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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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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선택! 내 아이의 영어는?

등록 2005-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4가지 유형으로 살펴본 조기 영어교육 현장…당신은 어디에 속하는가, 어디에 속하고 싶은가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3살 때 망친 영어 평생을 괴롭힌다’ ‘영어꽝 아빠가 순토종 아이를 영어짱으로 만드는 비결’ ‘영어짱! ○○이의 조기유학을 능가하는 영어공부법’ ’사교육 한번 안 시키고 영어 우등생 만든 ○○엄마의 읽기 중심 영어지도법’….

조기영어 열풍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없다. 서점에 쏟아진 각종 조기 영어공부법을 보노라면 누구의 얘기를 들어야 할지 아득해진다. 보통 하나의 언어를 제2언어로 습득하려는 사람들에게 언어 습득의 원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필요성’이다. 주위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또는 지리적 요건이나 직업적 관계에 따라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사실 한국에서의 조기 영어교육도 ‘절대 필요성’의 범주에 속한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할 수밖에 없다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21>은 ‘백가쟁명’ 시대에 돌입한 조기 영어교육의 현장을 취재해 4개의 범주로 조기 영어교육 세태를 분류했다. 당신은 어디에 속하는가. 아니, 어디에 속하고 싶은가.

A. 럭셔리형 “English is money!”

영어 유치원은 기본, 이것도 안심이 안 되면 원어민 개인교사를 붙이는 적극적인 이중언어론자들. 주로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에 많이 살며, 일산·분당 등 새도시에서는 30평 이상 거주자들에게 자주 보인다.

이 유형의 상당수는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많은 영어 유치원은 ‘리터니’(Returnee·귀국자)반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외국에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녔거나,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 서강대학교에서 운영하는 SLP어학원과 스와튼어학원, 폴리스쿨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학원은 체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 강남이나 목동, 일산 등 새도시에 많다.

경기 안양에 사는 김경수(37·이하 가명)씨는 딸 해은(초4)이에 이어 지윤(7)이도 고급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수업료 55만원, 교재비와 식대, 학원 버스비 등을 합쳐 한달 65만~75만원을 쓴다. 지윤이는 오전 9시에서 오후 2시까지 유치원 수업시간 동안 오직 영어만 쓴다. 원어민 담임교사가 영어로 유치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한국인이 보조교사로 뒤치다꺼리를 맡는다. 이 학원에 다니는 수민(6)이는 유치원이 끝난 오후에 원생 5명과 함께 영어 그룹과외를 받는다. 원어민 교사가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엄마들도 꼬박꼬박 찾아가서 참관한다.

이처럼 이 유형에서는 엄마들이 아이의 영어학습에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이중언어 환경을 가정까지 이어주기 위해서다. 강남의 영어 유치원인 ‘설리번스쿨’은 최근 가정통신문에 ‘엄마를 위한 영어문장’을 선정해 보냈다. 매일 부모와 원어민 담임교사 사이를 오가는 일일평가서(everyday communication note)에 부모도 담임교사에게 영어로 의사표현을 하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Today I will pick my son up at school. He will not take bus’(오늘 직접 아이를 데려갈 테니 스쿨버스에 태우지 마세요)와 같은 관용어구들이다. 이렇게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엄마들은 전체의 40% 정도다. 정정희 원장은 “엄마가 담임선생님과 상호 작용해야 교육 효과가 높다”며 “그 주에 유치원에서 배운 영어 표현들도 따로 부모에게 전달해 집에서 연습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에게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일반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그 나이 또래의 한국어 어휘에 빈 공간이 생기는 것. 김경수씨는 “어느 날 지윤이가 팔을 ‘긴 손’이라 하고, 다리를 ‘긴 발’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영어 따라가느라 바빠서 국어엔 신경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산에 사는 백윤정(40)씨는 딸 수연(11)이를 한국어 과외까지 시켰다. 수연이는 영어 유치원 2년을 다닌 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만 한국에서 마치고 뉴질랜드에 가서 2년을 보냈다. 백씨는 “수연이가 귀국해 3학년 2학기에 편입했는데, ‘환자’라는 말도 모르고 천의 자리 숫자도 읽을 줄 몰라 당황했다”며 “1년 동안 일주일에 3번씩 독서교실에 보내고 나서야 다른 아이들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백씨는 수연이의 동생은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일반 유치원에 보냈다.

