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정치 > 정치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9월22일 제628호
국세청, 국회에 ‘검은 돈’ 뿌렸다

전군표 청장 청문회 앞두고 여당 의원 보좌진들에게 최소 두차례 50만원씩… 재경위 여야 의원들에게 술자리와 골프 접대도… 돈의 출처는 확인 안 돼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국세청이 국회에 ‘검은돈’을 뿌렸다. 지난 7월13일 전군표 국세청장의 인사청문회를 앞둔 예민한 시점에서다. 국세청은 최소한 두 차례에 걸쳐 4~5명 이상의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재경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보좌진들에게 각각 50만원씩의 현금을 건넨 것으로 <한겨레21> 취재 결과 밝혀졌다.


△ 지난 7월 전군표 국세청장이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다. 청문회에 앞서 국세청은 모든 조직을 동원해 국회 재경위 소속 의원과 보좌진을 대상으로 로비를 폈다.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국세청은 재경위의 감사를 받는 정부기관으로서 전군표 청장의 인사청문회는 재경위 소관이었다. 청문회 즈음 국세청의 거의 전 조직이 달라붙어 새 청장이 무난한 인사청문회를 받을 수 있도록 ‘로비’를 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사고가 터진 것이다.

16대 국회에선 더 심하게 부려대

1. 국세청의 과장급 간부 하나가 재경위 소속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실을 찾아왔다. 청장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둔 어느 토요일이었다. 과장은 “음료수나 사 드시라”며 봉투를 놓고 갔다. 보좌관은 “차라리 음료수를 사와라, 돈은 받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과장은 막무가내였다. 30분쯤 지나 보좌관은 봉투를 열어보고 놀랐다. 빳빳한 1만원짜리 현금 50장이었다. 전화로 “당장 가져가라”고 했지만 다음주 월요일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다음날에도 출근한 보좌관은 국회의 다른 의원실을 찾아다니는 국세청 과장을 우연히 만나 돈을 돌려줬다. 의원은 국세청의 윗상관을 불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호통을 쳤다.

2. 비슷한 시점에 국세청의 몇몇 간부들과 3~4명 이상의 열린우리당 보좌진이 국회 앞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국세청 간부는 보좌진들에게 50만원이 든 돈봉투를 내밀었다. 다들 그 자리에서 덥석 받았다. 자리에 없던 한 보좌관이 이 사실을 알고 돈을 받은 같은 방의 보좌관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왜 돈을 받았냐”고 따져 묻자 보좌관은 “다른 보좌진들도 다 받기에… 혼자 돌려주기가 좀 뭣했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들려줬다. 이 보좌관이 결국 돈을 돌려줬는지 충고를 한 보좌관도 모른다. 또 술자리를 함께했던 다른 보좌진들도 돈을 국세청에 돌려줬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세청이 돈을 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ㅇ보좌관은 “지난해 3월 이주성 국세청장 인사청문회 때도 그랬다. 당시 국세청 간부가 돈봉투를 들고 와서 된통 혼낸 뒤 돌려보냈다. 그때 찍혀서 그랬는지 이번엔 들고 오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17대 국회 들어서 많은 것이 변했다고 하지만 국세청의 ‘탈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6대 국회에서는 더욱 광범위하게 돈봉투가 오갔다. 오랫동안 재경위에서 일했던 또 다른 ㅇ보좌관은 “국세청이 16대 국회 상반기에도 재경위 소속 여야 보좌진들한테 50만~100만원이 든 돈봉투를 돌렸다. 2003년 나한테도 돈봉투를 가져와 야단을 쳐서 돌려보낸 적이 있다”고 확인했다. 투명 과세를 외쳐온 국세청의 뒷돈 찔러주기는 오래된 관행인 셈이다.

몇몇 국세청 간부들은 어떻게 조성된 돈을 국회에 뿌릴까. ‘검은돈’일 가능성도 있다. 정부기관이 업무추진비로 로비에 쓰기 위해 수백만원의 현금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세청 공무원의 청렴 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은 “여비·업무추진비 등 공무활동을 위한 예산을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을 금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금품과 향응, 골프 접대 등을 제공한 간부들의 개인 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재경위 소속의 한 보좌관은 “업무추진비가 아니라 일선 세무관서를 통해 걷어들인 돈일 수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 현금을, 그것도 은밀히 건네기 때문에 내부에서조차 쉽게 알 수는 없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행정학)는 “국세청에서 그런 돈이 어떻게 만들어졌겠냐? 개인의 부패 차원을 넘어선 일종의 기관 부패가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관행인가, 결정적 ‘흠집’ 은폐인가

돈뿐이 아니다. 술자리와 골프 접대도 이어졌다. 로비 대상도 여당의 보좌진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국회 재경위 전체가 대상이었다. 한 의원은 국세청 간부들에게서 골프 접대를 받았다.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사람당 수십만원의 비용은 국세청의 몫이었다. 이 의원은 수시로 피감기관인 국세청 간부들과 골프를 쳐왔다. 또 다른 의원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기업체의 선배와 동기들에게까지 ‘압력성’ 전화를 받았다.

