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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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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자가 내게 한 일을 알고 있다”

등록 2005-08-31 00:00 수정 2020-05-03 04:24

16년 동안 과자 개발자로 일한 안병수씨가 깨달은 전율스러운 진실
식생활 혁명에 성공한 그는 이렇게 외친다 “당신도 과자를 끊을 수 있다”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안병수(49)씨는 1984년부터 16년 동안 국내 유명 과자회사의 신제품개발팀과 구매팀에서 일했다. 남녀노소 모두의 친구인 과자를 만드는 일은 신바람 나는 일이었다. 광물성의 무표정한 설탕과 물엿, 밀가루에 혼을 넣으며 ‘가공식품의 꽃’을 빚어내는 자신의 손이 미다스의 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과자는 그에게 일종의 ‘종합예술작품’이었다. 흰 가운을 걸치고 성분 실험을 하고 재료를 섞고 시제품을 맛보며 하나의 과자를 탄생시키는 일은 고도의 창의력과 관찰력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했다. 과자를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었다. 자신이 만든 과자, 동료가 만든 과자, 경쟁사가 만든 과자, 해외에서 구해온 과자…. 온갖 종류의 과자를 관능검사를 위해서도 먹고 그냥 좋아서 먹기도 했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역사에 남을 멋진 과자를 만드는 게 그의 소원이었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제과인’으로 산 지 10년째인 90년대 중반이다.

동이 터오를 무렵, 아찔한 충격이…

3년간 일본 도쿄사무소에 파견근무를 나갔다가 돌아온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과자 만드는 일에 몰두했는데, 언제부턴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불쾌했고, 피곤함과 무력감을 동반했다. 이유 없이 몽롱해지는 일도 잦았다. 과로했나 싶어 건강검진도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담배를 끊고 꾸준히 조깅을 했다. 그러나 피곤함과 무력감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해가 흘렀다. 무력하게 지내던 어느 날 오후, 일본 파견근무 시절 교류했던 야마시타 제과 사장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야마시타는 규모는 작지만 슈크림이라는 윈도 베이커리 과자를 생산하며 짭짤한 수익을 내는 회사였다. 야마시타 사장은 와세다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식품에 대해서도 전문가 뺨치는 식견을 갖고 있었다. 아이템 개발부터 생산, 거래처에 진열된 제품의 품질상태까지 일일이 직접 확인했다. 이 과자는 솜같이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껍데기와 달콤하고 시원하게 녹아드는 가운데 크림의 조화가 특징이다. 하나를 집으면 계속 손이 가는 ‘천상의 맛’이다. 슈크림을 먹는 것부터 일과를 시작하는 야마시타 사장의 ‘입’은 원료의 미세한 차이와 생산공정의 작은 실수까지 모두 찾아냈다. 그런데 귀국 3년 뒤 출장길에 다시 만난 야마시타 사장은 좀 달라 보였다. 시장의 반응이 좋은데 왜 생산량을 늘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증설은 무슨, 지금 있는 라인도 뜯어서 치울까 해요. 몸도 안 좋고”라면서 복잡한 표정으로 책을 한권 건넸다. 서고에 처박아두었던 그 책을 찾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책 제목은 <식원성증후군>이었다. 지은이는 일본의 심리학자인 오사와 히로시 교수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인 그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중·고등학생들의 교내 폭력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이유를 식생활에서 찾았다. 이를 토대로 심리영양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개척했다. 각종 연구와 상담사례, 당사자들의 수기 등이 실린 책에는 ‘설마’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 있었다. 한 여학생의 보고서는 이랬다. “제 남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작은 일에도 화를 냈고 성질이 나면 물불 안 가렸습니다. 타고난 성미 탓이려니 했는데 그 애가 어릴 때부터 유난히 단것을 많이 먹었던 게 마음에 걸립니다. 세살 때까지는 거의 사탕을 입에 물고 살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인스턴트 식품과 주스를 탐닉했습니다….”

밤새 책을 읽고 동이 터오를 무렵 그는 아찔한 충격과 당혹감 속에서 우두망찰 앉아 있었다. 책의 내용은 대학(서울대 농화학과)에서 식품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제과업계에서 일해온 그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집고 있었다. 난 정말 무지했구나, 외국에서는 이미 이런 연구까지 있었구나, 트렌드와 신기술을 좇으면서 정작 내가 만드는 식품이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구나…. 과자가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정신건강에까지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은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그는 곧바로 야마시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얼마 뒤 야마시타 제과가 문을 닫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도쿄 긴자 거리에 테이크아웃 전문점까지 생겨날 정도로 각광받는 슈크림 생산업체가 연중 가장 바빠질 때에 공장 문을 닫다니.

