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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는 록펠러가 될 것인가

등록 2006-02-15 15:00 수정 2020-05-02 19:24

치밀한 관리·노조 거부·치부 폭로와 재산 헌납 등 쌍둥이 같은 두 기업인
경영권 내놓고 귀족가문으로 남은 록펠러의 길이 삼성의 해법은 될 수 없나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철강왕’ 카네기가 저돌적인 스타일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연상시킨다면, ‘석유왕’에 세계 최고의 자선가로 이름을 떨친 존 D. 록펠러(1839~1937)는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록펠러의 행적을 전하는 여러 기록물에서 꼼꼼하고 치밀한 관리형의 삼성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언론 폭로 뒤 재산 내놓아 수렁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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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는 자회사를 순회하던 중 뉴욕 지역에서 한 납땜 담당 직원을 만났을 때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당시엔 땜납 40방울로 석유통을 밀봉했는데, 록펠러는 그 직원에게 38방울로 봉할 수 있는지 시도해보라고 했다. 시도 결과 38방울일 때는 석유가 샜고, 39방울로는 완전히 봉해진다는 게 밝혀졌다. 이 한 방울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수년 동안 수백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 뒤 회사는 1센트의 비용도 정확히 계산했다고 한다.

노동조합에 극도의 반감을 보인 점에서도 록펠러와 삼성은 쌍둥이처럼 잘 통한다. 록펠러는 직원들에게 평균보다 많은 월급을 주었으며, 직원들은 수년 동안 파업은 고사하고 노조도 결성하지 않았다. 노조 결성 움직임만 보이면 록펠러는 주동자를 색출해 다른 공장으로 전근시켜버렸다. 록펠러는 전기 작가에게 “나는 노동자들이 왜 노조를 결성해서 자신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하는 회사를 무너뜨리려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는 말로 상징되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 집착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록펠러와 삼성의 유사성은 관리형 이미지와 경영 철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론의 폭로로 결정적인 치부가 드러나고, 재산 일부를 떼내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으로 수렁을 벗어나려 한 움직임에서도 비슷한 면모를 보여준다. 지난해 터진 ‘옛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X파일) 폭로 사태’ 뒤 곤경에 빠졌던 이건희 회장의 삼성이 2월7일 8천억원의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기로 결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한 모습은 100여 년 전 미국에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겪었던 일의 재방송이라고 할 만큼 닮은꼴이다.

이건희 회장의 최측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이 회장의 처남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내밀한 곳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담은 X파일은 초일류 삼성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실상을 드러내 한국 사회를 일대 충격에 빠뜨렸다. ‘돈의 힘으로 나라를 움직이려 한다’는 게 낭설이 아님을 ‘날것’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불법·변칙적인 소유권 세습을 중심으로 한 ‘반삼성’ 분위기가 1위 기업에 대한 단순한 시샘일 뿐이라는 일축은 근거를 잃게 됐으며, 거대 삼성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

아이더 티벨의 용감한 탐사보도

뒷면에 가려진 초거대 기업 삼성의 실체를 드러낸 주인공이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였다면, 100여 년 전 미국에는 아이더 타벨이라는 여기자가 있었다. 타벨 기자는 1902년 11월부터 1904년 10월까지 <매클러>라는 잡지에 19차례에 걸려 ‘효율성과 독점적 파워 면에서 인간이 만든 어떤 장치보다 완벽한 머신인 스탠더드 오일’의 실상을 폭로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타벨은 기사에서 “스탠더드 오일이 설립된 이후 공정하게 거래하고 경쟁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질타했다.

그의 폭로로 미국인들은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이 탄생해 독점 자본의 힘을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록펠러와 그의 사단이 벌인 정·관계 뇌물 살포, 경쟁 기업을 상대로 한 치졸한 스파이 행위와 폭력을 동원한 무자비한 인수·합병, 총수의 특권·사치 행태를 똑똑히 알게 됐다. 삼성이 정·관계는 물론 검찰까지 관리하고, 대통령 선거에까지 깊숙이 개입하려 한 정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X파일 사태를 보는 듯하다면, 지나친 단순비교라고 할 것인가?

