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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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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도마이드의 비극을 아는가

등록 2006-0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동물실험 통해 안전한 물질로 알려진 입덧방지제가 1만여 명의 기형아 만들어…환경적응력 잃은 실험동물들, 무차별적으로 죽여 얻은 결과를 맹신해야 하는가

▣ 김진석/ 건국대 교수·수의대

힘들고 지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황우석 교수 신드롬’에서 분명히 보이듯 의·생명과학 발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과도한 관심과 평상심 잃은 논란은 현장 과학자로서 감당하기 두려울 정도로 일방적이며 광적이다. 그럼에도 난자 채취를 포함한 연구윤리에 대한 일련의 반성 속에서 동물 이용 연구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척추를 끊은 개에게 줄기세포를 넣었다’든지 ‘100마리의 쥐의 척추를 고의로 끊고 줄기세포를 주입했다’는 과학 행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설치류와 인간의 차이 무시

동물실험은 이미 기원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의사가 감각과 운동신경 그리고 힘줄 사이의 기능적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보다 훨씬 이전 어느 때인가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동물실험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동물실험 지지자들과 동물보호론자들 사이에 동물실험의 공과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현재진행형이기는 하지만, 동물 이용 연구가 의·생명과학의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했음엔 이론이 없다. 천연두와 소아마비 백신을 비롯한 각종 약물들과 장기이식 기술의 개발, 그리고 인체의 신비를 풀어내는 데 동물들의 대리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동물실험 자체를 완고하게 반대하는 동물권리론자들의 주장을 일단 미룬다고 치자. 그래서 ‘동물실험의 대체법이 없고, 연구자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한, 인간의 건강을 위한 동물 이용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동물복지론적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자신의 미래를 의·생명과학 기술에 온전히 갖다바친 국가에서 여지껏 동물실험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싹조차 보기 힘든 건 슬픈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계 최초의 발견’ ‘수십억 또는 수조원의 지적가치 창출’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단 언론들의 연구결과 보도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동물실험 결과가 성급하게 부풀려지는데 웬일인지 인간에 적용됐다는 후속 보도는 실종되기 일쑤다. 환호하던 우리 모두 그렇게 무심하게 잊어가는 것이다.

1961년 11월26일 입덧 방지용 수면제인 탈리도마이드의 판매가 전격적으로 금지된다. 1957년 10월부터 유럽은 물론 일본의 임산부들에게까지 ‘부작용 없는 약’으로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약이다. 판매 직후부터 수백 건의 부작용 사례가 보고됐지만 이는 무시됐다. 동물실험을 통해 ‘거의 유례없을 정도로 안전한 물질’로 판명됐다는 제조회사와 정부 책임자들의 주장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결국 전세계에 걸쳐 약 1만여 명의 기형아가 태어나고서야 ‘동물실험에 대한 맹신’은 참혹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미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켈시 박사의 고집스러운 동물실험 자료 승인 거부로 이러한 불행에서 용케 몸을 피한다.

탈리도마이드가 개, 고양이, 래트, 햄스터와 닭에게는 어떠한 독성도 나타내지 않고 특별한 토끼 품종에서만 사람과 비슷한 독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재앙이 일어난 뒤의 일이다. 그 뒤에도 동물실험 결과 안전한 것으로 밝혀져 임상시험을 거쳐 판매됐던 약이나 식품들은 결정적인 부작용으로 인해 판매가 금지되거나 회수 처분되고 결국 법정 다툼으로 옮겨갔다. 물론 동물실험이 지닌 불가피한 과학적 맹점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이러한 불행은 계속될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동물실험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설치류는 생리학적으로 구토 기능이 없을뿐더러 인간과는 달리 코로만 숨을 쉰다. 이는 독성물질의 체내흡수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사람의 수명은 70살 전후지만 설치류는 고작 2년 내지 3년 정도 산다. 어디 그뿐인가? 래트는 다산성이어서 1년에 100여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임신할 때 더욱 건강하다. 그들의 태반은 사람의 것과는 다른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설치류들은 사람에 비해 암에 대해 더 높은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의 차이 때문에 암과 관련된 동물실험 데이터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 사이에서도 먹는 취향과 음식량이 다르듯 실험동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실험동물이 먹는 음식이나 복용하는 약물뿐만 아니라 환경에서도 천연 및 합성 화학물질들을 끊임없이 섭취한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화학물질의 수는 수백만 개로 추정되며 음식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천연·화학물질만도 수만 개에 달한다.

