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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은 성공한 작전인가

등록 2005-09-27 15:00 수정 2020-05-02 19:24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본 맥아더는 ‘온통 제멋대로인 호전적 인물’
1945년 이후 동아시아 정세와 관련해 평가할 땐 ‘분단과 극우정책의 배후’

▣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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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되고 있는 맥아더와 관련된 논쟁 중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1951년 4월까지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있었던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사실과, 전쟁 초기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 사이에서 논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13일이나 끌다가 서울 점령”

그렇다면 미국의 공식 전사(戰史)는 전쟁 당시 맥아더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평가하고 있을까? 미국의 합동참모본부에서 1978년 발간한 합동참모본부사 3권 <한국전쟁>(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서 1990년 번역)을 보면 맥아더는 한마디로 군의 지휘계통을 무시한 독단적인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다.

맥아더가 육군사관학교 시절부터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이르기까지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한국전쟁 당시 많은 군사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미국 내에서 더 유명해졌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맥아더가 미국의 군 통수권자(트루먼 대통령)나 군 지휘계통에서 상부기관(합동참모본부)의 명령계통을 무시했다는 것이 공식 전사에 나타난 맥아더에 대한 평가다.

인천상륙작전을 취소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너무 늦게 본국에 보낸 것이 “군의 명령계통을 무시한 첫 번째 선례”(159~160쪽)였다면, 워싱턴의 결정을 무시하고 유엔군이 국경선까지 진격하도록 명령을 내린 것 역시 “맥아더가 합동참모본부 훈령의 범위를 벗어나 왜곡해 내린 명령의 첫 번째이며 마지막이 아니었다”(290쪽)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맥아더는 워싱턴에서 결정한 정책들에서 벗어나는 성명들을 ‘제멋대로’ 발표함으로써 당시 미국의 정책이 실패할 수 있는 위기에 처하도록 했다. 결국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416쪽)으로 간주했고, 합동참모본부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합동참모본부의 모든 구성원들은 군은 항상 민정당국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종종 피력해왔다. 그들은 이번 경우에도 모두, 만일 맥아더 장군이 해임되지 않으면 각 계층의 미국 국민이 민정당국은 이미 군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비난할 것에 관심을 가졌다.”(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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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참모본부사는 맥아더의 실수와 잘못된 정세인식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다. 우선 인천상륙작전이 맥아더가 장담한 것과는 달리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합동참모본부의 평가였다. 즉, “적의 최정예부대가 섬멸되었으나 고위 사령부와 대부분의 고급장교간부들은 탈출하였고, 적의 예비군사력 역시 고갈되지 않았다”(183쪽)라고 평가하고 있다. 9월15일에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이 13일이라는 긴 시간을 끌다가 9월28일에야 서울을 점령함으로써 북한군이 후퇴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맥아더의 결정적인 실수는 중국군의 참전에 대한 오판이었다. 기존에는 주로 맥아더가 중국군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합동참모본부사는 중국군이 참전한 이후의 오판에 더 주목하고 있다. 중국군이 참전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 1950년 10월 중순이었고, 11월 초 일시적인 소강상태가 있었는데, 이때 워싱턴에서는 유엔군이 취해야 할 전술에 대해 고심했다. 중국군의 참전 규모에 따라 대응 전술을 결정해야 했다. 이때 맥아더는 중국군이 대규모로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유엔군의 공세를 강화하도록 결정했으며, 이러한 오판이 피해를 더 크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일반명령 1호, 한국의 승전국 지위 박탈

맥아더의 매우 호전적인 발언과 정책들도 주목된다. 맥아더는 38선 이북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적이 항복하지 않으면 항복할 때까지 전 한반도가 우리의 군사작전에서 개방되어 있다고 나는 간주한다”(187쪽)는 발언을 했으며, 합동참모본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중국군이 참전한 직후에는 국경 근처의 모든 시설은 물론 도시와 촌락에도 고폭탄이나 소이탄을 사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224쪽). 이러한 그의 호전적인 성격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북한과 만주에 핵무기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그의 전략과 함께 맥아더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판단 지표가 된다.

이렇듯 미국 합동참모본부에서 발간한 전사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에 대한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평가는 객관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맥아더와 갈등을 빚었던 합동참모본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지만, 전쟁 상황에서 지휘계통을 무시한 것은 군인으로서의 맥아더에 대한 평가에 치명적 약점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맥아더의 평가와 관련해서 현재의 논쟁이 한국전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맥아더에 대한 평가는 1945년 이후의 전반적인 동아시아 정세와 관련해서 좀더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맥아더가 일본 점령군 총사령관으로서 전후 일본의 개혁을 총지휘했다는 사실과 함께 한반도의 38선 이남에 설치됐던 미군정의 정책에도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맥아더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패망한 뒤 일반명령 1호를 발표했다. 일반명령 1호는 일반적으로 38선을 중심으로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을 결정한 문서로만 알려졌지만,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중요한 점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승전국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됐고, 결국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참여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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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맥아더는 한국의 분단정부 수립 과정에도 개입했다. 1945년 10월 맥아더는 미군정의 하지 사령관과 함께 도쿄에서 이승만을 만났다. 이후 이승만은 미국의 공식적 정책인 신탁통치안을 반대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맥아더의 후원 속에 미군정의 적극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승만은 결국 맥아더의 후원 아래 분단정부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아울러 맥아더가 일본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일본에 실시한 정책들은 지금까지도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을 점령한 이후 맥아더는 일련의 민주개혁을 통해 전쟁 전과는 다른 사회로의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공산화된 중국 대신 일본을 아시아 자본주의의 축으로 만들고자 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하에서 맥아더의 점령군 사령부는 개혁보다는 일본 자본주의의 부활과 함께 공산주의와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적 정치인들이 부활할 수 있는 정책을 실시했다.

일본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주다

맥아더는 일왕이 신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 외에 전쟁 기간 동안 최고 지도자였던 일왕에게 어떠한 전쟁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점령군 사령부하에서 실시된 전범재판을 통해서 일부 전범들이 처벌을 받았지만, 다른 전범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이로 인해 전쟁이 끝난 지 12년이 지난 1957년 도조 내각에서 활약했던 1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가 일본의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다. 이들의 후손 중 일부는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 극우 보수세력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공주의 사상에 투철했던 맥아더에겐 전쟁 범죄보다는 반공의식이 더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점령군 사령부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반감을 품은 재일 한국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판단했던 것 역시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오늘 동아시아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로 인해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받고 있다. 그 하나가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대결구도라면, 다른 하나는 일본의 극우 보수세력의 정책으로 인한 위기다. 맥아더가 지휘했던 도쿄의 점령군 최고 사령부는 이 두 가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오늘 맥아더를 평가하는 데서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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