운하- 3부 미래]

선진국 가운데도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자연의 모습을 크게 바꾼 예가 많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에서는 ‘개척정신’(Frontier Spirit)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인위적인 자연 개조를 미덕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강 하구에 위치한 수상 교통의 요지로, 도시 개발 초기에는 주변보다 높은 미시시피강 자연 제방을 따라 좁고 길게 시가지가 형성됐다. 육상 교통이 발달하기 전인 1840년대에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강이라는 자연 수로를 이용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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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해일의 고속도로 완성?

도시가 발전할수록 땅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도 폭등했다. 그러나 도시 외곽은 습지였기 때문에 확장이 쉽지 않았다. 1913년 원심 펌프가 발명된 뒤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주변 습지를 간척해 도시를 넓혀나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간척되기 전 습지들은 해발 60~100cm 정도의 고도를 유지했지만, 제방을 쌓아 강과 호수의 범람을 막자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범람 때 물에 실려오던 토사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은데다,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지반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뉴올리언스의 지반은 간척 이전의 해발 높이보다 평균 60cm 이상 낮아지게 된다.

2005년 여름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태풍 카트리나 대참사는 뉴올리언스의 이런 지형적 특수성과 태풍의 일반적 피해 양상을 결합해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도 당시 대참사의 발생 원인이 인근 습지를 관통하는 운하에 있었다는 것에 주목한 국내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카트리나 대참사와 운하 사이엔 어떤 연관성이 있었을까. 태풍이 피해를 낳는 요인은 크게 세가지인데, 첫째는 태풍이 몰고 오는 강풍, 둘째는 동반 폭우, 셋째는 폭풍해일이다. 폭풍해일은 바람이 지속적으로 바닷물을 밀어낸 결과로 생겨난 순간적인 해수 상승을 말한다. 바람이 바다 쪽에서 불어올 경우 밀려든 바닷물은 육지로 넘치게 된다. 2003년 경남 마산 인근을 침수시켜 19명의 인명 피해를 낸 태풍 매미도 이런 폭풍해일을 일으켰다. 바로 이 폭풍해일이 문제였다.

카트리나가 발생하기 이전인 2005년 초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폭풍해일 컴퓨터 모델을 연구하던 하산 마시리키 박사는 뉴올리언스 인근을 통과하는 두 운하로 인한 바닷물의 유입 효과에 주목했다. 멕시코만 연안 수로(GIWW)와 미시시피강 출구 운하(MRGO)로 불리는 두 운하가 건설되기 전 바닷물은 도시 북쪽 호수로 우회해 범람했으나, 운하 건설 이후엔 접근 거리가 짧아진 뉴올리언스 동편으로 대량 유입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뉴올리언스 동편 습지를 가로지르는 122km 길이의 MRGO(깊이 11m·표면 넓이 200m)는 1964년 완공됐는데, 실제로 1965년 이후 폭풍해일 범람 지역은 그 이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또 카트리나 당시 GIWW와 MRGO의 합류 지점에서 측정된 유입 수량은 MRGO 건설 이전의 6~7배에 이르렀다. 운하로 생긴 새로운 물길은 해일에 대한 저항력을 낮춰 유속을 3배 이상 증가시켰다. 운하가 내륙으로 몰려드는 폭풍해일의 고속도로가 된 것이다.

MRGO가 가져온 또 다른 부정적 효과로 해안 습지의 파괴를 꼽을 수 있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을수록 토사 입자를 고정하는 데 유리하며 해일 완충 효과도 높다. 그러나 MRGO는 습지를 관통해 건설됐고, 그 결과 운하 인근 지역과 북쪽 호수에까지 바닷물이 유입됐다. 염도가 높아지자 나무습지(스왐프)가 염분에 강한 초지습지(마시)로 변하면서 해일 완충 효과가 급감했다. 또 선박 통행 때 생기는 파랑 때문에 운하 가장자리의 식물들이 죽고 습지 침식이 가속화됐다. 운하 건설 이전 뉴올리언스는 16km에 달하는 완충 습지를 가지고 있었다. MRGO가 없었다면 최고 4.7m에 달한 해일을 1.3m 정도 낮출 수 있고, 제방 붕괴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으리라 분석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건설한 운하에 복을 가져다주는 신은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고, 오히려 물귀신들만 몰려든 셈이다.

미국은 ‘불도저 경기부양’ 믿지 않는다

애초 개발을 주도한 이들은 전형적인 경제 논리를 폈다. 배가 운하를 거치면 바다에서 뉴올리언스에 진·출입하는 거리가 미시시피강을 이용할 때보다 64km 정도 짧아지는데다 홍수나 파도에도 안전하기 때문에, 많은 배들이 통행료를 내고 운하를 이용할 것이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운하 건설과 직접 관련된 일시적 고용과 소득 증대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선박 통행은 많지 않았다. 배들은 지장물과 통행료가 없는 미시시피강을 선호했다. 또 컨테이너 선박이 커지면서 MRGO로는 운항이 불가능해졌다. 1997년에는 뉴올리언스를 출입하는 배 가운데 단 3%(하루 평균 4.8대)만이 MRGO를 경유했고, 오히려 선박 통행을 위한 운하 준설 비용으로 연평균 2200만달러(약 220억원)가 쓰였다. 선박 1척당 운하 관리 비용을 계산하면 무려 1만2657달러(약 1266만원)라는 수치가 나온다.

‘개척정신’은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지만, 학문이 발전할수록 자연에 대해 품어왔던 막연한 자신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또 지금까지 자연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게 된다. 뉴올리언스의 사례는 자연 그대로가 가장 효과적인 홍수 대책이자 해안 침식 방지 및 수질 관리 대책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고 있다.

