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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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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인해전술을 원하는가

등록 2004-06-10 00:00 수정 2020-05-03 04:23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font color="darkblue">인권이 아닌 실용주의 관점에서 따져보는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국방부·병무청은 대만에서 배워라 </font>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지난 5월26일부터 사흘간, 나는 나와 함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의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석태 변호사, 최정민 활동가와 더불어 대만을 방문했다. 이번 대만 방문은 원래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위헌법률 심판에 대한 참고자료 작성을 위해 준비됐는데, 대만 방문을 앞두고 5월2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역사적 판결이 내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비슷한 안보환경 속에서 대체복무제도 실시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한 대만의 사례는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어, 많은 언론인들도 우리와 동행했다.

사실 대만은 이번이 초행은 아니었다. 아직 연대회의가 구성되기 전인 2001년 7월8일부터 14일, 이번 방문단 3인을 포함한 10인의 한국 참관단은 대만 내정부의 초청으로 대만을 방문해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시찰을 한 바 있다.( 368호, 2001년 7월18일, ‘이 영광의 절반을 보수세력에게’ 참조) 이 참관단의 일원으로 대만을 방문했던 사람들 중 2명이 이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했는데, 그 중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임태훈씨는 구속 상태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2001년 12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한 직후 연대회의가 결성될 수 있었던 것도 대만 방문을 통해 다져진 팀워크 덕분이었다.

우리는 과연 병역자원이 부족한가

이번 대만 방문 동안 한 가지 의문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한국은 대체복무제도를 대만보다 30년이나 먼저, 그것도 많을 때는 대만의 20배도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고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여전히 감옥에 보낼 뿐 아니라, 병역자원 운용에서도 효율성, 형평성, 민주성을 제고하지 못하는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대한 오해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면 우리 안보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점이다. 또 대만이 대체복무제도를 2000년부터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병역자원이 남아돌기 때문이지만, 우리는 병역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저히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수 없다는 주장도 흔히 들을 수 있다.

대만은 1990년대 중반까지 2천만을 조금 넘는 인구로 한국과 같은 규모인 60만 대군을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45만으로, 2000년대 들어 38만5천으로, 34만으로 다시 30만으로 급속히 병력을 감축해왔다. 현재 2300만 인구가 30만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인구 76.67명당 군인 1명을 부양하는 것이다. 한국은 4800만의 인구에 69만명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어 인구 69.57명당 군인 1명을 배출해야 한다. 대만이 최근 절반 수준으로 감군을 단행한 결과 현재의 인구 대비 병역 의무 부담은 한국보다 조금 가벼워진 상황이지만,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될 당시 약 40만의 병력을 보유했던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오히려 한국보다 인구 1인당 돌아오는 병역 의무의 부담은 더 무거웠다.

대만이 1990년대 후반 이래의 감군으로 병역자원에 여유가 생겨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는 전기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병역자원의 부족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군이 처음 60만으로 팽창한 1954년 당시 한국 인구는 2천만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인구 규모는 2.4배 증가한 4800만인 반면, 병력 수는 1할 조금 넘게 증가한 69만이다. 반면 복무기간은 당시 3년에서 2년으로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때문에 한국군은 1954년 당시에 비해 상당히 병역자원이 넘쳐나게 되었고, 따라서 197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대체복무제도를 운영해온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의 개선을 주장하는 연대회의 등 시민단체나 종교신자들의 요구에 대해 국방부, 병무청 등은 병역자원의 부족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은 대만보다 훨씬 폭넓은 대체복무제도를 이미 30년 전부터 운영해왔다. 1969년 방위병제도 도입, 1970년 전투경찰대설치법, 1973년 특례보충역제도 도입 등은 한국이 대만보다 30년 먼저 광범위한 대체복무제도를 운영해왔음을 보여준다. 대만이 국위 선양에 큰 도움이 된다고 자랑하는 외교역과 유사한 제도도 한국은 대만보다 앞서 운용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공익근무요원 5만5천명, 산업기능요원 5만5천명, 전문연구요원 1만5천명, 공중보건의 4천명, 상근예비역 3만6천명, 전·의경 5만명 등 20만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현역이 아닌 대체복무를 통해 병역의 의무를 대신해왔다.