X파일이 문화방송에서 적나라하게 보도될 때까지 웃지 못할 곡절을 겪었듯 타벨의 탐사 보도가 열매를 맺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련이 따랐다. 타벨의 아버지는 딸이 스탠더드 오일의 비리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하지 마라! 그들이 너마저 부숴버릴 것이다”라며 극구 말렸다. 군소 석유 채굴업자였던 그의 아버지 프랭클린 타벨은 스탠더드 오일의 인수·합병 전략에 휘말리면서 처참하게 무너져내려 비참한 황혼기를 보내고 있던 터였다. 타벨은 아버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추적하고 탐사해 언론 역사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탐사보도’의 대표적인 작품을 일궈냈다. 타벨의 폭로기사는 그 뒤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단행본으로 묶여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고, 타벨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됐다. 타벨 이후 수많은 언론인들이 탐사보도를 지향하며 정계와 경제계의 비리를 추적해 폭로하기 시작했다.

타벨의 시리즈 기사는 미국이 당시까지 40여 년 동안 산업화 길을 걸으면서 깊어진 빈익빈 부익부, 민주주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특권층의 출현, 매관매직이 일상화한 정·관계의 부정부패로 홍역을 앓고 있던 순간에 던져진 불쏘시개였다. 미국인들의 분노는 활활 타올랐다. 이후 10~15년 동안 미국 역사에서 ‘거대 기업과 총수들의 시련기’가 펼쳐진다.

‘산업화 40년 증후군’인가

‘X파일’ 폭로로 이건희 회장이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떠올랐듯이 타벨의 폭로로 록펠러는 연방과 주정부 검찰의 추적을 받는 등 궁지에 몰렸다.

록펠러는 이를 계기로 삶의 방식을 전환한다. 타벨의 폭로 전에도 적지 않은 돈을 사회에 기부했지만, 그때까지는 다분히 생색내기 성격이 강했다. 폭로 이후 그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적극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변화를 알리기 위해 극적인 타이밍을 노려 돈을 쾌척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 중앙은행이 없던 1907년 금융공황이 발생하자, 줄줄이 무너지는 신탁회사와 증권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재산 절반을 내놓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일이다. 이는 결국 성사되진 않았어도 록펠러는 당시로선 거금인 1천만달러를 아무런 조건이 없이 시장 안정화 기금으로 내놓았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이 “정치자금과 자식들에 대한 증여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다”며 고개를 숙인 일은 변화의 싹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 회장에서 이재용씨로 이어지는 경영권 세습’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절세일 뿐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온 것과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다. 삼성은 8천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을 사회에 헌납한다고 밝혀 국민들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기도 했다. 치부가 드러난 뒤 삶의 태도를 크게 바꾼 록펠러의 길을 가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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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펠러 가문과 이건의 가문의 치부를 다룬 두 나라 사법당국의 태도는 대조적이었다. 2005년 12월 'X'파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의 황교안 검사,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출국 5개월 만인 2월4일 귀국하는 이건희 삼성회장, (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2005년 8월 X파일 사건 보도로 검찰에 소환되는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록펠러가 겪었고, 삼성이 현재 겪고 있는 홍역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닮은꼴은 본격적인 산업화를 겪은 지 대략 40년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산업화가 1861년 남북전쟁 발발과 함께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초거대 기업과 공동체 사이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아이더 타벨을 비롯한 폭로 저널리스트들의 활동이 맹렬해진 건 그 뒤 40년이 흐른 때였다. 한국이 산업화를 시작한 1960년대 초반과 지금의 간극도 대략 40년이다. 이를 ‘산업화 40년 증후군’으로 부르는 경제 전문가들도 있다.

한 나라가 산업화를 시작한 지 40년쯤 흐르면 부익부 빈익빈, 부정부패 같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모순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국민들도 경제적 불평등을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해 정치적 갈등이 첨예해진다는 논리다. 이는 자연스럽게 기존 특권층의 추문을 폭로하는 언론인들의 활동이 맹렬해진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요즘 한국의 재계에서 즐겨하는 말로 표현한다면 ‘반기업 정서’가 극에 달한다는 얘기다. 40년 증후군의 밑바탕에는 기업이 급속한 외적 성장에 걸맞은 내적 윤리를 갖추지 못한 ‘불균형 성장’이 도사리고 있다.

