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대중의 인간관계 내력… ‘집권 뒤 변했다’ 의심 눈초리도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간관계 내력이 새롭게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내력을 통해 ‘노-김 관계’의 복원 향배를 부분적으로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노 대통령의 과거 접근방식은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신뢰의 상표를 정면으로 내세움으로써, 좀더 큰 것을 얻어내는 전략으로 요약되곤 했다.
일례로 2001년 8월 민주당 광주 국정홍보대회에서 노 대통령(당시 원외인사)은 이렇게 연설했다. “나는 무엇보다 의리를 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DJ를 만나 의리를 지키다 손해본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YS가 급격히 굴러떨어진 것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부산 사람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지금 DJ가 실정을 한다고 해서 DJ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광주에서 DJ를 욕하면 안 된다. 다른 곳에선 그럴지언정 적어도 광주 시민들이 절대로 그래선 안 된다. 내가 부산 놈이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와 싸워서 1등을 한 거야”
당시 김대중 정부는 옷로비 사건 등으로 국정평가가 곤두박질쳤으며, 광주에서도 실망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다른 대선 예비주자들이 은근히 DJ와 거리를 두려던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광주 시민들의 응어리 해소를 정면으로 시도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DJ 차별화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차별화는 배신 행위” “배신의 정치는 종식되어야”라고 외쳤다. 김대중 정부가 언론사 세무조사에 착수함으로써 이른바 조·중·동과 날카롭게 맞설 때는 여권 인사로선 거의 유일하게 언론개혁의 깃발을 치켜드는 뚝심을 보였다.
노 대통령의 오늘이 있게 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경선 승리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뿌린 씨앗들을 거둬들인 결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김 대통령은 광주경선 뒤 참모한테서 경선결과를 보고받고 “이 사람아, 노무현이 이긴 건 조선일보와 싸워서 1등을 한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보여온 김 대통령에 대한 의리가 호남인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노무현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임을 각인시켰다는 뜻이었다.
노 후보는 대선후보가 된 뒤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도 김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대통령님의 업적을 지키겠습니다.” 김홍업·홍걸씨 등 두 아들의 비리 때문에 김 대통령이 참담한 처지에 빠져 있던 무렵이었다.
노 대통령은 집권 뒤에도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변함없는 존경심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청와대 참모들은 설명했다. 또한 김 전 대통령도 노 대통령이 성공해야 자신의 업적이 평가될 수 있다는 ‘숙명적 동반자 관계’임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청와대 참모들은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뒤 노 대통령이 “변했다”는 시각도 일부 존재한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예나 지금이나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은 지닌 것 같다”며 “그러나 단순한 인간적 존경심에 머물 따름이지 확고한 정책철학까지 계승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대선후보가 될 때까진 존경심에다 ‘김심’을 업을 ‘필요’까지 겹쳐 DJ에게 확실히 잘했던 것”이라며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에는 ‘필요’가 약해진 터에 철학도 없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고 말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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