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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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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던지지 못한 질문

등록 2014-03-22 08:43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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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폭군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동생에게 칼을 휘두른 적도 있었다. 동생이 수학여행을 가기 바로 전날 밤이었다. 그 충격으로 동생은 한동안 기저귀를 차고 다녔다. 어머니는 몇 해 전 녹내장으로 한쪽 시력을 잃었다. 남은 한쪽 눈에도 병이 진행 중이다. 그는 어머니의 병이 아버지의 폭력과 생활고 때문이라 믿고 있다. 아버지를 병원에 보낸 뒤 그의 가족은 기초생활수급 가정이 되었다. 어머니와 그, 어린 세 동생까지 다섯 식구가 받는 현금 수급비는 고작 150여만원. 정부는 어머니에게 근로능력이 있다며 자활근로를 요구했다. 어머니가 일해서 번 만큼 수급비가 깎였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퇴원한 뒤에도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가족은 아버지를 집에서 내쫓았다. 더 이상 같은 악몽을 꾸고 싶지 않았다. 간간이 아버지는 술을 먹고 찾아와 행패를 부리곤 했다. 정부는 부양의무자인 아버지의 소득을 추정해 다시 수급비를 깎았다. 그의 나이, 올해 열아홉. 10대들의 ‘밑바닥 노동’ 실태를 조사하다 그를 만났다.

그는 ‘일주일살이’였다

그는 오토바이 면허를 따자마자 치킨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가 끝난 뒤 밤 12시, 1시까지 일했다. 배달은 사람을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좋다 싶었지만, 가끔은 홀 서빙도 해야 했다. ‘야!’ 손님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오토바이 하나는 잘 탈 자신이 있었던 그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특히 비 오는 날은 쥐약이었다. 길은 미끄럽고 주문은 밀려 있고 사장의 독촉은 거셌다. 그렇게 그가 버는 소득도 드러나면 수급비가 깎인다. 기록이 남을까봐 4대보험 되는 업체는 근처에도 못 갔다. 일자리를 고를 때 통장이 아닌 현금으로 줄 수 있는지부터 물어봤다. 월급으로 달라기엔 부담이 클 것 같아 주급으로 받았다. ‘나는 일주일살이다.’ 주급에 매달려 살다보니 일주일을 넘어선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은 벅찬 일이 되었다.

그런 그가 건당 수수료를 받는 배달대행업체로 옮길까 고민하고 있다. 배달을 많이 뛸수록 수입이 늘 거라 기대했다. 우리가 만난 배달대행업계의 현실을 전했다. ‘배달대행 일은 주문이 없을 때는 수입이 없다. 배달 가는 길에 주문이 취소되면 본인이 음식 값을 물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더 빨리, 더 위험하게 오토바이를 몰아야 한다. 게다가 배달대행 일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그 알량한 노동법의 보호조차 기대할 수 없다.’ 그는 긴가민가했다. 지금은 그가 피한다 해도 앞으로는 대행업체를 찾지 않고서는 배달 일을 구할 수 없을지 모른다. 직접고용 방식을 피하고 필요할 때만 배달하는 사람을 불러다 쓰는 대행 방식이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니까.

‘빈곤사회연대’의 말마따나, 이 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가 폐지를 줍는다고 수급비를 깎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개인사업자로 위장시킨 특수고용이나 나를 고용한 사업주가 누구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간접고용, 내일 당장 일거리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일용직 일자리만이 가난한 이들에게 남겨져 있다. 청소년들은 노동시장에서 갈수록 주변의 또 주변으로 내몰린다. 이 강퍅한 세상의 한복판에 열아홉 그의 삶이 놓여 있다. 그의 삶은 예외적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누군가의 어제였고 누군가의 오늘이며, 더 많은 누군가의 내일일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누군가의 어제였고 누군가의 내일인…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년 뒤를 조심스레 예측해봤다. 악기는 돈이 들어 힘들다던 그는 꿈꾸던 실용음악과로 진학할 수 있을까. 등록금 마련에 힘겨워 휴학이라도 할라치면 그의 근로능력이 수급비를 깎는 빌미가 되진 않을까. 아니면 취업을 선택했을까. 고졸인 그가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수급자 탈출이 소원이라던 그의 밑천이 되어줄까. 질문보다 더 빨리 떠오르는 뻔한 결말들 앞에서 이내 질문을 삼켜야 했다. 그를 앞에 두고서는 차마 던지지 못한 질문을 이 잔혹 사회를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갈 수밖에 없다며 다독였지만, 돌아오는 내내 다리가 휘청거렸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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