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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시키려는 대체복무 연구용역?


국방부, 형평성 잃은 여론조사 결과 서둘러 발표… 용역 책임자 “본말 호도” 격앙
등록 2008-12-30 11:19 수정 2020-05-03 04:25

국방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 국방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무청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발표의 요지는 여론조사 결과 대체복무 허용 반대가 68.1%, 찬성이 28.9%라는 것이다. 이로써 국방부가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9월에 발표한 대체복무제 추진 허용 방안은 백지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방부는 지난 9월부터 대체복무제 추진 재검토 논란이 일자, 연말까지 진행되는 병무청 연구용역 결과에 바탕해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리고 대체복무 허용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재빨리’ 발표했다.

병역거부 운동단체인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이 서울 망원동 사무실에서 국방부의 대체복무 도입 백지화 움직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병역거부 운동단체인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이 서울 망원동 사무실에서 국방부의 대체복무 도입 백지화 움직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사실 병역거부 운동 진영의 기대가 컸다. 병무청이 이번 조사의 연구용역을 의뢰한 대전대 진석용정책연구소의 소장인 진석용 교수가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10월엔 국회의원, 변호사, 교수, 기자, 종교인 등 전문가 55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85.5%가 대체복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실시한 전문가 여론조사는 병무청이 의뢰한 연구용역의 일환이었다. 더구나 한나라당 국방위 간사인 유승민 의원도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대체복무 허용 입장을 보였다. 또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방부 장관 출신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국방부가 용역 결과를 보고 대체복무 허용을 결정하겠다고 미루는 것은 국민에게 약속한 사안을 번복하는 것”이라고 민주당 의원들과 호흡을 맞추어 비판했다. 여기에 미 국무부의 ‘2008년 세계종교자유 보고서’에도 한국의 병역거부자 수감 문제가 지적됐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대체복무 허용 여론이 높았다. 2008년 9월 실시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 대체복무제 허용 찬성(44.3%)이 반대(38.7%)를 앞섰다.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961sample’의 조사에서도 찬성(55.9%)이 절반을 넘어 반대(38.9%)보다 많았다. 그러나 병무청이 의뢰하고 대전대 곽현근 교수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맡겨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여론조사에선 68.1%의 반대 결과가 나왔다.

양자택일의 문제로 설문 작성

이것은 국방부의 자가당착과 이어진다. 국방부는 2007년 9월 대체복무제 추진 방안을 발표할 당시에 허용 검토의 주요한 근거로 여론조사에서 찬성 여론이 마침내 많아졌다는 사실을 들었다. 당시에 국방부는 2007년 7월 한국방송 여론조사에서 대체복무제 허용 여론이 50.2%로 반수를 넘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여론조사는 질문의 형태에 따라 응답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병무청이 의뢰한 이번 조사에서는 ‘귀하께서는 종교적 사유 등 병역거부자들이 군에 입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군 입대 대신 사회봉사 등의 대체복무를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최정민 병역거부연대회의 공동대표는 “대체복무가 아니면 감옥인 현실인데, 마치 대체복무가 아니면 군 입대하는 것처럼 질문했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대체복무는 군 입대 기간보다 2배 길고, 양로원이나 한센인 병원 등에서 힘든 일을 한다는 사실이 질문에서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야 하는데, 그러면 감옥에 보내자는 얘기냐는 질문을 하면 ‘그것은 아니다’라는 여론이 높게 나오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잘못된 질문에서 나온 잘못된 결과란 것이다. 앞서 엇갈린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질문의 형태나 병역을 둘러싼 사회 분위기에 따라 대체복무 여론조사 결과는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방대한 대체복무 운영 보고서 무색

한편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대체복무제에 대해 많이 알수록 찬성 여론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에서 ‘병역거부자 문제의 사회 이슈화’에 대해 다른 집단에 견줘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서울 거주자, 대학 재학 이상, 화이트칼라, 천주교 신자층 등에서 다른 집단에 견줘 높은 허용 찬성 결과가 나왔다. 한홍구 교수는 “사실 소수자 인권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국방부가 할 일은 여론조사가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는 홍보활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방부가 왜 방대한 연구용역 보고서 중에서 여론조사 결과만 따로 떼어 서둘러 발표했는지 의문”이라며 “국방부 장관 교체설이 무성한데, 수구 쪽의 점수를 따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진석용 교수팀이 병무청에 연구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지난 12월20일. 병무청에서 다시 국방부에 보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국방부가 브리핑을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12월24일로 ‘발 빠른’ 행보였다.

병무청의 연구용역을 받아 보고서를 제출한 당사자도 당황했다. 연구용역 책임자인 진석용 교수는 “병무청에 제출한 보고서는 5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여론조사 결과는 그것의 아주 일부일 뿐”이라며 “우리 연구는 대체복무를 도입할 경우에 어떻게 제도를 운영할지가 중심인데, 빙산의 일각인 여론조사 결과만 가지고 대체복무 허용이 시기상조라고 하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팀의 연구는 대체복무제를 실시할 경우에 어떻게 운영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여론조사가 그렇게 중요하면 먼저 여론조사를 하고 나중에 대체복무 운영방안 용역을 주었어야 절차상 옳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가 제출한 보고서엔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30여 개국의 실제 운영 상황, 국내 복지기관에서 대체복무자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는 “유럽연합 27개국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대체복무를 인정하고 있다”며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터키에 대해 유렵연합은 가입조건으로 대체복무제 허용을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유럽에선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가 보편적 인권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정권 바뀌면 국민과 약속도 뒤집나

국방부는 2007년 9월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해 국민과 손가락을 걸었고, 정부는 국제사회와 약속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2008년 한국에 대한 ‘국가별 보편적 정례검토’에서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자 차별 문제를 지적했고, 정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답변했다. 병역거부연대회의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가 나오자 성명을 통해 “국방부는 여론 핑계 그만두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라”고 촉구했다. 만약에 대체복무제 도입이 백지화된다면, 한국은 안팎으로 거짓말 공화국이 된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만간 연구용역 결과와 시민사회 여론 등을 종합해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약속을 지킬 기회는 남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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