아들과 함께 금단현상 극복하기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 초등학생 아들이 설탕 범벅인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단맛에 길들여 자랐다. 아들이 갓난아이였을 때 두유가 유행이었다. 식물성인데다 달콤한 탓에 즐겨 먹였다. 두유맛을 본 뒤로 아이는 우유를 밀어냈다. 그러자 과일 주스들이 쏟아져나왔다. 아이는 물보다 청량음료나 주스를 즐겼고, 밥 먹을 때에도 사이다를 컵에 따라두고 먹었다. 비만이 아니고 충치가 없어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안씨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아들 못지않은 ‘스위트 마니아’였다. 늘 과자를 달고 지냈다. 맞벌이 아내와는 시간 핑계, 맛 핑계로 간편한 가공식품들을 사다 먹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갑자기 과자를 먹지 말라고 하니, 아들의 저항은 컸다. 그는 시리얼 봉지를 빼앗으며 버럭 화를 냈다. 그는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이런 식습관이 몸을 망친다는 ‘심증’을 굳혀가고 있었다.

1년 넘도록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 무작정 휴가를 내고 일본 나리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야마시타 사장을 만나 ‘심증’에 대한 ‘확증’을 얻고 싶었다. 공장이 있던 자리는 창고로 바뀌어 있었다. 수소문 끝에 야마시타 회장의 소식을 들을수 있었다. 고향에 내려갔던 그는 직장암으로 숨을 거둔 뒤였다. 몇달 뒤인 2000년 봄 안씨는 회사를 그만뒀다. 루비콘강을 건너는 심정이었다. 남편의 상태를 가까이에서 봐온 아내는 그의 결단을 존중했다.

과자회사를 그만둘 무렵 안씨의 건강상태는 최악이었다.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졌다. 자신감이 있던 자리를 자괴감이 채웠다. 힘들었지만 과자를 먹지 않는 실천만은 꾸준히 했다. 금단현상이 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16년간 설탕과 물엿에 절어 있지 않았나. 몸속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었겠지만 역시 입은 보수적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전쟁 같은 갈등이 따랐다. 냉장고를 빼곡히 채운 초콜릿, 크림빵, 컵젤리, 요구르트, 비스킷, 잼, 콜라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날을 잡아 냉장고 속을 모조리 비웠다. 아내는 그의 선택에 박수를 쳤다. 문제는 중1이 된 아들이었다. 자기 못지않게 과자를 즐기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변절을 한 셈이다. 그것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는 아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아예 칠판을 놓고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 몸에는 인슐린이라는 신기한 물질이 있어. 몸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데 공부하거나 활동할 때 꼭 필요한 호르몬이지. 이 호르몬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병이나 중풍 같은 무서운 병에 걸린단다. 뚱뚱해지거나 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그런데 이 인슐린은 설탕을 싫어해. 설탕이 많으면 그걸 치워버리려고 하는데, 설탕이 한꺼번에 몸에 들어오면 치우느라 무진 애를 써야겠지? 자꾸 그러면 인슐린이 지쳐버리게 돼. 게다가 인슐린은 참을성이 없거든. 인슐린이 지쳐버리면 아까 얘기한 무서운 병에 걸리는 거야. 냉장고에 들어 있는 과자를 다 없애버린 이유는 과자에 설탕이 무진장 많이 들어 있어서야. 해로운 기름도 많이 들어 있어. 이런 기름을 먹으면 우리 몸의 세포가 허약해지거든. 또 과자에는 맛과 향을 내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어. 원래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건데, 이런 물질이 수십, 수백 가지씩 우리 몸에 들어간다는 걸 상상해봐. 과학자들은 그러면 뇌 활동에도 지장을 준다고 말했어….”

