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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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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쇼크’에 빠진 메디포스트

등록 2005-12-20 15:00 수정 2020-05-02 19:24

줄기세포 관련주로 승승장구하던 제대혈 기업, 하한가로 곤두박질
이번 사태 계기로 거품 잔뜩 낀 바이오 기업들의 옥석 가려질까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12월15일 저녁의 ‘황우석 쇼크’에서 반사적으로 ‘메디포스트’를 떠올린 건 일주일 전쯤 편집장을 통해 건네받은 이메일 때문이었다.

일종의 제보인 그 이메일은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서 생명공학 분야의 교수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바이오 벤처에 집어넣은 돈 때문”이라며 그 대표적인 벤처기업으로 메디포스트를 꼽았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메디포스트는 제대혈(탯줄에서 추출한 혈액) 보관 사업과 제대혈을 이용한 세포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에 힘입어 이른바 ‘줄기세포 관련주’로 거론되며 증시에서 각광을 받고 있었다.

경영진 바뀐 뒤 줄기세포 사업 추가

생명공학 교수들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배경이 실제로 당시 이메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지는 확인할 도리가 없지만, 메디포스트가 줄기세포 관련주의 대표 격으로 거론돼온 것은 사실이다. 황우석 교수가 성가를 한껏 높인 시기에 메디포스트는 주식시장에서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었고, 역으로 ‘황우석 쇼크’ 이튿날엔 주식값이 하한가인 3만7850원으로 곤두박질쳤다.

10개를 훨씬 웃도는 줄기세포 관련주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끈 메디포스트는 2000년 6월 설립된 바이오 벤처기업이다. 회사 설립 뒤 두 차례의 경영진 변동을 거쳐 지금은 양윤선(41), 진창현(39)씨가 공동대표이사로 경영을 이끌고 있다. 양 대표는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전문의 및 교수로 일하다 기업 경영에 뛰어들었으며 메디포스트의 최대 주주(9월 말 12.34%)이기도 하다. 진 대표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외국계 컨설팅 업체에서 컨설턴트로 일한 바 있다.

메디포스트는 올 3월 주주총회에서 기존의 사업 목적(백혈병 등 혈액암의 골수이식 대체기술 개발 및 공급업 등)에 △세포치료 요법과 관련된 백혈병 등 혈액암의 골수이식 대체기술 개발 및 공급업 △줄기세포 치료제 기술개발 및 공급업을 추가했다. 뒤이어 7월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 당시 국내 주식시장은 ‘황우석 열풍’이 불어닥친 때였다. 메디포스트가 코스닥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두 달 전인 5월 황 교수가 배아 줄기세포를 배양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사이언스>에 실린 뒤 조아제약, 산성피앤씨, 이지바이오, 마크로젠 등 줄기세포 관련주들의 가격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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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포스트의 사업 목적에 ‘줄기세포’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데다 제대혈 보관업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회사는 어느새 대표적인 줄기세포 관련주로 부각됐다. 서울대 의대, 삼성의료원 의사 출신이란 화려한 이력을 쌓은 양윤석 대표의 ‘스타성’과 부채 규모가 비교적 적은(9월 말 현재 80억원) 재무 구조도 주목을 끈 요인으로 분석된다. ‘황우석 쇼크’ 직전 메디포스트의 시가총액은 2천억원으로 자본금(20억원)의 100배 수준에 이르렀다. 코스닥 기업 평균적으로 자본금에 견준 시가총액이 12배 정도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평가돼 있다는 분석을 낳는다.

증시에선 이처럼 뚜렷하게 부각됐음에도 메디포스트의 기업적 성과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제대혈에 대한 관심이 치솟았던 2003년 308억7300만원에 이르던 매출은 이듬해 절반 수준인 174억9천만원으로 떨어졌다. 올 들어 9월 말까지도 119억300만원이어서 여전히 내림세다. 당기순이익은 2003년 58억7200만원, 2004년 10억1400만원으로 더욱 가파르게 떨어졌으며 올 들어 9월까지는 적자(7억7800만원)를 냈다. 기업 실적만 놓고 볼 때는 불안정한 흐름이다.

