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4" color="#a00000"> 이회창 총재 발언으로 불거진 논란… 보수집단이 전통적 주류, 6월항쟁 이후 변화의 흐름도</font>
“당신은 주류입니까? 비주류입니까?”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주류론 공방은 우리 사회 일원들에게 “한국사회의 주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류냐, 비주류냐”라는 물음에 “난 주류야”라고 답한다면 아무래도 그는 우리 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축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물쭈물하거나 주저한다면? 그리고 아예 내놓고 “난 비주류야!”라고 소리친다면?
주류 개념은 이데올로기적인 것
사전적으로 보면, 주류(main stream)는 ‘원줄기가 되는 큰 흐름’을 뜻한다. 또 ‘어떤 사상이나 운동 따위 여러 갈래에서 으뜸이 되는 중심 갈래’란 뜻으로도 쓰인다.
통상 주류 개념은 대세, 다수, 파워엘리트, 지배집단, 강력한 파벌 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돼 왔다. 특히 정계와 문화계, 언론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물론 학계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한다. 보통 제도권 안에 있는 주된 학문적 경향이나 사람들을 가리키며, 이를 비판하거나 새로운 주장을 펼치는 경향이나 사람들은 비주류라고 표현한다. 주류경제학, 주류사회학이란 표현이 그 일례이다.
하지만 주류·비주류라는 말이 정립된 과학적 개념은 아니다. 그리고 주류가 통상 다수를 뜻하지만 때로는 주류·비주류가 수적인 것과 무관하게도 쓰인다. 충북대 서관모 교수는 “주류는 지역적 혹은 계급론적인 분할을 의미하는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주류란 말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든 간에 중심갈래란 뜻이 공통적으로 녹아 있는 게 사실이다. “한 사회를 끌고 나가는 데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합의하는 규칙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통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층”(인하대 최원식 교수)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미국처럼 다인종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인종적·종교적 주도세력인 와스프(WASP: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주류의 핵심적 개념인 중심갈래, 중심세력를 놓고 볼 때, 주류라는 말은 본디 대단히 차별적인 용어이다. ‘중심’이 있으려면 당연히 ‘주변’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주류와 비주류 하는 말을 즐겨쓰는 사람들의 의식심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주류라는 말을 쓰는 의식에는 권력의 핵심에 서겠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으며 주류는 대단히 권력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주류-비주류 편가르기의 의도는?
주류-비주류와 관련해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뢰즈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류는 수가 적어도 스스로를 다수라고 제시하며 그래야 안심하는 사람들이다. 주류는 또 현재의 지배세력에 참여하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과 동조하려고 하거나 독자적인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피지배자로 남길 원하거나 혹은 남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이다.”
주류라는 말은 그래서 말 자체보다 누가 그 말을 사용하며 어떤 상황에서 사용했는가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회창 총재의 주류 발언도 마찬가지다.
이 총재는 “2002년 대선에 대한 견해가 뭐냐”라고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메인스트림들이 현 정권을 심판해 새로운 정권을 만들어 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상자기사 ‘이회창 주류론’ 참조)
‘메인스트림들’이란 표현으로 이 총재는 은연중에 한국사회를 주류와 비주류 집단으로 구분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드러내 보인 셈이다. 어쩌면 이 총재의 메인스트림론은 그가 생각하는 ‘그 어떤 주류집단’한테 보내는 강력한 ‘호소’일지도 모른다. “나를 지지해달라”라는.
주류라는 말의 권력적 속성은 정치권에서 이를 가장 애용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한국 정치권에서 주류는 당권파이며 실세들이다. 비주류는 물론 비당권파이다. 그래서 비주류는 언제나 주류로 편입되려고 하거나 주류를 전복시키려 한다.
이 총재의 발언 직후 곧바로 일부 학자들에게서 “비주류의 가슴에 못박는 분열적 사고”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도 주류란 용어의 이같은 속성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총재의) 주류심판론은 우리 사회를 주류, 비주류로 편가르기 하는 분열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중심세력을 주류라고 할 때,주류론과 관련한 핵심적 초점은 역시 “우리 사회의 주류,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데 모아진다.
박상병 정당정치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를 △사대주의 친미·친일파 △반공세력 △보수세력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이 주류다. (지금이) 민주화시대라고 하지만 아직은 작은 이행기의 변동이다. 큰 틀에서는 이들의 주류가 계속되고 있다. 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적어도 정치사회만을 놓고 보면 민주화세력으로 대체되는 변동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전반에서는 민주화세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권의 개혁 실패는 민주화세력의 역량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세력이 그만큼 넓고 단단하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 세 집단은 서로 뒤엉킨 가운데 한국사회에서 주요한 구실을 해왔다. 친일파, 일제와 타협한 민족개량주의 집단, 해방 이후에는 한민당세력, 친미세력 등으로 맥을 같이하는 이들의 흐름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주의란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한국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자유주의조차 주류가 되지 못한…
개발독재시대에 들어서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을 주축으로 재형성된 이들 세력들은 근대화와 경제성장의 구호를 내세우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더욱 공고하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대표는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으며 그들의 물적 기반은 그들이 비호한 재벌이었다. 이들은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더욱 깊게 뿌리박았으며 5공시대에는 군사정권을 등에 업고 각계에 터를 잡았다. 지연과 인맥과 파벌 등으로 얽히고 설키며 몸집을 키워 온 이들은 스스로 사회주류로 자처해 왔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작은 분열은 있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그들, 우리 시대의 주류를 “3공 때부터 권력을 유지해왔던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87년 이후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지만 주류들은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는’ 자유주의자들까지 포섭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강력한 결집력은, 가끔 합리적이고 민족의식 있는 세력이나 반공주의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정책결정의 주요한 포스트에 진입할 때 벌떼처럼 일어나는 데서도 확인된다. 디제이 정권 초기 최장집 교수에 대한 사상검증이나, 최근 한완상 교육인적자원부 부총리 임명에 대해 보여준 보수언론과 보수주의자들의 태도는 그 좋은 사례이다. 여전히 그들은 반공이란 무기로 사상적으로 단죄하는 데 익숙하다. 그들의 반공은 물론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반공일 뿐이다.