국민의 불만과 원성이 커지면 이에 반응하는 정치인 또는 정치 세력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거대 기업에 대한 국민의 원성에 가장 신속하게 반응한 사람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다. 그는 190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매킨리의 러닝메이트로 나서 부통령에 당선된다. 이듬해 9월 매킨리 대통령이 무정부주의자의 저격을 받아 숨지자 백악관을 차지한 다음 제정된 지 10년 넘게 사문화돼 있던 반독점법(셔먼법)을 무기로 거대 기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J. P. 모건이 주도해 철도지주회사로 설립한 노던 시큐어리티스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결국 해체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도 1911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해체되고 말았다.

단호한 조처, 한국과 미국의 차이

미국 의회는 본격적으로 거대 기업 총수들을 불러 청문회 증언대에 세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1912년 말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간 J. P. 모건이었다. 그는 청문회에 나가 혹독한 심문을 받은 뒤 육체적 쇠약에 정신분열까지 겹쳐 이듬해인 1913년 4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소환장을 받는 악몽과 환각에 시달린 것으로 전기작가들은 전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과 100여 년 전 미국의 차이는 이 지점에서 발견된다. 미국의 정치세력과 사법당국이 거대 기업에 단호한 조처를 내린 반면, 한국에선 재벌에 대한 ‘법대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검찰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 한번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리해 빈축을 샀다. X파일을 보도한 기자를 기소한 것과 선명하게 대비돼 마치 코미디를 보는 듯했다. 국회 또한 무기력했다. 국회는 청문회 증인 출석에 불응한 이 회장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내리지 못한 채 꿀먹은 벙어리로 남아 있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진전된 내용의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등 일부 의원들이 삼성 견제에 나서긴 했어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삼성에 법의 잣대를 대는 데 검찰만큼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인 곳은 금융감독위원회다. 금감위는 삼성의 금산법 위반에 애써 눈을 감았다. 금산법은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정신을 담은 것으로, 금융지주회사법과 함께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금융자본) → 삼성전자(산업자본)’로 이어지는 삼성의 소유지배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사안이다. 삼성 계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7.2%를, 삼성카드는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 지분 25.6%를 갖고 있다. 해당 법 조항에서 제시한 한도 5%를 훌쩍 넘어섰을 뿐 아니라 금감위 승인을 거치지 않았다.

금감위 쪽은 해당 법에 처벌 규정이 없다며 아무런 조처를 내리지 않았는데, 똑같은 위반 행위를 한 동부생명이 금감위 명령에 따라 계열 아남반도체 주식을 처분한 것과 대조적이란 점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받았다. 금감위는 동부생명은 삼성카드와 달리 보험업법을 적용받는 금융회사라는 핑계를 댔다가 삼성카드처럼 여신전문금융업법을 적용받는 현대캐피탈이 금감위 조처에 따라 기아자동차 지분을 털어낸 사실이 드러나 의혹만 더하고 말았다. 삼성 문제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미궁을 헤맨 것은 감독당국의 이같은 직무유기성 태도가 톡톡히 한몫했다.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그것도 모자라 2월9일 올해 업무계획 브리핑에서 “(금융·산업 자본 분리 원칙은) 어리석은 것”이라며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주요한 축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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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법 개정안은 또다른 파문

트러스트 해체 뒤 록펠러와 스탠더드 오일은 어떻게 됐을까? 스탠더드 트러스트(그룹)에서 떨어져나온 회사 가운데 펜조일과 셰브론은 독립 뒤 성공적으로 운영돼왔다. 스탠더드 그룹에서 가장 큰 규모의 두 자회사는 모빌과 엑손으로 변신했다가 1999년 다시 합병했다. 록펠러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알듯이 세계 최고의 자선가로 거듭났다. 록펠러의 아들 록펠러 2세는 스탠더드 오일에 입사해 부사장직에까지 올랐다가 뇌물 사건에 휘말린 한 인사의 해임을 건의한 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임했다. 록펠러 2세는 그 뒤 회사 경영보다는 자선사업에 몰두하며 귀족 가문의 명맥과 영광을 이어갔다.