지난 30여년간 많게는 20만명이 넘는 대체복무 인원을 운용해온 한국이 갑자기 병역자원의 부족 운운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병무청이나 국방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제도 마련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해주기 싫어서 안 해주는 것일 뿐이다.

입영 대상, 쓰고도 쓰고도 남는다

한국이 과연 병역자원이 모자라는 나라인가?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돼야 할 문제이다. 하나는 한국이 지난 1954년 이래 대체로 60만에서 70만의 대군을 유지해왔는데, 이것이 적정한 규모인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는 현재의 병력 규모인 69만 중 징집된 사병은 55만가량인데 매년 입영 대상이 되는 청년들의 수가 이를 감당하기에 부족해지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의 군당국이나 사회에 병력감축으로 인한 국방력 약화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하자, 대만 당국자들은 아직도 한국군은 병력의 머릿수를 그렇게 중시하느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현대전에서 전투력은 화력이 좌우하는 것이지, 병력 수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투력 강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반면, 국민들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게 되는 많은 병력을 보유하는 것보다 소수정예의 과학화된 군대를 운용하는 것이 국방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과연 한국군의 적정 규모는 얼마여야 하는가 하는 점은 고려할 사항이 여러 가지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병의 비중이 한국전쟁 당시보다는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한국전쟁이 한창일 당시에 20만~25만의 군을 유지하다가 휴전 이후 60만 대군으로 늘려놓았다. 한국전쟁과 비교해본다면 전쟁 때 동원 가능한 예비군을 이미 모두 동원하여 군복을 입혀놓은 것이 현재의 한국군이다. 때문에 한국군에서 현역으로 복무한 뒤 전역한 사람들은 군대에서 가장 많이 한 것은 삽질이었다고 회고한다. 한국 사회는 1954년 한국군을 60만 대군으로 성장시킨 이래 단 한번도 한국군의 적절한 규모가 얼마인지에 대해 시민사회 차원에서 논의해본 적이 없다. 한국은 현대전의 양상 변화, 동서냉전 체제의 붕괴와 남북관계의 변화, 한국사회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등의 요인을 감안할 때 군 구조 개편을 포함한 국방 개혁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한국의 병무당국은 한국의 입대 대상 청년층의 인구가 줄어든다고 엄살을 피우고 있다. 출산 기피로 해당 연령층의 인구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감소 추세가 바닥을 치는 2006~2008년에도 연도별 19살 남자의 수는 32만명을 넘는다. 2년의 복무기간을 가진 55만명의 사병 집단을 유지하려면 매년 27만5천명이 입대해야 한다. 19살 남자인구가 2006년에 32만명이 된다는 것은 1995년 이후 해당 연령 남성인구가 최고에 달한 2000년의 42만명에 비하면 10만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32만명이란 수는 여전히 매년 한국군이 요구하는 사병 수요를 다 채우고도 4만~5만명이 남는 수이다. 과거 군이 필요로 하는 수요 인원을 다 채우고 남는 20여만의 잉여 인력을 각종 병역특례로 인심 쓰듯 떼어주던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지만, 결코 현역자원이 부족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한국은 입영 대상 인구가 바닥을 치는 2006년 상황에서도 오히려 대만이 운용하고 있는 대체복무 규모(매년 1만명 내외)를 훨씬 넘는 인원이 여전히 잉여 인력으로 존재하게 된다. 입영 대상 청년층 인구의 감소로 현재와 같은 방만한 방식의 대체복무 인원 운용에는 감소가 불가피하겠으나, 한국의 잉여 자원 규모로 볼 때 매년 600명 내외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를 해결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에게 지뢰제거 작업을 시키자?

