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취재뒷담화 칼럼 목록 > 내용   2007년03월07일 제650호
못다 쓴 진실

▣ 류이근 기자 yuyigeun@hani.co.kr

“이근씨 국세청은 그렇게 끝난 거야? 더 안 써?”

오랜만에 만나니 으레 하는 인사겠거니 하고 넘길 수 있으련만, 순간 불편한 기억들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여의도를 오가면서 마주치는 타 언론사의 동료나 선배 기자들한테서 최근까지도 간혹 듣던 인사말이다. 우물쭈물하다 동문서답으로 넘긴다. 그게 편하다. 뭔가 아쉽다는 눈치를 주기도 하지만, 그 눈치를 받아줄 아량이 부족하니 어쩌겠나. 설명할 게 많아지는 것도 귀찮다.

지난해 9월 이전까지 국세청과는 아무런 연도 없었다. 2000년 한겨레신문사에 들어와서야 납세자로서 거래를 텄으나, 직접 관계를 맺을 일도 부딪힐 일도 없었다. 하지만 국세청이 국회 열린우리당 재정경제위원회 보좌관들에게 국세청장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50만원씩의 돈을 돌렸다는 기사를 쓴 뒤, 피곤한 관계가 됐다. 각오한 그 피곤함들은 후속 표지 기사 등에 많은 부분이 실려 있다. 지난해 국세청을 대상으로 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과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이 <한겨레21>의 기사를 제시하며 국세청장을 추궁하고, 직후 국세청이 관련자 일부를 좌천시켰다는 마지막 보도를 한 뒤 모든 것이 해결된 듯 조용해졌다.

새삼 지금 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그 조용함에 묻힌 불편한 기록을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첫 보도 뒤 열린우리당 의원이나 보좌관들은 대개 이런 반응이었다. “기사 잘 봤다. 그런데 얘기 듣기로는 한나라당 쪽도 돈을 받았다고 하는데 왜 그건 보도하지 않았냐?” 나름대로 취재해봤으나 확인할 길이 없다고 답했지만, 스스로도 개운치 않았다. 한나라당 쪽 보좌관들을 취재하면서 명백한 증거나 증언을 찾아낼 수 없었지만, 의심 나는 ‘낌새’는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열린우리당 쪽만 국세청으로부터 ‘검은돈’을 받았다고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모양새가 됐다.

시간이 좀 흘렀다.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 한 명을 만났다. 우연찮게 그는 “<한겨레21> 보도 뒤, 혹시나 해서 우리 방 보좌관을 불러 물어봤다. 그랬더니 50만원인가를 국세청으로부터 받았다고 실토하더라”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틀림없는 증언이자 증거였다. 열린우리당 쪽에서 돌던 ‘한나라당도 돈을 받았다’는 얘기들은 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리한 듯한 상황에서 의원의 말을 근거로 한참 지난 뒤 후속 기사를 다시 쓸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보도하지 않으리라 믿고 얘기해준 대목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진실은 이건데’라는 짓눌림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좀더 완벽하게 취재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알 만한 사람들’이 취재원 중 한 명을 눈치챈 것은 큰 과오였다. 취재원 보호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폭로성 기사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금품 수수의 현장과 경로를 가급적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래서인지 혹시나 하고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초기에 그는 ‘취재원의 권리’를 얘기하며 법에라도 호소하고 싶다고까지 했다. 물론 거듭되는 사과에 “괜찮다”고 얘기했으나,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도 시원치 않을 판이었다. 취재원 보호는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제1의 원칙으로 삼듯, 기자의 양보할 수 없는 제일의 의무다. 그걸 지키지 못했다. 지금도 취재원에겐 다시 낯을 들 수 없을 만큼 큰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게으름과 부주의함으로 얻어진 불편한 조용함은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