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사회 > 줌인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6월23일 제716호
‘카자흐 이어 부동산 대박’ 차용규, 왜 감추나

삼성물산 직원에서 1조원대 재산가로 변신… 카작무스 지분 팔고부터 국내 부동산 1천억원 이상 매입 의혹

▣ 김규원 기자 한겨레 지역팀장 che@hani.co.kr
▣ 임주환 기자 한겨레 경제부 eyelid@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차용규 국내 부동산 투자 의혹]

지난 2002년 5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월드와이드컨설팅 리미티드’(이하 월드와이드컨설팅)라는 이름의 회사가 서울과 경기, 대전, 제주 등지에서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건물 8건을 잇따라 사들였다. 이 가운데 6건은 법원 경매에서 낙찰을 받은 것이었다. 이 회사의 관계사인 아이피아이씨(IPIC)도 2002년 5월 부산에서 시가 수백억원의 건물을 한 채 사들였다.


△ 한국에서 9번째 부자는 차용규씨? 차용규씨가 아파트 한채를 소유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한 주상복합(왼쪽/사진 윤운식 기자)과 차씨가 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강남구 대치동의 은마상가(사진/ 박승화 기자)

은마상가, 옛 동아생명 빌딩… 시가 5천억원

경매업계에서 월드와이드컨설팅은 외국계 회사로 알려졌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한때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한국 부동산을 많이 사들였는데, 그 가운데 월드와이드컨설팅이 단연 눈에 띄었다”며 “워낙 큰 물건들을 계속 사들여 경매 쪽에서도 전주가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이 많았다”고 말했다.

월드와이드컨설팅이 사들인 건물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가장 눈에 띄는 물건은 2006년 2월에 경매에서 낙찰받은 서울 강남구 대치2동 316번지 은마상가다. 규모는 토지 4326㎡에 건물 9787㎡로, 낙찰 가격도 월드와이드컨설팅이 사들인 건물 가운데 가장 큰 372억원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소유였으며, 한보그룹 본사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또 월드와이드컨설팅이 사들인 건물 가운데는 옛 동아생명 빌딩 2채가 포함돼 있다. 월드와이드컨설팅은 2002년 5월에 부산 부산진구 부전1동에 있는 지상 20층, 지하 6층짜리 옛 동아생명 건물과 대전 중구 오류동에 있는 지상 16층, 지하 6층짜리 옛 동아생명 건물을 한꺼번에 사들였다. 두 건물의 현재 시가는 450억~ 5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특히 대전의 건물은 현재 월드와이드컨설팅의 한국 영업소, 부산 건물은 아이피아이씨의 한국 영업소로 돼 있다.

월드와이드컨설팅은 호텔과 백화점 건물도 3개나 사들였다. 2005년 12월 제주시 노형동 옛 현대텔콘을 141억100만원에 경매에서 낙찰받았고, 2006년 3월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옛 엔티마호텔을 88억원에 낙찰받았다. 2006년 10월엔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건영옴니백화점을 경매에서 201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지난 6월13일 월드와이드컨설팅은 건영옴니백화점 리모델링을 위해 ㅈ디자인과 44억6천만원에 계약을 맺었다.

“‘거물’ 투자회사 실제 주인은 차용규”

이 밖에도 월드와이드컨설팅은 2003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우성캐릭터 스포츠센터(시가 400억원), 2005~2006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현대타워랜드(시가 100억원), 2004~2006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해암빌딩(시가 1000억원) 등을 경매나 매매를 통해 사들였다. 월드와이드컨설팅이 경매로 사들인 6건의 낙찰 가격만 920억원이었으며, 당시 감정가는 1648억원이었다. 이들 건물의 현재 시가는 4천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매입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옛 동아생명 건물 두 채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스포츠센터의 시가도 15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회사가 2002~2006년 사들인 부동산의 매입가는 최소한 1천억원 이상이며, 시가는 5천억원을 훌쩍 넘는다.

이쯤 되면 거액을 들여 건물들을 꾸준히 사들인 돈주인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취재 과정에서 <한겨레> 기자는 월드와이드컨설팅이 사들인 한 건물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과 만났다. 그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동산 투자사인 월드와이드컨설팅과 아이피아이씨, 그리고 이 회사들이 사들인 건물들의 실제 소유자는 한국의 대부호인 차용규씨라는 것이다.

차용규씨는 삼성물산의 카자흐스탄 알마티 지점장으로 근무하다가 1995년 삼성물산이 현지 구리 채광·제련업체인 카작무스의 경영을 맡으면서 카작무스의 대표이사로로 일했다. 2004년 8월 삼성물산이 카작무스의 지분을 모두 매각한 뒤에는 다른 자본을 끌어들여 계속 카작무스의 대표이사로 일했으며, 2006년 대표이사를 그만두면서 카작무스의 소유 지분을 팔아 1조원 이상의 재산을 이뤘다(712호 줌인 ‘카작무스 차용규, 국내 부동산 수천억 투자’ 참조).


△ 서울 마포에 있는 부동산 투자사 아이피아이씨와 에이프로 비즈의 사무실. 차용규씨가 실질적인 소유자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 윤운식 기자)

올해 3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의 부자 1천 명 가운데 843번째였던 그의 재산은 14억달러(1조4천억원)였다. 그의 재산은 삼성의 이건희·이재용 부자, 현대의 정몽준·정몽구 형제, 롯데의 신동빈·신동주 형제보다는 적었지만 구본무 LG 회장 바로 다음이었고, 허창수 GS 회장보다 더 많았다. 한국에서 9번째 부자였다.