한나라당에도 마찬가지였다. 국세청의 몇몇 간부들은 재경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보좌진들을 단체로 불러 고급 횟집에서 술자리를 폈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인사차 나갔을 뿐이다. 청문회 관련 얘기가 오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국세청 간부 몇 명이 앉아 있었고, 이들이 다른 보좌진들과 함께 2, 3차를 뛰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세청에서 한나라당에도 돈을 뿌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의문점은 예민한 시점에 왜 국세청의 전 조직이 달라붙어 돈까지 써가며 대국회 로비를 벌였을까다. ㄱ보좌관은 “왜 그렇게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보좌진들끼리 ‘엄청 큰 것이 있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당시 전군표 청장 후보자와 관련된 두 가지 얘기들이 국회에 떠돌았다. 둘째아들의 병역특례와 장인 재산의 증여를 둘러싼 의혹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경위 소속 보좌진들은 전군표 청장을 둘러싼 의혹들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자료 감사에서 확인됐다고 밝혔다. ㅇ보좌관은 “우리 ‘코드’와 맞아 환영했다. 그런데 자꾸 국세청 간부들이 찾아오니까 ‘우리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청문회와 관련해서 국세청의 많은 간부들이 재경위 의원들의 방을 줄기차게 돌면서 의원이나 보좌진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청문회에서 새 청장님을 잘 봐달라”는 부탁을 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인사청문회에서 새 국세청장의 도덕성과 자질에 흠결이 될 만한 결정적인 하자는 드러나지 않았다.

국세청 간부들이 ‘충성 경쟁’을 벌였다거나 인해전술식 로비를 벌이는 것은 국세청의 오랜 관행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세청은 청문회를 앞두고 재경위 소속 의원과 보좌진과 학연·지연 등 연결고리가 닿는 직원들은 주사부터 국장까지 총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로비 방식과 비슷하지만 더욱 집요하고 수적으로도 비교가 안 될만큼 훨씬 많다. 한 보좌관은 “보좌진이나 의원과 연줄을 찾아내면 제주도든 부산이든 지역의 세무서 간부와 직원이 찾아와 연줄을 강조한 뒤 ‘청장님이 되는 데 최대한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얘기하고, 밥이나 술자리를 같이 하자고 한다. 누가 청장이 될지 파벌 경쟁이 끝나면 자기 결속력을 다지는 차원에서 모두 신임 청장한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국세청 직원이 말하더라. 하지만 청장이 한 번 바뀌면 인사청문회를 하기도 지겨운데 떼거리로 몰려와 돌아다니는 것 때문에 우리로선 아주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 방에만 전군표 청장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1~2주새 10명이 넘는 국세청의 간부와 직원들이 다녀갔다.

국세청의 조직적인 대국회 로비가 실제로 얼마나 통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국세청장을 불편하게 하는 질문은 거의 없었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병역 문제는 많은 의원실에서 자료 요청을 했음에도 누구도 질의하지 않았으며, 장인의 증여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만이 간략히 물었을 뿐이다. 국세청의 전방위적인 로비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ㄱ보좌관은 “의원이나 보좌진의 골프 접대나 주선은 어느 기관이나 다 하지만 재경부와 국세청이 제일 많이 한다”며 “그렇게 안면을 익히다 보면 아무래도 감사나 청문회를 할 때 지장을 받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금품과 접대 모두 부인

국세청은 모르쇠로 반응했다. 국세청의 대국회 연락관 업무를 맡고 있는 박아무개 사무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가 알기로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의원실과) 술자리도 갖지 않는다”며 “자료 수집차 국회를 찾아가는 공식적인 라인에서 찾아가는 것은 관례화돼 있지만 그 이외의 (국세청의) 제3자가 (국회와) 접촉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재경위 소속 국회 보좌관과 의원 등 20여 명이 <한겨레21>에 증언해준 것과 연락관의 얘기는 편차가 너무 크다.

열린우리당은 국세청이 금품을 돌린 사실을 쉬쉬하고 있는 상태다. 몇몇 의원들은 사건이 터진 뒤 보좌진들에게 국세청에서 금품을 받았는지 확인할 만큼 이번 사건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내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공론화 등을 통해 스스로 자정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국세청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다. 박재창 교수는 “이건 로비가 아니라 부패 사례다. 금품과 향응을 주고받는 것은 공직자 윤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일종의 정책 결정 과정의 일부인 인사청문회를 무력화하는 것이고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적인 미비점도 있다. 행정 부처에서는 지난 2003년 5월부터 공무원 행동강령이 시행되고 있지만 국회는 국가청렴위의 행동강령 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강령을 제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회 공무원인 의원 보좌진이 따라야 할 구체적인 행동강령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보좌진협의회의 한 보좌관은 “의원 보좌진은 공직자 윤리규정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말했다.