연구 결과를 모아 책으로 펴내다

6개월 뒤 그의 몸에 서서히 변화가 생겼다. 가뿐해지고 머리도 맑아졌다. 이듬해 겨울에는 감기도 앓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감기에 시달리고 입술이 부르텄는데 그런 증상이 없었다. 친구가 하는 벤처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라 제법 바쁜 시간을 보낼 때였다. 고향(경기 평택)에서 땅강아지나 개구리처럼 뛰놀던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1년이 지나자 가장 혹독한 ‘금단’ 증세를 겪던 아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중·하위권이던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라간 것은 뒤늦게 공부를 해서 그렇다쳐도, 집중을 잘 못하고 산만하던 태도가 말끔이 사라졌다. 과자를 치우고 내쳐 자연식으로 ‘식탁의 혁명’을 하고 난 뒤였다. ‘부엌에 있는 시간’의 의미도 달라졌다. 아내와 함께 파와 마늘을 다듬고 콩껍질을 벗기며 얘기하다 보니 부부 사이도 돈독해졌다. 호박 한 덩어리를 가져다놓으면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장난치며 속살을 파냈다. ‘확신’이 들었다. 잘못된 식생활이 서서히, 집요하게 자신을 좀먹어왔던 것이다. 예전에 사석에서 동료가 했던 말이 새삼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장장은 하지 않겠다던 동료는 ‘이상하게 공장장들은 만년에 건강 문제가 생겨서’라고 했다. 제과회사의 공장장들은 누구보다 많이 과자를 먹는다. 품질 관리에는 관록 있는 공장장의 ‘혀’만큼 훌륭한 검증 수단이 없다. 건강 문제로 일찍 회사를 떠난 선배들과 비만·고혈압·현기증·만성피로에 시달리는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과연 그들이 유전적인 병력이 있거나 건강관리를 게을리한 탓일까.

본격적으로 식품과 건강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논문을 읽고 관련 웹사이트를 드나들었다. 벤처회사 일도 접었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출판사도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집필에 들어갔다. 2년 동안 서른번 넘게 고쳐 쓴 책이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국일미디어 펴냄)이다. 국내 필자가 쓴 ‘과자’에 대한 체계적 교양서로 이 분야에서 처음 나온 책이다.

지난 5월 말 책 발간 뒤 일부 인터넷 매체와 방송에 책 소개를 위해 얼굴을 내민 일은 있지만 안씨는 <한겨레21>과 만나기 전까지는 주요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업계의 압력이 있었을까? 대답은 의외였다. “내 생각과 발언이 옳은지 되새겨볼 시간이 필요했다. 이 책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라 국내외의 무수한 연구자들, 야마시타 사장, 그리고 옛 회사의 선후배들이 같이 쓴 책이기 때문이다.” 업계의 직접적인 압력은 없었다고 한다. ‘불평불만’이 들려오는 정도였다. 대신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안 그래도 장사하기 힘든데 더 힘들어지겠다’는 것이고, 다른 부류는 ‘말 나온 김에, 이번 기회에 레벨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후자에는 제품개발자들이 많이 속했다. 안씨는 “직업의식이 투철하다 보면 설탕을 포함한 정제당과 쇼트닝과 같은 나쁜 지방, 수백종에 달하는 식품 첨가물에 대해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친건강 가공식품을 만들고 싶은 소망은 과자회사 개발담당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자 먹으며 행복해질 그날을 위해

가공식품 업계에서도 느리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있다. 지난 5월부터 국내 치킨 브랜드 ‘비비큐’는 전 매장에서 트랜스지방산이 없는 100% 올리브유로만 닭을 튀겨내고 있다. 기름값은 보통 식용유보다 6배 이상 비싸지만 시장성은 밝다는 게 비비큐쪽의 판단이다. 동종 치킨업체의 ‘눈치’와 시장 위축을 우려해 ‘프리 트랜스지방산’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는 않지만 이 소식은 가공식품 업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대두유나 옥수수유보다 올리브유가 좋은 이유는 눌러 짜는 방식으로 기름을 추출해 트랜스지방산 발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참기름과 들기름이 그랬고 최근 일부 가공업체에서 사용하는 유채씨 기름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영아용의 ‘밍밍한’ 대안 과자가 아니라면 통상의 쿠키와 파이, 튀긴 스낵류에 트랜스지방산이 아예 없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미국에는 트랜스지방산이 안 들어 있는 과자가 상용화됐지만, 유럽에서는 아직 대량 생산되지 않고 있다. 대신 유럽은 트랜스지방산 함유 여부를 과자 봉지에 명기하고 잔류 발생량도 규제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형편이 비슷하다. 표기기준과 허용기준이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소비자단체의 압력으로 후생성이 본격적인 ‘규제’ 채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식약청도 최근 “트랜스지방의 과량 섭취는 심장질환의 발생과 상관이 있을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 책이 나온 뒤 4대 제과업체 중 한곳에서는 ‘프리 트랜스지방산’ 과자 생산을 목표로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과자의 미래’를 낙관하는 편이다. 노하우가 쌓인 식품회사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친건강 가공식품의 시대는 반드시 도래하리라 믿는다. 금전적인 투자나 시간적인 투자 같은 ‘고통’이 다소 따르겠지만 이미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안씨는 “과자를 먹으며 몸도 정신도 행복해질 수 있는 시대의 도래는 전적으로 소비자의 손에 달렸다”고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생활의 실천’ 하나를 권했다. 과자를 입에 넣기 전에 이렇게 자문해보는 것이다. “내가 이 정제당과 쇼트닝과 첨가물 덩어리를 꼭 먹어야 하나?”