대만에서 지난 3년간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된 경험을 보면 대체복무제도가 결코 쉽지 않다는 인식이 젊은 층에 퍼지면서, 현역의 수급은 전혀 문제되고 있지 않다. 또 일반 젊은이들 사이에는 대체복무보다 현역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이는 “꼭 가고 싶습니다” 식의 박카스형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은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익근무요원들이 현역에 비해 차별받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대만에서 대체복무제도 도입의 전도사 역할을 한 중타이리 역정서 부서장의 아들도 대체복무를 마다하고 현역으로 입대했다고 한다.

한국 병무청의 자료를 보더라도 신체검사에서 병역 면제나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뒤 자기 비용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재신체검사를 신청한 사람이 재신검 신청 제도가 생겨난 1999년 3월부터 2001년 9월까지 2년6개월 동안 모두 1059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미 수십년간 대체복무제도를 운영해온 경험에 비추어볼 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제도를 허용한다고 해서 현역병 수급에 차질이 오리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또한 대체복무자들도 한국의 공익근무요원이나 과거의 방위병과는 달리 내무생활을 하고, 기간도 길며, 일도 현역에 비해 쉽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대체복무와 현역과의 형평성 문제는 제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복무기간이 너무 길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어 이들의 복무기간이 처음 현역의 1.5배에서 지금은 1.1배로 줄어들었다.

지금은 줄어들고 있지만, 불과 4~5년 전까지 한국에서는 20만 가까운 인원이 대체복무를 해왔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일부에서는 현역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복무란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현역들이 져야 하는 복무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에 나온 얘기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진짜 해답은 적정 병력 규모를 산출하고- 아마도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여도 될 것이다- 이를 일상생활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제외한 면제자와 꼭 필요한 대체복무요원을 제외한 전체 인구가 공정하게 부담해 개인이 지는 부담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인터넷에서 보면 일부 예비역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할 만한 대체복무로 “한반도에 있는 지뢰 제거 작업을 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지뢰야말로 전쟁과 폭력의 상징이므로 그것을 제거하는 일은 그들이 원하는 평화를 실천하는 적극적인 방법”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달아서 말이다. 어떤 예비역들은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록도에서 한센씨병 환자들 수발 및 봉사나 무의탁·무연고자들이 모여 있는 각 지방 정신병동에서의 봉사, 또는 시한부 생명을 사는 에이즈 환자를 위한 봉사 활동 등은 되어야 대체복무를 받아줄 수 있다고 말한다.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평화주의적 신념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람들이 제일 하고 싶어하는 일은 이라크의 전장에 가서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총을 들고 가서 알량하게 평화와 재건을 위해 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온 평화의 벗으로서 진정 피해자들과 고통을 나누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출국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라크에 갈 수 없다면 그들은 지뢰 제거라도 좋다고 말한다. 총을 들지 않는 일은 그만큼 그들에게는 절실한 문제이다.

대체복무 중 자살자 · 의문사 1건도 없어

한국은 2001년 12월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씨를 비롯해 모두 14명이 평화주의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 반면 대만의 경우 종교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보호 조치는 대체복무제도 도입과 함께 마련됐던 반면, 평화주의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보호 장치는 차후의 과제로 미뤄졌다. 이 문제는 2001년 7월 한국 대표단이 처음 대만을 방문했을 때도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아직 비종교적 평화주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나오지 않았으며, 이들을 위한 입법 조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대만에서 대체복무자를 위한 훈련에는 제도 도입 당시에는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이 포함돼 있었다. 종교적 이유로 대체복무를 신청한 사람들은 이 4주간의 훈련을 면제받는 대신 4~11개월을 더 복무한다. 한국에서도 병역특례자들이나 공익근무요원은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으면 집총하지 않고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 대만은 최근 대체복무자들의 훈련과정에서 군사·사격훈련을 삭제했다. 대체복무자들의 교육 내용이 법적으로 규정돼 있지는 않기 때문에 대체복무자들을 위한 훈련에서 군사·사격훈련을 삭제하는 작업은 별도의 입법 조치 없이 이루어졌다. 대체복무요원들이 실제로 총을 들고 싸워야 할 일은 없고, 유사시에도 현역과 예비역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국방부나 역정서(병무청)가 모두 판단했다. 대신 대체복무자들에게 긴급구조과정, 체력훈련, 전문과정, 예절교육 등을 강화해 실용적이고 생동감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