현재 뉴올리언스는 개발 이전 자연의 모습을 모방한 프로젝트에 명운을 걸고 있다. MRGO는 폐쇄됐고, 2009년까지 1350만달러(약 135억원)를 들여 290m 길이의 방조제를 건설할 예정이다. 방조제로 바닷물의 침입을 막은 뒤 미시시피강 물을 끌어들여 MRGO 운하 지역 하류 쪽으로 토사와 민물을 공급하는 ‘습지 복원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홍수를 통해 습지에 토사를 공급하는 자연의 섭리를 모방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밀어붙이려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몰고 올 일시적인 경기부양 효과다. 그러나 미국에선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의 위험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졸속으로 시작된 ‘플로리다 관통 바지 운하’는 2007년 〈CNN〉이 뽑은 최악의 토목공사 2위에 오르는 수모를 겪었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아닌 ‘2차 대전’이었다고 평가한다. 미국인들은 더 이상 경기 활성화를 위해 토목공사를 일으키지 않는다. 도롱뇽도 물고기도 사는 원래의 자연환경 자체가 가장 경제적이고 실용적임을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난 뒤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의 패러다임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운하 찬성론자들은 외국 운하에 대한 사실 왜곡과 경제·환경에 미치는 위해성에 대한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는 중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강과 낙동강을 그대로 이용하고 일부 구간만 연결하는 ‘단순한 물길 잇기’라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주기적인 준설 작업, 누가 하나

그러나 실제 낙동강 하구의 수심은 2m도 되지 않으며, 배가 다니려면 낙동강과 한강의 전 구간에서 준설과 굴착이 이뤄져야 한다. 홍수 직후에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주기적인 준설을 해야 한다. 특히 태풍의 길목인 낙동강 하구에 물길을 확장하면 폭풍해일이 몰려들어 MRGO 운하의 복사판이 될 수 있다. 경제성은 전무하고 전례 없는 환경 재난을 일으켜 후손의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아갈 어리석은 정책은 하루빨리 접어야 한다.

뉴올리언스 운하를 만든 이들은 당시 해군과 선주, 항만시설 업자 등 나이든 기득권층이었다. 자연 파괴로 인한 환경 변화는 운하 건설 이후 상당한 시차를 두고 축적됐다. 뉴올리언스 운하는 이전 세대 기득권층의 욕심으로 건설된 흉물로, 그 대가를 치른 것은 죄 없는 후손이었다. 참극이 일어났을 때 그 책임자들은 이미 세상을 뜨고 없었다.



플로리다 관통 운하 스캔들

‘국토 개조’ 깃발 든 미국 토건족의 횡포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와 ‘한반도 대운하’를 둘러싼 복잡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던 지난해 7월27일 미국 〈CNN〉은 인터넷판에서 ‘가장 크고, 괴상하고, 쓸모없는 국가 프로젝트 5선’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명단을 발표한다. 이 가운데 영예의 2위를 차지한 게 다름 아닌 ‘플로리다 관통 바지 운하’(The Cross Florida Barge Canal)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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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관통 바지 운하 프로젝트는 플로리다반도 북쪽 172km를 횡단해 대서양과 멕시코만의 물길을 연결할 목적으로 1942년 7월 승인됐다. 이로 인한 거리 단축 효과는 805km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연결해 동해와 서해를 잇는 수로 계획 정도로 볼 수 있다. 운하는 깊이 3.7m, 최소 바닥 넓이 45.7m로, 5개 갑문과 3개 댐, 인공 수로 등을 이용해 바지선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경제공황으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요구하던 1930년대에 플로리다의 정치인들은 경제 복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이 운하를 들고 나왔다. 공사는 1935년 예비비를 지원받아 시작됐다. 6천 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경기부양 효과가 있긴 했지만, 습지와 16㎢에 달하는 숲을 죽여야 했고 1만㎥에 달하는 표토층을 걷어냈으며 원래 이곳의 주인이던 야생 동식물들을 쫓아냈다. 사업은 1년 정도 진행되다가 예산 부족과 수자원 교란 문제를 들고 나온 반대 의견 탓에 잠정 중단됐다. 1930년대에는 이미 내륙 수송의 중심이 배로부터 기차와 트럭으로 넘어간 상태였지만, 찬성론자들은 운하보다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토목공사를 고집했다.
미국 내 토건족들의 로비는 결국 성공해 1942년 미 의회의 공사 재개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재착공은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4년에야 이뤄졌다. 케네디 대통령이 운하 사업을 재개한 이유도 이명박 대통령과 비슷하다. 선거를 앞두고 플로리다 주민들의 환심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에서처럼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계산해도 비용 대비 편익이 형편없이 작다는 데 있었다. 토건족들은 곧 ‘국토 개조’(land enhancement)라는 신조어를 들고 나와 사람들을 현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토건족들의 폭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민들과 환경단체의 지속적인 반대로 공사는 1971년 1월 잠정 중단됐고, 그 뒤 20여 년 동안 방치되다가 1990년 11월 28% 정도의 공정률을 보인 상태에서 당시 화폐로 공사비 7천여만달러를 날린 채 공식 사망 선고를 받았다.
플로리다 운하와 ‘한반도 대운하’ 사이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배가 다니면 스크류가 산소 공급을 하기 때문에 수질이 좋아진다”는 궤변이 통하지 않았고, 그 어마어마한 토목공사를 4년 안에 끝낸다는 불도저 대통령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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