노 교수는 “우리 사회를 자유와 진보, 보수로 나눌때 아직도 자유주의자들조차 주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이는 우리 사회 중심세력의 변화가 얼마나 더디고 어렵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 중에서도 주류’가 있다. 최상천 전 효성가톨릭대 교수는 그 핵심을 “보수집단 중 특히 국가보안법을 기반으로 한 반공주의에 토대를 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 옹호하는 세력”이라고 파악한다. 구체적으로는 재벌, 보수언론, 반개혁적인 일부 법조집단이 ‘주류 안의 주류’를 자처하며 권력을 행사한다는 게 최 교수의 판단이다. 최 교수는 구질서의 경직을 깨뜨리는 문화인, 벤처기업가 등 ‘신주류’에 견주어 이를 특히 ‘구주류’라고 부른다.
이밖에 주류에 대한 견해는 학자들마다 그 표현이 제각각으로 펼쳐진다. “진보적이지 않은 평범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주류다. 이념적으로 볼 때 보수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이 주류인데 계층적으로 보면 자본가계급, 정치·사회문화적 엘리트들이다. 지역으로는 영남 서울 충청 등이 주류를 이어왔다. 이들은 명문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이다.”(유팔무 한림대 교수)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주류는 반공주의, 성장제일주의, 국가중심주의 이데올로기이다.”(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물망같은 조직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는 주류집단. 그 공통분모는 대략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반공주의, 보수주의, 지역적으로는 영남세력, 경제적으로는 성장제일주의적인 재벌체제 등으로 정리된다. 정녕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인가?
주류는 시대상황에 따라 변해왔고, 변하고 있다. 비록 우리 사회에서는 그 변화가 매우 더딜지라도. 동국대 철학과 홍윤기 교수는 “특정한 어떤 시대에서 정치적 정신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주도하는 흐름을 주류”라면서 “한국사회는 지금 지배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홍 교수는 “무너져가는 주류권력 속에서 새로운 주류를 형성할 정신적, 정치적 헤게모니는 아직 부상하지 않고 있는 혼돈상황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사회의 주류집단에 균열을 일으킨 충격적인 사건은 1987년 6월항쟁이었다. 6월항쟁을 통한 민주화 조류는 주류의 불가피한 개편을 가져왔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6월항쟁 이후의 민주화 과정은 주류재편 과정이다. 지배층의 재구조화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6월항쟁 이후 민주화되면서 우리 사회의 보수와 자유, 진보에 변화가 생겼다. 자유세력 중 일부가 집권당까지 됐다. 90년 3당합당은 구주류와 신주류의 일부가 결합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강력한’ 보수주의세력, ‘취약한’ 자유주의세력, ‘배제된’ 진보세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하나의 주류균열의 충격적인 계기는 1997년 정권교체였다. 정권교체는 주류집단의 분열과 혼재를 가져온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신대 김윤자, 충남대 류동민, 방송대 김기원 교수 등 경제학자들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메인스트림은 여전히 재벌”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정보산업의 발달과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에 따라 벤처기업이 새로운 주류로 등장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 사회는 주류가 아예 없다”. 소설가 복거일씨의 주장이다. 복씨는 “우리 사회는 편차가 다양한 사회”라면서 “주류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이슈마다 주류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남북통일, 빈부격차, 시장과 정부 사이의 권한배분 등에서 제각기 다수 여론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이들의 의견이 사안마다 모두 겹쳐지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는 “메인스트림이란 말을 쓰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다양한 상태이고 통일시킬 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주류이고자 하는 질긴 욕망
주류는 권력이다. 그래서 주류 ‘바깥에’ 있는 이들은 누구나 한번쯤 주류이길 갈망한다. 주류들도 주류 권력의 단맛을 계속 즐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주류콤플렉스’는 주류는 물론 비주류 모두에 강요되는 것이다.
정계, 재계, 관계 등에서 이른바 TK, PK, MK 등으로 상징되는 많은 파벌과, 인맥, 혈연을 중심으로 한 족벌과 혼맥, 동문 등으로 맺어진 학맥.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힌 이런 잡다한 인맥과 파벌이 할거하는 오늘 우리 시대의 모습은 어쩌면 주류콤플렉스에 깊이 빠진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이 아닐까. 주류론이 의미있는 바는 어쩌면 이런 권력지향적인 헐벗은 군상들의 구체적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조계완 기자 key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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