설탕의 치명적인 결말

당을 즐기면 세포의 에너지원이 고갈되고 치매를 일으킬 수도



설탕을 얻어내려면 열배에 해당하는 사탕수수나 사탕무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추출 공정은 3단계이다. 사탕수수 줄기에서 즙액을 짜내 걸쭉한 원당을 만드는 1단계와, 불순물을 제거하는 2단계, 여기서 설탕을 분리해내는 3단계로 나뉜다. 1단계와 3단계에서 가열·농축 작업이 이뤄지고 매 단계에서 정제 작업이 따른다. 순수 백색 결정체인 칼로리 덩어리 설탕은 이렇듯 위생적이며 아무런 불순물이 없다. 바꿔 말하면 영양분이 전혀 없다. 사탕수수의 섬유질도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설탕의 대사 과정에는 비타민 B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족하면 젖산이 만들어진다. 설탕을 구성하는 포도당과 과당, 젖산은 모두 산성이다. 우리 몸이 산성화되면 중화 반작용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쓰이는 게 미네랄이다. 대표적인 게 칼슘이다. 흔히 설탕을 해롭다고 하는 이유는 이렇게 어렵게 모아놓은 비타민과 미네랄을 축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섬유질이 들어 있는 사탕수수나 사탕무를 그대로 먹는 것은 문제가 없다. 섬유질은 당 성분이 우리 몸에 조화롭게 흡수되도록 통제하고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설탕의 대체물로 꼽히는 정제과당과 정제포도당은 어떨까. 안병수씨는 “마치 미인계라도 쓰듯 변장한 모습으로 식생활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과자회사에서 설탕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물엿도 정제당류이다. 우리 전통의 조청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갈색설탕과 흑설탕, 당밀과 슈거시럽, 카라멜시럽 등 특수당들도 정제당의 사촌뻘이다.
설탕은 빠른 속도로 소화·흡수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당 성분의 빠른 흡수는 급격한 혈당치 상승을 불러오고 이에 당황한 인슐린은 화들짝 놀라 혈당치를 떨어뜨린다. 급격하게 회복시키려다 보니 정상치보다 낮은 수준까지 떨어뜨리는데, 이렇게 되면 금방 설탕을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당탐닉증이다. 이때부터 인슐린과 당 성분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소동이 계속되면 우리 몸의 혈당관리 시스템은 혼선을 빚고 췌장에서는 인슐린을 제때 분비하지 못한다. 본격적인 저혈당증이 나타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인슐린이 날라오던 포도당을 잘 처리해왔던 세포가 지치면 더 이상 인슐린을 받아들이지 않고 문을 닫아버린다. ‘인슐린 저항’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세포에는 에너지원이 끊기고, 갈곳 잃은 당은 엉뚱한 곳(지방세포)으로 옮겨간다. 그 결과 단순히 살이 찌는 것뿐만 아니라 근육이나 신경조직, 장기 등 신체 각 기관들의 에너지원이 고갈되는 끔찍한 상태에 이른다. 가장 먼저 적신호가 켜지는 곳은 뇌다. 뇌세포는 신체의 다른 세포와 달리 포도당 외에 다른 에너지원을 사용할 수 없다. 다른 세포는 당분간 비축했던 대체 에너지를 쓸 수 있지만 뇌는 곧바로 에너지 고갈 상태에 빠진다.
치매환자들 사이에서는 어릴 때부터 단것을 즐겨 먹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치매 환자의 머리카락에는 유독 미네랄의 하나인 크롬 성분이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크롬은 인슐린 기능을 돕는 성분으로 혈당치를 이상적으로 조절해서 뇌 기능의 손상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크롬과 정제당은 악연이다. 최근의 연구들이 치매의 원인으로 정제당을 지목하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얘기다.
안씨는 “당과 우리 몸과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각종 연구를 보면, 우울증 환자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단것을 찾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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