전문가들은 이중언어 환경을 만들더라도 영어와 한국어의 노출 비율을 ‘50 대 50’에 근접하도록 맞춰야 한다고 충고한다. 정 원장은 “영어 유치원에서 배우지 못한 만큼 집에서는 한국어를 써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B. 기회주의형 “모국어부터 확립! 하지만 돈이 있으면야…”

영어 유치원에 맡기기에는 돈이 없고, 부모가 직접 영어교육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에는 시간도 없고 자신감도 약간 없는, ‘한 많은’ 월급쟁이들이다.

유아교육학자들 가운데 일부가 “모국어 체계가 확립되기 전에 섣불리 외국어 교육을 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사실 한달에 70만~100만원을 들여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물적 여유가 내심 부럽기도 하고 아이가 뒤처질까봐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일반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영어 외에 집안에서 영어 비디오테이프, 영어 학습지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한 김미진(34)씨는 영어 유치원을 미덥지 않게 생각한다. 회사에 다니며 딸 다인(5)이를 돌보는 김씨는 “어차피 초등학교 올라가면 영어 사용환경이 줄어들 텐데, 많은 돈을 들여가며 굳이 보낼 필요가 있겠느냐”며 “영어 품앗이도 회화 능력이 모자라 감히 끼어들 용기가 없고 사실 하게 되면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대신 김씨는 다인이에게 시간 날 때마다 영어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고, 주말이면 동화책을 영어로 읽어준다. 다인이의 언니에게는 영어교사가 방문하는 학습지 프로그램도 시켜봤지만, 별 효과가 없어 다인이게는 그만뒀다.

이중언어와 관련한 인터넷 사이트는 김씨와 같은 이들에게는 보물창고다. 육아영어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모인 쑥쑥닷컴(suksuk.co.kr)과 이에프엘포유닷컴(efl4u.com) 같은 해외 사이트, 이포맘(e4mom.com) 같은 육아영어 수기 사이트가 주요 방문처다.

다인이는 유치원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일주일에 2~3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지만, 발음은 ‘콩글리시’에 가깝다. 다인이는 손님들이 왔을 때 종종 사과를 보며 ‘apple’이라고 말하는 등 영어를 구사해 칭찬을 듣지만, 그게 실력의 전부다.

C. 실속형 “돈은 절반! 효과는 두배!”

영어교육도 부모가 직접 맡아 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에 빠르고 조직화에 강한 실속파들이다. 강북과 새도시 지역에 많다. 책에 많이 투자하고 품앗이 영어교육 등 대안적인 형태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돈이 부족해서 머리를 쥐어짜는 측면도 있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김재신(37)씨는 매주 수요일이면 일산으로 차를 몬다. 아들 지수(5)를 데리고 영어 품앗이를 가는 것이다. 또래 아이 5명과 함께 영어 품앗이를 한 지는 3년째다. 이제 수업 프로그램의 수준이 많이 높아져서 음식과 함께하는 영어놀이가 요즘 주제다. 예를 들어 호박으로 음식을 만드는 날이면 호박이 나오는 영어 동화책을 모두 모아온다. 호박 스프를 만들기 전에 물에 띄워본다. 그러면 호박이 물에 뜬다. 그러면 영어단어 ‘sink’와 ‘float’도 같이 배운다. 과학공부도 영어로 하는 셈이다. 호박씨를 갖고 놀게도 한다.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시키면서도 통합교육의 효과도 보는 셈이다. 이 모든 과정을 영어로 하다 보니 실력이 웬만큼 좋아야 한다. 가장 영어를 잘하는 엄마가 맡는다.

