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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 김상만의 ‘선견지명’

등록 2001-07-26 00:00 수정 2020-05-03 04:22

맏아들 김병관 못마땅히 여겨 소유구조 바꾸려 해… 김재호는 아직 능력 검증안된 상태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당시 회장)은 지난해 10월 ‘고대 앞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대낮에 술을 먹고 횡설수설한 이 사건으로 그는 동시에 ‘언론사 사주 자질론’을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졌다. 우리 언론사주들이 최근 타계한 워싱턴포스트의 케서린 그레이엄 회장처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기업 소유주 이상의 도덕성이 있는가. 또 나아가 그 자신이 큰 신문사를 이끌어갈 만한 경영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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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과 김병관의 갈등

김 명예회장은 김씨 집안의 장자 계보를 이어 사주 자리에 올랐다. 그는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의 장손이자 전 사주인 일민 김상만의 맏아들이다. 김 명예회장은 1968년 관리부 차장으로 동아일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광고국과 판매국을 거쳐 상무(81년), 전무(83년), 부사장(85년), 발행인(87∼99년), 사장(89∼93년), 대표이사 회장(93∼2000년)을 거쳐 지난해 명예회장 자리에 앉았다.

김씨 족벌신문에서 그의 고속 승진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동아일보 사주까지 오르는 길이 꽃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민은 그의 맏아들이 사주가 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게 동아일보 내부사정에 밝은 사람들의 귀띔이다. 일민은 젊어서부터 맏아들의 행실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동아일보 사줏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일민은 아버지인 인촌을 거의 신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세운 신문의 위상이 흔들리는 걸 보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했다. 일민은 미덥지 않은 맏아들에게 동아일보의 미래를 맡기는 걸 꺼려했던 것이다.” 한 동아일보 고위직 출신 인사는 “그래서 일민은 차라리 동아일보가 설립되던 초기 형태로 소유구조를 돌리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초기 소유형태란 일종의 ‘국민주 언론사’를 말한다(쪽기사 참조). 이 인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시 일민의 생각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조·중·동 3대 족벌언론사 가운데 한곳이 족벌체제를 벗어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얘기다. 다른 한 인사는 “정체성을 잃고 추락하는 지금 동아일보의 모습을 보면 일민이 대단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이라고 말해, 일민의 이같은 의도를 간접적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93년 3월22일 열린 동아일보사 주주총회와 이사회의 결과는 많은 암시를 담고 있다. 그해 <동아일보> 3월22일치 보도에 따르면, 동아일보사는 이날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명예회장에 김상만 명예회장을 재추대하는 한편 사장(발행인)에 김병관 대표이사, 부사장(편집인)에 권오기 대표이사를 재선임했다. 그런데 다음날 <동아일보>는 전날 보도와 조금 다른 내용의 보도를 다시 내보냈다. 김병관·권오기 두 대표이사의 직위가 회장과 사장으로 한 단계씩 뛰어오른 것이다.

왜 동아일보는 똑같은 주주총회와 이사회 결과를 두고 하루 만에 다른 내용을 보도한 것일까. 23일치 기사에는 전날 보도가 오보였다는 설명은 없다. 오보가 아니었다면 이사회가 두번 열려 임원 선임을 다시 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다른 동아일보 출신 인사는 “당시 일민과 맏아들 사이의 갈등 때문에 이사회가 우여곡절을 겪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듬해 일민이 숨진 뒤 김병관 당시 회장은 동아일보사 부동의 사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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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영향력 행사해 온 이현락 전무

동아일보가 조선일보와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지면의 최고책임자인 발행인을 족벌 일가가 독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동아일보는 발행인 오명 회장, 편집인 김학준 사장 체제를 갖추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외부에서 영입해온 인물들이다. 형식상 동아일보 지면의 최고 책임을 외인부대가 맡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동아일보 안에서 어떤 구실을 하고 있을까.

두 사람 모두 김 명예회장의 아들인 김재호 전무가 경영권을 세습받는 과도기의 ‘계투요원’이라는 게 동아일보 안팎의 일치된 시각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동아일보 내부의 역할 기대는 다소 다르다. 오 회장의 경우 96년에 전문경영인 영입 케이스로 동아일보사 사장으로 입성했다. 그는 한통프리텔에 주식투자해 동아일보에 장부상 거액의 시세차익을 안겨주기도 했으나, 지면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99년 논설고문으로 동아일보와 인연을 맺은 김 사장은 올해 사장이 됐다. 오 회장과는 달리 한때 조선일보 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그는 동아일보 지면에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됐다. 동아일보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노조도 김 사장이 큰 잡음 없이 어느 정도 사주의 입김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세무조사 국면 대응에서는 사실상 손을 뗀 상태다.

이런 가운데 ‘미래의 사주’ 김재호 전무는 아직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상태다. ‘성격이 소탈하고 귀를 열어 놓고 들으려 한다’는 정도가 그에 대한 평가의 전부다. 동아일보 내부에서는 ‘아버지보다 낫다’는 평가와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 때문에 김 명예회장은 아들을 올해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려다 그만 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아일보의 지면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로는 이현락 전무가 꼽힌다. 동아일보 공채 출신인 이 전무는 김 명예회장 ‘집권’ 이후 편집국장, 신문본부장, 주필 등을 맡아왔다. 이 전무는 신문본부장과 주필로 있으면서 날마다 신문제작을 직접 총괄지휘해왔다는 게 동아일보 안팎의 얘기다. 대부분 신문들이 편집국장 책임 아래 지면을 제작하고, 예외적으로 발행인과 편집인, 주필, 논설주간, 편집국장 등이 대편집회의를 통해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 전무는 오전·오후와 가판 발행 뒤 등 하루 세 차례씩 회의를 열어 신문제작을 총괄지휘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 출신 한 인사는 “이 전무가 신문본부장과 주필로 있는 동안은 논설위원실의 독립된 글쓰기는 물론 편집국의 편집권 독립도 사실상 사문화됐다”며 “이 전무는 자신의 입사동기가 편집국장을 할 때도 일일이 지면제작을 지시하는가 하면 다른 편집국장은 가판만 만든 뒤 퇴근해버리고 이 전무가 시내판 지면을 조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병관 명예회장 체제의 동아일보가 조직적이지 않고 특정인이 주도하는 식으로 굴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동아일보 지면의 정체성 상실과 관련이 있으며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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