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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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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춤추고 노래하고 나누자

등록 2003-12-25 00:00 수정 2020-05-02 04:23

축제와 자원봉사와 자발적 기부로 운영되는 프랑스 ‘마음의 식당’이 온기를 전하다

“축제하듯 도울 수 있다면….”

프랑스의 겨울, 추위 속에서도 파릇한 잔디 위로 온 천지에 서리가 내리는 요즘 프랑스 전역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노랫가사가 있다. “오늘, 우리는 더 이상 배고파서도, 더 이상 추워서도 안 돼….” 내용과 달리, 아주 경쾌하게 흐르는 리듬이다. 발랄한 리듬과 함께 따뜻함이 물씬 전해지는 것은 노래에 얽혀 있는 수많은 사연 탓이리라. 이 노래는 한겨울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자선단체 ‘마음의 식당’의 주제곡이다. 올해로 벌써 19년째 프랑스의 겨울에 울려퍼지고 있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다.

수많은 연예인들 ‘앙프와레’ 축제 참여

마음의 식당은 1985년, 프랑스의 코믹 만담가 콜뤼시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자선단체다. “내가 어릴 때 가장 힘들었던 기간은 한달이 끝나가는 즈음이었어요. 바로 마지막 30일이었지요.” 70·80년대 사회비평을 담은 코믹한 만담으로 프랑스인들을 즐겁게 했던 콜뤼시인데, 마음의 식당은 경제대국이자 미식가 나라인 프랑스에서 아직도 배고픈 이가 있다는 건 모두의 수치라는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스폰서에 의해 움직이므로 음식값을 따로 받지 않고 공짜로 음식 제공이 가능한 식당’이라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구상이 곧바로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콜뤼시의 명성 덕분이었다. 여기에다 보태진 동료 연예인들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 그리고 모금운동이 힘을 발휘했다.

1985년 가을에 구상돼 곧바로 그해 겨울 문을 연 마음의 식당은 그해 겨울 동안 모두 5천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850만개의 식사를 제공했다. 대단한 성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만들어진 마음의 식당 주제곡을 유명인들이 함께 부르며 국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장자크 골드만, 이브 몽탕, 미셀 플라티니, 카트린 드뇌브 등 정치·연예·스포츠·언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프랑스의 최고 유명인들이 참여한 쇼에서 모두들 “조금만 나누자!”고 외쳤다. 그 덕분에 처음 시도하면서도 그해 겨울 내내 성황을 거둘 수 있었다는 평이다. 1986년 콜뤼시는 오토바이 사고로 숨을 거두지만, 마음의 식당은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마음의 식당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크게 세 가지로, 축제·봉사활동·모금과 운영의 투명성이다. 축제는 창립 때부터 이 운동과 결부된 쇼비즈니스의 형태로 매년 연예인을 주축으로 벌이는 쇼무대다. 일명 ‘앙프와레’라는 이름의 이 실황무대는 노래와 춤으로 엮어지고 비디오와 오디오로 제작되며, 관람비를 비롯한 판매금이 마음의 식당에 기부된다. 앙프와레 외에도 연간 전국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다양한 전시회 및 문화활동들이 있다. 마음의 식당 활동 이미지가 밝고 활기찬 데는 바로 이런 축제들에 힘입은 바 크다.

앙프와레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이 그렇듯, 마음의 식당 운영을 돕는 인원의 대다수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애초 파리에서 시작한 이 운동이 지금은 전국으로 퍼져 모두 113군데의 본부와 2100군데의 음식나눔센터로 커진 데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남을 돕겠다고 선뜻 나선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수시로 모집되는 봉사원들은 모두 4만2천여명(2002년 기준)에 이르며,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아무런 보수 없이 참여하는 순수봉사원들이다.

헌금액 60% 감세 혜택

마음의 식당은 지난해 겨울 모두 61만여명, 이 중 아기들 2만7천명에게 6150만개의 식사를 제공한 마음의 식당이다. 이렇듯 많은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자금의 주축은 무엇보다 일반인들의 헌금과 뜻있는 단체들의 기부금이다. 개인헌금이 전체 원조금의 40%를 넘어 1위를 차지했고, 그 외 국가나 특정 단체의 정기 기부금이 21%, 앙프와레 축제가 16%, 유럽연합에서 식품 형태로 제공된 원조가 12%이었다. 지난해 모두 38만여명의 개인이 헌금에 참여했으며, 이 금액만 모두 3천만유로에 이르렀다.

개인헌금자가 이렇게 많은 데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이른바 ‘콜뤼시법’이라 불리는 헌금에 따른 세금혜택법이 한몫햇다. 마음의 식당이 운영되던 첫해에 고통을 함께 나누자고 헌금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검소한 계층이었다. 부유층은 부유하니 헌금의 당위성을 논할 수 있고, 거금을 기부하는 기업들은 세금혜택을 보게 된다. 하지만 자기보다 더 가난한 이들을 돕자고 나서는 서민층의 남다른 노력에 주목한 콜뤼시는 많지 않은 액수의 헌금에도 면세혜택을 주자는 독창적인 안을 제시했다.

1988년 법안이 통과되었고, 그동안 정부가 바뀌면서 세금혜택 비율과 그 적용액에 대한 규정이 조금씩 바뀌었다. 2003년 현재 콜뤼시법은 과세금의 20%에 해당하는 헌금액에 대해 연간 60%의 세금혜택을 준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연간 과세금이 1천유로라면 ‘1000X20%=200유로’이고, 1~ 200유로까지의 헌금액에 대해 60%의 세금 면제혜택을 준다. 연간 100유로를 헌금하면, 60유로는 세금면제액이 되는 셈이다. 최근 국회에서 66%까지의 면제혜택을 주자는 안이 통과되어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렇게 돈과 식품, 그리고 사람들의 힘을 모아, 가난의 고통을 사랑으로 나누자는 마음의 식당은 그동안 자선영역을 넓혀 산모와 아기들을 위한 식당을 세웠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임시로 묵게 하는 무료 숙박시설도 늘리고 있다.

1993년,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방대한 양의 앙케트로 짜인 책 에서 가난과 고통의 사회학을 제시한 바 있다. 우연이 아닌, 해당 사회의 다양한 요소와 연관을 가지며 탄생되고 지속되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빈곤과 고통을 규정하고 가난은 한 개인의 수치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눠야 하는 사회의 고통이라고 간주한 것이다.

“나서지 않는다면 가난은 우리 탓”

12월8일 19번째 겨울을 맞이하며 마음의 식당이 올 겨울 자선활동을 개시했다. 장자크 골드만이 부른 샹송 ‘마음의 식당’이 마음속에 울려퍼진다. “오늘 우리는 더 이상 배고파서도, 더 이상 추워서도 안 돼. ‘각자 따로’라는 걸 넘어서 내가 널 생각할 때, 바로 내가 나 자신을 생각하는 거지. 네게 대단한 만찬을 약속할 순 없지만, 이 마음의 식당에서 단지 약간의 먹을 것, 마실 것, 약간의 빵과 온기는 약속할 수 있어…. 네 삶을 바꿀 대안이 내겐 없지만, 단지 몇 시간만이라도 널 도울 수 있다면. 자, 나서는 거야. 굶는 이가 있다는 건 내 탓이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우리들 탓이니까….”

앞으로 3개월 동안 하늘에서 내리는 서리에 맞서 땅 위에서 사랑을 전하게 될 마음의 식당에서 배고프고 추운 영혼들이 그들의 고통을 잊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비록 그것이 한순간이라 하더라도….

파리= 이선주 전문위원 seoulparis@tiscali.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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