15년 동물 이용 연구를 접다

또한 인공적으로 사육된 실험동물들은 수백만 년 전부터 그들의 진화를 지배해온 미생물들과의 공생관계가 결핍돼 있다. 그들은 인공조명 아래에서 멸균된 플라스틱이나 금속 격리상자 속에서 기획된 삶을 강제로 살며 고요함과 고정된 온도 속에서 살고 있다.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종류의 동물들인가? 만일 그들이 자신의 동물 종들을 닮지 않았다면 그러한 동물들로부터 얻은 결과들이 과연 인간의 병적인 조건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7년 전, 15년 동안이나 한눈 팔지 않고 매달려온 동물 이용 연구를 접었다. 할 줄 아는 게 오로지 동물실험뿐인지라 과학자로서 생존할 수 있을지 겁이 나고 불안해 망설이던 결정이었다. 그러나 나름의 희로애락을 지닌 생명체를 도구로 얻은 연구결과의 불확실성을 낱낱이 목격해야 하는 현장 과학자로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성적 판단이나 미래를 설계할 능력은 없어도 실험동물도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불안을 피하려는 기본적 감성능력을 지닌 또 다른 생명체다. 이 변화무쌍한 생명체를 무오류의 연구결과로 복제할 과학기술은 아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의 허다한 이해관계에 묶어 마치 일회용 물건이나 실험실 시약처럼 함부로 다뤄도 되는 것일까? 백번 양보해 동물실험이 불가피하다 해도 진지한 고민 없이 이 땅에서 한 해에 300만 마리의 동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야말로 비과학적이며 반생명적 행위가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도 생명을 모독하는 과학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 이제라도 진정한 의·생명과학의 발전을 위해 동물실험은 만능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돼야 한다.



피나는 연구로 생쥐의 암 정복?

동물실험 약품들이 일으킨 재난…인간과 면역체계 달라 적용 힘들다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지사제인 클리오퀴놀은 쥐, 고양이, 개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과했다. 그러나 1976년 일본에서 이 약을 먹은 1만 명이 시력상실·장애와 마비 증상을 겪었고, 수백 명은 사망했다. 1982년에서야 전세계적으로 시판이 금지됐는데, 그때까지 아프리카 등 저개발 지역에서는 여전히 지사제로 팔리고 있었다. 원숭이 실험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관절염 치료제 오프렌은 61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심장치료제 에랄딘도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반면 인간에게 이로운 페니실린을 쥐에게 투여하면 출산 때 사지 기형을 유발한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벤조일 퍼옥사이드라는 물질은 여드름 치료제로 이용되지만, 쥐에게는 발암물질이다.
동물실험이 임상에 적용되기 힘든 이유는 종이 다르면 면역 체계도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수많은 암 치료제를 내놨지만, 그것은 마우스에게만 통했다. 과장해 말하자면, 지금까지 암 연구의 역사는 생쥐 암 연구의 역사였고, 과학자들은 생쥐의 암을 ‘정복했다’.
레이 그릭은 그의 책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에서 동물실험은 제약자본이 상품을 빨리 내 팔기 위한 형식적 인증 장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동물실험을 거친 의약품이 인간에게 동일한 결과를 제공할 가능성은 50%를 밑돈다”며 시험관에서의 환자에 대한 임상 연구, 시험관에서의 조직 연구와 장기 기증 등 사회적 해결책에 그만큼의 비용을 쏟았더라면 훨씬 더 의학이 발전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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