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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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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이다?

등록 2011-04-07 09:02 수정 2020-05-02 19:26
나는 학생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나는 학생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나는 가수다. ‘나는 가수다’ 같은 무대에는 평생 올라갈 일이 없겠지만, 우연한 기회에 몇몇 인권활동가와 의기투합해 ‘이름하나못짓고’라는 밴드를 만든 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노래 부르는 거 본 적 있어요”라는 얘기를 세 번쯤은 들어본 가수다. 직업도 아니고 음반 하나 없는데 가수라고 하려니 민망하지만, 노래로 말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가수의 마음으로 바란다. 물론 경쟁심이라고는 들어설 여지가 없을 훌륭한 공연 앞에서는 할 말을 잃어버리는 순진한 청중이 된다. 텔레비전을 안 본 지 오래됐는데도 한 번은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프로그램이 ‘나는 가수다’였다. 내로라하는 가창력을 가진 가수들의 공연을 텔레비전으로 볼 기회는 흔치 않다. 게다가 서바이벌을 선언한 ‘나는 가수다’가 리얼리티쇼로서 자신을 완성할 수 있을까 내심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이런, 보기도 전에 ‘나는 가수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탈락을 당하거나 규칙을 바꾸거나

‘나는 가수다’가 ‘감히’ 탈락자에게 재도전 기회를 줬다. 사람들은 규칙을 훼손한 것에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항의했고, 규칙의 재구성을 시도하던 출연자들은 항의의 표적이 되었고, 규칙 자체보다 규칙이 이루려 한 ‘훌륭한 무대’라는 목표를 이해해달라는 제작진의 호소는 방송사 운영진의 책임 PD 교체라는 엉뚱한 메아리를 얻었다. 세상이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수많은 사람의 열광 속에서 리얼리티쇼는 전 지구적으로 흥행하고 있다. 특히 오디션이나 서바이벌 형식을 갖춘 프로그램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규칙이다. 규칙이 깨지자 리얼리티쇼가 끝나고 리얼리티가 시작됐다. ‘나는 가수다’라고 할 정도의 가수들은 청중 심사단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을 만한 힘이 있고, 그 정도의 가수들을 서바이벌 장에 올릴 힘이 방송사 PD에게 있고, 격렬하게 항의하며 이들 모두를 움찔하게 한 네티즌의 힘이 있고, 이걸 기회 삼아 유능한 PD를 경질할 수 있는 힘이 방송사 사장에게 있다는 것, 그것이 각본 없는 리얼리티다. ‘나는 가수다’는 리얼리티쇼를 해체함으로써 자신의 리얼리티를 완성했다.

규칙에 의문이 제기되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린다.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이고,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순위를 가르는 기준은 정당한가, 순위를 가르는 행위는 정당한가. 이것은 모든 리얼리티쇼뿐만 아니라 리얼리티에 던져져야 할 질문이다. 이런 질문들을 가로막는 힘의 리얼리티 아래 펼쳐지는 쇼가 리얼리티쇼일 뿐이다. 그러나 공정한 규칙은 애당초 없고 탈락 이유가 탈락자에게 있다는 숨은 교훈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어쩌랴. 힘의 리얼리티를 거스르고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기란 쉽지 않다. 나를 탈락시킨 현실의 규칙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탈락당할 수밖에 없던 규칙을 승인하는 것이 손쉬운 선택이다. 리얼리티 없는 리얼리티쇼에 열광하는 현실은 그렇게 계속된다.

‘학교’라는 리얼리티쇼

이 대목에서 나는 학생인권조례가 떠올랐다. 학교 역시 리얼리티쇼가 아닌가. 굳이 교사가 말하지 않아도 공부하는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규칙을 이해하고, 머리 모양이나 옷에 불필요한 신경을 쓰지 않되 눈살 찌푸릴 정도는 아니고, 열심히 공부하되 공부에만 전념하지 않을 정도의 사회성을 갖춘 ‘학생’들만 출연할 수 있는 리얼리티쇼. 리얼리티쇼 밖의 리얼리티에 직면하기 두려워 체벌과 차별과 바리캉으로 ‘사랑’을 왜곡하는 곳. 학생인권조례는 리얼리티를 고발하면서 새로운 ‘규칙’을 제안한다.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찾기 어려워 포기했던 새로운 규칙을 기꺼이 내민다면 덥석 붙들 만도 한데, 학교가 붕괴될 것처럼 ‘어른’들이 불안해하는 건, 역시나 리얼리티쇼의 힘인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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