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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논술수업을 기피한다”

등록 2005-07-12 15:00 수정 2020-05-02 19:24

개인지도가 불가능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교사의 참담한 심정
대학 서열화 체제에선 학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막을 방법 없어

▣ 강호영/ 성남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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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가장 좋은 뉴스와 가장 나쁜 뉴스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꼽은 가장 나쁜 뉴스는 대학들이 논술시험을 본고사처럼 출제하겠다는 발표였다. 2008학년도 대입 전형에서 서울대학교가 통합형 논술고사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벌집을 들쑤셔놓은 것같이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사명감만으로 될 일인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나는 논술고사가 도입되면 암기식·주입식으로 흘러가던 우리 교육이 제대로 되겠구나라는 기대도 했다. 누가 물어오면 “논술 교육 강화는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논술 교육은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데 안성맞춤이고, 대학 입시에서 논술 비중이 커지는 것은 어찌 보면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학교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학생은 등교하면 신문을 읽고, 주말이면 도서관을 찾고, 틈틈이 짬을 내 좋은 책을 읽는다.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토론 수업에 애쓴다. 철학적인 문제든, 사회적인 문제든 학생들도 늘 진지하다. 논술과 구술 면접시험이 우리나라 교육 풍토를 많이 바꿔놓은 것, 분명히 맞다.
논술과 면접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사이트 ‘강호영의 논술교실’
(my.dreamwiz.com/ghdud99)을 운영하던 중 한 출판사로부터 “같이 책을 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출판사 관계자는 “요새는 ‘논술’이란 말이 빠지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천도서’ ‘논술 대비 한국문학전집’ ‘논리 논술 세계사상전집’ 등. 항상 그랬듯이, 교육을 어떤 상황에서든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었다. 사이트를 유료화하자는 유혹도 있었다. 조금 지나니 논술 과외비가 한달에 1천만원이 든다는 소리도 들리고,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논술 과외, 독서 학원이 성행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에 견줘 공교육을 담당하는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의 전형에 맞게 개인지도를 해주기 어려우니 거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다급해진 학생과 학부모는 돈보따리를 싸들고 유명하다는 강사와 학원을 찾게 된다. 그러다 투자한 비용에 비해 얻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쯤, 대학 입시는 끝난다. 매년 벌어지는 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도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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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시장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다. 논술 교육에 비용이 많은 드는 이유는 그만큼 논술 지도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선 고교에서는 논술을 지도할 전문가가 부족한데다 전문가가 있다 해도 모두 논술 수업을 기피한다. 예를 들어 한명의 교사가 수강생 30명을 데리고 논술 수업을 했다고 하자. 당연히 수업의 목표는 30명의 학생이 모두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개인별로 많이 쓰게 하고 쓴 것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봐주면서 첨삭 지도를 해야 한다. 그것도 학생이 지원하려는 대학에 맞게 개인별 맞춤 지도를 해줘야 한다. 드는 노력과 시간이 엄청나다. 그래서 논술 학원 수강료와 과외비가 비싼 것이다. 실제 시간을 쪼개 학생들의 글을 한두번 고쳐주면 아이들의 글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진다. 마음처럼 아이들에게 신경써주지 못하는 게 늘 마음의 짐이지만, 교사에게 사명감만으로 그 고된 일을 감당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못할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선 학교에서는 손을 놓은 상태고, 학원과 과외 교사들만 배를 불리고 있다. 참담한 노릇이다.

커져만 가는 계층별·지역별 교육 불평등

논술고사가 실시되면서 계층별·지역별 교육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논술 교육을 제대로 받기 힘들다. 지방 학생들의 고민도 모두 알려진 일이다. 지방 선생님들은 “우리 지역에는 논술고사를 보는 대학이 없어서 수도권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려는 소수 학생들은 서울 학원으로 원정 보내는 게 상책”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나마 지방 대도시의 사정이 이러한데, 군·읍 단위 고교 출신의 수험생들은 어떻겠는가?

왜 항상 교육은 제자리인가. 2008학년도에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신 성적 반영을 강화한다고 교육부가 발표하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가. 1학년 학생들은 3년에 한번 치르던 입시 전쟁을 1년에 4번씩 총 12번을 치르고, 학교 정규고사를 잘 보기 위해 내신 성적을 따로 관리해주는 학원으로 몰려가고 있다. 학교 선생님이 가르친 내용을 출제하는 학교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아이들은 학원으로 달려간다.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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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 당국만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최고를 얻기 위한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모든 교육 대책은 백약이 무효다. 미국 사람들은 “하버드대학이 최고냐, MIT대학이 최고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법학의 최고 권위는 하버드, 공학의 최고 권위는 MIT이기 때문에 서로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계열, 학과에서 한 학교가 1위인 경우는 보기 드물다.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지 서울대에 가려는 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에 따른 비용도 줄지 않는다. 이상적인 대안은 모든 대학을 1위로 만드는 것이다. 꼭 서울대가 아니어도 된다면 경쟁은 줄어들 테고 경쟁이 줄면 사교육비도 줄어든다. 그러려면 대학에 개설된 학과들을 과감하게 통폐합해 특성화해야 한다.

차라리 수능 변별력 키우는 것이…

대학들이 논술과 구술 심층면접을 강화하는 것은 수능시험의 변별력 약화 때문이다. 올해 수능 응시자를 60만명으로 놓고 보면, 1등급을 받는 4%는 2만4천명이다. 주요 7개 대학 입학생 정원과 같다. 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고교별 수준차로 인해 출신 고교의 내신성적만 가지고 학생의 수준을 판단할 수 없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팽창하는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처럼 수능시험의 점수와 석차를 표시하고 문제를 다소 어렵게 내 변별력을 키우는 게 훨씬 좋지 않은가 싶다. 어쨌거나, 공교육 기관에서도 수능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 아니라, 망국적인 사교육비 문제다. 자식 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부가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는 비극은 제발 우리 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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