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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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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법정

등록 2009-01-20 02:34 수정 2020-05-02 19:25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패소 경력이 남부럽지 않은 탓에, 기본적으로 상담 자세가 엄청 부정적이다. 꼭 패소 경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좋은 변호사는 적어도 선임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최대한 보수적으로(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자문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건 당사자들은 언제나 숫자로 된 승산까지 궁금해하는데, 그런 질문에는 언제나 “모든 사건은 반반이다, 이기지 않으면 지니까. 승산이 99%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머지 1% 때문에 질 수 있는데, 그럼 누가 책임지느냐”고 되묻는다. 번잡한 이 이야기의 요지는, 내가 법적 결론을 예측하는 데 매우 보수적이고 조심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그래서 선배들이 돈을 잘 못 번다고 비웃을 정도다).

코미디 법정.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코미디 법정.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극소심쟁이의 큰소리

그런데 이런 극소심쟁이인 나도 이번에는 달랐다. 검찰이 미네르바를 체포했다고 하기에(사실 체포하러 다닌다는 것도 잘 몰랐다. 그렇게 한가할 리가!) 제대로 헛발질한다고 생각했다. 누구 말을 옮기자면 “검찰이 정부를 물먹이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뒷동네 양아치에게 맞은 형님의 상처를 굳이 까 보여주는 꼬봉 짓”을 왜 하는지, 우습기도 했다. 미국 대학에 들인 등록금이 얼마고, 월급이 얼마이며, 연구기관과 언론 수단이 몇 개인데, “미네르바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감소됐다, 미네르바 때문에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수십억이 소요됐다”니- 설마 이런 말이 얼마나 창피한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영장을 청구해도 코미디, 하지 않아도 코미디라고 생각했다(이때까지만 해도 상상력이 빈곤하여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도 코미디, 발부하지 않아도 코미디’까지는 나아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평소의 소심함을 뒤로하고 “구속은 안 될 거다” 큰소리쳤다. 혹시 모른다는 후배(이 친구는 나보다 더 소심한 건 아닌데, 확실히 세상에 대한 감은 더 있었던 듯) 말에는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런다, 법원이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지극히 꼰대스런 멘트도 날려주셨다. 그런데 정말 영장이 청구됐고, 게다가 발부까지 됐다!

…으응?(내 말투가 비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동네 반응을 실감나게 옮기다 보니 이렇게 된다.) 드라마도 막장이어야 뜬다더니, 막장이 되자 법원이랑 법조인들, 유명해졌다. “야, 법조인으로서 한마디 해봐. 이런 일로 구속될 수도 있는 거야?”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정말 내가 판사님·검사님도 아닌데, 법으로 밥 먹는다고 말하기가 낯간지러운 날들이었다.

내가 모르는 무슨 법리나 사실관계(항상 법조인들이 즐겨 하는 말씀이다. 언론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법리를 모르면서 여론을 호도한다면서)라도 있나 해서, 법전도 뒤져보고, 검찰에서 발표하는 자료도 읽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라. 다른 것은 다 떠나서, 도대체 왜 이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인지. 이 난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일로 사람을 구속까지 해야 한다는 게 법전 어디에, 민주국가 법의 정신 어디에 쓰여 있는지(쓰여 있다면 왜 나한테만 그런 걸 안 가르쳐준 거야, 법대 4년에 대학원까지 등록금 꼬박꼬박 가져다 냈는데!).

고용안정센터 대기실의 사람들

인터넷에서는 “저 잡아가지 마세요, 그냥 다른 데서 퍼온 거예요” 따위의 말이 붙은 글들이 올라온다. 그런데 설마 이런 걸 진심이라 보고, 미네르바 체포의 효과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며칠 전 라디오에 나와 국회 싸움이 외신에 보도돼 창피하고 슬펐다는 당신, 이 일이 보도된 외신은 보셨나? 혹시 이게 자랑찬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란 걸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정말 슬픈 것은, 창피한 걸 모르는 당신이나, 이 동네에서 법으로 먹고사는 내가 아니다. “도대체 미네르바가 뭔데 온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워? 그게 사람 이름이야?” 영문도 모르고 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 타러 온 고용안정센터 대기실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 이 모든 ‘생쇼’를 벌이면서 정작 책임을 방기하는 사람들 탓에 이 추운 날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어야 하는 이 겨울이다.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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