월드와이드컨설팅과 아이피아이씨, 그리고 이 회사들이 사들인 건물들이 차씨의 소유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선 월드와이드컨설팅에 대해 알아봤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니, 월드와이드컨설팅은 말레이시아 라부안이란 곳에 본사를 두고 있었다. 이곳은 유명한 ‘조세 피난처’여서, 이 본사는 명목회사(페이퍼컴퍼니)로 여겨진다.

법인 등기부등본상 한국영업소 대표자는 최아무개(46)씨였다. 수소문 끝에 최씨에게 전화했으나, 최씨는 차용규씨와의 관계나 부동산 투자 재원과 관련해 “차씨와 관계가 없다. 무슨 범죄 사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밝힐 이유가 없다. 할 말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번엔 아이피아이씨 쪽에 문의했다. 아이피아이씨 역시 라부안에 본사를 둔 명목회사로 보였는데, 한국영업소 대표인 이아무개씨는 차용규씨와의 관련성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아이피아이씨는 본사가 외국에 있는데, 차용규 회장은 본사 쪽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나는 본사 쪽에서 투자하라고 돈을 보내오면 입찰하고, 낙찰받은 건물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사에서 보내온 돈이 차 회장 돈인지는 나도 모른다”면서도 “차 회장이 1년에 한두 번 국내에 들어온다”고 전했다. 이 회사의 다른 관계자는 “차용규 회장은 직접 나서지 않고, 차 회장과 아는 사람들이 차 회장의 사업 자금을 받아서 대리로 국내 부동산에 투자해주고 있다”며 “차 회장은 가끔 국내에 들어와 대리인들과 함께 식사하거나 골프를 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에이프로’란 이름에 비친 삼성의 그림자

아이피아이씨의 사무실은 서울 마포의 한 빌딩에 있는데, ‘에이프로 비즈’와 ‘에이프로 에프앤디’라는 회사와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제보자는 이 회사들이 차용규씨와 친척이나 친지 관계로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월드와이드컨설팅의 최 대표는 차용규씨와 사촌형제, 아이피아이씨의 감사인 차아무개씨는 차용규씨의 누나, 에이프로 비즈의 이사이자 에이프로 에프엔디의 감사인 차아무개씨는 차용규씨의 남동생, 아이피아이씨의 대표이사인 이아무개씨 부인과 차씨의 누나는 친구 사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당사자들이나 회사의 임직원들은 대부분 대답을 회피했다. 차용규씨의 누나로 알려진 차아무개씨는 <한겨레> 기자가 전화를 걸자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에이프로 비즈와 에이프로 에프앤디의 박아무개 대표이사도 “그런 것을 왜 묻느냐? 내가 대답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다만 이 회사의 한 직원이 “처음에 회사 들어왔을 때부터 이 회사의 회장님이 차용규씨라고 들었다”고 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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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과정에서 <한겨레> 기자는 차용규씨와 이 부동산 투자회사들 사이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에이프로’라는 이름이었다. 차용규씨는 2001년 3월 영국 런던에 ‘에이프로(APRO) 리미티드’라는 판매법인을 설립했는데, 이 회사는 기존에 삼성물산이 해오던 카작무스 구리 제품의 세계 시장 판매를 대행했다. 에이프로 리미티드는 차씨와 동업자인 블라디미르 김이 2004년 10월 카작무스를 런던 증권시장에 상장해 대박을 터뜨리는 발판이 된다.

에이프로 리미티드는 삼성물산과도 관련이 있었다. 이 회사를 설립한 2001년 3월 차씨는 삼성물산 카작무스사업 담당 상무보로 승진했는데, 삼성은 차씨를 이 회사에 파견해 근무하도록 했다. 또 당시 카자흐스탄 현지 매체인 <인테르팍스-카자흐스탄>은 삼성물산을 포함한 몇 개의 무역회사들이 함께 에이프로 리미티드를 설립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2004년 9월2일에 서명된 2003년 12월 에이프로 리미티드의 연차 보고서를 보면, 당시 삼성물산 상무보였던 차용규씨와 원세현 당시 런던지사장(현 삼성물산 기획팀장·전무)이 에이프로 리미티드의 공동 대표이사로 올라 있다.

삼성이 한때 42.55%에 이르던 카작무스의 모든 지분을 팔고 손을 뗀 시점이 2004년 8월16일이므로, 삼성물산은 최소한 2003년 말, 늦으면 2004년 9월까지 차용규씨와 원세현 당시 삼성물산 런던지사장을 에이프로 리미티드에 파견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후 삼성물산이 에이프로 리미티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007년 3월28일 작성된 ‘디에스지 데이터케어’라는 기업정보회사의 자료를 보면, 차용규씨는 여전히 에이프로 리미티드의 대표이사이며, 이 회사의 사무실은 런던의 카작무스 건물로 돼 있다.

지분 헐값 매각, 삼성의 실수일까

삼성에 대한 특검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2월20일 경제개혁연대는 특검에 수사 요청서를 냈다. 요청서의 내용은 “2004년 8월 삼성물산이 카작무스 주식을 헐값으로 매각한 ‘페리 파트너스’는 삼성물산 직원으로 현지에 파견돼 카작무스의 대표이사로 일한 차용규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로, 차씨는 2004년 10월 카작무스를 런던 증시에 상장한 뒤 지분을 모두 매각해 1조원대의 차익을 얻었다”고 돼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헐값 매각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친 삼성물산 이사들의 배임 혐의와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수사해달라”고 특검에 요청했다. 특검은 카작무스의 대표였던 차용규씨의 국내 납세 자료를 국세청에 요청한 것으로 한때 알려졌으나, 그 뒤 실질적으로 카작무스나 차용규씨와 관련한 수사를 벌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취재와 관련해 <한겨레>는 지난 3월 차씨가 카작무스 회장 시절 사용하던 전자우편 주소로 질문지를 보냈으나, 6월19일까지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