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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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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맥주

등록 2005-04-1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학민/ 학민사 대표 · 음식칼럼니스트 hakmin8@hanmail.net

생뚱맞은 가정이 아니다. 호젓한 카페에서 연인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목을 적시던 한잔의 맥주가 비수로 변해 심장을 후벼판다면? 엉뚱한 상상이 아니다. 노동의 괴로움을 풀려고 퇴근길에 산 한캔의 맥주가 도끼로 변해 당신의 발꿈치를 찍어버린다면? 방정맞은 비약이 아니다. 1차가 섭섭해 몰려간 전문점에서 호기 있게 주문한 맥주 몇병이 총알이 되고, 잠수함이 되고, 전투기가 되어버린다면?
근대 이래 제국주의는 끊임없이 영토 확장을 획책해왔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꿈꾸며 북미·인도·남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스페인·포르투갈은 남미 대륙을 석권했다. 네덜란드·프랑스·이탈리아도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지에 속국을 만들었고, 러시아 또한 동진 남진하며 유라시아 전역을 편입했다. 건국이 늦었던 미국도 태생적으로 물려받은 제국주의적 야성을 살려 중미·필리핀 등지로 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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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막차를 탄 것이 일본이다. 일본은 주변 나라들보다 약삭빠르게 서구로부터 전수받은 과학기술로 근대화를 이룬 뒤 식민지 전쟁을 감행했다. 그들은 한때 조선반도, 중국 대륙에서 인도까지, 그리고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남양군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대동아 공영’의 터전을 마련했으나, 패전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전쟁으로 침략자 일본인들도 수백만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중국, 버마, 필리핀 전선에서, 태평양 해전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일왕의 총알받이로 사라졌으며, 도쿄 공습, 원폭 투하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한순간에 숨졌다. 이 지점에서부터 침략자 일본은 피해자 행세를 한다. 조선·중국·동남아에서의 수천만 양민 학살과 인권 유린, 물자 강탈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쇠하거나 오히려 ‘침략’이 발전을 도왔다는 등 헛소리로 일관한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죄과를 반성하기는커녕 그들 역사에서 침략 만행을 삭제하고, 왜곡하고, 미화하면서 새롭게 21세기판 ‘대동아 공영’을 망상한다. 이 망상을 일본인들에게 끊임없이 주입하고 세뇌하고자 치밀하게 계획된 군국주의자들의 프로젝트가 바로 역사 교과서 왜곡이다.

이 ‘프로젝트’ 뒤에는 집필, 제작비용, 채택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있으며, 그 ‘모임’의 307명 후원자에는 90년대 말 퇴출 지경에 있던 아사히맥주를 일으켜세워 일본 사회의 영웅이 되었던 나카조 다카노리라는 자도 있다. 이자는 2001년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 때 아사히맥주 회장으로 있으면서 지금까지 왜곡 역사 교과서 제작을 주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현재는 명예고문).

한잔의 술 속에는 숙취로 골치를 앓게 하고 불쾌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그런데 아사히맥주 안에는 아세트알데히드에 더해 제국주의, 군국주의, 침략의 마수까지 녹아 있으니, 우리가 왜 이 맥주를 마셔야 하는가? 전국의 ‘애국’ 술꾼들이여 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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