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초등학교에 다녔어요. 갈 때는 아빠랑 같이, 올 때는 혼자, 그래서 저는 승차권을 한 장만 들고 다녔죠. 하루는 건널목을 건너는데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정류장에서 막 출발하려는 거예요. 아빠랑 열심히 달렸어요.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아빠보다 내가 먼저 버스에 올라탔을 때 버스 문이 닫혀버렸어요. “어, 어, 아아앙!” 꼬마 아이가 갑자가 울어젖히니까 ‘안내양’ 언니가 놀랐나 봐요. 와서 달래주며 왜 우는지 묻더라고요. “앙, 저기 아빠가 내 승차권 가지고 있는데, 으앙.” 버스는 타버렸는데 승차권이 없었던 거죠.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혼자 가본 적 없는 길에 내려야 할까봐 무서웠나 봐요. 소금꽃 김진숙님의 85호 크레인 농성 150일을 함께 지키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자는데, 저는 또 두렵네요. 소금꽃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희망의 정거장, 85호 크레인김진숙님의 책 를 읽고, 연설하는 동영상을 보고, 인터넷에 오른 글을 만나지만, 저는 소금꽃님을 몰라요. 한진중공업 입사 뒤 도시락 거부 투쟁으로 식당을 만든 것이 최초의 저항이었다는 그 시절을 짐작하지 못합니다. 살아서 같이 싸우자던 동료가 병원 마당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것만으로도 넋이 나갈 지경인데, 그 부검을 빼앗기고 ‘자살’이라고 이름 붙어 돌아온 시대를 알 수 없지요. 세기가 지나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 농성 끝에 목맨 뒤로 보일러를 틀지 않았다는 그 마음은 또…. 저는 김주익 열사의 소식을 듣기만 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서야 부산에 내려가봤어요. 제게는 그냥 크레인이더군요. 그 크레인을 오르다 계단 하나를 탁 잡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심장을 쓱 베며 지나가” 김주익 지회장의 자리를 예감으로 확인하게 되는 소금꽃님의 자리가, 그래서 참 멀지요. 소금꽃님은 오늘도 정리해고당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딸내미·아들내미 이름을 부르지만 제게는 그냥 아이들의 이름일 뿐이지요. 그런데도, 해고는 당해볼 일이 없고 아이들은 키워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제가, 버스를 타도 될까요?
왜 그리 타고 싶냐고요? ‘희망의 버스’라니까요. 헤아리지도 못할 절망과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게 하려고 간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희망’, 그리로 가는 버스라니 한 자리 얻어타고 싶어요. 어쩌다가 인권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살게 됐는데, 여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답니다. 제가 다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지요. ‘빈곤’과 ‘불안정노동’, ‘차별’, 이런 단어로는 수렴될 수 없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일같이 말로 글로 전해집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도,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도, 스스로 노동자라고 불러본 적 없는 사람도 절망에서 자신을 지키며 제 길을 가더라고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 알아버린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내 다 알 수 없다는 걸 번번이 깨닫게 되지요. 알면 길이 보일 텐데, 저는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죽음의 기억과 착취의 시간을 껴안고 살면서도 크레인에서 텃밭을 가꾼다는 소금꽃님을, 그래서 만나고 싶어요.
모두에게 희망의 승차권을거기 길이 있어서가 아니라, 길을 가는 사람이 있어서요. 누구나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는 건데, 저는 아직 두려운가 봐요. 버스 안에서 울었던 날, 다 괜찮다며 그냥 타고 가도 된다고 얘기해준 ‘안내양’ 언니가 소금꽃님의 열아홉 살이었을 것만 같아서 꼭 그렇게 얘기해줄 것 같아요. “다 괜찮아.”
그날 수업이 끝나고 아빠가 교실로 찾아왔어요. 승차권 한 장을 내밀며 집에 가래요. “어, 나한테 승차권 있는데?” 아침에 버스에서 울고 공짜로 타고 왔다는 얘기를 듣고 아빠는 한참 웃었지요. 저는 그제야 주머니에 승차권이 있다는 걸 알았지요. 제게 ‘희망의 버스’ 승차권도 있을까요? 모두에게,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소금꽃님 뵈러 갑니다. 6월11일에 승차권 챙겨 갈게요.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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