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축하전화가 쏟아지다

등록 2004-11-10 15:00 수정 2020-05-02 19:23

북한주민 인권운동 생각하면 기분 좋은 일… ‘반미어용 방송의 호들갑’엔 우울해져

▣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미 대선이 부시 당선으로 기운 3일 오후부터 나는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인사들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다 멀리 있는 나라의, 나와는 아무런 인간관계도 없는 사람의 대통령 당선에 내가 왜 축하 전화를 받아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별다른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는 미 대선에 기여한 바도 없다.

‘친미주의자’라는 자랑스런 딱지

다만 나에게는 각종 집회나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외치는 “한-미 동맹을 앞장서서 지켜야 한다”는 구호, 그리고 이로 인해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친미주의자’라는 자랑스러운 딱지가 붙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한다면 부시의 재선은 나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한-미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고, 또 굳건한 한-미 동맹을 김정일 독재로 인한 북한 주민의 참담한 인권 탄압을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의 당선이 내 삶의 질 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주식이 좀 있었다면 부시의 당선으로 당일 폭등한 주식의 효과라도 봤을 텐데 그마저 누리지 못했고, 그냥 그의 당선이 내 기분을 좀 띄워놓고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내 스스로가 안도감을 가질 수 있게 만든 정도이다.

부시 당선이 내 생활에 큰 변화를 주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단지, 기자들로부터 앞으로 변화될 한-미 관계에 대한 인터뷰와 기고를 부탁하는 전화를 종종 받고 있다는 것이 미 대선과 부시의 당선으로 인해 내 생활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온 거의 전부이다.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가 나에게 부시 당선 지지와 북한 인권 문제를 포함한 기자회견을 하자는 제의를 해왔지만 대화 도중 좀 쑥스럽고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이를 취소하는 등 부시 당선이 나의 행동 패턴에 고민을 준 것이 또 다른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부시의 당선으로 생긴 별로 유쾌하지 않은 즐거움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부시의 당선에 울고불고하는 ‘별난’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일부 어용방송은 부시 당선에 대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국민들이 자신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힘있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한 나라라는 오만함과 함께 미국을 귀찮게 하거나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외국으로부터 고립하려는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유치한 평가를 내놓으며 나에게 작은 코미디를 선사하고 있어 흥미롭다.

“케리는 선? 착각하지 마세요”

나와 부시는 아무리 생각해도 큰 인연이 없는 사람이 분명한데 우리나라의 어용방송과 일부 반미단체들은 부시와 각별한 관계인 듯하다. 그들은 아마도 ‘부시의 미국은 악’이고 ‘케리의 미국은 선’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부시의 당선에 대한 우리나라 일부 어용방송과 반미단체들의 호들갑을 보면서, 차라리 케리가 당선되었다면 우리 사회의 암적인 생각인 ‘반미’가 좀 수그러들지 않았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까지 하게 됐다.

때문에 나에게 부시의 당선은 축하 전화와 안도감을,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통일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즐거운 하루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반미어용 방송의 한심한 코미디를 본 우울한 하루이기도 했다.

부시의 당선이 우리네 삶에 직접적인 변화를 준 것도 없고 살림도 달라진 게 없지만 친김정일주의자들과 어용방송의 호들갑에 섞인 코미디를 보면서 부시 당선의 무게감을 다시금 느낀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