배아 줄기세포와는 전혀 무관

한화증권의 한 애널리스트(투자분석사)는 “창업투자회사(보광)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메디포스트에 대한 투자는 일종의 ‘창고’(제대혈을 보관할) 개념으로 했다더라”고 전했다. 메디포스트의 최대 주주는 지난해 8월 보광창투에서 양윤석 대표로 바뀌었다. 이 애널리스트는 “줄기세포 관련이니, 바이오 관련이니 많이들 얘기하는데, 실제론 쓸 만한 데가 별로 없다”며 “꿈은 큰데 현실은 못 쫓아가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를 지금의 메디포스트로 곧바로 연결지어 해석할 수는 없다. 창투사 쪽의 ‘창고 개념’ 발언은 최대 주주가 바뀌기 전의 일이다. 최대 주주 변경 뒤 사업 목적에 줄기세포 관련업이 추가되고, 코스닥시장에 상장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한 차례 비용을 물면 15년 동안 맡아 관리해주는 제대혈 보관업의 특성상 매출은 당분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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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포스트 쪽은 “지금 당장은 제대혈 보관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있을 뿐 치료제는 아직 개발 중인 단계”라고 밝혔다. 제대혈을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는 상업화에 임박한 임상 실험을 하고 있고, 뇌졸중·척수마비 치료제는 응급 임상(연구 단계) 실험 단계여서 치료제에서 비롯되는 수익은 2008년부터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게 회사 쪽의 설명이다.

다른 줄기세포 관련주와 마찬가지로 메디포스트 또한 (황우석 교수가 만든 것으로 알려졌던) 배아 줄기세포와는 전혀 무관하다. 풍부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원시적인 배아 줄기세포와는 차원이 다른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연구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증권가에서는 배아 줄기세포와 감성적으로 연결되면서 ‘줄기세포 관련주’로 묶여 한 덩어리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시장 참가자들이라고 해서 이런 사정을 몰랐을 리 없고, 증시의 속성상 한 방향으로 몰려가며 거품(버블)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증시는 꿈을 먹고 산다. ‘바이오’ ‘줄기세포’라는 이름만 갖다붙이면 연상 작용을 일으키며 확대해석된다. 기대만큼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거기로 몰려든다.”(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 그렇게 해서 맨 마지막 단계에 ‘그래도 누군가는 나보다 높은 값에 주식을 사게 될 것’이란 기대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거품은 극대화하고 결국 터지는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줄기세포 관련주가 형성되는 과정을 되짚어보면 증시의 속성만으로 여기기엔 너무 과했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예컨대 메디포스트에 앞서 줄기세포 관련주의 대표 격으로 떠올랐던 산성피앤씨는 골판지 원단 및 상자 생산업체다. 업종으로 보아 무관한 듯한 산성피앤씨는 줄기세포 관련 업체로 알려진 퓨처셀뱅크, FCB파미셀에 출자했다는 데 힘입어 줄기세포 관련주로 집중 거론됐다.

손톱깎이 업체가 줄기세포 관련주?

손톱깎이 업체인 쓰리세븐이 줄기세포 관련주로 거론된 것도 비슷한 경우다. 쓰리세븐은 유전자칩 개발회사인 크레아젠을 계열사로 편입했다. 지난 9월 4천~5천원 수준이던 쓰리세븐 주가가 11월10일 3만4800원까지 치솟은 것은 여기서 비롯된 바 컸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줄기세포 관련주로 부각됐던 업체들도 대부분 출자 관계에서 비롯됐다. 바이오 관련 주식과 증시의 휘발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황우석 쇼크는 바이오 관련 기업들에 ‘9·11 테러’와 마찬가지의 심리적 공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배아줄기가 바이오 산업 전체에서 한 갈래에 지나지 않음에도 이번 사태는 산업 전반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란 분석이다. 어쩌면 ‘황우석 열풍’에 무임승차한 부메랑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에셋증권의 황상연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바이오 업체들이 세그멘트(분리)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밸류체인(기업별 실적이나 가치)에 따라 차별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줄기세포 관련주로 얽혀 하나로 여겨진 옥과 석이 구분될 것이란 전망인데, 어느 회사가 옥이고 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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