대만은 대체복무자들에게 불필요한 군사훈련을 강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비종교인으로 평화주의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려는 사람들은 전문자격을 갖추거나 자원봉사를 많이 하여 자격요건을 갖추고 대체복무에 지원하면 된다. 이들은 집총하지 않고 병역의 의무를 대체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병역특례의 자격을 갖춘 많은 사람들이 4주간의 군사훈련 때문에 3년여를 감옥에서 보내고 평생을 전과자로 살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대체복무자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군사훈련을 없앰으로써 대만은 평화주의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인해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도 20여만의 병력으로 전쟁의 대부분의 기간을 치렀고, 현재 70만의 대군에 300만의 예비군을 보유한 나라에서 대체복무자들이 군사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사연이 과연 있는가?

2001년 1차 대만 시찰에서도 지적됐지만, 대체복무제도는 군대 내 인권 문제를 크게 개선시켰다. 대체복무 인원 중에서는 자살자나 의문사가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군내에서도 복무 부적격자들이나 신체등급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대체복무로 걸러질 뿐 아니라, 일단 대체복무와 현역 중에서 일정한 선택의 기회를 준 뒤 현역에 응한 사람들만으로 군을 운용하다 보니 사병들의 복무 적응도가 크게 향상됐다. 이 때문에 군에서도 자살, 의문사, 각종 안전사고가 크게 줄어들어 지휘관이나 사병 모두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문제는 대체복무자들에게 전혀 선택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공익근무요원 중 현역과 같은 신체등급을 받았으나 학력이 고등학교 중퇴 이하라는 이유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신체등급 1~3급자의 54%가 현역 복무를 희망하고 있으며, 4급자의 경우도 40%가 희망하고 있다. 반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등 군 입장에서 볼 때 군에 데려와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 또는 복무 부적응자로 사고 요인이 있는 사람 등은 아무런 선택권이 없이 군에 끌려가 감옥에 가거나 사고를 쳐서 본인이나 전우의 생명과 신체에 큰 손실을 입게 된다.

국방의 효율성을 높이고,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 대체복무제도이다. 우리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대만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가난한 시민단체에서 2차례에 걸쳐 대만을 방문했고, 또 대만의 입법위원과 역정서 고위관리를 2번이나 초청했다. 그런데 대만 역정서 책임자에게 확인한 바로는 정작 한국 국방부나 병무청에서 대만의 대체복무제도를 살펴보러 관리를 파견하거나 자료 요청을 한 바 없다고 한다. 연대회의를 비롯한 시민사회나 여호와의 증인쪽에서 한국의 심각한 병역거부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참고사항으로 대만 이야기를 지난 3년간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도 말이다.

효율성도 높이고, 인권침해도 막고…

연대회의는 그동안 주로 인권의 관점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촉구해왔다. 이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대만 사람들처럼 인권이 아닌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한국전쟁 때도 인해전술을 쓰는 중국군을 상대로 20만 조금 넘는 군대를 운용한 한국 땅에서, 경제력에서 우리의 30분의 1, 인구에서 우리의 2분의 1에 불과한 이북을 상대로 과연 69만 대군을 운용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이미 30년간 많게는 20만이 넘는 대체복무 인원을 유지해온 나라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이 정말로 불가능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과 사회봉사를 시키는 것 중 어느 편이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국방의 의무는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대체복무제를 통해서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는 병역의 의무를 개선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대만은 실용주의적 개혁을 통해 인권 문제도 해결한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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