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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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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년들

등록 2005-09-13 15:00 수정 2020-05-02 19:24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격세지감이다. 대니얼 헤니를 보고 “와 저런 남자 사귀어봤으면” 하는 게 분명 맞는데, 왜 “와 저런 아들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먼저 드냔 말이다. 정녕 내 청춘은 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념을 깨는 언니들이 있으니, 이혼한 내 친구의 이혼 안한 이모도 그중 한명이다. 이모는 남편과 같이 작은 가내 공장을 운영하는데, 수년째 연하 애인과도 깨소금을 볶는다. 얼마 전 부친상을 당해(친구에게는 외조부상 되겠다) 남편과 따로, 남친과 같이 강원도로 갔다. 어린 남친이 상갓집 주위에서 혼자 노는 사이 이모는 호상임에도 슬프다고 난리치더니 급기야 시부모님이 사돈 문상을 오자, 시부모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내 친구의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한 이모의 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장례 뒤 뒷정리를 하겠다며 남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는 그길로 남친과 놀러갔다. 며느리도 본 과년한 아줌마치고는 가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평소 “내가 니 이모부를 얼마나 사랑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내 친구를 곤혹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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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주변에는 이런 ‘난년들’이 적지 않다. 친구의 아이를 가르치는 방문 교사를 보자. 마흔 중반인 이 언니는 이혼하고 딸 하나 키우며 산다. 보험설계사, 방문판매원, 일식당 서빙, 학원 강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공사도 다망하다. 호프집에서 설거지하다 만난 17살 연하의 전기공과 3년째 목하 열애 중인데, 친구의 관찰에 따르면 이 언니가 남자를 쥐었다 놨다 하는 스킬은 가히 국보급이란다. ‘애 버릇 나빠진다’는 핑계로 몇날며칠 갈구다가 적절한 때에 문자 메시지 한번 쎄려주면 어린 애인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한단다. 다만 요즘 이 언니보다 두살 위인 호프집 주인이 이 전기공 애인을 넘봐 약간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공과는 무려 19살 차이 나는 호프집 주인 역시 불세출의 여걸이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세 언니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제 손으로 악착스레 벌어 먹고산다. 잡초처럼 생활력이 강하지만, 비둘기처럼 다정한 가족을 두고 있진 않다. 대체로 연하남들을 사귄다. 이른바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여자들이다. 덕분에 일이면 일, 남자면 남자 뜨겁게 올인한다. 먹기 위해 벌고 살기 위해 연애한다. 중산층 이상의 생활·남편·정서·학력·커리어 기타 등등의 소유자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이들의 ‘과감함’은 여기서 나온다. 이런 ‘살아 있는 신화’들을 접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연애는 ‘캐릭터’와 ‘계급’으로 나뉘어지지 ‘세대’로 나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창 때인데도 일부일처하며 ‘나만 억울해’ 하는 사람 있고 주름진 얼굴로도 밤이슬 맞으러 나가는 사람 있다. 등 따습고 배불러도 연애 못하는 사람 있고 춥고 허기져도 연애하는 사람 있다. 잃을 게 많지 않은 여자일수록 어떤 선택 앞에서 훨씬 용감하다. 망설이고 몸사리는 이들은 잃을 게 많은 여자들이다. 대한민국 여자들의 연애 교과서는 잃을 게 별로 없어 용감한 언니들이 써야 한다.

내 친구는? 주중엔 비정규 노동자로 정신없이 일하고, 주말엔 잘 차려입고 한때 교회에 나가다가 최근엔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 종교생활이 목적은 아니다. 하느님 어머니도 용서하실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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