삼성 문제의 본질이 불법·변칙 혐의를 받고 있는 경영권 승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총수의 사과로 끝날 문제는 아니다. 당장 불법·변칙 세습 논란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증여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에버랜드 CB건은 삼성 쪽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총수 가문으로 불길이 번질 수 있는 폭발력을 띤 사안이다. 여기에 삼성의 소유·지배 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금산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바뀌는 법 체계에선 지금처럼 에버랜드를 꼭대기에 둔 채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한 둥지 아래 거느리는 게 어렵게 될 수 있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돌파해나가느냐에 따라 또 한 번 요란한 파열음이 일 수 있다. 삼성 총수 가문이 공동체와 화해하는 영광의 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록펠러 가문의 길이 곧 삼성의 해법이 될 순 없을지라도 하나의 참고는 되지 않을까?

* 참고문헌: 그랜트 시걸의 <세계 최고의 부자>, 진 스트라이우스의 , 론 처노우의 <더 하우스 오브 모건>



오시옵소서 참여연대

쓴소리해줄 ‘삼지모’ 인사로 장하성 교수 거론되나 본인은 거부

삼성그룹이 2월7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이름으로 내놓은 반삼성 종합대책에는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삼성은 삼지모 운영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에 따라 삼성의 경영에 쓴소리를 해줄 사회 각계의 인사들을 모셔 조언을 구하고 비판적인 여론을 수용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평소 대기업에 비판적이고 △명망이 있으며 △본인이 (삼성의 요청을 수락할) 의사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쪽에선 이 본부장의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로 초창기 참여연대 활동을 주도해온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을 꼽을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때마침 장 학장이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바른경영 가치경영’ 과목 초빙교수로 임용한 사실이 알려진 게 이런 추측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장 학장을 비롯해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고 있는 인사들의 삼지모 합류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장 학장에게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직 바통을 이어받아 활동 중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참여연대나 장하성 교수나 삼지모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김 교수는 “그렇다고 삼성과 대화를 거부한다는 건 아니며, 필요할 때 누가 요청하든 (현안에 대해) 대화와 협의에는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상설 협의체 비슷한 형태로 운영하는 방식에선 생산적인 토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경제개혁센터는 지금까지 그런 모임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삼지모가 삼성과 참여연대의 접점이 되긴 어려울 듯하다.






8천억원은 면죄부될까

이재용 상무와 두 여동생 1300억 헌납이 1조원의 주식 취득 가릴 수 있나

삼성그룹의 2월7일 대국민 발표를 전하는 상당수 신문의 1면 제목은 ‘사재 8천억원 사회 헌납’이었다. 천문학적 규모의 액수와 사재라는 낱말의 조합은 대중에게 적잖은 울림을 줬을 법하다.
좋은 일에 쓰라고 돈 내놓겠다는 마당에 숫자를 따지려 드는 게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8천억원을 사재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는 삼성의 불법·변칙 세습 논란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사안이어서 치졸한 숫자 놀음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삼성도 밝혔듯이 8천억원 가운데는 2002년에 설립한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 기금 4500억원(이건희 회장 1300억원, 이재용 상무 1100억원, 계열사 2100억원)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번에 새로 나온 총액은 3500억원인 셈이다. 재단이 삼성의 손에서 완전히 떠나 사회에 조건 없이 헌납되는 질적인 변화를 감안한다고 해도 계열사 자금 2100억원은 사재에서 빼고 셈해야 마땅하다.
이 회장 일가가 새로 내놓기로 한 사재 3500억원은 △이재용 상무 800억원 △이 상무의 두 여동생 500억원 △고 이윤형씨의 재산을 포함한 이 회장 일가의 기부금 2200억원으로 이뤄져 있다. 이 상무 몫은 본인이 부담하고 두 여동생의 부담은 이 회장이 대신 지기로 했다고 삼성은 밝혔다. 두 여동생의 보유 주식은 모두 비상장 상태여서 당장 처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삼성은 이재용 상무와 이 상무의 두 여동생 헌납 기금 1300억원에 대해 ‘시민사회 단체들이 계열사 지분 취득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한 것’이라고 밝혀 이 상무의 지분 승계 과정의 문제점을 완곡하게마나 인정했다는 해석을 낳았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이 상무가 편법으로 취득해 보유 중인 주식의 현재 가치가 1조원을 훨씬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재 8천억원’이란 식으로 불려진 사실과 맞물려 1300억원의 기금 헌납이 지분 승계 과정의 잘못을 덮는 면죄부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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