김씨는 수업 준비로 꼬박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 생각도 해봤지만, 지수가 간단한 영화 동화책을 혼자 읽을 정도로 부쩍 발전해서 그만둘 수도 없다. 영어 유치원이나 학원에 보내지 않는 대신 한달에 20만~40만원은 책을 사는 데 쓴다.

이런 실속파로 전환하는 전업주부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영어 & 품앗이’라는 검색어로 찾아봤다. “안양 박달동 근처에 사는 6살 아이들. 영어모임 해보면 어떨까요. 영어라면 저 또한 부족하지만 엄마도 공부한다는 맘으로 도전해봤으면 하네요. 현재 20개월짜리 둘째가 품앗이를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네요. 그래서 큰애도 용기를 내봅니다.”

D. 무시형 “우리집은 영어 제로지대”

영어교육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며 공동육아조합으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이들의 가정은 ‘영어 제로지대’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자교육 제로지대’로, 영어는 물론 국어교육도 없다. 자본주의 경쟁에서 정말로 소신껏 아이를 키우는 ‘강심장’들이다.

아들 효진(7)이를 4살부터 공동육아로 키운 조윤경(32)씨 집에는 그 흔한 영어 비디오테이프조차 없다. “영어 동화책은 친구에게 선물받은 2권이 전부예요. 영어 테이프는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고요. 아이가 먼저 원하지 않는데 할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효진이의 영어 실력은 알파벳 외는 게 전부다. 그나마 엄마에게 배운 것도 아니다. 조씨는 “친구들한테서 듣고 온 것 같다”며 “이중언어는 공동육아에서 관심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동육아는 교육 내용을 외부에서 주입하는 인지교육 대신 감성과 창의성이 발달하도록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외국어 교육과 같은 인지교육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시작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최근 효진이는 한글을 저절로 깨우쳐 혼자 동화책을 읽는다. 아빠가 ‘가나다라…’를 가르친 게 전부인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취학 전 어린이를 상대로 영어를 배우도록 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지 오래다. 그냥 현실이다. 그러나 취학 전 아동을 상대로 한 바람직한 ‘조기 이중언어 교육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토론은 거의 없다.

대신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 부담과 비용이 오롯이 부모들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이중언어자’(소리, 어휘, 구문이 다른 두개의 언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 문제가 불거진 것은, 한국인들이 한창 외국으로 이민 갈 때 이민자 2세들의 언어 문제가 부각될 때뿐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조기 영어교육 열풍은, 조기 이중언어 교육 문제가 국내 문제로 다뤄질 때가 무르익었다는 점을 웅변해주고 있다.



나는 어떤 유형일까

럭셔리형

특징
English is money! 고급 사교육을 주로 이용하는 전문직·부유층.
교육방법
영어 유치원, 원어민 외국어 과외
비용
65만~150만원
장단점
영어를 이른 시간 안에 향상시킬 수 있지만, 한국어 형성에 문제가 생기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음.

기회주의형
특징
조기 영어교육을 불안해하지만, 내심 고급 사교육이 부러운 샐러리맨.
교육방법
일반 유치원의 영어시간, 영어 부교재, 인터넷 사이트
비용
5만~30만원
장단점
한국어 체계를 잡고 외국어에 대한 거부감도 낮출 수 있지만, ‘한국식’ 영어교육에 따른 ‘콩글리시’ 구사 우려.
실속형
특징
비용은 절반, 효과는 두배 나는 대안의 영어교육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전업주부들.
교육방법
책에 많이 투자하고 품앗이 영어교육 등 통합교육에 치중함.
비용
15만~30만원
장단점
거부감 없는 이중언어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원어민을 만나는 기회가 거의 없음.
무시형
특징
영어는 물론 국어를 비롯한 인위적인 문자교육을 거부하는 공동육아 조합원.
교육방법
없음
비용
없음
장단점
아이의 창의성과 전인교육에 좋지만, 이중언어 환경을 접해볼 기회가 전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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