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상품 뿐 아니라 만기가 긴 보험상품에도 숨겨져 있는 마술
▣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 jeje@hani.co.kr
경제학이 ‘우울한 학문’이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인구론>을 쓴 토머스 맬서스에서 유래한다. 그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밖에 증가하지 않아 인류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가 살던 시대에 인구증가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맬서스의 인구증가 법칙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연구에서 따온 것인데, 프랭클린은 “미국에서는 20년이나 25년마다 인구가 2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증가율이 연 3% 안팎이다. 오늘날 인구증가율은 그보다는 낮지만, 어쨌든 식량위기에 대한 맬서스의 경고는 빗나갔다. 인구증가율이 크게 줄어서라기보다는 인류가 식량 생산을 늘리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구의 한편에서 수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인류 전체의 식량 생산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 보험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 이자가 붙은 돈으로 보험금을 충당한다. 삼성생명의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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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저축을 했다면?
맬서스의 인구법칙은, ‘기하급수’적 증가(1, 2, 4, 8, 16식으로 늘어나는)라는 말을 사람들의 머리 속에 깊이 새겨놓았다. 옛 사람들도 기하급수적 증가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인도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왕이 바라는 큰일을 해낸 한 백성에게 왕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해주겠노라 했다. 그는 “바라는 것은 그저 체스판을 하나 놓고, 첫째 칸에는 쌀 한 톨, 둘째 칸에는 두 톨, 셋째 칸에는 네 톨, 이런 식으로 마지막 칸까지만 채워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왕은 그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주려다, 말았다. 알고 보니 제일 마지막 칸에 들어갈 쌀 알의 수는 2의 63제곱, 무려 461경1168조 개에 이르렀던 것이다.
기하급수적 증가의 위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자에 다시 이자가 붙는 식으로 원리금이 증가하는 복리도 마술을 부린다. 1626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네덜란드 총독 피터 미뉴이트한테 60길더(24달러)어치의 유리구슬과 낚싯바늘을 받고 맨해튼섬을 팔았다. 그런데 그 24달러를 쓰지 않고 저축했다면 오늘날 맨해튼섬을 다시 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그럴까? 원주민들이 그 돈을 연 5% 복리로 저축했다면 38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돈으로 27억달러가량이다. 얼마 안 된다. 그러나 이자율이 7%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려 3조5천억달러(1580조원)나 된다. 맨해튼 땅을 다 사고도 남을 만한 돈이다. 물론 이런 계산법은, 이자율이 7%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가정에서 이뤄진 것으로 그다지 현실성은 없지만 말이다.
시애틀대학의 취업담당자 에리카 림은 지난 2005년 학생들을 상대로 스타벅스 커피 안 마시기 운동을 벌였다. 3달러 하는 스타벅스 커피를 하루 한 잔씩 일주일에 다섯 번 사마시는 돈을 30년간 복리로 저축하면 5만5천달러에 이르는데, 학자금을 빌려 학교에 다니는 이들이 이런 사실을 쉽게 잊는다는 게 그 취지였다. 2500원짜리 ‘에세’ 담배를 하루 한 갑씩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끊고 30년간 연 4% 이자율로 그 돈을 모으면 5117만원이 된다. 이 또한 복리의 위력이다.
복리의 위력은 저축상품뿐 아니라, 만기가 긴 보험상품에도 숨겨져 있다. 보험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 이자가 붙은 돈으로 보험금을 충당한다. 따라서 시장 이자율이 높아 보험사가 적용하는 ‘예정이율’이 높을수록 보험료가 싸진다. 저축성 보험이나 연금보험 상품의 경우 이자율이 높으면 같은 보험료를 내고도 훗날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이 커진다. 1980년 삼성, 교보 등 6개 보험사들이 판매한 보험상품으로 ‘백수보험’이란 게 있다. 100살까지 살라는 뜻을 담은, 노후 대비 보험상품이었다. 백수보험은 보험사가 고객의 보험료로 채권을 사는 등 운용해, 그 수익을 가입자에게 돌려주는 유배당 상품이었다. 시중금리가 연 20%대이던 그 무렵, 보험사들은 백수보험에 가입하면 연 25%가량의 확정금리로 배당을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선전했다. 물론 확정금리로 배당한다는 것은 사실과 달랐다. 보험 판매원조차 그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백수보험의 인기는 실로 대단해서, 1년 만에 100만 건 이상의 가입자를 유치했다.
고금리 시절에 가입한 보험, 해약하면 손해
문제는 1981년 6월28일 정부가 은행 금리를 연 12%로 제한하는 조처를 내리면서 터져나왔다. 연 25%의 확정금리로 배당금을 지급한다면 보험사들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한 운용수익을 낼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고객들로 하여금 보험을 해약하고 다른 보험으로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일부 가입자는 이를 해약하지 않고 갖고 있다가 지금까지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지금은 이런 확정금리 배당상품이 거의 없다. 변액보험 외에는 유배당 상품조차 드물어졌다.
저축을 하거나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금리가 높을수록 좋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시장 금리가 떨어지면, 고금리 시대에 가입한 보험을 해약하도록 유도하곤 한다. 보험사들은 시대에 맞는 보장을 담은 좋은 상품이 나왔다고 고객을 유혹하지만, 그것이 고객보다는 보험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것임은 분명하다. 시장 이자율은 성장률이 높은 시대에 높고, 성장률이 떨어지면 낮아진다. 따라서 고성장 시대나, 외환위기 이후 고금리 시절에 가입한 보험상품을 지금처럼 금리가 낮은 시대에 해약하는 것은 손해로 이어지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