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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총연맹하고는 안 논다?

등록 2004-09-15 15:00 수정 2020-05-02 19:23

참여정부 들어 대대적 세불리기 작업에 나선 보수단체들… 미대사관과 함께 영어교육도

▣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침묵하는 보수’는 가고, ‘행동하는 우익’이 왔다.

‘원로 보수’들이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이어간다면, ‘청년 보수’들은 우파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행동대원임을 자임한다. 국가보안법이나 비전향 장기수 의문사 인정, 파병, 한총련 합법화 문제 등 ‘전선’이 뚜렷해지면서 이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문화 영역에서도 인재 양성하겠다”

지난 9월11일 오후, 서울 대신동 태평양문화회관에서 인터넷 과 주한 미국대사관이 함께 주최하는 영어교육 프로그램 ‘YES’(Young English Speakers)의 첫 수업이 열렸다. 미국 대사 부인이 9·11 테러와 추수감사절의 칠면조 요리 만드는 방법을 소개했고,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영어공부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최근의 국제 이슈를 영어로 강의했다. ‘YES’는 미국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앞으로 6개월 동안 강의가 진행되고, 성적 우수자는 약 2주간의 미국 연수 특전과 용산 미군기지·비무장지대(DMZ) 견학, 피크닉, 영화 감상, 연말파티 등에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된다. 모든 것은 미국대사관이 편의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은 신혜식 대표의 아이디어다. ‘보수 원로’들이 공권력과 각종 궐기대회, 웅변대회로 사상을 전파했다면, ‘청년 보수’들은 젊은층이 많이 접하는 문화와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는 우파의 목소리를 담아낼 만한 틀이 없어 방법이 세련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좌편향된 문학·음악·영화 등 문화 영역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심을 수 있는 인재를 발굴·양성해, 대한민국의 문화와 전통, 가치관을 전파하겠다”라고 밝혔다.

DJ 정권 말기, 북핵 문제 대두를 계기로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보수단체들은 참여정부에 들어 대대적인 세불리기 작업에 나섰다. 지난해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와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 국민대회’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 국민대회’ 등의 대형 집회는 똘똘 뭉친 보수 세력의 결집력을 자랑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300여개에 이른다는 보수단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는 곳은 손가락을 꼽는다. 그리고 이 단체에서 실제 활동하는 인물들 역시 몇 사람으로 좁혀진다. 1995년에 만들어진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대령연합회’는 단연 ‘발군’이다. ‘밝고힘찬나라운동’의 사무총장을 겸임하고 있는 서정갑 회장은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를 만들었고, 얼마 전에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운영위원장에 선출돼 이번 원로선언을 주도했다.

조갑제씨 글을 ‘경전’삼아…

인공기 소각 퍼포먼스로 유명한(?) 북핵저지시민연대의 박찬성 대표는 과소비추방범국민운동본부와 한국기독교교회청년협의회의 대표 직함 외에도 북핵저지시민연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자유시민연대 등 10여개의 보수단체에서 ‘수뇌부’로 활동 중이다. 박 대표는 보수단체를 행동의 적극성에 따라 국가의 지원을 받는 보훈단체들과 자생적으로 생겨난 단체로 나누어 분석한다. 전자가 정부의 입김 때문에 웬만큼 큰 이슈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 반면, 후자는 “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박 대표에게 자유총연맹과 재향군인회 등 보훈단체는 이미 “어용단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모임도 꾸려지고 있다. 선두 격인 외에도 ‘청년우파연대’와 ‘미래한국연구회’ ‘보수주의학생연대’ 등 보수우익을 지향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동 중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활동보다는 조갑제 편집장이나 군사 전문가 지만원씨의 글을 ‘경전’으로 삼으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어린 원로’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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